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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81화 (81/390)

81화.

제국군은 계속해 북상하며 행군했다.

그리 편한 행군길은 아니었다.

"우측 평야지대! 마물 집단 출 몰!"

"기병연대를 보내 제압하게."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마물들이 출몰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도시 굴라덴을 지나 공국 영토 깊숙이 진입하는 제국군이었다.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공국군도 민병도 아닌, 마물들이었다.

나는 저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마물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공국의 마물 경계망이 붕괴했나 본데."

이 세계는 마물이 있다.

자연 속 동식물이 마나에 침식당 해 변이해버린 생명체들. 그것들은 일반적인 동식물보다 훨씬 강한 힘을 지니며 인간 등을 공격한다.

멀리 움직이고 있는 마물들을 모습을 살폈다.

회색 늑대형 마물이었다. 눈가에는 푸른색 안광이 흘렀고, 덩치는 일반적인 늑대보다도 훨씬 커다랬다.

"그레이 하운드인가."

늑대형 마물들 중에서 가장 흔하 게 보이는 것들.

기병들이 출동해 마물들을 해치 웠다. 그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가 기병창을 휘둘렀고, 늑대무리 절반 이 죽어나간 뒤 흩어졌다.

내 옆에 있던 카일이 중얼거렸다.

"이곳은 공국령 중앙 아닙니까? 헌데 마물이라니."

"전쟁 때문에 마물을 소탕할 군대가 모조리 갈려나갔으니까. 슬슬 오지에서 팽창한 마물 집단이 이곳저곳에 나타날 때가 되었지."

이 세계는 현실 지구보다도 군인 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유는 마물의 존재 때문이었다.

마물은 오지 곳곳에서 자생한다. 그들은 때때로 마을이나 상단을 습격해 전멸시키기도 했고, 도시의 치안을 약화시키기도했다.

그래서 각국가에서는 주기적으로 군대를 동원해 마물을 소탕했었다. 마물이 세를 불려 커다란 집단 이 되기 전, 미리 제거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공국은 전쟁에 대부분의 군대를 소모했고, 때문에 마물들이 하나둘 경계망을 뚫고 모습을 드러 내고 있다.

"공국의 마물 경계망이 붕괴한 이상. 행군하면서 더 많은 마물들을 마주치게 될 거야."

"위험할까요?"

"아니. 전혀."

물론 걱정은 되지 않았다.

마물이 공국령 이곳저곳에 출몰 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그리 대규모의 마물 집단이 형성되진 않았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속한 것은 무려 6만에 달하는 대규모 행렬. 더해 마법사와 기사들까지 포함되 어있다. 대규모 마물 집단이 나타난 다 한들 그리 어렵지 않게 분쇄할 수 있으리라.

"그보단 공국 민간인들이 위험해 지겠지."

위험한 건 공국의 백성들이었다.

그들이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있던 것은 주기적으로 마물을 소탕 하는 군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군대 태반이 갈려나간 상황. 이제 곳곳의 마을들은 마물에 의해 적지않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마침내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가 델라웨다."

델라웨. 공국 중부 제 2의 도시.

나는 발걸음을 옮겨 군단의 행군을 뒤따른다.

"… 정말 도시 안에 사람이 별로 없군요."

"그치?"

엘락이 말하고, 나는 고개를 끄 덕여 긍정했다.

지금 우리 백인대는 도시 델라웨에 도착, 정세를 파악하라는 명령에 의해 도시 외곽을 훑으며 수색하는 중이었다.

민간인들의 수가 너무나도 적었다. 본래 십만이 넘는 인구수가 살 았던 도시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다들 피난 간 거겠지. 도시에 있다면 흑마법사의 제물이 될 테니까."

이미 굴라덴에서 흑마법사를 운 용했던 공국이다. 그 소문이 사람들을 타고 델라웨에 전해졌을 것이 분명할 터.

하지만 모두 피난 간 것은 아니었다.

"군인 아저씨… 도와주세요…."

"이틀을 굶었습니다. 제발…."

나름대로 도시에 남아있는 이들 이 꽤 되었다.

그들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잘 씻지 못한 것인지 얼굴에는 땟국물이 질질 흘렀다. 머리는 산발 이었고 피부색은 좋지 않았다.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이상해."

"뭐가 말입니까? 백인장님."

"도시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죄다 여자나 노인, 아이들이야."

아니,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였다. 젊은 중장년층 남성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무리 피 난을 갔다 한들, 젊은 남자들이 하나도 남지 않을 리는 없을 터인데.

의아함을 느낀 나는 길거리의 꼬맹이 하나를 붙잡았다.

"꼬맹아. 잠깐 말 좀 묻자."

"배가 고파요…."

"잘 답해준다면 이걸 주마."

나는 군장에서 육포와 군용 비스 킷을 꺼냈다.

말이야 비스킷이지. 실상은 소금 섞인 밀가루 반죽을 구워 만든, 이빨조차 안 박힐 정도로 더럽게 단 단한 전투식량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가진 게 이것밖에 없었다.

"네! 아는 건 모두 알려드릴게 요."

"젊은 남자들은 다 어디 갔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인들에게 구걸하는 이들 중 여전히 중 장년층 남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소년이 대답한다.

"군인들이 와서 데려갔어요."

"데려갔다니. 이 도시의 젊은 남자들을 모두?"

"네. 모두요. 제 형과 아버지도 군인들이 데려가 버렸어요. 그리고 먹을 것들도 모조리 뺏어서 마차에 실어갔어요. 그래서 먹을 게 하나도 없어요…."

"설마."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정이 스쳐 지나간다.

"총동원령이 내려진 건가."

전시 총동원령. 국가가 가진 모든 재산, 인적 자원, 물적 자원 따 지지 않고 갈아 넣어 전쟁에 소모 하는 명령.

"공작새끼. 순순히 항복할 것이 지, 이딴 개짓거리를…."

나직이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예상하던 바였다.

과거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에서도 이랬으니까.

나는 소년에게 비스킷과 육포 두어 조각을 내밀었다.

"받아라. 비스킷은 물에 풀어먹어 라. 잘못하다간 이가 부러지니까."

"감사합니다, 군인 아저씨!"

"그리고, 이것도 받아라. 여기서 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기에. 주머니 를 뒤져 청동화 몇 개를 녀석에게 쥐어줬다. 한두 끼는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지만 이런 황폐화 된 도시에서 화폐경제가 기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 고맙습니다!"

소년은 동전을 감사히 받아들고는 저 멀리 일행에게 달려갔다. 녀석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다.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이 기쁜 듯했다.

"불쌍하군요."

"그래. 불쌍하지."

옆에서 있던 엘락이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남자란 남자는 싸그리 징집해 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마지막 발악에 불과한 것을. 순순히 항복하지 않고…."

"그러게나 말이다."

나 또한 고개를 주억여 긍정했다.

나와 백인대 병사들은 계속해 수 색하며 도시 중앙으로 다가갔다.

"밀 한 톨 없군요."

"창고도 완전히 비었어.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공국군이 모조리 공출 해갔다 하는데 ."

"아예 군대 빼고는 다 버리겠다는 소리구만."

도시 외곽부터 시작해 건물이 밀 집되어있는 중앙부까지 수색했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흑마법사도, 공국군도, 심지어 변 변찮은 식량조차 없다. 있는 것이라 고는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남겨진 이들 뿐.

우리는 도시를 수색하고 군영으로 되돌아갔다.

"천인장님. 공국이 전시 총동원령을 내린 것 같습니다. 도시에 젊은 남자가 한 명도 없었고, 식량도 완전 고갈되었습니다.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니 공국 병사들이 와 모조리 가져갔다 합니다."

"그렇군."

군영으로 돌아온 뒤, 곧장 그레 드에게 보고했다.

전시 총동원령.

헤임스 공작은 마지막까지 저항 하는 걸 택했다.

"참, 공국 수뇌부도 정말 미련하 군. 이미 끝난 전쟁인데, 마지막까지 저항하려 하다니. 그것도 총동원 령까지 내려가면서."

그레드의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총동원령. 멍청한 짓이다. 이미 끝난 전쟁을 억지로 버티려 하고 있다.

그레드가 내게 서류 한 장을 내 밀었다.

"군단 회의에서 정해진 전쟁 계획서다. 읽어봐라."

"군단 계획서인데, 제가 읽어도 되겠습니까?"

"자네라면 괜찮다. 입이 무거울 거라 믿네."

군단 계획서는 상급 비밀이었다. 본래라면 천인장 이상 계급만이 볼 수 있는 물건. 그레드는 그것을 내 게 보여주려 한다.

나는 얌전히 서류를 받아들었다.

서류에는 조잡하게나마 지도가 그 려져 있다.

"이제 곧 수도 공략이군요."

"그래. 수도만 차지한다면, 이 염 병할 전쟁이 끝난다."

지도를 살폈다.

아군인 3, 4, 5군단이 북상. 공국 수도인 헤이드니아를 삼면포위 한다.

내가 소속된 3군단이 맡은 곳은 수도의 북쪽이었다.

나는 물었다.

"어째서 북쪽입니까? 단순히 수도를 점령하고자 한다면 굴라덴처럼 동, 서, 남으로 배치해도 될 터 인데."

"공작이 도주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

공작은 삶에 의한 갈망이 엄청나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 고 총동원령까지 내려가며 버티고 있으니 .

녀석은 마지막까지 발악하려 하리라.

"보다시피 북쪽방향으로 가는 대로가 있다. 만약 공작이 수도에서 탈출한다면, 저 대로를 타고 마차로 도주할 가능성이 높지."

"그래서 우리 3군단이 미리 봉쇄 한다는 것이로군요."

"그래. 수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 게 말이다. 반드시 공작과 그 가문 만은 완전히 없애버려야 해. 만약 공작이 살아서 수도 밖으로 도주한 다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조금 더 길어질 거다."

그건 나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공국전쟁이 끝난 뒤, 다른 국가 들이 쳐들어올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낸 뒤 다음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그레드에게 물었다.

"천인장님. 만약, 제가 공작을 잡 는다면. 어느 정도 전공이 되겠습니까?"

"공작을 잡는다라… 공국의 공작, 헤임스 요한바르첸을 말하는 게 맞 는가?"

"그렇습니다."

"흐으음…"

그레드가 턱을 매만지며 읊조린다.

"꽤 대단한 전공이라 할 수 있지. 적국의 수장을 잡은 것이니 말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금성훈장정도는 능히 받을 수 있겠지."

"그럼 제가 공작을 처치한다면, 기존에 예정되어있던 훈장과 합쳐 져 금성훈장을 두 개나 받게 되는 겁니까?"

"아마도."

금성훈장이 인정될 정도의 전공 이라.

그렇다면 내가 직접 공작을 처치 한다면, 금성훈장을 두 개 가지게 된다는 소리다.

나는 씩 웃었다.

"그럼 공작을 잡아야겠군요. 금성훈장을 두 개나 받은 인물은 흔치 않을 터이니 말입니다."

"그게 쉽겠나? 한지훈, 자네가 퍽 대단한 인물인건 나도 인정한다 만. 꽤 힘든 일이야."

"그렇겠지요."

공작을 잡으려 한들, 녀석은 공 궁 안 병사와 기사들에게 두텁게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소국이라 하나 일국의 군주를 잡는 일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미 한번 해본 일이다.'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 속에서 이미 경험했기에.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

공궁의 비밀통로. 놈의 도주 경 로. 헤임스가 어떻게 움직여 제국군을 따돌리고 도망치려 하는지.

알고 있다면 이용해먹을 수 있다.

"천인장님."

"왜 그러나, 한지훈."

"공국 수도 공방전이 시작된다면. 제게 자율 작전권을 부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군. 자율작전권이라."

자율 작전권. 현장 지휘관이 임 의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다.

본래라면 내 백인대는 천인장 그 레드의 지휘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자율작전을 허가받는다면, 내 임의대로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부하의 실책은 그 상사의 책임이 되기에 잘 허가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쌓아온 전공 과 신뢰가 있지 않은가.

"제게 자율 작전권을 주신다면, 공작을 잡아보겠습니다. 천인장님."

곧 전쟁이 끝난다.

그리고 나는 이전쟁의 막바지, 마지막으로 큰 전공을 세울 생각이다.

- 띠링!

[서브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헤임스 요한바르첸 공작을 처치 하라.]

임무가 부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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