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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78화 (78/390)

78화.

다음날.

나는 군단장 오스카의 호출을 받고 사령부로 향했다.

사령부는 아이러니하게도, 흑마법사의 마법진이 설치되어있던 그 건물이었다.

"내성은 무너져버려서 말이다. 이 건물이 그나마 근방에서 가장 큰 저택이었다."

하긴, 지하에 그리 큰 흑마법진을 그릴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진 저택이다. 군단 3개가 모인 최고사령 부로 부족하지 않을 터다.

나는 경례한 뒤 의자에 착석했다. 오스카가 씩 웃었다.

"그레드가 제대로 전파했나보군. 정복을 입고 왔어."

"그렇습니다."

나는 정복 차림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레드 천인장이 정복을 입고 가라 귀띔해준 덕분이었다.

'훈장 수훈이 있다 했지.'

이번에 받기로 한 훈장은 제국 돌격장, 그리고 제국 용맹장이었다.

격으로 따지자면 제국 은성 무공 훈장과 동급의 훈장이었다.

나는 내 가슴팍을 바라봤다. 몇 가지 약작과 더불어, 동색 훈장과 은색 훈장이 가슴팍에 매달려 반짝 이고 있었다.

피식 웃었다.

"벌써 훈장이 네 개라니."

어지간히 실전경험 풍부한 천인 장들도 하나 받기 힘든 게 훈장이었다. 허나 나는 벌서 네 개의 훈 장을 받았다. 그것도 고작 두 달 만에 말이다.

오스카가 흘깃 시선을 돌려 집무실 창밖을 바라봤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시간이 됐다. 이제 곧 수 여식이 있을 거다. 슬슬 가보지."

오스카의 집무실 밖으로 나온 뒤. 우리는 도시의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10만 인구를 가진 도시의 광장이 니만큼 그 크기는 꽤 커다란 편이었다. 중앙에는 조잡한 분수대가 있고, 무너져 내린 내성 앞에는 임시 로 높은 단상까지 설치해둔 상태였다.

나는 단상 위에 올라 앞을 바라 봤다.

"구경꾼이 정말 많군요."

"그래. 이번 훈장 수여식은 일부러 공개해 진행하기로했다. 놈들의 악행을 알려야 하니까 말이다."

"악행이라 하신다면."

"공국은 백성들을 흑마법사의 제 물로 희생시키려 하지 않았나."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카의 말인 즉, 공국 수뇌부 의 만행을 훈장 수여식 과정에서 알려 그들의 민심을 흔들 것이라는 소리였다.

"지금 이 도시의 주민들은 우리 군의 통치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지. 하지만 우리 군이 계속 전진하고, 이 도시에 소수의 병력만 남겨 놓는다면 어떻게 될지 몰라. 일부 주민들이 민병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그들 중 애국심을 가진 이들이 전혀 없진 않을 테니까."

공국은 백성을 쥐어짜내는 국가였다. 그렇기에 일반 민중들 중 공국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국은 명백한 침략자였다. 그들의 가족이었던 병사를 죽이고, 그들이 소속된 군대를 격파해 이자리에 들어섰다.

반발이 없을 리는 없다. 제국군을 증오하리라.

오스카는 이 훈장 수여식으로 그 들의 분노를 제국이 아닌 공국 측 으로 돌릴 셈이다.

"훈장 수여식 와중 자네의 전공을 알릴 거다.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파훼했고, 이 도시의 민간인들을 구 원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도시의 주민들도 공국이 자신들을 희생 하려 했다는 걸 깨닫고 공국을 지지하지 않겠지."

공국은 백성을 버려 전쟁의 소모 품으로 다루려했다. 이번 훈장 수 여식은 그것을 자극하려 벌이는 일 이었다.

이미 한번 버림받았던 도시의 주민들은 공국을 버리고 제국에 충성 하게 되리라.

"자, 준비해라 한지훈. 훈장수여 를 시작하지."

나는 단상 위로 천천히 걸어가 섰다.

훈장 수여식이 시작된다.

공국의 중부 도시 굴라덴의 주민, 델리안은 앞을 바라봤다. 광장에서 있는 그의 시야에 많은 인파 가 보였다.

모두 제국군의 훈장 수여식을 보 러 온 이들이었다.

델리안은 표정을 찌푸렸다.

'훈장 수여식이라니. 염병할 제국 놈들.'

델리안의 아비는 공국의 병사로 징집되었다. 헌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걸 보아 전사했으리라.

그렇기에 델리안은 제국을 중오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분명 제국군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 훈장 수여식을 시작하겠다.

마나로 증폭된 목소리가 울렸다. 3군단의 군단장, 오스카라는 인물 의 목소리였다.

델리안은 높은 단상 위 서 있는 오스카를, 그리고 훈장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제국군 장교를 바라봤다.

제국군 장교는 검은 머리를 한 청년이었다. 그를 노려보며 델리안 은 이를 갈았다.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제국은 침략자였다. 비록 먼저 제국을 친 것은 공국이었으나 그들 의 영토를 유린하고 도시를 점거하는 것은 제국군이었다.

델리안은 제국의 장교를 노려봤다. 언젠가 반드시 죽여주겠다는 듯이.

델리안이 이자리에 나온 이유는 훈장 수여식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제국 장교들의 낯짝을 보고 가진 증오심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그는 추후 민병대를 조직. 제국에 반항할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 훈장 수훈자 앞으로.

군단장의 말에, 구석에서 있던 검은 머리의 장교가 움직여 단상 중앙에 섰다.

오스카가 그의 앞으로 걸어가 섰다.

- 파트라헴 천인대 1번 백인장 한지훈. 귀관은 공국 포트 갈레이 전투에서 용맹한 전공을 세운 바. 제국 국방성의 승인 아래 제국 용 맹장을 수여한다. 북부 3군단장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검은 머리 장교의 가슴팍에 은색 십자가로 만들어진 훈장이 내걸렸다.

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단상 주변을 호위하듯 서 있는 병사들이 치는 박수였다. 공국의 주민들은 아무 도 박수치지 않았다.

그저 심란한 얼굴로, 혹은 증오 하는 눈으로 앞의 제국군을 바라볼 뿐.

- 다음 훈장을 수여하겠다.

오스카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그에 박수 소리가 잦아들었다.

델리안은 의아한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다른 훈장 수여자가 있는 건가.'

분명 단상 위에 올라있는 이는 단 둘뿐이었다.

군단장 오스카와 훈장을 수여받는 한지훈. 그 외의 인물은 단상 위에 자리해있지 않았다.

다시금 목소리가 울린다.

- 파트라헴 천인대, 1번 백인대 장 한지훈.

놀랍게도 훈장을 수여받는 이는 동일한 인물, 한지훈이었다. 한 명의 장교가 단번에 두 개의 훈장을 몰아서 수훈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델리안은 뒤이어 이어진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귀관은 공국 굴라덴 공방전에서 도시의 주민들을 희생시키려는 사령술사를 제압, 대규모 흑마법진을 파훼하는 영웅적인 전공을 세운 바. 제국 국방성의 승인 아래 제국 돌격장을 수여한다. 북부 3군단장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다시 울리는 박수 소리. 하지만 델리안은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도 그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라 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서.

"사령술사라니. 그게 무슨 소리 야?"

"우리를 희생시키려 했다고? 공국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잘못 듣지 않았다. 자신의 주위에서 있는 다른 주민들 또한, 방금 전 나온 이야기에 혼란해하고 있다.

델리안은 문득 어젯밤 하늘 높이 떠오른 검은색 마법진을 기억해냈다.

"그 검은색 마법진. 그게 설마 진짜 혹마법이었다고…?"

흑색 마법진은 혹마법의 상징이었다. 헌데 그 혹마법은 중간에 파훼되어 사라졌었다.

그게 저장교가 해낸 일인 것인 가.

- 다음으로, 처형을 진행하겠다.

훈장을 수여받은 장교가 단상 아래로 내려가고, 이후 포승줄에 줄줄 이 포박된 인물들이 단상 위로 올라가 무릎이 꿀려졌다.

모두 천인장 등 고위 계급장을 가진 공국의 군인들이었다.

군단장이 입을 열었다.

- 공국 2군단 12번 천인대장, 데 나드 파르뎅. 이자는 공국의 명령 아래 흑마법사를 도와, 11만의 주민을 소모시킬 언데드 혹마법의 축 성에 협조했다. 전시 점령지 최고사 령관의 포로 처분 권한에 따라, 공개처형을 명한다.

- 살려, 살려주십시오! 저희 군단장님의 지시였습니다! 저는 명령에 따른 것밖에 죄가 없습니다!

- 처형집행.

퍼억!

병사가 검으로 그의 목을 내려쳤다. 힘이 모자란 것인지 목은 단번에 잘리지 않았다.

퍽, 퍼억, 터엉!

병사가 여러 번이나 검을 내려친 뒤, 목이 드디어 잘려나가 단상 위 를 굴렀다. 붉은색 핏물이 뿜어져 목제 단상 위에 스며든다.

군단장이 뒤이어 입을 열었다.

- 공국 제 2군단 중급 참모 디 비안 로베힘. 이자는 흑마법사의 계획에 찬동해 작전을 실현시켰다. 동 일하게 공개 처형을 명한다.

- 상부의 명령이었단 말입니다!

제발 목숨만은…

- 집행.

파앙!

병사가 검을 휘둘렀다. 방금 전 의 참수로 노하우라도 얻은 것일까. 병사는 이번 처형은 단번에 성공시켰다. 한번의 검격으로 목을 떨어 뜨린 것이다.

중급 참모의 목이 떨어져 단상을 굴렀다.

- 공국 제 2군단 18번 천인대장, 아르노 람치텔. 이자는 흑마법사의 계획에….

처형은 계속되었다.

사로잡힌 공국의 고위 군관들이 하나둘 목이 베여 참수되었다. 그들 의 죄목은 대다수가 흑마법사에 협 조했다는 내용이었다.

델리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공국이… 우리를 언데드로 만들 려 했다고?"

차마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공국. 비록 백성에게 혹독하게 대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조 국이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훈장 수여식 이후 계속된 처형 속 내역은 계속해 강조하고 있었다.

'공국 수뇌부는, 공작 각하는 , 우리 도시의 주민 전체를 언데드로 부리려 했었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조국 요한바르첸 공국. 그리 좋은 국가는 아니지만 그럼에 도 나고 자란 국가다.

때문에 델리안은 믿어왔었다. 국가가, 그리고 국가의 군대가 자신을 비롯한 백성들을 보호해줄 것이라 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공국은 전황이 힘들어지자 흑마법사들을 끌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무려 10만이 넘는 일반 국민들을 희생해 혹마법의 제물로 바치려했다.

델리안은 충격에 입을 벌렸지만, 곧 정신을 다잡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거짓말이다. 우리 공국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 간악한 제국 놈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이다!"

그는 아직까지 공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허나 그것도 끝이었다.

- 흑마법사의 시체를 정화하겠다.

델리안은 단상 위를 바라봤다. 제국 병사들이 검은색 로브를 뒤집 어 쓴 시체들을 하나씩 이고 왔다.

모두 일곱 구의 시체였다. 병사들은 그것들을 하나씩 줄에 매달아 가지런히 세웠다.

델리안의 눈이 흑마법사들에게 향한다.

"… 정말 흑마법사인가?"

흑마법사. 죽음과 공포를 먹고 사는 타락한 마법사들.

그들의 외모는 기괴했다.

얼굴에는 복잡괴괴한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고, 반쯤 열린 눈꺼풀 뒤로 보이는 눈동자는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소문으로나 들려오던 흑마법사의 외양과 똑같은 모습.

병사들이 기름을 부었다. 오스카는 입에 연초를 꼬나물고 불을 붙였다.

- 후우.

회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오스카가 도시의 주민들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 보다시피, 공국 수뇌부는 그대 들을 버리려했다.

도시의 주민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오스카를 바라본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 흑마법사와 손을 잡고, 대규모 사령마법진을 도시에 새겨. 그대들 11만 5천의 주민들을 모조리 죽여 언데드로 부리려 했단 말이다.

오스카의 말이 광장을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의 침묵.

광장 안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오스카의 말에 집중한다.

- 우리 제국은 공국과 다르다.

오스카의 시선이 흑마법사들로 향했다.

목이 매달려 있는, 기름에 절여 진 흑마법사의 시체들.

- 우리 제국은 백성을 보호할 것 이다. 공국처럼 그대들을 쓰레기처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오스카가 연초를 튕겼다. 그의 손을 떠나간 불붙은 연초가 흑마법사의 시체에 닿았다.

화르르르륵!

불길이 일어났다. 흑마법사의 시체가 불에 타 순식간에 사라져, 뼈 조차 남기지 않고 검은색 재로 변해 날아간다.

불에 타면 완전한 재로 화해 소멸하는 것. 흑마나에 침식된 시체들 의 특징이었다.

- 제국에 순응해라. 제국의 통치 를 받아들여라.

단상 위 불길을 배경으로, 오스카가 엄숙히 고했다.

- 그렇다면 우리 제국은, 그대들에게 안전과 번영을 약속할 것이다.

델리안은 자신의 저항의지가 사 라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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