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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77화 (77/390)

77화.

"앞으로 가! 도시를 제압하라!"

대량의 병력이 도시로 진격했다. 이곳저곳에서 환한 마나광이 번쩍 였고, 그때마다 커다란 폭발이 일어 건물을 무너뜨렸다.

삼면을 장악하고 있던 제국군이 도시 굴라덴으로 밀려들었다.

"전방에 공국군 조우! 약 일백여 명! 전부 도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밀어버려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

콰앙! 콰직, 우드드득.

도시를 침공한 제국 병사들이 건물 사이사이를 누비며 공국 병사들을 제압해갔다. 제국군은 강군이었고, 공국군은 징집병으로 이루어져 훈련도가 형편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수적으로도 극도로 밀리는 상황.

상대가 될 턱이 없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으아아아악!"

공국 병사들이 계속 죽어 나자빠졌다. 어떤 이들은 저항했고, 어떤 이들은 살기 위해 도주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죽어나갈 뿐 이었다.

"포로는 이미 충분히 많다. 천인장 이상 계급이거나, 혹은 참모진이 아니라면 굳이 살려두지 마라."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제국군은 공국 포로를 잡지 않았다. 오직 베고 찔러가며 도시를 장 악해 나갈 뿐.

도시 이곳저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함성과 고함소리가 울려댔다.

도시 굴라덴이 제국에게 점령당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고했네. 한지훈 백인장."

지하에 흑마법진이 숨겨져 있던 커다란 저택은 반쯤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 밖으로 걸어 나왔다. 보이는 것은 도열해있는 제국 병사들.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서 있는 이.

군단장 오스카.

그가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완 벽히 파훼한 덕분에, 별다른 피해 없이 도시를 점령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이번 전공은 내 친히 황실에 보고하겠다."

오스카가 고개를 돌려 도시의 다른 방향을 바라봤다.

내성. 우리가 들이닥치기 전, 공국 놈들이 사령부로 사용하던 건물. 그곳은 불에 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콰르르르르르!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검은색 먼지가 확 피어오른다. 붕괴하는 굉 음 사이로 내부에 있던 공국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정도 업적이라면, 금성훈장 정도는 기대해도 될 거다."

금성훈장은 무공훈장의 최고등급 훈장이었다. 제국 황실이 심사해 황 가의 인물이 직접 수여하는 , 그야말로 한번 받는다면 가문의 위대한 업적으로 취급되는 훈장.

오스카는 그것을 내가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평민에게 금성훈 장은 너무 과분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한지훈, 자네는 스스로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르나 보군."

오스카가 씩 웃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자네가 마법진을 파괴한 덕분에, 언젠가 제국의 신민이 될 공국 민간인 11만이 온전히 살아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만약 마법진을 파훼하지 못했다면, 우리 군은 11만 언데드들에게 당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확실히 그만큼 이번 일은 대단한 전공이긴했다.

도시에 몰래 잠입해, 이 세계관 속 대량살상 병기라 할 수 있는 흑 마법을 파훼했으니 .

"자네 덕분에 이 도시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시선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정말 고맙다. 한지훈."

* * *

"도시 굴라덴이 무사히 함락되었습니다!"

국방성 장관이 그리 보고했다. 그에 제국 황제는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굴라덴이 함락되었는가. 보고받기로는 사령술사들의 흑마법 때문에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라고 했는데 ."

"여기, 그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황제의 말에, 국방성 장관은 고개를 숙이며 어떤 서류 한 장을 내 밀었다.

"북부 제 3군단 군단장 오스카디 로드게리스 후작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더해 3군단 군단장이 금 성훈장을 추천했습니다."

"금상훈장을 추천했다고. 그 정도 로 활약한 인물이 군단에 있었나 보지?"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있던 시녀가 서류를 받아 황제에게 넘겨줬다.

황제는 서류를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그의 얼굴에 어떤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감탄, 그리고 호기심이었다.

"대단하군. 고작 둘이서 도시에 잠입한 것으로도 모자라, 무사히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파괴하다니. 이자의 이름이 한지훈이라고?"

"그렇습니다. 폐하."

"신기한 이름이군."

황제는 서류를 넘겼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한지훈의 인사서류였다.

인사서류에는 그간 한지훈이 세 웠던 전공과 행적이 고스란히 기재 되어있다.

"전공이 대단하군 그래."

황제는 그간 여러 장교와 장성들을 보아왔었다.

모두 귀족 출신으로, 각자 어릴 적부터 고등의 교육을 받은 이들.

하지만 이 보고서의 주인공 한지훈은 달랐다.

"평민 출신이지만 이토록 뛰어난 활약이라니.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 백인장이 될 만해."

한지훈은 보잘것없는 평민 출신 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 내내 비범한 능력을 보여줬다.

공국의 침략 의도를 읽어냈고, 거점을 장악했으며, 공성전에서 활 약했다. 군단장의 목숨을 구해내기까지했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는 회전에서 활약한 것과 더불어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파괴하기까지 했다 한다.

피식. 황제가 웃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군. 이 정도 전공을 세웠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금성훈장 요청을 수리해라."

"하오나 폐하…."

머뭇. 국방성 장관이 황제의 눈치를 본다.

그가 잠시 주저하더니 말했다.

"심사대상 한지훈은 평민입니다.

그리고 제국 금성 무공훈장은 평민 에게 수여된 예가 없습니다."

금성훈장은 고위 무공훈장. 그렇 기에 그동안 수여받은 이들 전부가 고위 귀족들이었다.

백작, 후작, 공작 등 나름의 세력 과 권세를 지닌 고귀한 혈통을 이 은 자들.

평민은커녕 남작이나 자작조차 금성훈장을 받은 역사가 없다.

"아무리 한지훈 백인장이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 하나, 그의 신분이 일천한 것 또한 사실. 다른 군관들에게서 불만이 나올 것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아무래도 국방성 장관은 한지훈 이 훈장을 수여받는 것이 탐탁지 않는 듯했다.

그럴 만했다. 그 또한 공작위에 달하는 고위 귀족을 가진 이. 일개 평민들이 얼마나 커다란 전공을 세우던 못마땅하게 보는 것이다.

그에 황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인 즉, 자네는 한지훈의 신분이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거절 해야 한다. 그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폐하."

"그렇다면 한지훈의 신분을 귀족으로 높이면 될 일이다."

"… 폐하?"

국방성 장관이 의아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본다. 그에 황제는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한지훈 백인장. 이자에게 작위를 수여할 것이다. 오러를 각성한 데다 훌륭한 전공까지 다수 세웠으니 귀족이 되는 데는 그리 부족함이 없을 터."

그가 서류를 접어 옆의 시녀에게 건넸다. 시녀는 조심스레 서류를 받아 갈무리했다.

"작위는… 남작위 정도면 적당하겠군. 명예귀족 작위는 말만 귀족이 지 실권과 영지는 없으니까. 남작위에 봉하고 적당한 영지를 하사하면 되겠지."

"폐하. 한지훈에게 정말 작위를 수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제국의 사관이 고작 몇 달 만에 이토록 대단한 업적을 세 웠다. 작위와 영지 정도야 합당한 보상이다."

"지금 제국령에는 남는 영지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황실 직할령을 내어줄 수는 없는 노 릇…."

"곧 공국이 제국에 합병되지 않 나. 남게 되는 영지는 넘친다."

황제의 말에 국방성 장관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러했다.

한지훈의 출신은 비록 평민에 불과했으나, 그전공은 제국 금성훈장 이거론될 정도로 출중했다. 그러니 남작위에 달하는 작위를 받는다 한 들 큰 무리는 없을 터.

게다가 공국이 합병된다면 오히려 남는 영지가 굉장히 많이 생길 것이다.

황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국방성 장관 카디르. 자네도 알 고 있을 거다. 지금 제국은 정체기 라는 것을."

"폐하. 제국은 언제나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니. 제국은 정체되었다. 그대 들 귀족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덕분에 말이다."

황제가 미소 지었다. 다만, 그리 유쾌한 미소는 아니었다.

명백한 비웃음.

그가 비웃는 것은 국방성 장관을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신분에 향하는 것이었으니 .

"자네와 같은 기존 귀족들이 평 민들의 활동을 간섭하고 억제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아닙니다, 황제 폐하. 저희들은 오직 황제께 충성을 바치기 위해 서…."

"그만. 입 발린 소리는 이제 멈 추고, 툭 터놓고 이야기하지. 자네 들은 신흥귀족들을 경계하고 있다. 안 그러나?"

제국 황제 아르테니아. 그는 아직 젊었으나 황제위에 오른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그렇기에 그는 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다.

"과거 정복 전쟁 당시에는 많은 수의 신흥귀족들이 등장했지. 평민 이 명예귀족이 되었고, 남작은 백작 이 되었으며, 전쟁영웅으로서 후작 위에 오른 가문도 몇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국전쟁은 그렇지 않더 군."

황제는 공국전쟁에 심혈을 기울 이고 있다.

정복 전쟁 이후 무려 10년 만에 일어난 전쟁이자, 황제 그 자신이 처음 겪는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전쟁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훈장을 받은 인물들 대다수가 고위 귀족이거나, 혹은 고위귀족에게 충성하는 하위귀족이더 군. 평민은 이자 한지훈밖에 없고 말이다. 내 개인 세작들을 움직여 알아본 바에 따르면 평민들 중 활 약한 이들도 적지 않은데 말이다."

"자네들 국방성이 노골적으로 평 민 병사들의 전공을 축소하는 건 잘 알고 있다. 아니, 국방성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역에서 그대들 귀족들은 평민을 배척하고 있지."

신분제 사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귀족의 평민 탄압. 물론 탄압이 라는, 다소 노골적인 말을 사용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귀족이 아닌 이상 전공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었으니 .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문제였다. 신분이 상승하는 사다리를 귀족들 이 쳐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

"자네들 귀족들은 평민들의 계층 상승을 저지하고 있어.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다."

황제는 선대 황제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공훈에 대해서는 합당한 평가를, 가벼운 잘못에 대해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관용을, 명백한 대죄에는 용서없는 철퇴를.

선대 황제이자 위대한 정복자였 던 그의 아버지는 항상 공정한 상 벌을 강조했었다.

"한지훈에게 남작위를 수여할 것 이다."

황제는 그리 말했다. 국방성 장관 카디르는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였다.

황제의 말이 이어진다.

"작위 수여와 금성훈장 수훈은 이전쟁이 끝나고 하지. 황가의 인물이 직접 참여해야하니 말이다."

"…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가보게, 장관."

황제의 축객령에 국방성 장관이 예를 차리며 밖으로 향한다. 곧 알현실에는 적막함이 찾아온다.

"한지훈. 한지훈 백인장이라…."

황제가 한지훈의 이름을 되뇌였다.

한지훈. 이번 전쟁에서 유일하게 훈장을 포상받는 인물이다.

사실, 어지간한 전공이었으면 절대 훈장을 수여받지 못했을 것이다. 국방성에 자리 잡고 있는 귀족 군 관들이 모조리 쳐낼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한지훈의 전공은 그들의 수작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많은 수의 전공들.

한지훈이 평민들 중 유일하게 훈 장을 받는 이유였다.

"이름은 기억해두지."

황제는 한지훈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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