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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75화 (75/390)

75화.

그것은 탄막이었다.

마치 산탄총에서 발사된 펠릿의 세례처럼. 마탄들은 시야를 뒤덮어 가며 이쪽으로 쇄도해온다.

스킬 '집중'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달려가며 오러가 일렁이는 검날을 내려그었다.

가장 먼저 수직 베기.

콰앙!

이쪽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마탄 다수가 흩날려 사라진다. 그 빈틈을 향해 파고들었다.

파직, 피슉.

미처 처리하지 못한 마탄들이 내 뺨을, 팔뚝과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핏물이 치솟는다.

집중스킬 덕분에 고통은 느껴지 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흑마법사들과의 거리는 많이 남아있는 상태. 놈들을 향해 계속 돌진한다.

놈들과의 거리는 약 100보 정도.

- 제법이구나.

콰르르르릉!

마탄 세례 제 이격. 재차 탄막을 이룬 암흑색 구체들이 쏟아져 내린다.

굴하지 않고 앞으로 향하며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아래에서 우상 단으로 사선 베기. 청색 검광이 시야를 양단한다.

콰앙!

다시금 마탄의 세례가 우수수 소멸해 간다. 오러 서린 검날은 닿는 마탄들을 지워버렸고, 내 몸뚱이는 여전히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남은 거리 70보.

- 하지만. 그래봤자다.

흑마법사의 음성. 녀석들이 다른 마법으로 나를 제압하려 한다.

어느새 허공에 암흑색 창 다수가 떠올라 있다.

콰앙! 콰앙! 콰앙!

암흑색 창 십여 개가 공기를 찢 어발기며 이쪽으로 쏘아졌다.

나는 돌진하며 집중스킬을 더욱 극성으로 운용했다. 감각이 첨예하 게 벼려지고, 시야 속 움직임이 더더욱 느려진다.

후우욱.

턱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암흑창들의 궤적을 읽었다.

30보.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내 머리와 몸통을 노리고 쏘아진 그것들의 궤도가 선명하게 읽혀졌다.

검을 휘둘러 창격의 궤도를 비틀었다. 허리를 숙여 머리를 노리던 암흑창들을 피해냈다.

하지만 다 피해내지는 못했다.

퍼엉!

암흑창 하나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꽤 깊게 베였다. 내장에 둔중한 충격이 일고, 핏물이 울컥 튀어나간다.

역시나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고가 계속해 가속되어간다. 시야 속 움직임이 점점 느려져간다.

감각이 소실되어갔다.

청각, 촉각, 미각, 후각, 그리고 시각까지. 온몸의 자원을 끌어 모아 찰나의 가속에 소모했다.

시야가 모노톤으로 화해갔다.

어느새 내 몸은 흑마법사들의 지 척에 도달해있는 상태.

- 뭣…!

놈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느껴지는 감정은 당혹.

다른 기사들처럼 원거리 마법 몇 방이면 간단히 제압될 줄 알았겠지.

하지만 나는 기사 따위가 아니다. 유저다.

이를 악물며. 남아있는 마나를 모조리 끌어올렸다. 검신에 일렁이는 오러광이 더욱 진해진다.

'뒈져버려라.' 마침내 집중스킬이 절정에 이르 렀다. 이제 시야 속 움직임들은 마치 멈춘 것과 다름없는 상태.

그 상태에서 팔을 움직였다. 피 가 쏠리고, 혈관과 근육이 터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검이 주욱 그어진다. 우에서 좌 로.

콰르르르르르르릉 !

강렬한 충격이 일었다. 충격파가 일어나 공간을 유린했다. 지면이 부서지고 흙먼지가 일어났다.

직후, 흑마법사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검은색 피 안개가 확 터져 나온다.

"크아아아악!"

최상급 사령술사 퀼컨은 피를 토 하며 나뒹굴었다. 그는 당황한 얼굴 로 앞을 바라봤다.

자신을 호위하던 휘하 흑마법사 들이 모조리 죽어있다.

단 한번의 검격이었다.

헌데 그 단 한번의 검격으로, 무려 여섯에 달하는 부하 흑마법사 들이 절명해버렸다.

"크으으으…! 무, 무슨!"

퀼컨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분명 커다란 스태프 를 쥐고 있을 오른손.

사라져 있다.

자신의 팔이 어깨부터 깔끔하게 절삭되어 , 소실되어 있는 것이다.

"팔이! 내 팔이! 끄아아아!"

퀼컨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기어 뒤로 갔다. 그가 기어가는 지면을 따라 검은색 핏물이 주르륵 흘러 그 흔적을 남긴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쏟아지는 마 탄과 암흑창의 세례를 꿰뚫고, 이쪽 까지 달려와 흑마법사들을 쓰러뜨리다니?

그만큼 한지훈의 무위는 상식을 뛰어넘었다. 고작 일개 기사 하나가 흑마법사 여섯의 협공을 헤쳐 나온 다니 말이다.

상급 기사. 아니, 최상급 기사라 한들 해내기 힘든 일.

퀼컨은 핏물이 쏟아지는 오른쪽 어깨를 감싸 쥐고 당황한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 저벅, 저벅.

일렁이는 흙먼지를 헤치며 누군 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그에 퀼컨의 붉은색 눈동자에 어린 두려움의 감정이 더욱 진해진다.

하지만 마침내 연기를 헤치고 다 가온 한지훈의 모습을 본 순간.

"하, 하하. 하하하하하!"

퀼컨은 광소했다.

"그래! 그런 무지막지한 검격을 가하고, 몸이 멀쩡할 리 없지!"

예상보다도 한지훈의 모습이 처 참했기에.

퀼컨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한지훈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몸 상태는 처절했다.

오른손이 거무죽죽하게 죽어있었다. 사지 곳곳에는 자잘한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었으며, 특히나 옆구리에서 대량의 핏물을 줄줄 흘려대 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듯한 부상.

"놈. 인정하지. 네 녀석은 강하다."

그가 하나 남아있는 왼손을 움직여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혹마법을 운용해 한지훈을 완전히 죽여버리 기 위해.

"하지만 마지막이 어설펐군. 한지훈."

퀼컨의 캐스팅 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다. 대규모 사령술을 연산하고 있어 여유 연산 리소스가 거의 없는 데다, 스태프조차 없이 한손만으로 수인을 맺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반쯤 빈사 상태에 달한 한지훈을 처치하는데 엔 충분하리라.

그렇게 그가 하나 남은 손을 바쁘게 움직여 수인을 맺고 흑마법을 운용하려 할 때였다.

"아니. 전혀 어설프지 않아."

한지훈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녹색 액체가 넘실거리는 유리병 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 손에 들린 유리 병을 바라봤다.

유리병 속에는 녹색 액체가 넘실 거리고 있다.

[세계수의 수액(극도로 희석됨)]

세계수의 수액.

극도로 희석되었다지만, 그럼에도 그 가치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귀 물이다.

나는 그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 띠링! 띠링! 띠링!

[유저가 '아이템 : 세계수의 수액 (극도로 희석됨)'을 섭취했습니다!]

[신체가 즉시 회복됩니다.]

[아이템의 효과로 능력치가 상향됩니다.]

[내구 +3]

[체력 +3]

즉시 회복에 능력치 상향까지.

약빨 죽인다.

"뭣… 설마 그건!"

내가 수액을 섭취하자 눈앞의 흑마법사가 경악했다.

나는 빈 유리병을 바닥에 던지 며, 짓궂게 미소 지었다.

"그래. 세계수의 수액이다. 희석 된 거긴 하지만."

빈사에 근접했던 몸이 빠르게 회복되어간다.

오른팔의 끊어진 근섬유와 터져 나간 혈관이 수복되었다. 온몸에 아 로새겨진 상처들이 회복되었다. 반 쯤 꿰뚫려 있던 옆구리가 메워졌다.

내 몸이 순식간에 만전의 상태로 회복해간다.

포션 따위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 로 그 효과가 몹시 출중한 물건.

그것이 바로 세계수의 수액이었다.

"말도 안 돼! 세계수의 수액이라 니! 네까짓 놈이 어떻게 그런 귀물을…!"

"글쎄. 나도 왜 이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 궁금한데."

니디아가 왜 내게 이런 귀물을 주었을까. 그 의도가 궁금하다.

뭐, 덕분에 살았지만.

나는 검을 들어 올려 놈을 죽이 려했다. 하지만 이상하다. 검이 너무 가볍다.

고개를 돌려 쥐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피식. 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망가졌네."

검의 검신이 완전히 터져나가 사라져 있었다.

내가 사용하던 것은 공국군 장검 이었다. 당연히 그 품질이 쓰레기인 물건.

이딴 하급품이 내 전력을 다한 오러의 출력을 감당 할 수 있을 리 없다. 때문에 마지막 검격 당시 검 신 그 자체가 완전히 터져나가 사 라진 듯했다.

탱그랑!

손잡이만 남은 검을 던져버렸다.

"뭐. 맨손으로 죽이면 되지."

나는 저벅저벅 걸어 바닥에 쓰러 져있는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놈의 얼굴에 공포의 감정이 올라온다.

"크윽…!"

놈이 신음하며 뒤로 기어간다. 그 와중에도 한손으로 수인을 맺어 마지막까지 발악하는걸 보면. 꽤나 삶의 집착이 강한 놈이다.

이런 놈이 왜 다른 이들을 죽여 언데드로 부리려한 걸까.

나는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이 꽉 다물어라."

더러운 피가 튀는 건 싫으니까.

주먹을 녀석의 아구창에 갈겨버렸다.

퍼억!

놈의 목이 확 돌아갔다.

"커헉!"

녀석이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무릎으로 놈의 가슴을 지그 시 눌러 고정한 뒤, 계속해 턱을 후려쳤다.

퍽, 퍽, 팍, 콰직. 주먹이 턱뼈를 때리고, 이빨을 부수는 감각이 올라 온다.

지금 내 심장 속에는 마나가 단 한 틀도 없었다. 방금 전공격에 모든 마나를 소모했기에.

더해 날붙이조차 하나도 없는 상황.

때문에 이렇게 원시적인 방법으로만 녀석을 죽일 수 있다.

퍽!

"쿠허 억!"

녀석이 입을 쩍 벌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부러진 피 묻은 치아 여럿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주먹으로 때리니 손가락이 아프다. 나는 주먹을 풀고, 양손으로 놈 의 목을 그러잡았다.

엄지에 힘을 꽉 쥐고 졸랐다.

"컥… 커헉… 컥…!"

녀석이 버둥거린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리 만무놈이 꺽꺽거리는 꼴을 노려보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끄륵… 끅…."

녀석의 붉은색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다. 흰자위가 보인다. 입가에서 피거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녀석이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 후."

나는 놈의 목을 쥐었던 손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장판이다. 흑마법사들이 죽어나자빠져 있고, 바닥이 깨져 흙먼지 를 풀풀 날리고 있다.

마법진을 바라봤다. 저 커다란 마법진에서는 더 이상 흉악한 기운 이 느껴지지 않았다.

"끝인가."

"네. 끝이에요."

내가 혼자 중얼거리자, 누군가가 내 혼잣말을 받았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니 디아."

다름 아닌 니디아였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온다. 그녀의 옷은 온통 피칠갑이 되어있다.

"한지훈 씨. 흑마법사를 괴롭히는 것도 좋지만, 뒤를 좀 살피시는 게 어때요? 제가 없었다면 여유롭게 흑마법사를 괴롭힐 동안 뒤따라온 암흑기사에게 습격당했을 거예요."

"네가 처리해줄 줄 알았거든."

나는 씩 웃었다.

니디아. 그녀의 이름. 어디서 들었는지 마침내 기억해냈다.

"그대단한 엘븐 가디언이 있는데 . 설마 내가 암흑기사에게 죽게 할까 봐?"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르고, 정보가 갱 신된다.

[니디아]

[엘븐 가디언]

"어휴. 언제부터 알았어요?"

"이 공간에 들어서기 직전에."

엘븐 가디언. 절정의 강자들이다.

온갖 재능을 타고난 축복받은 종족 엘프. 그들 중에서도 정점에 이른 괴물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눈앞의 엘프 정령사 니디아였다.

"사실 나 없이 너 혼자만 있었어 도 여기 흑마법사들을 모조리 쓸어 버릴 수 있었잖아?"

"뭐. 부정은 안 할게요."

그녀가 싱그럽게 웃었다.

타닥, 탁.

니디아가 경쾌하게 걸어 내 코앞 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제가 개입한다면 그쪽을 관찰할 수 없는걸요."

"관찰이라. 엘프 여왕 엘리스의 명령인가?"

"네."

엘프 여왕 엘리스. 모든 엘프를 다스리는 이.

그녀는 어째서인지 나를 관찰하 고자 한다. 그래서 엘븐 가디언인 니디아를 내게 보냈고, 니디아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내 옆에 잠시 나마 붙어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 세계수의 수액을 준 것도 엘프 여왕의 명령인가?"

"그건 아니에요. 그냥 제 호의였 지요."

"호의로 그런 귀물을 준다라. 엄청 손이 크네."

"제 손이 좀 그래요."

그녀는 싱글싱글 웃으며 내 말을 받아넘겼다. 허나 그녀의 그 가벼운 분위기와 다르게, 내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니디아. 너희 엘프 여왕이 나를 주시하는 이유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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