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74화 (74/390)

74화.

"군단장 각하!"

펄럭! 천막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제국군 참모 중 하나였다.

그가 다급한 얼굴로 3군단 군단 장, 오스카에게 고했다.

"보고드립니다, 군단장 각하! 굴 라덴에서 대규모 흑마법의 발동을 확인했습니다. 사령마법 계열로 보입니다."

"… 그런가."

다급한 참모의 보고. 그에 오스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리 예상했던 일이기에 당황은 없었다.

그는 군단장 천막 밖으로 나가 도시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인다. 저 멀리 도시 위에 떠올라 있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암흑색 마법 진이.

"이제부터가 고비인가."

저 마법이 발동된다면, 도시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이 언데드로 화해 흑마법사에게 조종당 할 것이다.

그는 고개를 주억였다.

"한지훈이 잘해줘야 할 터인데."

저 흑마법을 해체하기 위해 한지훈과 견습 마법사 하나가 들어가 있다.

군단장이 명한다.

"제 3군단. 출진 준비하라."

그가 참모들에게 고했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주위 인영들을 훑는다.

"곧 저 대규모 흑마법이 파훼될 것이다. 그때, 우리 3군단을 포함한 모든 군단이 도시 내부로 진격할 것이다."

군단장 오스카. 그는 한지훈이 어서 임무를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엘프라니."

나는 멍한 눈으로 니디아를 바라 봤다.

일렁이는 초록색 기운, 자연력. 그리고 머리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기다란 귀.

부정할 수 없는 엘프의 외양이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외양을 하고 있었는데 .

나는 표정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어째서 엘프가 이곳에 있는 거지?"

"지금은 설명할 수 없어요."

그녀가 새하얀 손가락을 움직여 자연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로 작은 생명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정령들.

그녀는 마법사가 아닌 정령사였다.

"이름 없는 별. 여기는 제게 맡 기세요."

"이름 없는 별이라니. 그게 뭐 지?"

"한지훈 씨를 말하는 거예요. 음… 그보다 지금 정말 급하거든 요'?"

그녀가 싱긋 웃으며 회색 수정구 를 들어올렸다. 그곳에서는 더더욱 밀도 있는 소음이 울려대고 있다.

혹마법의 발현이 임박했다는 것 일 터.

"나중에 때가 된다면 모두 알게 될 거예요. 한지훈 씨. 하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두면 돼요."

"저쪽이다! 추격해!"

"이런. 추격자들이 도착한 모양이 네요."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여 정령들을 지휘했다.

화르르르륵!

그녀의 머리 위에 떠올라있던 불 의 정령이 이글거리는 화염을 내뱉었다. 금세 좁은 통로가 불에 타 막혀버렸다.

"망할! 적에게 마법사가 있다!"

"우회로를 찾아!"

"기사님은 아직인가?!"

이쪽으로 달려오던 공국 병사들은 불길에 가로막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니디아가 다시 시선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신비한 기운을 머금 은 초록색 눈동자.

"저희 여왕께서는 이름 없는 별… 로 추정되는 인간종, 그러니까 한지훈 씨를 주시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를 보냈지요. 정말 이름 없는 별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인지,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요."

"엘프의 여왕이라면."

' 엘리스.' 그녀가 니디아를 보내, 나를 관찰하고 있다.

"시간 없으니 설명은 나중에. 아, 잠깐. 이건 선물이에요!"

그녀가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내 내게 던졌다. 받아들어 살펴보니 은은한 녹색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병이었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세계수의 수액(극도로 희석됨)]

맙소사.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의 수액이라니?

"포션 같은 덜떨어진 물건보단 훨씬 나을 거예요. 위급할 때 쓰세 요."

콰르르르르릉!

건물을 뒤흔드는 진동이 울렸다. 천장의 먼지가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어서 가세요. 시간 없다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계단 아래로 타고 내려갔다. 니디아 의 뒷모습이 점차 멀어진다.

쿠르르르릉….

다시금 울리는 진동. 나는 바쁘 게 다리를 움직이며 생각한다.

'어째서 엘프가 이곳에 있는 것 인가.'

엘프는 오직 자신의 영역만을 지키는 종족. 자연 속에서 살며, 세계수 외에는 쥐뿔도 관심 없는 놈들 이다.

그런 엘프가 내 옆에 있었다. 그것도 정령사 주제에 견습 마법사라는, 웃기지도 않는 완장을 차고 말이다.

그녀가 보였던 모습을 떠올렸다.

- 저 도시에 와본 적이 한번도 없었거든요.

-평생 숲속에 처박혀 살았으니까.

도시에 와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던 그녀의 말. 더해 견습 마법사 치고 무지막지했던 체력.

의아하게 여기긴 했었지만 설마 엘프였을 줄은.

나직이 어떤 이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엘리스."

엘프 여왕 엘리스. 그녀가 나를 주시한다고했다.

[엘리스]

[엘프 여왕]

["당신이 이 세상을 멸망시킨 거예요. 한지훈."]

문득. 꿈속, 울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 후우!"

고개를 가로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지금은 마법진을 파괴하는 것이 급선무다.

파악!

계단 아래를 향해 달려 나갔다. 한번의 도약 때마다 계단 다섯 개 여섯 개를 뛰어 내려가고, 그 충격에 점차 발목에서 시큰거리는 통각 이 올라온다.

하지만 속도를 줄일 수는 없다. 흑마법의 발현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

막아야 한다.

나는 지하를 향해 달려 나갔다.

* * *

"후우…."

한지훈이 지하로 향한 뒤. 니디 아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그녀의 기세가 변화했다.

방금 전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고, 전신에는 이형의 기운이 아른거 리고 있다.

"약한 척 하는 거. 의외로 고단 하네요."

니디아가 앞을 바라봤다. 그녀의 앞에 다수의 병사들이 보인다.

공국 병사들. 그들이 허접한 창 칼을 꼬나 쥐고 이쪽을 노려본다.

니디아는 가녀린 손가락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녀의 배후에 떠올라 있는 불의 정령이 힘을 발했다.

화르르르륵!

이글거리는 불길이 뿜어졌다. 그것은 저 불길 너머에 있던 병사들을 타격해 불태워갔다.

"끄아아악! 불! 불이 붙었다!"

"빌어먹을!"

"으아아아아!"

몸에 불이 붙은 이들이 바닥을 뒹굴며 불을 끄려고 한다.

허나 그런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 하고, 붙은 불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자연력을 이용해 만든 불길 이기에. 그 불을 끄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격의 오러, 혹은 마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잔챙이들을 상대하는 건 재미없 는데 말이죠."

니디아가 지루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쾅! 쨍그랑!

저택의 창문을 부수며 병사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번쩍 이는 전신갑주를 갖춰 입은 기사들 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러를 다루는 초인들. 기사. 그 들의 수가 무려 십여 명.

마침내 등장한 강적에 니디아는 방끗 웃었다.

"드디어 좀 괜찮은 적들이 나왔 네요. 기사라… 상대해본 적은 처음 이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재차 허공을 그었다. 그러자 그녀의 배후로 또다시 많은 수의 정령이 떠올라 기세를 돋우기 시작했다.

불의 정령, 물의 정령, 바람, 땅… 다양한 속성을 지닌 정령이 저마다 독특한 외양을 드러내며 도 열한다.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는걸 요?"

그녀가 손가락을 내리그었다.

콰그그그그극!

다양한 속성을 지닌 공격이 단번에 발현되었다.

얼음송곳 세례가 사방에 쏘아졌다. 이글거리는 화염구가 이곳저곳을 두드려댔고, 도망치려는 공국 병사들의 진로에 갑작스레 흙벽이 등장하는가 하면. 바람의 칼날이 날카로운 파공성을 울리며 공간을 난자했다.

잠깐의 굉음. 직후 그 자리에서 있는 것은 오직 니디아 혼자 만이었다. 비릿한 혈향이 공간을 그득 메웠다.

"그럼, 어디 한번 볼까요."

그녀가 시선을 돌려 지하로 향하는 문을 바라봤다. 방금 전 한지훈 이내려간 문.

"정말 이름 없는 별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애송이 인지 말이에요."

니디아. 위대한 하이엘프이자, 세계수를 지키는 엘븐 가디언 중 하나.

그녀가 한지훈의 행보를 주시한다.

나는 지하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나오는 것은 음험한 공간.

주위를 둘러봤다.

벽에는 마나등이 달려서 은은한 빛을 일렁였다. 바닥은 딱딱한 돌바 닥. 공기는 습하다.

발걸음을 옮겨 앞으로 향했다. 직감할 수 있었다.

'마법진이 가깝다.'

이 지하 어딘가에 커다란 마법진 이 있을 거다. 그걸 파괴하기만 한 다면, 사자소생 마법을 막을 수 있을 터.

나는 기다란 지하통로를 따라 달 려 나갔다. 그리고 적과 마주쳤다.

철그럭, 철컹.

검은색 갑주를 입고 있는 기사들. 놈들이 하나둘 기세를 끌어올리 며 내 앞을 가로막는다.

"암혹기사."

흑마나를 품은 기사들.

통로를 막아선 놈들의 수는 약 열 명. 그들이 검은색 오러를 일렁이며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나는 씩 웃었다.

"더럽게 많네."

혼자서 저 암흑기사들을 헤치고 마법진까지 갈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해야만 하지."

이미 저택 지하까지 꾸역꾸역 도착했다. 물러설 곳이 없다.

나는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내 몸이 앞으로 향한다.

"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군 그래."

창문 하나 없는 어두컴컴하고도 커다란 지하 공간. 바닥에는 거대한 검은색 마법진이 자리해있다.

그 불길한 마법진 위. 한 명의 흑마법사가 오연히 서 있었다.

"한지훈이라 하던가."

흑마법사의 외양은 꺼림칙했다.

얼굴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눈가는 붉은색 안광을 번뜩였고, 목 에는 해골로 만들어진 목걸이가 감 겨 있었다.

흑마법 학파 불라바아의 최상급 네크로맨서 퀼컨. 그가 질척한 미소 를 지으며 읊조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마법의 발현은 곧이다."

그가 시선을 옮겨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을 바라봤다.

저주, 그리고 사자소생의 마법진.

굴라덴 인구 십 수만 모두를 언데 드로 만들어 부리는 거대 마법진이다.

그가 손을 뻗어 마법진을 운용했다. 암흑색 기운이 일어나 마법진과 공명하기 시작한다.

"이제 이 도시는 우리 불라바아 의 품에…."

흑마법의 발현이 점차 가까워지 고 있다.

암흑색 검이 내 팔을 베고 지나갔다.

"크아악!"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저릿한 고통이 팔뚝을 타고 오른다.

하지만 멈춰 서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내 몸이 앞으로 향한다.

'굳이 처치할 필요는 없다.'

이 지하 공간에 암흑기사들의 수 가 너무나도 많았다. 모조리 처치하 며 전진할 수는 없다.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기에.

때문에 나는 놈들을 무시하며 그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내 민첩은 103. 아무리 암흑기사 들이라 한들, 나를 뒤쫓아 올 수는 없다.

하지만 놈들을 스쳐 지나갈 때 한두 번씩 스치는 검상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급소만은 어떻게든 지켰기에 생명의 위협은 없었지만. 점차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팔뚝, 허벅지, 옆구리. 그리고 등 짝. 크게 베인 곳들이다.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내 속도 가 조금씩 느려져 간다.

"염병할…!"

달려가는 와중 품속을 뒤져 포션을 꺼냈다. 그것을 아가리 속에 꾸 역꾸역 밀어 넣어 삼켰다.

치이이익.

내 상처 부위에서 연기가 일었다. 그러자 마치 항공궤적처럼 내가 지나간 자리에 연기가 남는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 마법진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 우회해서 놈의 진로를 막아!

암흑기사들이 ?아오고 있다. 내 민첩이 너무나 드높기에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기사다.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놈들에게 뒤를 잡힐 것이리라.

계속 발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커다란 철문이 보였다. 직감했다.

"찾았다."

저 문 뒤에 마법진이 있을 것이다.

오러가 어린 검을 휘둘렀다.

콰과과광!

두터운 철문이 조각 나 터져나간다. 나는 그 파편과 함께 방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커다란 공간. 바닥에는 넓게 마법진이 아로새겨져 있고, 흉흉한 기운이 방 전체 를 그득 메우고 있다.

"무능한 암흑기사 놈들. 여기까지 들여보내다니."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 쓴 이. 흑마법사. 놈들이 저 마법진의 정중앙에 자리해있다.

"네놈이 한지훈인가."

그중 가운데에 자리한 이의 모습을 보았다.

기분 나쁜 외양, 목에 걸려있는 해골로 이루어진 목걸이, 커다란 스태프.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놈을 보 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놈이 마법진의 핵이다.'

녀석을 죽인다면 이 대규모 흑마 법의 시전을 중지시킬 수 있으리라.

그가 지시한다.

"놈을 죽여 치워라."

"명을 받듭니다. 퀼컨 님."

그의 옆에 도열해 있던 다수의 흑마법사가 손을 들어올렸다. 검은색 기운이 응축되어 , 쏘아졌다.

콰르르릉!

공기를 터트리며 쏟아지는 마탄 의 세례. 마치 시야를 가득 메울 것만 같다.

곧 나는 저 마탄 세례에 휩쓸려 온몸이 걸레짝이 되리라.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내게 스킬이 없었다면 말이다.

지면을 박차고, 이쪽으로 쇄도하는 마탄의 세례를 향해 달려 나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