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내 몸이 앞으로 향해 간다. 감각을 끌어올렸다. 시야 속 공국 병사들의 모습이 크게 다가온다.
"무슨…!"
저택을 지키던 한 병사가 나를 발견하고, 경악성을 내지르며 검을 뽑아들려했다.
하지만 녀석은 결국 검을 뽑아들 수 없었다. 그전에 내 단검이 놈의 목을 꿰뚫었기 때문에.
콰드득.
목뼈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검날을 뽑아 회수했다. 질척 한 핏물이 심장 박동에 맞춰 울컥 울컥 치솟는다.
"적이다!"
주위에 있던 나머지 병사들이 검 올 들어올렸다. 직후 이쪽으로 휘둘러져오는 검광. 고개를 숙여 회피했다. 파공성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나는 단검을 역수로 쥐고, 또 다른 적병의 가슴팍에 처박았다.
퍽!
"끄아악!"
단검의 날이 정확히 심장에 틀어 박혔다. 비틀어 뽑아냈다. 그 와중 날이 갈비뼈를 건드린 것인지, 덜그 럭 거리는 감촉이 단검 그립을 타고 느껴졌다.
순식간에 병사 둘을 처치했다. 하지만 이자리에 있는 것은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암흑기사.'
콰앙!
검은색 검광이 내 목을 노리고 쇄도해온다.
암흑기사의 검격. 놈은 내 등장에 당황하지 않고 곧장 흑색 오러 를 일으켜 반격해왔다.
다행히 녀석은 한스처럼 강자는 아니었다. 대충 격을 따지자면 평기 사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까.
키기기기긱!
단검을 들어 올려 녀석의 검격을 흘려냈다. 검은색 오러와 푸른색 오 러가 부딪혀 보랏빛 마찰광을 번뜩였다.
나는 녀석의 검격을 막음과 동시, 왼손으로는 바닥에 떨어진 적 병사의 장검을 쥐어들었다.
[공국군 보급 장검]
볼품없는 장검이다. 제국군의 그것보다도 훨씬 질이 뒤떨어지는 장검.
그럼에도 장검이다. 단검으로 전투하는 것보다는 훨신 유용하리라.
"후욱!"
숨을 내뱉으며 왼손의 검을 휘둘 렀다. 암흑기사를 노리는 건 아니었다. 장검의 검날이 향하는 건 내 측면을 향해 달려오던 적 검병.
서걱.
공국 검병은 목이 베여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쓰러졌다. 핏물이 왼손을 왈칵 적셨다.
하지만 아직 눈앞의 암흑기사는 건재하다.
콰르릉!
녀석이 제 이격을 갈겼다. 묵빛 검광이 내 겨드랑이를 노리고 사선 하단에서 짓쳐들어온다.
자리를 박차 옆으로 굴렀다. 목표를 잃은 암흑기사의 검날이 방금 전 내가 있던 공간을 양단한다.
나는 자리에서 튕겨지듯 일어나 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투 척했다.
피잉, 퍽!
날아간 단검이 또 다른 적병의 눈깔을 맞췄다.
"끄아아아아!"
녀석이 눈을 감싸 쥐고,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재차 오러를 일으켰다.
화르륵.
내가 들고 있는 공국군 장검에 푸른색 불길이 일어났다. 주위가 오 러광으로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것을 횡으로, 눈앞의 암흑기사 를 향해 휘둘렀다.
카앙!
간단히 가로막히는 나의 검격. 하지만 그것조차 노림수였다.
팔꿈치와 손목을 비틀어 스냅을 주었다. 가로막힌 검날이 녀석의 검 신을 축으로 빙글 회전해, 놈의 목을 그었다.
서걱. 절삭음. 직후 울컥하고 튀어나오는 검은색 핏물.
- 커억….
암혹기사가 음울한 신음성을 토 하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암흑기사를 제압했고, 공국 병사 셋을 처치했다. 남아있는 적은 병사일곱.
쿠웅!
진각을 밟아 한 걸음 앞으로 나 아갔다. 그와 함께 숙여진 내 상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창격이 스 쳐 지나간다.
그 상태에서 찌르기.
푸욱.
"으아악!"
병사 하나의 복부를 깊이 쑤셨다. 검날을 비틀어 뽑았다. 놈이 배 때기에서 질척한 핏물을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진다.
"검은 머리! 악마! 한지훈이다!"
"주, 죽여!"
그때쯤 공국 놈들이 내 정체를 깨달은 듯하다. 그만큼 내 이름과 외모가 놈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니 .
무시하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파앙! 하고 터져 나오는 파공성. 어둠을 양단하는 푸른색 검광.
뎅겅.
오러 서린 검날이 병사의 목을 양단했다. 몸통 잃은 머리가 허공에 붕 떠오른다.
오러가 일었기에 절삭력이 극대 화된 상황. 그리 큰 힘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목이 절단되었다. 핏물이 허공으로 비산한다.
"죽여! 죽여!"
"으아아아악!"
나머지 공국 병사들이 악을 내지 르며 덤벼들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지훈이라는 네임드 장교의 모습. 더해 지금 나는 오러마저 운용 하고 있다.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리겠지.
콰앙!
오러 서린 검격을 발현했다. 청 색 검광이 날카로운 반월을 그리며 번뜩이고, 이쪽으로 돌진하던 병사셋이 동시에 핏물을 흘리며 자빠진다.
계속해 검을 휘둘러 나머지 적병을 죽여 나갔다.
퍼억, 서걱.
놈들의 무기는 내 오러 서린 검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오러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같은 오러뿐.
녀석들의 발악은 말 그대로 발악 일 뿐이었다.
푸욱.
마지막 병사를 처치했다. 심장을 꿰뚫린 병사는 잠시 경련하더니, 축 늘어졌다.
"입구는 정리했다."
파앙! 검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 냈다.
"니디아. 이쪽으로."
시선을 돌려 대로 너머를 바라봤다. 뒷골목에 숨어있던 니디아가 털 래털래 이쪽으로 달려왔다.
"저택 안으로 진입하자. 서둘러야 해. 곧 이쪽의 소란을 눈치채고 다른 병력들도 몰려올 거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저택 안을 향해 뛰어갔다.
* * *
"군단장님! 침입자입니다!"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노린 급습 같습니다."
"14번 천인대가 출진해 교전 중 입니다."
굴라덴 중심 내성. 그곳은 혼잡 스러웠다.
참모진들이 하나둘 보고하고, 통신 수정구는 계속해 반짝였다. 다수 의 보고가 들어온다.
경계 중이었던 외곽 순찰조의 실종. 직후 중앙구획 흑마법사의 저택 앞에서 일어난 전투.
콰앙!
군단장 페라다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역시. 제국 놈들에게 정보가 새 어나갔다."
그가 시선을 돌려 회의실의 빈자 리, 자신의 휘하 참모인 레커의 자리를 바라봤다. 그곳은 여전히 비어 있다.
"레커. 결국 배신한 건가."
이미 패전의 기색이 짙어 탈영하는 병사들이 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직속 참모단 중 하나가 인접국도 아닌, 적국인 제국에 넘어가 정보를 넘길 줄은 몰랐다.
그가 지시한다.
"흑마법사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마법진을 발동시켜라."
"군단장님! 그렇다면 기존 계획 과 달라집니다!"
"기다렸다가 제국군이 도시 깊숙이 들어왔을 때 발동시켜야 합니다!"
그에 참모진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본래 계획이 그러했었다. 제국군 이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깊숙이 파고들어 온다면 그때 흑마법을 발동, 침공해온 제국 놈들을 도시의 주민들과 함께 언데드로 만들어 버 린다.
그렇다면 적인 제국군에 커다란 손해를 입히는 것을 넘어, 오히려 더욱 많은 언데드 병사들을 얻게 될 수 있을 터.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지금 당장 발동시켜야 한다. 만약 흑마법진이 파괴당한다면. 그동안 우리가 준비했던 것들이 무력화 되고 만다."
제국은 이미 마법진의 정보를 알 았으며, 소수의 인원을 도시 안으로 침투시켜 흑마법진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기존 계획과 달라졌다 한들, 지금이라도 혹 마법을 발동시키는 게 현명하리라.
"그러니 지금 당장 흑마법을 발동시키라 전하게. 어서!"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참모 중 하나가 경례하고는, 군단장의 지시를 전하기 위해 수정구 를 조작했다. 곧 흑마법사들에게 연락이 간다면 마법이 활성화 되리라.
페라다 후작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둑한 도시의 길거리. 그곳에서는 공국 병사들의 고함소리 가 들려오고 있다.
그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곧 흑마법이 발현될 거다. 이 시간부로 사령부를 철수, 대피한다. 기밀 자료를 챙기고, 나머지 자료들은 소각 처리하도록."
페라다 후작과 그 휘하 참모단은 도주를 준비하고 있다.
나와 니디아는 계속해 저택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내부에는 공국 병사들이 많았다.
검을 휘둘렀다.
파앙!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리며, 내 바로 앞의 공국 병사가 피를 홀리 며 나자빠졌다.
놈의 시체를 뛰어넘어,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막아! 놈을 막아라!"
"지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해!"
공국 병사들이 이쪽으로 달려나 온다.
놈들은 지하로 향하는 좁은 통로 를 지키고 있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감각이 첨 예하게 벼려진다.
서걱.
내 검이 낭창거리며 움직여 공국병사의 목을 베었다. 놈이 쓰러지는 그 순간, 내 검날은 반전해 그 옆 의 적을 노리며 파고들어 갔다.
퍼억. 내부 장기가 파괴되는 물 컹한 감각. 직후 뿜어지는 핏물이 바닥에 후드득 떨어지는 소음이 귓 가를 울린다.
"기사! 기사를 불러!"
"놈은 오러를 다룬다!"
"막아!"
공국 병사들은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그래봤자 오러조차 운용하지 못하는 일반 병사들뿐.
파앙! 콰직.
놈들은 힘없이 죽어 나갔다. 좁은 실내 곳곳에 무수히 많은 공국 병사들의 시체들이 나뒹군다.
"후욱, 후욱."
뜨거운 숨을 토하며 발걸음을 옮 겼다.
여기까지 오는데 무수히 많은 공국 병사들을 마주쳤다. 그때마다 나는 녀석들을 베고 가르며 전진해왔다.
시선을 돌려 니디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손에 쥐어든 회색 수정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키기기기긱, 키긱!
수정구에서는 전에 비할 바 없는 소음이 왕왕 울려나오고 있다.
"혹마법이 발동되었어요!"
그녀가 소리친 직후.
쿠르르르르릉…
건물 전체가 진동했다. 그와 함께 질척한 기운이 지하 깊숙한 곳에서 웅혼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법을 배우지 않은 나조차 진하 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량의, 음험한 기운.
"마법진이 가동되어 흑마나를 뿜 어내고 있어요. 흑마법이 완전히 발현되기 전에, 마법진을 파훼해야 해 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앞으로했다.
마법이 발동되었다고 한다. 여기 까지 침입한 것을 공국 사령부에서 알았을 터이니. 혹여나 마법진이 파괴되기 전 미리 발동시킨 것이겠지.
나는 계속해 발걸음을 옮겨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아직 저항하는 공국 병사들이 보인다.
"사, 살려… 커억!"
푸욱.
검신을 뻗어 마지막 공국 병사의 모가지에 검날을 박아 넣었다. 녀석 이 꺽꺽거리며 버둥거리더니 곧 축 늘어져 절명했다.
놈의 시체 뒤에는 철문이 있었다.
"이게 지하로 향하는 문인가."
그리 유쾌하게 생기진 않은 철제 문짝이다. 그것을 밀어보았다.
덜컹.
밀리지 않는다. 잠겨있는 것 같다.
나는 오러 서린 검을 휘둘러 문짝을 타격했다.
콰앙!
폭음과 동시에 철문이 박살 나 휘청인다. 그것을 발로 걷어차 날려 보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난다.
"저기 지하 안쪽에 흑마법사들과, 마법진이 있을 거예요. 한지훈 씨 혼자 가서 파괴해야 해요."
막 지하계단을 타고 내려가려 할 때 니디아가 말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저는 여기를 지키고 있을게요. 공국에서 지원군을 보낼 수도 있으 니까요."
"뭐?"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니디아는 마법사라 하지만 견습에 불과하다. 당연히 일반 병사들 따위보단 더 나은 전투력을 지니고 있겠지만.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을 터.
헌데 그런 그녀가 이곳을 지키고 있는다 한다.
니디아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저 이래봬도 강하 니까요."
"… 꼴값 떨지 말고 아래로 가자. 너 혼자 여기 있다가는 당할 뿐이 야."
"아니요."
그녀가 손을 뻗었다.
우우웅….
그녀의 양손에서 온화한 녹색 기운이 피어올랐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연력?'
그녀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은 마나도, 혹마나도 아닌. 자연력 이었다. 따스하고도 온화한 느낌의 초록색 기운.
그녀가 싱긋 웃었다.
"잠깐이었지만. 속여서 미안해 요."
그녀가 자연력을 운용하자, 곧 니디아의 외양이 바뀌어갔다.
주황색 머리카락도, 갈색 눈동자 도 그 모든 것이 녹색으로 물들어 갔다. 더해 머리카락 사이로 뻗어 나오는 것은 길쭉한 귀.
"사실 저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녀가 나직이 고한다.
저 길쭉한 귀도, 그리고 오직 엘프와 요정족만이 다룰 수 있는 자연력을 다루는 것도 단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엘프…?"
니디아는 엘프였다.
나는 경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