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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72화 (72/390)

72화.

현실에 있을 적. 잠입액션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다.

이쪽을 찾는 적을 하나하나 은밀 히 제거하며 목적을 완수하는 게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은 그것 과 비슷했다.

"… 열한 명째."

콰득. 검날을 목 깊숙이 박아 넣었다. 공국군 병사가 고통에 버둥거 린다.

눈이 마주쳤다. 너무나 급작스러 운 공격이었기에, 녀석의 눈동자 안 에는 오직 당혹감만이 넘실거렸다.

검날을 비틀어 뽑았다. 십인장 계급장을 달고 있던 공국 초병이 무너져 내린다.

"후우!"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병사 하나를 해치운 이후. 나는 순찰 중인 공국 병사들을 하나하나 사냥해 처리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구역 초병들이 더 이상 안 보이는 상황.

시선을 돌려 도시 밖 초원지대를 바라봤다. 저 어둑한 대지 위, 니디 아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위치를 향해 손짓했다.

타닥타닥.

니디아가 흑색 로브를 펄럭이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미리 초병을 제거해둬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 촐싹거리는 녀석 때문에 진작 들켰으리라.

내게 다가온 니디아가 감탄했다.

"이야, 한지훈 님. 신기하네요. 엘프도 아니고 인간 주제에 어찌 그리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건지. 제국군 병사들은 다 그러나요?"

"쉿. 조용히."

그녀가 목소리를 높일 것 같기에 입을 막았다.

주위는 어둑하고 고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그마한 소음도 꽤 멀리 퍼지기에, 목소리의 높낮이에 유 의해야 한다.

"일단 로브부터 벗자."

끄덕.

그녀가 고개를 주억여 수긍했다.

나와 니디아는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나름대로 어둠에 위장하 기 위한 복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 외곽에 도착 한 상황. 더 이상 이 수상쩍은 로 브를 입고 있을 필요는 없다.

부스럭.

로브를 벗었다. 내가 벗은 로브 에는 공국 병사들이 흘린 핏물이 묻어있었다.

화르륵.

우리는 로브를 화롯불에 던져 넣었다. 로브가 불타 사라진다.

"좋아. 니디아. 이제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추적하면 될 것 같은데."

"제게 맡겨주세요."

니디아가 품속에서 예의 회색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그녀가 그것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우우웅….

그러자 은은한 회색빛을 토하는 수정구. 수정구에는 틱티틱거리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확실히. 혹마나가 감지되었어요. 도시 외곽인데도 혹마나가 감지될 정도면… 정말 커다란 마법진이라는 소리인데."

"그 티틱거리는 소리는 뭐야?"

"흑마나 신호음이에요. 주변 대기 의 흑마나 농도가 짙어질수록 저 신호음이 더 커져요."

무슨 가이거 계수기도 아니고.

그녀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지훈 님. 도시 외곽인데 이렇게 뚜렷하게 반응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거예요. 흑마법사들이 작정 하고 준비한 것 같네요."

"그렇겠지."

도시 내부 십 수만의 인명을 모조리 죽여 언데드로 부리는 마법진 이다. 단단히 준비하지 않을 리 없다.

"일단 가자. 네가 앞장서 안내 해."

니디아가 수정구를 들고 앞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도시는 쥐 죽은 듯이 적막했다. 도로를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보이 지 않았고, 시야에 보이는 집들에서는 인기척조차 드물었다.

니디아가 중얼거렸다.

"도시에 온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

이건 좀 실망인데요."

"전쟁 중인 도시가 다 이렇지 뭘. 근데 뭘 기대한 거야?"

"저, 도시에 와본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많이 구경 하나 싶었는데 ."

"무슨 시골사람 같은 소리하네."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골사람은 아니지만. 비슷하죠. 평생 숲속에 처박혀 살았으니까."

"라브리에 마법단의 마탑은 제국 수도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 도시에 처음 왔다고?"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은 제국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한 전투마법학파다. 당연히 그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마 탑은 수도 황궁 인근에 있다.

헌데 그런 라브리에 마법단의 마법사가 도시에 처음 와본다니?

물론 견습 마법사이니만큼 마탑 밖 외출이 자유로운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 한들 도시를 난생 처음 와 봤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저도 사정이 있어서요. 도시에 처음 와본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나는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우리는 계속해 도시 안으로 진입했다. 어두운 밤거리를 최대한 기척을 죽여 가며 움직였고, 쌀쌀한 밤공기를 헤치며 전진해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거기! 정지!"

가는 와중 다수의 순찰병을 마주 쳤다.

순찰병 다섯이 밤거리를 배회하는 우리를 발견해 다가왔다. 나와 니디아는 얌전히 멈춰 섰다.

"밤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 전파했는데 .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거동이 수상하다. 일단 포박해!"

그들이 우리의 앞을 틀어막고 윽 박질렀다.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니디아를 바라봤다. 니디아가 작게 고개를 끄 덕였다.

도시에 오기 전 미리 입을 맞춰 뒀기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 해야하는지 알고 있다.

"말을 높여라, 병사'! 이분께서는 차인트 백작가의 도련님이시다. 네 깟 병사들이 하대할 만한 분이 아니시란 말이다!"

니디아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해댔다.

그제야 병사들이 우리의 옷차림을 훑어봤다.

나는 귀족가 자제들이나 입을법 한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니디아는 그런 귀족을 보좌할 만한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게다가 지금 내 머리색은 반들거리는 황금색.

아무리 봐도 절대 평민처럼 보이 지 않는 모습이다.

그에 병사들이 목소리를 누그러 트렸다.

"… 먼저, 신분을 증명해주시지 요."

이 세상은 이렇다. 일단 귀족이 라 하면, 다소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도 절대 강하게 나올 수 없다. 하물며 그것도 나름 중앙귀족인 백작 가의 자제라니. 일개 병사들에 비해 까마득한 신분이다. 절로 몸이 움츠 러들 수밖에.

아. 생각해보면 현대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나. 거기서도 장교계급장 만 달고 있으면 암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됐었으니까.

부스럭.

니디아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여줬다. 미리 가져온 귀족 신분증명서였다.

물론 정교히 조작해 만든 가짜다.

이것이 우리가 준비한 기만책이었다. 귀족으로 위장해 도시 내부에서 움직이자는.

서류를 확인한 병사들이 척 경례했다.

"실례했습니다, 도련님. 병사를 붙여 목적지까지 안내해드릴까요?"

"아니. 안내는 필요 없다."

"알겠습니다."

나는 무심한 척 발걸음을 옮겨 앞으로 걸어갔다. 니디아가 그런 내 뒤를 따라온다.

조금 거리가 멀어지자, 그녀가 재밌다는 듯 킥킥 웃어댔다.

"거봐요. 금발이 훨씬 낫죠? 귀족이라고 하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니까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 도시 안으로 진입해갔다. 가면 갈수록 허름한 건물보다는 번듯한 신축이 자리해 갔고, 드문드문 2층 내지 3층 저택이 보이기도했다.

그리고 순찰 중인 공국 병사들.

"실례했습니다."

신분증서를 내밀자 우리를 공손 히 보내주는 그들이다.

안쪽으로 가면 갈수록 경계가 삼 엄해졌다. 도시 외곽에서 내부 깊숙이 들어오는 동안 벌써 십여 차례 나 순찰조를 마주쳤다.

귀족으로 위장한 것은 잘한 선택 이었다. 아무리 나라한들 저 득실거 리는 병사들 몰래 움직이는 건 자신이 없었다. 만약 도시 외곽에서처럼 전투를 벌여 돌파했다면 지금쯤 포위되어 곤란한 상황에 처했으리라.

걸어가는 와중, 니디아가 품속에서 회색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키기기기기긱.

수정구가 도시 외곽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게 밀도 높은 소음을 발했다.

"맙소사. 흑마나 농도가 무슨…."

그녀가 표정을 굳혔다. 그 정도 로 혹마나의 농도가 심각한 듯했다.

시선을 들어 올려 주위를 살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도시의 중앙구획 입구. 저 멀리 커다란 내 성이 보이고, 주변에는 크고 작은 저택들이 즐비해 있다. 그리고 그사이사이를 순찰하는 공국 병사의 무리들.

나는 잠시 주변을 살피고는 니디 아에게 말했다.

"니디아. 더 이상 대로변으로 이동하는 건 위험해."

"… 그게 무슨 소리죠?"

"지금쯤 공국 초병들이 살해당한 걸 들켰을 거다."

공국 놈들은 약하지만 멍청하지는 않다. 아니, 흑마법사를 끌어들인 걸 보면 멍청한가 싶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머리가 빈 놈들은 아니다.

우리가 이 도시에 도착한 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지금쯤 교대 한 공국 초병들이 이변을 확인하고 보고하기에 충분한 시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이제 뒷골목을 따라 이동하자."

시선을 내려 미니맵을 살폈다. 고작 백인장 등급의 전투지휘술이 기에 그리 넓은 시야는 없었지만. 그래도 건물의 배치와 길목의 구조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나는 니디아를 이끌고 뒷골목의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 이동했다.

저벅, 철퍽.

뒷골목은 대로변과 달리 그리 쾌 적하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고인 웅 덩이가 자리해있고,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났다.

"끄어어어…."

"으으…"

뒷골목에는 부랑자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팔이나 다리가 잘린 공국 군 병사들도 보였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에 깨어난 그들이 신음하며 몸을 뒤척인다.

이래서 뒷골목에 오긴 싫었는데 .

우리는 지저분한 뒷골목을 걸으 며 이동했다.

"도시 서쪽 외곽에 초병이 죽어 있었다!"

"침입자가 있다!"

"수색조 놈들 깨웨"

뒷골목을 따라 이동하는 와중, 대로변에서 공국 병사들의 고함소 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우리의 침입 이 들킨 듯하다. 계속해 대로변을 따라 움직였으면 지금쯤 놈들에게 포위당했을 터.

미리 뒷골목으로 들어와서 다행 이었다.

"니디아. 마법진의 핵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 건물 다섯 채 정도만 지나치 면 돼요."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속도를 높였다.

철퍽, 덜컹! 타닥타닥.

뒷골목의 쓰레기를 발로 차고, 물웅덩이를 즈려밟으며. 빠르게 달 려갔다. 어차피 들킨 이상 은밀히 이동할 바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시선을 돌려 니디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입을 닫고 달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체력이 너무 좋은데.'

그녀는 군인이 아니다. 비록 견 습이라 하나 마법사다. 하루 종일 골방에 처박혀 책이나 읽는 샌님이 라는 뜻이다.

헌데 그녀는 내달리기 속도를 그리 큰 무리 없이 따라오고 있다.

제법 빠르게 달리고 있음에도, 심지어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수상한데.'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버렸다.

일단은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그녀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는 건 이 임무가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 으리라.

잠시 후, 우리는 목적지의 바로 앞에 도착했다.

뒷골목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목표 건물 주위를 바라봤다.

열 명에 달하는 초병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한 명의 암흑기사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반적인 저택이 아닌 것 같아."

나름대로 규모 있는 저택으로 보였다. 대문은 커다랬고, 정원 또한 넓고 잘 관리되어있다.

분명 귀족이 살 법한 집.

헌데 그 집 주위에 병사들이 자리해있고, 심지어 암흑기사까지 한 명 입구를 지키고 있다. 절대 평범 한 저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저택 지하에 마법진이 있을 거예요. 그걸 파괴하면 돼요."

니디아가 회색 수정구를 들여다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저택 안이라."

화르륵.

오러를 끌어올렸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일렁이고, 시퍼런 불길이 짧은 날을 따라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러를 운용해 전신을 강화시켰다. 청아한 기운이 온몸을 달궈나갔다. 내게 부여되었던 위장마법이 바 스라져 날아간다. 금발이 흩어져 내 리고 눈동자가 본래의 빛을 머금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을 되찾았다.

"간다."

파앙!

나는 자리에서 도약해 앞으로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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