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71화 (71/390)

71화.

"음…."

정수리가 시원하다. 나는 손을 뻗어 내 머리털을 매만져 보았다.

다행히 잘 달려있다. 혹시나 마법이 실패해서 대머리가 되지 않을 까 내심 걱정했는데 .

시선을 돌려 니디아를 바라봤다.

"… 뭐야?"

니디아는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마이 사를 바라보니, 그녀 또한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뭔가 잘못됐나?"

나는 손을 뻗어 검을 뽑아보았다. 거울이 있다면 지금 내 머리색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거울이 없으니 반들반들한 검날에 얼굴을 비 춰볼 셈이다.

검이 빠져나오고, 검날 면에 비 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눈살이 절 로 찌푸려진다.

"금발에 벽안이라. 더럽게 눈에 띄는 머리색인데."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금발, 그것도 이렇게 진한 황금색 금발은 대부분이 귀족들이었다. 평민들은 갈색이나 남색 등 좀 더 짙은 색이 많았다.

이래서야 귀족가 애송이 같은 외모다.

"한지훈. 그, 잘 어울리는구나."

"정말! 머리랑 눈색만 바꾸니까 인상이 확 달라지네요?"

마이사가 눈을 못 마주치는지 홀 깃거리며 이쪽을 바라보았고, 니디 아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부담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재차 표정을 찌푸렸다.

"이래서야 귀족 나리 같은 외모 잖아. 다른 무난한 색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니요! 금발이 훨씬 나아요. 이대로 하죠?"

"그게… 나도 찬성이다. 한지훈. 그대는 금발이 더 어울리는 것 같 구나."

"나 잠입하러 가는 거거든?"

나는 머리색을 다른 무난한 색, 예컨대 갈색이나 남색 등으로 바꾸 려 했지만. 그녀들의 반발에 어쩔 수없이 금발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래서야 눈에 띌 수밖에 없는데 .

"하여튼 위장은 이걸로 됐다 치고, 흑마법사의 마법진은 어떻게 찾을 거야?"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정신을 차린 듯 니디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독특한 외양을 가진 수정구였다. 일반적으로 완전히 푸른색으로 물 들어있는 수정구와는 다르게, 그녀가 꺼내든 수정구는 짙은 회색이었다.

"흑마나를 탐지하는 아티팩트예 요. 이게 있다면 도시 내부 어디에 혹마법 핵심이 있는지 알 수 있어 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티팩트가 있다면 도시의 흑 마나를 추적해, 사령술사들이 설치 해놓은 마법진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좋아. 그럼 일단 대기하지. 밤에 도시로 잠입한다."

"군단장 각하. 상급 참모 레커가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으음…."

부관의 보고에, 페라다 루고 후 작은 눈가를 찌푸렸다.

레커 다이니. 자신의 휘하에 있던 참모 중 하나로, 꽤 오랜 시간 군직에 몸담았던 이였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보이지 않았다.

"숙소까지 잘 찾아봤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더 군요."

"설마."

페라다는 턱을 괴고 고민했다.

레커는 공국에 충성하는 상급 참 모였다. 하지만 그는 흑마법사의 개 입을 부정적으로 보던 이중 하나.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사령술사 들을 도시에 배치한다고 했을 때, 격렬하게 반대하던 그의 모습.

후작이 나직이 읊조렸다.

"설마. 제국군에게 정보를 넘긴 건가."

레커라면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제국 놈들은 아직까지 도시를 공략하지 않고 있다. 놈들이 뜸을 들일 이유가 없을 터인데."

사령마법이 발동되는 건 마법사 가 폭렬마법을 퍼붓고, 제국군 병사들이 도시로 들이닥쳐 올 때, 그때 를 노려야 한다.

헌데 정작 제국군은 아군 3만 병력을 갈아버렸음에도 도시 밖에 진을 치고 대기 중이었다. 마치 이쪽 의 계획을 알아차린 것마냥.

후작은 지시했다.

"어쩌면, 사령술사의 정보가 제국 군에게 넘어갔을 수도 있다. 도시경계를 강화해라. 그리고 사령술사 들에게도 마법진을 제대로 지키라 지시하고."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부관이 경례하고 집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페라다 루고 후작이 읊조린다.

"나도, 이런 짓까진 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그 누가 흑마법사와 손을 잡는 걸 기꺼워할까. 그 또한 제국을 대적하기 위해, 그리고 군주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흑마법사를 들였을 뿐 심정적으로는 반발하고 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공국은 패망의 길을 걷고 있고 곧 제국군에 의해 멸망할 판이다. 그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인의를 버리고 흑마법사의 손을 잡은 것일 뿐.

그는 굳은 눈으로 자리를 지켰다.

"성벽이 없어서 다행이야. 그나마 잠입하기 수월하겠네."

도시를 향해 걸어가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런 내 뒤를 니디아가 따라온다.

나는 입고 있는 로브의 품속을 더듬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단검이었다. 백인장에게 지급되는 단검은 아니었다. 평범한 군용 단검에 묵빛 도금을 해둔 암습용 단검 이었다.

짧은 날과 가벼운 무게가 그리 믿음직스럽진 않다.

"이런 거로 어떻게 사람을 죽인 다고."

장검이 허리춤에 없으니 허전하다.

장검은 좋다. 기다란 날을 움직여 적의 공격을 수월하게 방어할 수 있고, 적당한 거리에서 휘둘러 신속하게 베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단검은 미덥지 않다. 상대방의 숨결이 느껴질 거리까지 접근해야만 적을 처치할 수 있다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내 중얼거림에, 니디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고 장검을 차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단검을 사용해야 한다. 이번 임무는 잠입 임무. 눈에 띄는 장검을 차고 다닌다면 검문에 걸릴 수도 있을 터.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걸어 도시 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점차 크 게 보이는 도시의 건물들, 그리고 그사이사이 보이는 공국 초계병들 의 모습까지.

지면에 몸을 낮추고 읊조렸다.

"예상 외로 경계가 빡빽한데."

3만 공국병사가 죽었기에, 도시 안에는 병력이 거의 없을 줄 알았 는데 . 그래도 경계할 정도의 인력은 남아있는 것인가.

시선을 돌려 니디아에게 지시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따라와."

"알았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천천히 움직였다.

도시 밖은 탁 트인 평야지대. 달빛이 약해 그리 훤히 보이지는 않 지만 밤눈이 밝은 병사가 있다면 쉽게 들킬 것이다.

나는 최대한 지면에 가깝게 몸을 붙여 도시 방향으로 다가갔다.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의 시선 방향을 의식하며, 놈들의 고개가 돌아갈 때마다 발걸음을 옮겨 접근해 갔다.

점차 놈들과 거리가 가까워진다.

"후우."

숨을 고르며 다가갔다.

어느새 병사와의 거리는 약 20미 터. 대충 30보 정도 거리.

주위가 고요하기에 드문드문 놈 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도 탈영하는 게 낫지 않을 까?"

"도망칠 곳이 없잖아. 이 도시에서 벗어나면 바로 제국군이 포위하고 있는데 ."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탈영하다 잡힌 병사들 소문을 들었어. 흑마법사에게 잡혀 서…."

"그게 정말이야?"

녀석들의 대화를 훔쳐 들으니 , 공국군 내부 상황을 알 것 같다.

공국의 패색이 짙다. 당연히 병사들의 사기가 개판일 수밖에. 비록 경계임무 중이라지만 대놓고 탈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바스락.

나는 숨죽여 녀석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스킬. 언제나오냐.'

나는 새로운 스킬이 활성화되기 를 기다리고 있다.

적에게 몰래 접근하는 행위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나는 매복을 했으면 했지, 이렇게 은밀히 병사를 향해 다가가본 적이 없었다.

긴장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발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바스락.

풀을 밟는 소리는 왜 이렇게 크 게 느껴지는지 저 경계병들이 한눈 팔지 않았다면, 그리고 간간히 바람이 불어와 내 발소리를 덮지 않았다면 진즉에 들켰으리라.

내가 녀석들을 향해 신중히 접근 하고 있을 때였다.

- 띠링!

[새로운 행동으로 인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스킬 : 은신술 (입문)]

['스킬 : 은신술 (입문)' 이 활성화 됩니다.]

드디어!

나는 주저없이 읊조렸다.

"은신술. 상향."

- 띠링!

['스킬 : 은신술 (입문)'을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1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직후 변화를 느꼈다.

머릿속에 지식이 스며들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눈에 띄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지. 어찌해야 어둠 속에 더욱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는 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 띠링!

['스킬 : 은신술 (입문)' 이 '스킬 : 은신술 (하급)'으로 상향되었습니다!]

스킬의 상향이 끝났다.

다리의 움직임을 바꿨다.

발꿈치부터 지면에 가져다 대고, 부드럽게 땅을 누르듯 군화바닥을 움직였다. 그러자 바스락 소리 하나 없이 내 몸이 움직인다.

이런 게 기도비닉이란 건가.

"후우."

숨을 골랐다. 크게 심호흡해 심장 박동을 낮췄다.

신기한 일이다. 스킬을 발현하자 긴장이 가고 정신이 침착함을 되찾 았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놈들에게다가갔다.

당장 보이는 공국 경계병의 수는 두 명. 놈들을 은밀하게 처치해야 한다.

단검을 쥐어 들었다. 검집에서 날을 뽑지는 않았다. 화롯불이 반사 된다면 이쪽의 접근이 들통나니까.

"염병. 교대 시간은 얼마나 남았 지'?"

"경계 선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세 시간은 기다려야 할 거다."

교대 시간까지 알려준다니. 친절 도 하셔라.

나는 자리에서 녀석들을 주시했다. 처치하기 위해 달려들 타이밍을 노린다.

"으으 졸려 죽겠네!"

두 병사 중 하나가 기지개를 피 며 쩍 하품했다. 눈에 눈물방울까지 그렁그렁 맺히는 걸 보면 완전히 방심한 상태.

지금이 기회다.

파악!

나는 자리를 박차고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이 활성화 되었다. 사고가 가속되며 체감시간이 느려져 간다.

달려가는 와중 놈들의 얼굴을 살 폈다.

하품하던 왼쪽 병사는 게슴츠레 한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던 다른 병사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멍청한 녀석들.

지루한 경계 임무라고 방심하면 안된다.

"침입…!"

퍽, 콰직.

순식간이었다.

오른쪽 병사의 목울대를 가르고, 그 가속도를 살려 왼쪽 병사의 목 젖까지 찍어버렸다.

"컥… 커허…."

녀석들은 무어라 외치려 하지만, 성대가 완전히 베어 파괴되었기 때문에 소리칠 수 없는 상황.

초병들은 피거품을 끄르륵 토하 며 순식간에 절명해버렸다.

"후우."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고 주위 를 둘러보았다.

다른 적병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 시체들을 치워야 할 때.

나는 녀석들의 시체를 질질 끌어 어둑한 수풀 속에 던져 넣었다. 그다음 핏물이 흐른 흙바닥을 문질러 핏자국을 대충이나마 지웠다.

비릿한 혈향이 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짐승들이 꼬이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일단 두 명은 처리했고."

시선을 돌려 바로 옆 건물을 바라봤다. 아까 전, 이 건물 안에 병사 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저기 안에도 공국 초병들이 있겠지.

나는 조용히 걸어 건물 옆까지 다가갔다. 뻥 뚫린 창문 옆에서서 안의 기척을 읽었다.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옆 부대 하톤 알지?"

"그 뚱뚱한 귀족 녀석? 당연히 알지. 4번 백인장이잖아."

"그 인간 탈영하다 붙잡혔대."

"정말이야? 간도 크네. 탈영하다 잡히면 극형인 줄 뻔히 알면서, 귀족이면서 왜 그랬을까?"

"그만큼 전황이 안 좋으니까. 당장 오늘만 해도 우리 주력군 대부분이 전멸당했잖냐. 이제 사실상 남 아있는 건 수도를 지키는 3군단밖에 없어. 우리 1, 2군단은 거의 전 멸했고."

"미래가 안 보이는데 . 정말 탈영 이라도 해야 하나."

"차라리 제국군이 처들어올 때 바로 항복하는 건 어때? 곧 종전인 데 금방 풀려나지 않을까?"

귀족까지 탈영할 정도로 공국군 은 기강이 무너진 상태였다.

놈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잠깐 나갔다 온다."

"얌마. 어디가?"

"오줌 싸러."

직후 삐걱거리며 들려오는 발소리. 놈들 중 하나가 나오고 있다.

나는 재차 움직여 사각으로 파고 들었고, 곧 끼이익 하며 문이 열림 과 함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다.

천천히 녀석의 등 뒤로 다가갔다. 놈이 아까 전 내가 죽인 초병 들의 자리에 가까이 간다.

"뭐야. 경계 서던 놈들 다 어디 갔어? 그 새끼들도 다 탈영했나?"

두리번거리며 초병들을 찾는 공국 병사. 손을 뻗어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으읍?!"

버둥거리는 녀석의 목덜미에 검을 밀어 넣었다.

서걱. 울컥. 질척한 핏물이 로브 와 손바닥을 적신다.

"세 명째."

나는 공국군 초병들을 하나씩 제 압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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