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70화 (70/390)

70화.

"잠입 임무라…."

나는 백인장 막사로 터덜터덜 걸 어가며 중얼거렸다.

오스카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군단장 각하. 어째서 저입니까?

처음, 나는 임무를 거절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미 서브 퀘스트 부여 홀로그램이 떠올랐었고. 그렇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임무를 거절한다면 시스템에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 저는 일개 백인장에 불과합니다. 어째서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 기시는 겁니까? 게다가 잠입 임무 라니.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차라리 기사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내게 이런 임무를 부여하 냐고. 내 무엇을 보고 이 일을 맡겼냐고 말이다.

그에 오스카가 대답했었다.

- 한지훈.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네가 이 일에 제격이다.

- 척후조 경험으로 은밀히 움직이는 방법을 체득했고, 게다가 개인 의 강함은 상급 이상의 암흑기사를 이길 정도로 출중하지.

- 기사? 하! 녀석들을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기사들은 이런 임무에 걸맞지 않아. 녀석들은 전장을 휩쓰는 병기들이지 세심한 잠입 작전을 하는 이들은 아니다.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도시에 잠입한다면 잘도 안 걸리겠군.

- 자네가 적격이다.

그 말인 즉. 척후조 경험이 있기에 은밀히 움직이는데 나름의 노 하우를 가졌을 것이란 말이다.

산을 타는 것과 도시에서 활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데 말이지.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돌려,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한지훈][1번 백인장]

[스킬 : 백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중급)]

[스킬 : 기마술(하급)]

[스킬 : 투창(입문)]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44]

[민첩 103]

[내구 35]

[체력 29]

[마나 50]

(남은 포인트는 35pt 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35pt. 능력치를 35올리거나, 혹은 도움이 될 만한 스킬 하나 올릴 수 있는 양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해봐야지."

새로운 스킬을 사용한다면, 클리 어 하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

나는 천천히 걸어 백인대 막사로 향했다.

"…그 백인장. 정말 한지훈 맞습 니까? 여기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네 레커. 한지훈 백인장이 공국군에도 유명한가보군."

오스카가 씩 웃으며 망명 장교인 레커의 말을 받았다. 레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유명합니다. 유명할 수밖에요. 한지훈의 부대와 전투해서 가까스 로 살아남아 도주한 병사들이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검은 머리 장교를 조심하라고."

"그 정도인가?"

"그렇습니다. 병사들이 말하기를, 전투가 끝날 때쯤에는 그 검은 머리가 피에 물들어 검붉은색으로 번 들거린다는데 그래서 부르는 별명 이 '악마'입니다."

"참 유치한 별명이군 그래."

악마라니. 하긴 검은 머리에 핏물이 엉겨붙어있으면 꽤나 소름끼 치긴 할 터다. 악마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포트 갈레이 공성전 때도 그렇 고 야습 때도 그렇고. 항상 한지훈 백인장은 고위 지휘관들을 처치하 거나 했습니다. 벌써 그에게 당한 것으로 확인된 공국군 천인장 계급 만 넷입니다. 덕분에 저희 참모단에서도 한지훈의 이름은 제법 유명하 지요."

한지훈은 백인장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벌써 네 명의 천인장이상 고위 공국군 군관을 참살했다.

그의 무력이 일반 보병을 아득히 능가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레커는 말을 흐렸다.

그는 공국군 참모 중 하나였다. 흑마법사가 자국민을 시체로 부리 려는 것에 혐오를 느껴 제국군에 망명했다. 가진 정보를 불었다.

허나 그는 도무지 한지훈이 임무 를 완수해낼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잠입해 마법진을 파괴한다니. 위험한 임무입니다. 게다가 마법진의 핵 주위에는 암흑기사들이 지키고 있을 터인데. 그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암흑기사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흑마법사들이 마법진의 핵을 아무렇게나 방치해뒀을 리 없다. 그들은 암흑기사를 수하로 부리고 있으 며, 그렇기에 분명 그들을 시켜 마법진을 보호하고 있을 터였다.

그에 오스카가 피식 웃었다.

"레커. 나는 한지훈의 제대로 된 실력을 이미 보았네."

오스카는 과거 본 적이 있었다.

포트 갈레이 내성 앞, 건물 잔해 더미 속에서 한스와 전투하던 한지훈의 모습. 그의 검격은 오스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었다.

일순간이나마 격 이상의 암흑기 사를 압도하는 무력.

"녀석이라면 충분히 해낼 거다. 믿고 맡기게."

"알겠습니다."

레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기원한다.

"부디 우리 공국의 백성들이 욕 보이지 않기를."

한지훈이 마법진의 파훼를 실패 한다면, 공국은 흑마법을 발동해 십만이 넘는 수의 백성들을 모욕하고, 언데드로 부릴 것이다.

막는 방법은 오직 마법진을 파훼 하는 것뿐.

레커는 한지훈의 임무 성공을 기원했다.

"…그렇게 해서. 잠입 임무를 맡 게 되었다."

백인장 막사로 돌아온 뒤. 나는 마이사에게 오스카와 나눈 대화를 설명했다.

마이사는 지친 표정으로 의자 위에 앉아있었다.

"그래? 잘 해봐."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나는 소동이잖아."

마이사는 우리 백인대의 소동 역할을 맡고 있었다. 온갖 심부름과 잔일을 도맡아 하는 .

"병사들 음식 챙겨주랴, 물 떠오 랴, 짐 나르랴. 방금 전에는 막사까지 설치했어. 아주 죽을 거 같아."

그녀의 엄살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여자인 걸 숨기고 남자행세를 하며, 더해 부대 내 여러 잔심 부름까지 도맡아하고 있다. 어린나 이에 만만찮은 부담이 됐을 거다.

나는 잠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 며 생각했다.

'말투가 점점 바뀌어 가는데 .'

처음 마이사를 만났을 적, 녀석 의 말투는 꽤나 고풍스러웠다. 한편 으로는 부자연스러웠다. 어린애가 어른인 척하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고 할까.

하지만 점차 마이사의 말투가 바 뀌어 가고 있었다. 제 또래 아이들 처럼 점차 고어체를 버리고 평어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만큼 내가 편하다는 이야기겠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녀가 문득 물었다.

"그럼 한지훈. 그 마법진이라는 걸 부수기 위해 도시로 잠입한다는 건가?"

"그래."

"음… 어렵지 않나?"

마이사의 말이 길게 이어진다.

"도시로 들어가는 것 자체는 쉽 겠지. 성벽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대는 공국군에게도 유명하지 않나? 특히나 그 검은 머리랑 검은색 순엄청 눈에 뜨일 텐데."

그녀의 말은 합당했다.

나는 이 이상한 세계 속에 들어 온 뒤, 검은 머리를 본적이 거의 없었다. 검은색과 가까운 남색 머리는 꽤나 자주 본 적이 있지만 나처럼 진한 암흑색 머리는 정말 드문 것이다.

참다시 생각해봐도 이상한 세상 이다. 전생에 널리고 널렸던 검은 머리가 이토록 드물다니.

"게다가 머리는 염색한다고 친들, 그 흑마법사의 마법진 핵심은 또 어떻게 찾아? 마법을 배운 것도 아닐 테고."

"그건 이미 해결 방법을 찾았어.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

내가 말하는 그때, 천막 밖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막사 입구를 바라봤다. 그곳에 천막을 들추며 안 으로 들어오는 한 여인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이번 임무를 보조할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견습 마법사, 니디아라고 합니다."

니디아는 잿빛 로브를 입은 갈색 눈동자의 여인이었다. 그녀의 로브 가슴팍에는 라브리에 마법전투단의 인장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그녀가 싱긋 웃었다.

"잘 부탁해요."

- 띠링!

[니디아]

[견습 마법새니디아. 이번에 날 보조할 마법사다.

* *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니디아. 견습 마법사. 분명 홀로그램이 떠올라 있다.

어째서? 나는 고뇌해본다.

'홀로그램이 나타났다는 건 게임 속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일 텐 데.'

여태껏 나는 많은 수의 인물들을 만나왔다.

고위 군관들을 비롯해, 보잘것없는 하위 병사들까지. 그리고 그들 중 홀로그램이 떠오른 경우는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과거 게임 속에서 마주쳤던 이일 경우.

그리고 지금 홀로그램이 떠올라 있다. 그 말인 즉 저 니디아라는 여자가 게임 속 시나리오에 나왔단 소리였다.

하지만 기억에 없다.

"흐음…."

내가 턱을 괴고 신음하는데, 니 디아는 천천히 다가와 로브의 후드 를 벗었다. 그러자 주황색 머리카락 이 드러난다.

"한지훈 님. 실제로 만나 뵈니 신기하네요."

그녀가 내 앞에서고, 나는 괴었 던 턱을 풀고 물었다.

"나를 알고 있나?"

"당연히요! 그 제피르 님이 처음 으로 훈장을 추천한 사람인데. 저희 마법단에서 한지훈 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요?"

"그런가."

하긴 제피르는 제국의 전쟁영웅 이었다. 전대 황제 정복 전쟁 시절 부터 활발히 활동해왔던.

그런 제피르가 난생 처음으로 훈 장을 추천했던 것이 나였다. 이름이 오르내릴 수밖에.

"그나저나 상상했던 인상이랑은 많이 다르네요?"

"뭐가."

"저는 들리는 소문이 워낙 흉흉 해서 우락부락한 사람을 상상했거 든요."

"소문이 어떻게 났길래?"

"전장 이곳저곳을 날뛰면서 적을 학살하고 피로 몸을 적신다던데요? 전투가 끝나면 항상 검은 머리가 붉게 물들어있다고. 엄청난 전투광 이래요."

뭐야 그 고약한 인상은.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이번 임무를 확실 하게 보조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럼요. 제가 할 일은 위장이랑 흑마법진 추적. 맞죠? 위장은 간단 하게 머리와 눈동자의 색을 바꾸면 될 것 같고… 흑마법 추적도 제가 견습이지만 가능해요."

니디아가 이번에 맡은 임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 위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혹마법 술식의 추적.

비록 견습 마법사라 불안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다 상위의 마법사들은 체내 마나량이 엄청나기에 그 존재를 들키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잠입임무는 견습 마법사 만이 할 수 있다고.

니디아가 시선을 돌려, 막사 한 켠에 앉아있는 마이사를 바라봤다.

"그런데 저 어린애는 누구예요? 이번 임무에 함께 하나요?"

"아니. 마이라고, 내가 부리는 소동이다. 부대 내 잔심부름을 하는 애야."

"흐음… 여자아이를 소동으로 쓰다니 신기하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놀라 몸을 움 찔했다. 마이가 여자라는 걸 단번에 꿰뚫어봤기 때문이다.

연막을 쳐본다.

"아니. 쟤는 남자다."

"무슨 소리예요? 이렇게 야리야 리하게 생긴 애가 남자일 리 없잖아요?"

"저래 봬도 마이는 남자…."

"아니요! 제 눈이 옹이구멍처럼 보이나요? 아무리 봐도 여자예요. 설마 저렇게 예쁜 아이를 남자라고 우길 생각이세요?"

이걸 안 속네.

카일이랑 다른 병사들은 잘 속아 넘어가던데.

"뭐. 표정을 보니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네요. 저런 어린애를 남 장까지 시켜가며 데리고 있다니… 혹시, 불건전한 이유로 그런 건 아니죠?"

"나를 뭐로 보고."

"그럼 됐어요."

"다른 곳에는 말하지 말고. 쓸데 없는 오해를 사긴 싫으니까."

"네네."

시선을 돌려 마이사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더니 크게 말했다.

"봐라 한지훈. 나는 남자같이 생기지 않았다!"

예전에 남자같이 생겨서 다행이 라는 말. 아직까지 담아두고 있었 나.

그래도 다행이었다. 마이사가 남자가 아닌 여자란 걸다른 이들에게 들켰다면 문제가 생길수도 있는데, 그나마 니디아는 그렇게 큰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이야기가 새어나가진 않겠지.

"그나저나 일단 위장을 해야 해 요. 한지훈 님의 머리색이 너무 눈에 띄니까, 잠깐 머리랑 눈동자색을 변하게 하는 마법을 사용할 거예요. 혹시 원하는 색 있으세요?"

그녀가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저 미소. 알고 있다. 사람을 마음대로 갖고 노는 바비 인형처럼 여기는 미소다.

나는 간단히 답했다.

"아무렇게나."

"엄청 성의 없네요. 그럼 제 취향대로 할게요. 잠시 기다려 보세 요."

그녀가 마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내 정수리에서 푸른색 기운이 일렁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