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69화 (69/390)

69화.

"아군이 모조리 당했습니다."

도시 굴라덴의 중앙 내성. 공국 군 군단장과 그 휘하 참모들이 있는 공간.

그곳에는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 고 있었다.

"전력 차가 너무나도 컸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반 나절 만에 이렇게 빠르게 제압당하다니."

"제국군의 전쟁능력을 얕봤다."

참모들이 침통한 얼굴로 그리 대화했다.

공국군의 대패.

그들 공국의 군대는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삼면에서 쳐 들어오는 각 군단에게 격파당했다.

페라다 루고 후작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군은 그리 정예가 아니었지. 게다가 수적인 우위마저 없으니 . 이렇게 된 것은 당연한 일."

후작의 얼굴에 참담한 감정이 아 른거린다. 다만, 그의 눈동자는 아직 죽지 않았다.

"시간은 벌었다."

그가 시선을 돌려 방안의 다른 이를 바라봤다.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 쓴 이들. 흑마법사들.

"흑마법사. 자네들의 요청대로 놈 들의 진격을 지연시켰다. 준비는 다 되었는가."

"크흐흐… 준비는 완벽합니다. 군단장 각하."

후작의 물음에 흑마법사가 음침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페라다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들의 그대법을 위해서 이미 3만의 병력을 갈아 넣었어. 실패해서는 안된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이만 가보게."

페라다의 축객령에 흑마법사들이 방 밖으로 나섰다. 주위 참모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흑마법사들. 역시나 음침한 놈들 입니다."

"저런 놈들의 힘을 빌려서까지 전쟁을 해야 한다니."

"암담하군요."

참모들에 말에 하마터면 페라다 또한 고개를 끄덕여 동조할 뻔했다. 그 또한 흑마법사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는 현재 공국 방어군을 이끄는 사령관. 페라다는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참담한 감정을 숨기며, 오히려 참모들을 나무랐다.

"그만하게. 저들이 없다면 우리는 패배할 뿐이다. 제국에게 패배해 숙 청당 할 바에 저들의 힘을 빌려서라 도 이전쟁에 이겨야 한다."

"그렇긴 합니다만…."

"할 일에 집중들 하게. 그나저 나,"

페라다 후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사령부의 내성 안 지휘실. 본래라면 십 수명의 참모진들이 자리해 있을 공간.

"참모들 몇이 안 보이는 것 같은 데."

헌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안에 있는 참모들의 수가 약간 적어 보인다.

페라다 후작이 표정을 찌푸렸다.

* * *

"어서 오게 한지훈. 이번에도 꽤 나 활약했군."

"감사합니다. 군단장 각하."

전투가 끝난 뒤. 나는 군단장 오스카의 부름을 받아 군단장 막사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스카가 기다리 고 있었다.

그가 앉으라는 듯 바로 앞의 의자를 가리키고, 나는 그곳으로 걸어 가 착석했다.

오스카가 품속에서 연초를 꺼내들었다.

"한 대 피겠나?"

"흡연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군."

찰칵, 화륵.

오스카가 연초에 불을 붙였다. 회색 연기가 떠올라 막사 천장에 고인다.

"자네의 활약이 꽤나 대단하더군. 보기로는 가장 먼저 돌진해 적의 우익을 파괴했던데. 맞나?"

"맞습니다. 저희 1번 레인저 백인대가 가장 먼저 돌진했습니다."

"그래. 나도 보았네. 처음에는 백여 명이 선도하더니, 자네 백인대가 만들어놓은 틈을 따라 이후 부대가 합류했지."

그의 말대로, 이번에 나는 꽤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가장 먼저 돌진해 적의 진형을 헤집었을 뿐만 아니라, 커다란 틈을 만들어 이후 후속부대가 보다 수월 하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했다.

덕분에 삼면포위가 무사히 완성.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

"자네가 적의 측면을 빠르게 부 숴준 덕분에, 예상보다도 훨씬 적은 피해로 놈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게다가 듣기로는 적의 지휘관을 처치했다고 하지."

"지휘관 말씀이십니까?"

천인장 하나를 죽이긴했다.

"자네가 처치했던 천인장. 녀석은 공국군 2군단 1번 천인대장이었다. 저 일만 공국군의 현장 최고지휘관 이었지."

"생각보다 높은 직급을 가진 지휘관이었군요."

나는 감탄해 고개를 주억였다.

내가 처치했던 공국군 천인장. 그냥 평범한 천인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최선임 천인장이었다 한다. 군단장이 없는 상태에서 최선임 천인장이란 현장의 최고지휘관. 녀석이 사실상 일만의 군대를 지휘하 던 이였다.

근데 왜 최고지휘관이라는 놈이 중앙도 아닌, 우익에 있던 걸까. 이상하다.

"자네는 적의 우익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까지 진출했었다. 몰랐었나?"

"아."

그랬었나.

전투에 집중하느냐 몰랐지만, 나는 공국군의 우익을 파훼시킨 거로 도 모자라 중앙까지 진출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중앙에서 적의 최고지휘관과 마주했던 것이고.

계속해 진형이 뒤엉켰기에 일어 났던 일이다.

오스카가 이어 말했다.

"한지훈. 나는 몇 번이나 자네의 활약을 지켜봤네. 그때마다 자네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 었어.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특별하고 위험한 임무를 맡기려고 하는데 ."

위험한 임무.

분명 오스카는 그리 말했다.

"위험한 임무라고 하셨는데 . 이미 굴라덴의 병력은 대부분이 갈려나 갔습니다. 그런데도 위험할 만한 일 이 있습니까?"

"그래. 있지. 안타깝게도 말이다."

오스카가 연초 연기를 내뿜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째서인지 그 의 표정에는 짜증이 어려 있다.

"방금 전 얻은 따끈따끈한 정보다. 흑마법사들이 이번 굴라덴 공방 전에도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반쯤 예상하기는 했었다. 흑마법사 놈들은 민간인을 제물로 소모해 사악한 마법을 발하는 이들. 그런 이들이 굴라덴이라는, 10만 인구를 가진 도시를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정보원을 불러오지. 레커! 이리 로 오게."

오스카가 그리 말했다. 그러자 미리 군단장 천막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일까. 천막의 입구를 들추며 한명의 인영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공국 측에서 망명해온 군관이다. 레커 다이니. 공국군 상급 참모관이지."

나는 그를 바라봤다.

사내의 외양은 비루했다. 몰래 도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위장 한 것인지 행색은 남루했고,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한 듯 눈가에는 피곤함이 짙게 끼어있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 악수했다.

"공국군 상급 참모관 레커 다이 니입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한지훈 백인장님."

"공국군 참모라. 당신이 왜 여기 있는거지?"

"망명했습니다."

군단장 오스카가 손짓하고, 그는 걸어와 테이블 위 의자에 착석했다. 오스카의 설명이 이어진다.

"요한바르첸 공국에서 패망의 냄새를 맡은 군관과 관료들이 하나둘 주변국으로 망명하고 있다. 이자 또한 우리 군에 망명한 공국 장교지."

하긴. 이미 공국과 제국의 전쟁 능력은 압도적인 차이가 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공국의 패망은 확실 시 된 상황.

그런 상황에서 망명자가 적을 리 없다. 약소국인 공국이라면 더더욱.

레커라고 불린 망명 참모가 입을 열었다.

"오해이십니다. 물론 제가 망명한 이유 중 하나가 공국의 패망이긴 합니다만, 그저 그뿐이었으면 카렌 왕국으로 갔을 것입니다. 굳이 적국 인제국에 망명 신청을 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은 합당했다.

카렌왕국과 요한바르첸 공국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굳이 망명한다면 카렌 왕국으로 가는 것이 더욱 유리했을 터.

헌데 레커는 굳이 적국인 제국에 몸을 투신했다.

그가 진중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제국에 망명한 이유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습니다."

"양심의 가책?"

뭔 개소리지.

그의 말이 이어진다.

"제가 몸담았던 공국이라는 나라 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공국은 백성을 가축처럼 다룹니다."

"뭐. 그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알 고 있는 사실이기에.

이 대륙 중 안 그런 나라가 있겠 냐마는, 공국은 특히나 백성을 쥐어 짜내는 나라였다.

징집으로 군대를 굴리며, 세율은 살인적, 더해 귀족의 권세가 극도로 강해 평민의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 게 취급한다.

반면 제국은 대규모 군대를 상비 군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세율 또한 타 국가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과거 정복 전쟁으로 빼앗은 광활 한옥토와 막대한 국고 덕분에 가능한 정책이었긴 하지만. 하여튼 제국은 공국과 달리 나름대로 평민을 존중하는 국가였던 것이다.

레커가 눈을 감았다.

"공국은 갈 때까지 갔습니다. 저희 공국의 지도자, 헤임스 요한바르 첸 공작 각하께서… 아니. 이제 망 명했으니 제 군주도 아니군요. 헤임 스 공작은 공국의 백성들을 희생시 킬 생각입니다."

"희생이라. 구체적으로는?"

레커가 말하는 표정이 퍽 진지했 기에. 나는 어깨를 낮춰 그게 하는 말에 집중했다.

레커가 말한다.

"공작은 사령술사를 이용, 도시의 시민들을 병사로 부릴 생각입니다."

"병사로 부리다니… 사령술사라. 설마."

"맞습니다!"

콰앙!

레커가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분노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공작은, 그리고 공국군 수뇌부 는! 굴라덴의 시민들을 모조리 죽 이고 언데드로 만들어 전투에 사용 할 셈입니다!"

"미친놈들이네 그거."

사령술사.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더더욱 악독한 놈들이다.

죽은 자를 되살려 전투에 사용하는 이들. 물론 한번 죽었던 시체 이니만큼 그전투능력은 허접쓰레 기나 다름없지만. 그것도 만 단위가 넘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굴라덴 인구수가 10만이라 하던 가."

"정확히는 11만 5천여 명입니다."

"허허."

어이없어서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내 머릿속에 한 흑마법사의 이름 이 스치고 지나갔다.

'크라함.'

흑마법사 불라바아의 종주이자, 게임 속 내부하였으며, 현재는 게임의 시나리오를 알고 있는 인물.

분명 놈이 움직인 것이리라.

"이미 굴라덴에는 모든 준비가 끝나있습니다. 제국군과 공국군이 전투하고 있을 때, 흑마법사 놈들이 움직여 마법진을 축성했지요.

"마법진이라면."

"광역 저주, 그리고 사자소생의 마법진입니다."

"규모는 어떻게 되지?"

"도시 전체를 아우릅니다. 이마법진이 제대로 발동된다면… 도시 안에 있는 11만이 넘는 주민들이 모조리 언데드로 변이하죠."

"스케일 한번 대단하군."

무려 십만의 인간들을 되살려내 병졸로 부리는 마법이다. 이런 대규모 마법이니 미리 마법진을 준비해 야 했으리라.

"한지훈 백인장."

가만히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스카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보다시피. 도시 굴라덴에 흑마법사들이 파고들었다. 놈들은 이미 공국 시민 11만을 언데드로 부릴 마법진까지 완성한 상태지."

오스카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있었다.

왠지 불길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본다.

"마법진을 파괴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도시를 침공하기엔 무리야. 우군이 도시로 몰려드는 동안, 놈들이 마법진을 발동시킬 것이니 말이다."

이미 흑마법사들은 사령마법진의 준비까지 완성해둔 상태.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간다면 피해가 가중될 뿐이다.

놈들이 지금 마법진을 발동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군이 도시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서일 터.

"그렇다고 저 도시 굴라덴을 공략하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지. 그렇게 된다면 이후 보급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

중부도시 굴라덴은 공국의 중요 거점 중 하나였다. 저곳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이후 제국군의 병참선이 위협받게 된다.

병참선은 군단의 생명줄. 반드시 안정화시켜야 한다. 때문에 상부에서는 굴라덴 공략을 포기할 수 없다.

"즉,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지 않 고 마법진을 파훼해야만 앞으로의 전쟁에 차질이 없다는 거다."

오스카가 연초를 비벼 끄며 말했다.

"한지훈. 1번 파트라헴 레인저 백인대장. 자네에게 임무를 부여하 지. 군단장 특별 명령이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 본다.

나는 긴장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분명 무언가 어려운 임무를 맡 길 것 같았기에.

씨익. 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은밀히 도시에 잠입,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파괴해라."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서브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파괴하라.]

"… 군단장님. 진심이십니까?"

나는 표정을 굳힐다.

수밖에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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