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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68화 (68/390)

68화.

전쟁에는 기세라는 것이 있다.

"가라! 다 죽여!"

이 기세라는 것은 한번 올라오면 사그라들 줄 모른다.

내가 앞서고, 병사들이 뒤따랐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공국 병사가 단말마를 흘리며 나자빠지고, 흙바 닥에 질척한 핏물을 쏟아냈다.

퍽. 콰직!

검날을 적의 모가지에, 복부에, 옆구리에 쑤셔 박을 때마다 놈들이 움츠러 든다.

몇 놈이나 죽였을까.

"훅, 후욱, 훅."

거칠게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 봤다.

보이는 것은 제국군 병사들이 공국군을 몰아치고 있는 모습. 사방천 지에는 공국 병사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널려있고, 그런 놈들의 시체를 즈려밟으며 제국군이 공국 병사들을 죽 여나간다.

가장 먼저 돌진해간 것은 나였다. 그런 내 뒤를 휘하 백인대원들 이 뒤따랐고, 또 그들의 뒤를 다른 부대가 뒤따르며. 우리는 적의 옆구리를 부숴갔다.

시선을 돌려 시야 한 켠에 떠오른 미니맵을 바라봤다. 내 입가에 미소가 올라온다.

"완벽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적의 측면. 우리 좌익은 돌진해 놈들의 우익을 완전히 부숴버렸고, 지금은 중앙을 향해 압박하고 있다.

"도망쳐! 도망쳐!"

"으아아악!"

공국 놈들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 친다. 그들도 절절히 체감하고 있다. 진형이 완전히 붕괴되어 패색이 만연했음을.

"빌어 처먹을 놈들! 도망치지 마 라!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워라 이 개자식들아!"

내 시야 한 켠에 어떤 인물의 모습이 잡혔다.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 한 중년인 의 모습. 놈의 갑주 가슴팍에는 공국군 천인장 계급장이 보란 듯이 달려있다.

"도망치지 말라 했다! 염병할!"

퍼억!

놈이 도주하는 공국 병사의 목을 베었다. 이미 무너진 진형과 사기이 지만, 어떻게든 자리에 남아 전투를 속행하려는 모습.

씩 웃었다.

"너는 내 거다."

파앙! 검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 냈다. 붉은 액체가 후드득 지면에 떨어진다.

이번 전투를 하며 적 십인장을 수도 없이 해치웠고, 백인장 또한 다수를 처치했다. 하지만 천인장은 잡지 못한 상황.

천인장 하나쯤 잡으면 꽤 괜찮은 전공이 되겠지.

파악!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노리는 것은 저기 제 아군을 죽이고 있는 공국군 천인장.

이곳저곳에 쓰러져있는 공국 병사들의 시체를 밟고, 피 웅덩이에 군화를 적셔가며 돌진했다.

"… 놈!"

그러자 이쪽을 발견한 공국군 천 인장 녀석이 검을 들어 올려 막아 서려 한다.

"오오오오!"

녀석이 입을 벌려 포효한다.

천인장. 고급 군관이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검술의 소양을 지닌 것일 까. 녀석이 검을 쥐어 든 자세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빈틈이 없다면 만들면 되는 법.

오러를 운용할 필요도 없다.

나는 놈의 바로 앞까지 뛰어가, 자세를 낮추며 횡으로 검을 그었다.

노리는 것은 녀석의 복부. 갑옷 사이에 드러난 작은 틈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 카앙!

"크혹…!"

물론 녀석은 검신으로 막아 방어 해냈다. 허나 내 근력은 이전과 달리 약하지 않다. 내 검격을 막아선 반동으로 녀석의 몸이 주춤거리며 방어자세가 무너진다.

그때를 노리고, 제 이격. 내 검이 낭창거리며 곡선을 그린다.

"네놈! 너는…!"

푸욱.

검신이 적 천인장의 겨드랑이 안 으로 파고들어갔다. 손목을 비틀어 상처부위를 쑤셨다. 녀석의 내부 장기가 파괴된다.

"꺼억, 크륵…."

피거품을 질질 흘리는 적 천인 장.

검날을 회수한 뒤, 발로 차 놈을 쓰러뜨렸다. 녀석이 부들거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눈동자가 마주쳤다. 놈의 눈동자에 떠오르는 감정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경악.

"검은 머리… 너는… 설마… 한지훈…!"

퍽. 모가지에 검신을 박아 넣었다. 녀석의 몸이 정지한다.

나는 놈의 투구를 벗겨 들어올렸다. 녀석의 투구에는 천인장 계급장 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엘락."

"네! 백인장님!"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부관이 다 가왔다. 나는 손에 들린 투구를 녀석에게 넘겨줬다.

"이거 들고 있어. 천인장 투구다."

"… 알겠습니다!"

긴장은 다 풀린 건가. 엘락의 얼굴표정은 한결 편해보였다.

녀석도 이전투를 우리가 압도한다는 걸 알고 있다. 더해 고급 군 관이라 할 수 있는 적 천인장이 죽 어나가는 걸 바로 코앞에서 보았으니 한결 긴장이 풀릴 수밖에.

문득 녀석이 말해왔다.

"그나저나 백인장님. 꽤 유명해지 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잠시 숨을 고르며 엘락의 말을 경청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방금 저 천인장이라는 작자가 하신 말을 들으시지 않았습니까? 적 천인장조차 백인장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내가 직접 죽인 공국 놈들이 몇 트럭은 될 테 니까."

"트럭? 그게 뭡니까?"

"그런 게 있어."

척후조 십인장 시절부터 공국 놈 들을 썰고 다녔던 나다. 그때부터 몇 명이나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더 럽게 많은 적을 참살했다.

적 병사들에게 이름과 외모가 알 려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나저나 이제 거의 전투가 끝 난 것 같은데."

다시 시선을 돌려 미니맵을 살폈다.

적의 우익은 완전히 붕괴된 상황. 놈들은 몰아치는 제국군에게 완전히 압도되어 저항을 포기, 도주하고 있다.

크르르르르르르!!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바라봤다.

적 진영 후방에 아군 기병대가 기동하며 몰아치고 있다. 우리가 적의 우익을 부숴놓자, 기병대는 놈들 의 후방으로 가 완전히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로서 놈들은 삼면이 포위당했다. 남아있는 활로는 동쪽, 우리 군 이 의도적으로 뚫어놓은 길뿐.

- 부우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울렸다. 시선을 돌려 신호기를 확인했다.

깃발의 색은 초록색. 정지 신호다.

"정지! 정지! 추격하지 마!"

"멈춰라! 도망치게 놔둬!"

내가 외치고, 각 십인장들이 정지 신호를 병사들에게 전파했다. 공국 놈들을 몰아치던 제국 병사들이 제자리에 섰다.

나는 웃었다.

"이제 끝이네."

이 대규모 회전이 벌써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공국군의 도주 를 바라봤다.

- 띠링!

[서브 퀘스트 - '굴라덴 공략전'을 '압도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 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정산 포인트 : 15pt]

[추가 정산 포인트 : 20pt]

(남은 포인트는 35pt입니다.)

퀘스트를 클리어했다.

"저기 놈들이 나오는군."

제피르가 그리 읊조리며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그의 시야에 공국군의 모습이 보였다.

삼면에서 포위되어 밀려나오는 공국군. 놈들은 사기가 밑바닥까지 내려앉아 마구잡이로 도주하고 있다.

그들의 도주는 의도된 것이었다. 정면의 중장보병이 전방을 틀어막고, 좌익이 기동해 우익을 부수며, 기병대가 적의 후방으로 우회해 삼 면에서 감싼다. 그러면 남은 곳은 우측, 동쪽 방향뿐.

가까스로 살아남은 오천의 공국 놈들이 무질서하게 동쪽으로 달아 나고 있다.

제피르가 읊조린다.

"마법을 준비해라. 폭렬폭풍. 50중첩."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이 광역마법을 준비한다.

쿠르르르르….

마법사들이 스태프를 치켜들고,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나가 한데 어우러져 광역 마법을 구성한다.

허공에 떠오르는 붉은색 마법진. 마법진은 계속해 생성되고 중첩되 어가며 그 크기와 위력을 배가시키 고 있다.

제피르가 스태프를 들어올렸다.

- 타격점을 조정하겠다. 나와 마나를 동조하라.

그의 지시에, 제피르의 스태프에 마나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허공에 떠올라있는 마법진이 조금씩 그 빛의 세기를 키워간다.

제피르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 인다.

- 폭렬폭풍. 50중첩. 발현.

직후 마법이 발동되었다.

콰르르르르르릉!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수의 붉은 색 궤적이 쏟아졌다. 그것은 정오에 다다른 태양을 등지고 떨어져 내려 공국군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번쩍!

공국군의 진형에 무수히 많은 섬 광이 일었다. 직후 터져 나오는 폭발.

콰과과과광! 콰르릉!

붉은색 빛이 번쩍이고, 폭음이 고막을 유린했다. 공국 병사들의 신체파편이 허공으로 비산하며 핏물을 지면에 흩뿌렸다. 폭발 이후 일어난 화염이 대지를 불사르며 짙은 연기를 일렁였다.

"으아아악! 으아아아!"

"살려줘!"

"도망쳐! 흩어져라!"

단 한번의 타격으로 도망치던 공국 병사들의 수가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나타나는 기병대.

두두두두두!

배후에서 몰아치고 있던 기병부 대가 돌진해 뿔뿔이 흩어진 공국 병사들을 하나둘 사냥해갔다. 공국 병사들은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뛰었으나, 그래봤자 말의 속력을 따 돌리기엔 역부족. 바닥을 기는 병사들이 기병창에 꿰뚫려 하나둘 죽어 나간다.

완벽한 전투였다.

공국군은 포위당해 밀려났고, 그 밀려나 도주하는 패잔병들까지 마법사와 기병대가 처치해버렸다.

부정할 수 없는 압승.

제피르가 품속에서 연초를 꺼내 물었다.

"시시하군."

화르륵.

연초에 불을 붙인 제피르. 그가 회색 연기를 뿜어냈다.

전투는 제국군의 압도적인 승리 로 끝났다.

"군단장 각하! 전투가 완전히 종 료됐습니다."

"결과보고."

"네! 보고하겠습니다. 우군 사상 자는 약 일천 내외. 적 사상자는 대략… 일만 정도로 추청 되고 있습니다."

"도주한 적의 수는?"

"거의 없습니다. 전투 중간에 도 주한 적 기병 약 오백이 있을 뿐. 보병대는 완전히 처치했습니다. 더 해, 포로 약 일천을 사로잡았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군단장 오스카는 기분 좋은 미소 를 지었다. 그만큼 이번 전투의 결과가 썩 마음에 들었다.

압승이었다.

아군 1만 7천과 공국군 1만의 전투. 물론 아군의 전력부터 압도적이 었지만,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것이 바로 전쟁 아닌가.

때문에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 오스카는 지휘에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대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적 1만 공국군의 궤멸.

"4군단과 5군단은?"

"각 군단들 또한 무사히 적 병력을 완전소탕했다 합니다."

"좋아."

오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은 3개 군단으로 도시를 포 위했다. 그리고 공국은 각 방면에 일만씩 군대를 보내 막아내려했다.

하지만 열세인 공국군이 제국군을 막을 수 있을 리 만무. 그들은 순식간에 격파당했고, 이제 공국군 의 전력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오스카가 지시한다.

"병력 재정비하고, 군영을 정비하라.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도시를 공략하겠다."

"명령을 받듭니다, 군단장 각하!"

참모가 척 경례하고는 지시사항을 전파하기 위해 관측탑에서 내려 갔다. 오스카는 고개를 주억이며 전 장을 바라본다.

"파트라헴 천인대가 잘해줬어."

이 무지막지한 대승의 주역은 누 가 뭐래도 파트라헴 천인대다. 그들 이 좌익에서 치고 올라가 놈들의 우열을 무너뜨리고 포위하지 못했 다면 이렇게 적은 손실로 전투에 승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지훈이 활약한 덕분이겠지."

한지훈 백인장. 군단 내에서 아니, 심지어 적에게까지 꽤 유명한 장교의 이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3군단에 없다.

그만큼 매번 그는 활약했다. 여러 전투에 모습을 보일 때마다 무 수한 수의 적병을 참했고,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임무를 완수했다.

이번에도 그렇다.

그는 가장 먼저 돌진, 적의 진형에 파고들어 붕괴시켰을 뿐만 아니 라, 순식간에 적 배후까지 진출해 포위기동을 성공시켰다. 덕분에 전투는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눈에 띄는 활약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녀석은 영웅의 자질을 지녔다."

오스카는 한지훈의 전공을 생각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때였다.

"군단장 각하! 보고드립니다."

부관이 다가와 그에게 경례했다. 오스카가 경례를 받았고, 부관이 이어 보고했다.

"적의 상급 참모관 하나가 망명 해왔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지?"

오스카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부관을 바라봤다.

참모. 군단의 수뇌부에서 온갖 작전에 관여하는 이들이다. 그런 그 들 중 하나가 망명해왔다고 한다.

망명 자체는 별다른 일이 아니다. 공국은 멸망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그렇기에 알게 모르게 공국 귀족들은 다른 인접국으로 망명하고 있었으니까.

헌데 군단의 상급 참모가 망명 을, 그것도 적국인 제국에게 한다 니.

이상한 일이다.

부관의 말이 이어진다.

"그 망명한 상급 참모관이 말하 기를, 공국의 중요 정보를 넘겨주겠 다 합니다. 군단장님과 면회를 요청 했습니다만."

"… 일단 가지."

군단장 오스카는 망명한 상급 참 모관을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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