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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59화 (59/390)

59화.

벽이 부서지고, 지반이 파괴되었다.

석재로 이루어진 내성의 일부가 바스러지며 붕괴해갔다.

내 몸뚱아리가 발을 딛고 있던 지면과 함께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때. 나는 생존을 위해 온 감각을 끌어올렸고,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이 발동되었다.

사고가 가속된다.

시야 속 모든 움직임이 천천히 흘러갔다.

내 머리를 짓뭉개기 위해 내려오는 천정도, 부서져 터져나가는 벽 도, 날아오는 건물 파편도.

그 모든 것이 느리고도 확실하게. 마치 시간의 흐름 그 자체가 느려지는 것처럼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눈동자를 굴려 옆을 바라봤다.

함께 낙하하고 있는 이가 보인다.

'오스카 군단장.'

포션까지 줘가며 살린 이다. 건물 붕괴에 휘말리게 할 수는 없다. 오른팔로 그의 허리춤을 감싸 쥐었다.

다시 눈동자를 굴려, 반대편 방향을 바라봤다.

'카일.'

옆에서 있던 카일 또한 지면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내 한쪽 팔이 빈다. 녀석까지 구 할 수 있다. 왼팔로 녀석의 옆구리 를 부여잡았다.

직후.

- 파앙!

두 명의 건장한 사내를 끌어안고 도약했다.

무너지는 파편들 사이.

그나마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곳을 향해. 내 몸이 떨어지는 파편을 스치며 튀어나가 건물 밖 지면으로 곤두박질 쳤다.

간발의 차였다.

콰르르르르르르!

방금 전 내가 있던 장소에 돌무 더기가 떨어져 내렸다.

건물 밖 지면 흙바닥을 굴렀다.

그와 함께 배후에서 내성이 우수수 무너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파편이 비산하고 흙먼지가 화악 밀려온다.

"크윽… 콜록! 콜록!"

신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 때문일까.

머리가 멍하다. 균형을 잡기 힘들다.

흐릿해지는 정신줄을 간신히 붙 잡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를 돌아보았다.

내성의 일부가 무너져있다.

방금 전 우리가 있던 내성 2층 끝방을 포함해, 건물 외곽이 완전히 잔해더미로 화해있는 것이다.

허. 한숨이 절로 흘러나온다.

"마법공격이라니."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지금쯤 저 잔해더미에 깔려 죽었을 것이다.

욱씬.

"으윽…!"

문득 다리에서 저릿한 통각이 타고 올랐다.

손을 뻗어 다리를 만져봤다.

나도 모르는 사이 파편에 맞은 것 같다.

오른쪽 다리뼈가 부러져있다.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 절반을 다리에 붓고, 나머지 절반을 마셨다.

치이이이익.

증기가 일어나며 몸이 회복해간다.

"이제 포션은 없는 건가."

다시 만전의 상태를 되찾았지만, 가지고 있던 포션을 모조리 써버렸다.

이제 중상을 입는다면 더 이상 회복할 기회가 없다고 봐야겠지. 나직이 읊조렸다.

"백인대 지휘술 활성화."

- 띠링!

['스킬 : 백인대 전투지휘술'이 활성화됩니다.]

전술창 미니맵과 부대원 정보창 이 떠오른다.

그것을 확인하고는,

"… 망할."

욕지거리를 뇌까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흑마법사의 마법이 치명 적이었다.

내성 안을 수색 중이던 내 휘하 부대원 중 삼분지 일이 단숨에 죽 어 버렸다.

참담한 감정이 올라온다.

내가 그렇게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쿨럭, 커헉!"

군단장 오스카가 기침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런, 한지훈. 설마 이번에도 날 살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오스카가 일어서려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지면을 구르며 다쳤던 것일까. 반쯤 일어섰던 그는 신음하며 표정을 찡그렸다.

결국 일어서는 걸 포기한 군단 장. 그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누워계십시오, 군단장 각하. 무리해서 움직인다면 위험합니다."

"내 목숨을 두 번이나 살리다니. 한지훈, 자네는 정말 물건이야. 베 르겐이 어째서 그토록 자네를 원했 는지 알 것만 같군."

"과찬이십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주위 를 둘러봤다.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 덕분에 시야가 상당히 제한되었다.

이곳저곳에 파편무더기가 널려있고, 간간히 불길이 일어나 밝은 빛 과연기를 휘날리고 있다.

오스카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수정구는 푸른색으로 번들거리고 있다.

"다행히, 내성 안에 있던 비콘이 파괴되지는 않았나보군. 아직 마나 통신망이 살아있다."

그가 꺼내들었던 수정구는 마나 통신기였다. 비콘의 중계를 받아 통신을 하는 일종의 TRS무전기 같은 아티팩트.

그가 수정구를 쥐어들더니 말한다.

"북부 제 3군단 군단장,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후작이다. 전 병력에 게 전파한다."

그는 마나통신을 사용하고 있다.

"사령부 인근에서 10중첩 혹마법 의 발동을 확인했다."

그의 목소리가 지금쯤, 요새 안 모든 통신 수정구에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다시 알린다. 사령부 인근, 10중 첩 흑마법의 발동을 확인했다. 전 병력은 흑마법사를 탐색, 사살, 및 적대세력을 제압하는데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

방금 전 혹마법에 의해 건물 일부가 붕괴해버렸다.

하지만 아직 흑마법사의 위치는 모르는 상황.

탐색해서, 찾아 죽여야 한다.

"각 부대 상급지휘관. 차례로 현상황 보고하라."

- 1번 천인대. 부대 이상 없습니다.

- 2번 천인대. 천인대 병력 절반 이전사했습니다. 작전에는 문제 없습니다.

- 3번 천인대 부관입니다. 천인대장이 전사했습니다.

- 4번….

1번 천인대부터 마지막 기병 연 대에 이르기까지, 긴 보고가 이어졌다.

그들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떤 천인대는 거의 전멸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고, 어떤 천인대는 지휘관이 전사했다. 완전히 전멸한 것인지 응답하지 않는 지휘관도 있었다.

수백의 암흑기사, 그리고 수천에 달하는 공국 병사들의 야습이다. 피해가 없는 것이 이상하리라.

그가 지시한다.

"1번, 2번, 3번 천인대는 사령부 로 집결, 방어진형을 다진다. 나머지 보병 천인대는 각 영역의 적들을 제압하라."

- 명령을 받듭니다. 군단장 각하.

"최선임 기병대장."

- 부름에 응답합니다. 군단장 각하.

"모든 기병대는 연대단위로 각자 자율 기동한다. 요새 안 공국군들을 빠르게 제압하라."

- 명령을 받듭니다.

저것이 2만의 군대를 지휘하는 군단장의 모습이었다. 군단의 가장 위에서 전 병력을 움직이는 이.

물론, 그가 움직이는 것은 군단의병력뿐만이 아니었다.

"마법단장."

- 단장 제피르다.

"흑마법사의 위치. 자네 실력으로 추적할 수 있나?"

- 오스카. 내 실력을 우습게보면 곤란해.

"가능한가보군. 그럼 요새 내부 흑마법사를 추적섬멸 해다오. 최대한 빠르게 부탁하지."

- 알았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단장, 제피르. 그는 흑마법사를 추적섬멸 한다.

"기사단장."

- 볼로냐 전투기사단장 베르겐이다. 미안하군 오스카. 사령부로 가는 와중 암흑기사들과 조우, 제압하 느라 시간에 늦었다. 사령부는 괜찮은가?

"사령부는… 흑마법 공격에 당해 일부가 붕괴되었다."

- 오… 맙소사. 자네 괜찮은가?

"나는 괜찮다. 한지훈 백인장이 날 구출해줬어. 녀석, 물건이더군. 자네가 탐내는 게 이해가 가."

- 한지훈이라.

수정구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울린다.

- 그래. 녀석이라면 그럴 만하지. 그럼 오스카. 우리 볼로냐 기사단이 해야 할 일은?

"자네 기사단의 현황이 어떻게 되지?"

- 기사 삼백이 전사했고, 육백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쪽으로 합류해 주게. 사령부 근처는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안전을 다지고 싶군."

- 알겠네. 이쪽 암흑기사들을 완 벽히 정리한 뒤 그리로 가지.

볼로냐 전투기사단의 단장, 베르겐. 그가 곧 수백의 기사들을 이끌 고 이곳에 당도하리라.

오스카가 통신을 종료하고는 피 식 웃었다.

"피해가 크군그래. 하지만 이 정도면 대충 정리되었을 거다."

그의 말 대로였다.

야습해온 공국군의 전력은 약 사 천에 달하는 병사들과, 수백의 기사 들, 그리고 소수의 흑마법사들뿐.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전투했고, 많은 수의 공국 병사들과 암흑기사 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이제 어딘가에 있을 흑마법사들만 처치한다면 이 지랄 맞은 전투 가 끝나겠지.

"후우."

그는 힘없이 수정구를 품속에 집 어넣었다.

지쳐 보인다. 하기야 갑작스레 야습에 당하는 것도 모자라 수차례 나 생명의 위기를 겪었으니 지치지 않는 것이 이상하리라.

그가 나를 바라본다.

"곧 요새 안이 정리될 거다. 자네도 쉬게. 이제 더 이상 할 일은 없는 것 같으니 ."

"알겠습니다."

나는 오스카를 마주한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군단 사령부 구원 퀘스트를 클리 어 했고, 군단장을 구출했다. 더해 요새 안 혼란은 점차 진압되어가는 상태.

이 긴 밤이 곧 끝나리라.

"한지훈. 자네는 내 목숨을 구해 줬지. 사령부 내에서 한번. 그리고 붕괴하는 내성 속에서 구해준 것이 한번. 모두 두 번이나 말이야."

입이 심심한 것일까.

그가 웃으며 말을 꺼낸다.

"자네가 없었으면 나는 암흑기사 한테 죽고, 지금쯤 저기 건물 잔해 더미에 깔려있을 거다."

그가 품속에서 연초를 꺼내 물고, 성냥불을 붙였다.

후욱. 잿빛 연기가 만월이 떠오른 밤하늘을 향해 피어오른다.

"정말 고맙네 한지훈. 보답을 해 주어야겠지. 자네 뭔가 원하는 게 있나? 생명의 은인이란 건 처음 봐 서 뭘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군."

"딱히 원하는 건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럼… 언제든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게 알려주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주지."

"감사합니다. 군단장 각하."

군단장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후 작.

후작위에 달하는 고위 귀족이자, 제국군 북부 3군단의 수장이다.

그에게 은혜를 입혀놨으니 언젠가 도움이 되리라. 그나저나,

'귀족이라고 모두 쓰레기는 아니 구나.'

전대 백인장 갈렌, 나와 대련을 했던 기사 케니.

그 둘은 귀족 우월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평민을 깔보고 이쪽에 일방적인 혐오와 분노를 표출했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오스카 군단장. 그는 나에게 생명을 빚졌다며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하기야 귀족이라고 모두 개새끼는 아닐 터이니.

모든 귀족의 인성이 파탄 난 것은 아니리라. 우리가 그렇게 대화하고 있을 때였다.

"군단장님! 어디 계십니까!"

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군단장을 찾아 구줄하려는 아군 병사들이리라.

"군단장 각하께서는 이곳에 계신 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리로 가겠습니다!"

바스락, 달그락.

흙먼지 너머 실루엣이 보인다. 대충 열 명 정도의 제국군 병사들 일까. 그들이 건물 잔해를 밟으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정말 끝이다.

군단장의 신변을 인계하고, 적 소탕 작업이 완료되기만 한다면 이 개 같은 밤이 끝나리라.

하지만 아직 안도하기엔 이른 듯했다.

- 퍽, 콰직. 후드득.

갑작스레 섬뜩한 소음이 들렸다.

사람의 뼈가 바스라지고, 피육이 갈라지며, 핏물이 비산하는 소리.

그와 함께 뿌연 흙먼지 속 보이 던 사람의 실루엣들이 우수수 무너 져 내린다.

심상'치 않다는걸 깨달은 걸까. 오스카가 표정을 굳힌다.

나는 직감했다.

'적이다.'

그것도 최소 기사 급이다. 놈은 십여 명의 병사들을 단 한호흡만에 처치할 만한 실력자다.

잠깐의 적막 뒤. 또 다른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묵직하고도 불길한 발 소리였다.

나와 오스카는 저 흙먼지 너머를 바라보았고, 곧 저 멀리 뿌연 먼지 를 헤치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눈이 크게 떠졌다.

"… 너는."

절로 경악이 올라왔다.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의 얼굴이 익숙했기에. 커다란 체격, 그리고 기다란 갈색 장발. 장발의 한쪽 끝 은 볼품없이 잘려져있다.

얼굴을 바라봤다. 분명 갈색이었을 놈의 눈동자는 어째서인지 붉은 색으로 물들어 핏빛 안광을 번뜩이 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

"너는 분명 죽었을 텐데."

내가 직접 죽였었다. 목에 검날을 박아 넣고 비틀어 목뼈까지 완전히 부숴버렸다. 필시 포션으로도 살리지 못했을 부상, 명백한 즉사였다.

헌데 지금 이쪽으로 다가오는 놈 은 분명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한스 요한바르첸."

대적자. 나의 적.

놈이 천천히 걸어온다.

녀석의 안광이 한층 더욱 붉게 물들며, 입가에 질척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녀석의 붉은색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한다.

"오랜만이다, 한지훈."

놈이 검을 바로 세웠다.

그것의 검신을 타고 거무죽죽한 기운이 일렁이고, 타오른다.

놈의 오러는 청아한 푸른색이 아닌 질척한 검은색. 흑마나로 이루어 진 오러다.

"내 목을 잘도 베었었지. 그것도 두 번이나 ."

녀석이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 으며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진정으로 고통스럽다는 듯이.

그가 입가를 비틀어, 더더욱 질 척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대로 갚아주마."

- 띠링!

[시나리오 외 이벤트 감지!]

[엑스트라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엑스트라 퀘스트]

[한스 요한바르첸을 처치하라.]

나는 오러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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