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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58화 (58/390)

58화.

불길이 치솟고,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우리는 연기를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끄아아아! 으아아아아!"

"살려줘! 아아아악!"

서걱.

콰직.

불에 타 몸부림치는 공국 병사들을 베고, 쑤시며 달렸다.

발이 닿는 곳마다 육편조각이 흩 어져 있다.

나는 놈들의 시체 파편들을 즈려 밟으며 내성 안으로 진입했다.

콰앙!

대문을 발로 차며 건물 안에 들 이닥치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공국의 병사들.

"제국군이다! 막아!"

"죽여라!"

우리가 진입한 것을 확인한 공국 병사들이 외쳤다.

놈들이 창칼을 꼬나 쥐고 이쪽으로 돌진해온다.

그래봤자 약해빠진 공국 병사들.

나는 검을 휘둘렀다.

파앙!

파공성과 함께 내 검날이 기다란 반월을 그린다.

"꺼헉…."

내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던 공국 병사 두 명이 동시에 목이 베여 쓰 러졌다.

붉은색 핏물 두 줄기가 치솟는다.

"염병! 내성 안에도 공국 놈들 천지입니다!"

"백인장님! 가세하겠습니다!"

뒤따라왔던 내 휘하 병사들이 전투에 참여했다.

나 또한 계속해 전투에 임했다.

콰악!

검날을 이쪽으로 달려든 공국 병사의 심장에 쑤셔 박았다.

놈이 울컥 피를 내뱉고, 곧장 검 날을 비틀며 뽑아냈다.

"어머니…."

적병이 미약한 단말마와 피거품을 흘리며 주저앉는다.

놈을 즈려밟고 앞으로 전진.

적은 많았다.

"저놈이 지휘관이다! 놈을 죽여 라!"

"놈을 포위해!"

가슴팍에 달린 백인장 계급장 덕분에 어그로가 쏠렸다.

공국 병사 다수가 나를 향해 검 과 창을 내질러왔다. 날카로운 궤적 이내 가슴팍을 노린다.

허나 느리다.

타탁.

허리를 비틀고 스텝을 밟아 놈들 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다수의 창격이 방금 전 내가 서 있던 공간을 관통한다.

그때, 나는 앞으로 뛰어 들어가 놈들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직후 가볍게 횡 베기.

파앙! 하며 터져 나온 파공성.

그 뒤를 잇듯 미약하게 울린 절삭음.

"끄윽, 윽…."

검날이 적병의 연약한 목을 베었다.

울컥이는 피가 후드득 쏟아져 내려 내 투구를 적셨다.

계속해 검을 휘둘렀다. 가로막는 공국 병사들을 처치하고, 베어나가 며 보이는 적병을 죽여 갔다.

"살려, 살려줘!"

"아악!"

검광이 번뜩일 때마다 적병이 쓰 러지고 핏물이 쏟아졌다.

놈들의 질척한 피가 내 군복을 적셔 점차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두근, 두근.

심장이 쿵쾅이고, 시야가 좁아진다.

점차 전투의 흥분이 뇌리를 뜨겁 게 달궈갔다.

그렇게 몇이나 죽여나갔을까.

파앙!

나는 마지막 공국 병사의 옆구리 를 베었다.

"쿨럭…!"

공국 병사가 제 옆구리를 감싸 쥐며 쓰러졌다.

놈의 모가지에 검을 박아 넣어 완전히 숨통을 끊어버렸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입구 홀은 완전히 장악했다."

홀에는 공국 병사들의 시신이 이곳저곳에 쓰러져있고, 진한 혈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고개를 돌려 부관에게 물었다.

"엘락. 피해가 어떻게 되지?"

"중상 열! 사망 열셋 입니다!"

"십 인장들은?"

"다행히 모두 무사합니다."

예상보다 적은 피해다.

내가 앞장서 분전했고, 휘하 병사들이 모두 베테랑인 덕분이다.

곧장 지시했다.

"병력을 반으로 나눈다. 내가 1번부터 5번 십인대를 이끌고 2층으로 가겠다. 엘락! 너는 6번부터 10번 십인대를 데리고 3층으로 가."

"명령을 따릅니다!"

내 명령을 들은 엘락이 약 오십 의 병사들을 이끌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뒤따른다.

옆에서 따라오던 카일이 물었다.

"백인장님, 병력을 나누실 겁니까? 이내성 안에 공국 놈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다 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의견이다.

하지만 나 또한 아무런 생각 없이 병력을 나눈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차피 입구 홀을 제외하 고는 대부분의 장소가 협소해. 병력 이 많아봤자 크게 유리하진 않아."

저번 훈장수여식 당시 와본 적이 있기에, 나름대로 내부구조를 꿰고 있다.

내성은 애초 군사용으로 지어졌 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소가 협소했다.

방어에 유리하도록 통로가 좁고, 벽이 두텁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협소한 공간에서는 많은 수가 있어도 크게 유리하지 않으니 차라리 병력을 쪼개 더 빠르게 수 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게 우리는 계단을 타 오르고, 내성 2층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시체들이, 특히나 제국 군 시체들이 많았다.

"여기서 치열하게 싸웠나 보군요."

"장교와 기사들도 많이 죽은 것 같습니다."

시체들은 대부분이 일반 병사들 이었으나, 개중에는 장교나 기사들 의 시체들도 다수 있었다.

시선을 내려 시체들을 자세히 살 폈다.

내성을 지키던 기사가 죽어있다.

그리고 일반 병사가 기사를 처치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

그 말인 즉…

"이 앞에는 적 기사들도 있다는 건가."

고개 돌려 다른 시체들을 살폈다. 하얀색 갑주를 입은 제국군 기사들과 달리, 검은색 갑주를 입은 처음 보는 기사들의 시체들 또한 많았다.

아마도 공국군 기사이리라.

후우. 숨을 들이켰다.

"힘든 싸움이 되겠어."

지금도 더럽게 힘들지만, 기사를 상대한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전투가 되리라. 우리는 계속해 내성 안쪽으로 진입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시체들 이 많았고, 혈향 또한 진해졌다.

"제국군이다! 막아!"

"벌써 적 증원이 오다니…."

"죽여!"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가로막는 공국의 병사들.

퍼억!

검을 휘둘러 놈들을 처치해 나갔다.

다행히도 1층과 달리 2층에는 공국 병사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도 내성을 지키는 기사들과 수비병력에 의해 많이 소모된 덕분 인 듯했다.

우리는 적 병사들을 배제해가며 내성 2층을 수색했고, 다수의 아군을 구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진입했을까.

- 콰앙! 퍽! 채앵!

마침내 도달한 2층의 끝.

마지막 방에서 전투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안쪽, 아직 싸우고 있는 이들 이 있다는 것일 터.

나와 병사들이 그쪽으로 달려갔고, 곧 익숙한 얼굴을 조우할 수 있었다.

"오스카 군단장님!"

군단장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후 작.

그가 다수의 기사들을 상대로 전투하고 있었다.

오스카는 강했다.

기사가 아님에도 오러를 다룰 줄 알았던 것인가.

그가 검을 휘두르자 푸른색 궤적 이번뜩였고, 청색광이 망막에 박혔다.

검광이 반짝일 때마다 강렬한 파 공성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열세였다. 그는 혼자였고, 그를 공격하는 검은색 기사들은 무려 셋에 달했다.

"군단장님! 가세하겠습니다!"

일반 병사들은 기사를 상대할 수 없다. 오직 나만이 저 전투에 끼어 들 수 있다.

나는 마나를 운용, 오러를 끌어 올리며 도약했다.

화르르륵!

검신에 푸르른 불길이 일렁인다.

내가 오러를 일으키자 그 존재를 느낀 것일까. 기사들이 고개 돌려 이쪽을 주시한다.

하지만 놈들의 반응은 이미 늦었다.

콰앙!

청색 궤적이 공간을 꿰뚫듯 찔러 들어갔다.

내 검날이 기사의 옆구리를 관통 한다.

푸욱.

- 크아아!

놈이 비명을 지르며 휘청였다.

나는 검을 뽑아 회수함과 동시, 녀석을 발로 차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때를 노려 쇄도해오는 또 다른 기사의 검격. 매서운 찌르 기가 내 머리통을 노리고 파고들어 온다.

고개 숙여 피했다.

콰아앙!

강렬한 충격파가 울림과 동시, 암흑색 기운을 품은 검날이 내 투 구를 스쳐지나갔다.

간발의 차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지금 쯤 내 관자놀이에는 놈의 검신이 틀어박혀 있었을 것이다.

"개새끼!"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자리에서 튕겨오르듯 사선으로 검을 올려 그었다.

오러가 맺힌 검날이 공기를 가르 고기사에게로 향한다.

일반 병사들이라면 결코 막지 못했을 검격.

허나, 카앙!

놈이 내 검격을 맞받아냈다.

쇠와 쇠가 부딪쳐 커다란 충격음 이 울린다. 역시 기사. 놈들의 실력 은 범상치 않다.

하지만 상대는 나 혼자뿐이 아니 었으니 .

"고맙네, 한지훈!"

푸욱.

오스카가 빈틈을 타 놈의 가슴팍에 검신을 박아 넣었다.

녀석이 순식간에 절명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기사가 한 명 남아있다. 녀석이 공격의 직후로 무 방비한 오스카 군단장을 향해 달려 들고, 나는 그 틈에 놈의 목을 베어내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퍼억!

"윽…!"

군단장의 복부에 검은색 칼날이 박혔다.

직후 내가 검을 휘둘러 검은 기사의 목을 베어 죽여버렸지만, 놈은 기어코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데 성공했다.

복부에 검이 박힌 오스카 군단장 이 벽을 등지고 주르륵 미끄러져 쓰러졌다.

벽면에 붉은색 핏자국이 지익 그 어진다.

"군단장님!"

나는 달려가 군단장을 부축하는 한편, 카일을 비롯한 병사들에게 주변 경계를 지시했다.

그때였다.

- 띠링!

[서브 퀘스트 - '군단 사령부 구 원'을 '훌륭하게' 완수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 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정산 포인트 : 20pt]

[추가 정산 포인트 : 1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10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40pt입니다.)

방금 내가 처치했던 기사가 마지막 적이었던 것일까.

퀘스트 완료 안내창이 떠올랐다.

시선을 내려, 군단장을 바라봤다.

"쿨럭!"

그가 각혈했다.

붉은 핏물이 그의 입에서 흘러내 려 제복을 적신다.

"오스카 군단장 각하. 괜찮으십니까?"

"크… 자네는, 이게, 괜찮아 보이나…?"

오스카는 제복 소매로 입가에 흐 르는 피를 훔치고는, 피식 웃었다.

"망할. 이렇게 뒈지는군."

"군단장님. 포션이 있지 않습니까?"

군단장 정도쯤 되면 당연히 포션 은 상비할 터다. 헌데 그는 벌써 죽음을 확신하고 있다.

그에 오스카가 턱짓으로 바닥 어 딘가를 가리켰다.

"포션? 하하. 이미 썼다."

그가 가리킨 바닥에는 텅 빈 포 션병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도착하기 전, 이미 소지하고 있던 포션을 사용한 듯하다.

하지만 그는 몰랐을 것이다.

"군단장님. 제게도 포션이 있습니다."

"?.?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듯 놀란 표정을 지은 오스카.

나는 그의 복부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내었다.

"으으윽! 지랄 맞게 아프구만!"

"조금만 참으십시오."

직후 나는 곧장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들어, 그의 복부 상처에 흘려 넣었다.

치이이익.

연기가 피어오르고, 상처가 재생 되어간다.

오스카는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 트리면서도 안심한 눈을했다.

"제기랄. 죽다 살아났군."

정말 죽다 살아났다.

만약 이자리에 온 게 내가 아닌 일반 병사들이었다면, 그리고 내가 포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상처가 거의 아물어 간다.

그러자 그가 내게 물어왔다.

"헌데, 한지훈. 자네는 백인장 아닌가? 어떻게 포션을 가지고 있던 건가?"

난감한 물음이다.

나는 잠시 침묵하고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의무장교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구했습니다."

"허허."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

하기야 웃기기도 할 것이다.

군단장이 부정습득한 포션으로 목숨을 구했으니까.

나는 씩 웃었다.

"설마. 처벌하실 겁니까?"

"규정대로라면 처벌하겠지만, 내 목숨의 은인에게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참, 기구하군 그래. 군단 장인 내가 유출된 군수물자로 목숨을 구하다니 말이야."

그는 자리에서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아직 거동이 불편해 보였지만 포션 덕분에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으리라.

어느 정도 회복한 것일까. 그가 또렷한 눈으로 내게 말해왔다.

"고맙다. 한지훈 백인장. 자네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군단장님."

"아니. 겸손은 되었다.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나중에… 제대로 보답하지."

그가 씩 웃으며 그리 말했다.

보상이라. 하긴, 2만의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나름대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한지훈 백인장, 저걸 봐라."

오스카가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적 기사들의 시체가 굴 러다니고 있다.

"놈들의 피가 검은색이다. 이놈 들, 암흑기사들이다. 흑마법사들의 하수인들이지."

"암혹기사…."

"미친 공국새끼들. 대륙조약을 어 겼어. 흑마법사의 세력을 전쟁에 끌어들이다니, 갈 때까지 갔군."

오스카의 말에 시체들을 살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검은색 기사 시체들. 그것들의 피는 분명 붉은색 이 아닌, 검은색이다.

'그러고 보니 .'

전투에 몰입하느라 뒤늦게 깨달 았다. 놈들의 오러색 또한 청명한 푸른색이 아닌, 흉흉한 검은색이었다. 분명 흑마나를 이용해 만든 오 러일 터.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암흑기사가 이곳에….'

본래 흑마법사 전력들은 시나리오의 중반 즈음에나 등장하게 된다.

헌데 아직 시나리오의 초기에 불과한 지금, 벌써 흑마법사의 세력이 등장했다. 그것도 내적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 쿠르르르릉….

창밖에서 묵직한, 하지만 소름끼 치고 불길한 소음이 들려왔다.

오스카는 비틀거리며 창가로 걸 어갔고, 나는 그를 부축했다.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마법진?"

하늘에는 마법진이 떠올라 있었다.

마법진의 색깔은 검은색이었다. 밤하늘보다도 더더욱 짙은, 빛조차 집어삼킬 정도로 새카만 반타블랙 색 마법진.

그것은 흉흉한 기운을 일렁이며 드높은 상공에 오연히 자리해있다.

"검은색 마법진… 맙소사, 흑마법 이다."

마법진을 확인한 오스카가 경악 성을 읊조렸다.

쿠구구구궁….

검은색 마법진이 점차 중첩되어 간다.

2중첩, 4중첩, 10중첩.

하늘에서 동일한 검은색 마법진 이 겹쳐지며 어두운 기운이 증폭되 어간다.

직후, 우리는 불길한 기운을 감 지할 수 있었다.

나는 섬뜩한 감각에 크게 소리쳤다.

"마법진이 노리는 건 이쪽이다! 모두, 몸을 숙여!"

콰르르르르르릉!

거대한 검은색 빛기둥이 밤하늘에서 쏘아져, 이쪽을 덮쳤다.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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