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무려 기사단장이 일개 평민을 거 두려 했던 것이다.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헌데 내가 그런 제안을 거절했으니 ,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할 터.
"내가 기사단장이 된 이래,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감히 내 제안을 거절하다니 말이다."
나는 무어라 대답치 않고 그저 침묵했다.
잊어서는 안된다.
눈앞의 베르겐은 강자이자 군의 고위직이다.
그는 천여 명의 기사를 이끄는 볼로냐 기사단의 단장이면서, 제국 의 백작이고, 검으로는 최상급의 무력을 달성한 이다.
가급적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겠지.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한지훈. 자네 부대는 아직 재정 비중이지."
"그렇습니다, 단장 각하."
"그렇다면 내기 하나 해보지. 케 니! 케니 알키온! 이쪽으로 와라."
베르겐 단장이 검날의 오러를 꺼 트리고는, 누군가를 불렀다.
그에 케니라고 불린 한 기사가 배후에서 걸어 나와 그의 옆에 섰다.
꽤 커다란 덩치를 지닌 기사였다.
"케니는 내가 최근에 받아들인 제자다. 일주일 안에 이 녀석을 이 겨봐라."
"… 갑작스럽군요. 대련입니까?"
"그래. 대련이다. 그것도 진검대 련."
다소 뜬금없는 대련 제안.
나는 완곡하게 거절의사를 표했다.
"제가 질 것이 뻔할 것입니다. 기사단장 각하, 저는 일개 보병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오러를 다루는 보병이지."
고개를 들어올려 케니라 불린 기사를 살폈다.
전차 같다.
카일처럼 커다란 덩치를 지닌 이였다.
팔뚝은 두터웠으며, 눈가는 흉흉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녀석은 나를 죽어라 노려보고 있다.
"일주일 동안 수련해 이 녀석을 이겨봐라. 그렇다면 내가 나름의 보상을 자네에게 수여해주지."
"기사에게 이기다니. 불가능한 일 입니다."
"내가 일주일만 자네를 가르쳤다 면 가능했다."
꿈틀.
케니라 불린 기사의 눈가가 찌푸 려 졌다.
고작 일주일만 수련하면 내가 이 긴다는 소리에 자존심이 상한 모양.
나는 무시하고 베르겐과 대화했다.
"보상이 뭡니까?"
"검을 주겠다."
베르겐이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자세히 주시했다.
꽤나 고급스러운 검이었다.
폼멜 부위에는 보석이 박혀있었고, 질 좋은 철로 만들어진 것인지 검신의 광택이 범상치 않았다.
검의 가치를 알아봤다 여긴 걸 까.
베르겐이 씩 웃었다.
"정복 전쟁 당시 내가 직접 취했 던전리품이다. 드워프 대장장이가 만들었던 검이지. 물론 아티팩트 같은 거창한 물건은 아니네만, 그럼에 도 드워프제 무기. 자네 같은 일개 백인장들은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이지."
베르겐이 보란 듯 손가락으로 검 신을 훑었다.
상등의 금속을 사용했을 것이 분명한 검날이 마치 나를 유혹하듯, 햇빛을 반사해 번쩍였다.
번들거리는 검신의 광택이 망막에 새겨진다.
"자네가 이긴다면 이걸 주겠다."
베르겐이 씩 웃었다.
마치 이래도 수락하지 않겠냐는 듯이.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드워프제 장검이라….'
솔직히 탐이 났다.
고개를 내려 내 손아귀에 들린 장검을 바라봤다.
[제국군 보급 장검]
이미 수도 없이 교체 받은, 익숙한 장검이다.
제국은 질 좋은 철광석 광산과 뛰어난 재련기술을 가진 국가.
그렇기에 일개 병졸들이라 한들 꽤 괜찮은 품질의 병장기를 보급받 는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보급형에 불과하다.
어디 드워프제 무기만 하겠는가.
"어떤가. 내기를 수락하겠는가?"
"하겠습니다."
"좋군."
철컥.
그가 검을 수납했다.
"하지만 이쪽만 무언가를 건다면 불공평하지. 자네 또한 한 가지를 걸어야 겠네."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 이 아니네."
그가 나를 바라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고한다.
"만약 내기에 실패한다면. 자네는 내 아래로 들어와야겠어."
"기사가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베르겐 단장 각하. 솔직히 고하 건데, 저는 각하께서 어째서 저를 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어째서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내기까지 하며 나를 거두려 하는지. 사실 나는 오러를 각성하고 다수의 전공을 세웠지만, 그럼에도 평민 출신 일개 백인장에 불과했다.
혈통도, 재력도, 그 무엇도 없는.
헌데 저기사단장은 어떻게든 나 를 자신의 휘하로 집어넣고 싶은 듯하다.
그에 베르겐이 대답했다.
"자네의 재능이 탐나기 때문이다."
"송구합니다만, 각하. 저에게는 재능이 없습니다."
"아니. 자네는 고작 스무 살 초반에 오러를 각성했다. 나조차 막 서른이 될 무렵에 오러를 각성했는데 말이다."
그는 아무래도 내가 재능 있는 검사라 생각하는 듯했다.
하기야 포인트 덕분에 무시무시 한 성장세를 보였으니 .
그가 보기엔 내가 재능 충만한 이로 보였을 터.
"나는 반드시 자네를 거둘 것이다. 한지훈."
베르겐은 그리 말하며 씩 웃었다.
반드시 나를 수하로 들이겠다는 듯이.
그에 나 또한 웃었다.
솔직히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내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었으니 .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대련이 라.'
시선을 돌려 케니라는 기사의 모습을 살폈다.
나름대로 단련된 녀석이었다.
애당초 최근 베르겐이 제자로 받아들인 기사라 한다.
분명 일반 평기사보다도 더욱 강 한 무력과 재능을 지녔으리라. 그렇 기에 내게 그런 내기를 제안했겠지. 허나 그래봤자 평기사.
반면 나는 시스템의 보정을 받고 있다.
(남은 포인트는 40pt 입니다.)
더해 40pt에 달하는 여유 포인트 까지. 당장 저 포인트들을 투자한다 면, 눈앞의 케니라는 평기사 따위 순식간에 이길 수 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말이다.
나는 베르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내기에서 진다 면, 단장님 아래로 들어가겠습니다."
"좋아.
일주일 뒤 이곳에서 보지."
- 띠링!
[시나리오 외 이벤트 감지!]
[엑스트라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엑스트라 퀘스트]
[기사 '케니'와의 대련에서 승리 하라.]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 * *
"베르겐 단장님. 정말 그 평민 놈… 한지훈을 제자로 받아들이실 생각이십니까?"
케니 알키온.
한지훈과 대련하기로 약속했던 기사의 이름이다.
그는 베르겐에게 찾아가 물었다.
정말 한지훈을 기사단원으로서 받아들일 것이냐고.
그에 베르겐이 피식 입가를 일그 러트렸다.
"한지훈을 받아들이는 게 마음에 안 드나보군."
"그렇습니다. 녀석은 오러를 각성했다 하나, 그래봤자 평민에 불과합니다. 하찮은 평민을 어째서 제자로 들이시려는 겁니까? 기사단과 단장 님께 있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케니의 말에 베르겐은 표정을 찌푸렸다.
그의 눈가에 한심한 감정이 피어 오른다.
'수치스러운 건너다. 케니.'
케니는 알키온 후작가의 삼남이었다.
그리고 알키온 후작가는 볼로냐 기사단을 후원하는 대귀족 중 하나.
베르겐은 내심 혀를 찼다.
'가문의 후광이 없었다면 내 제자가 되지 못했을 녀석이.'
사실 케니의 실력은 베르겐의 수 제자가 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혈통 덕에 나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태해 수련을 게을리했 으며, 실전경험 또한 일천해 유연하지 못했다.
더해 아비의 높은 신분으로 인한 오만은 덤.
그가 베르겐의 제자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가문의 후광 덕분이었다.
"평기사 케니 알키온. 한지훈이 기사단에 합류하는 게 그리 거북한 가?"
"그렇습니다. 아니, 단순히 기사단에 합류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저 도 반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르겐 단장 각하께서 직접 검 술을 사사하신다니… 평민에게 너무 과분한 은혜입니다."
"과분한 은혜라.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만."
베르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오러를 각 성한 이상 쓸모 있는 전력이 될 수 있다.
하물며 한지훈은 이미 다수의 전공을 세웠고, 젊은 나이에 오러까지 각성했지. 이미 가진 재능을 훌륭히 증명해낸 거다."
베르겐의 말에도 케니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자, 이걸 봐라."
베르겐은 혀를 차며 서류 한 장을 들이밀었다.
그가 케니에게 건넨 서류.
그것은 한지훈의 인사서류 사본 이었다.
케니는 서류를 받아 읽고는 곧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한지훈의 빽빽한 전공내역을 보았기 때문에.
베르겐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피 식 미소 지었다.
명백한 비웃음 이었다.
"보다시피. 한지훈은 고작 몇 달 간의 군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수의 전공을 세웠다. 기사인 자네 가 나서도 세우지 못할 전공들을 말이야. 반면, 케니 자네가 내 기사단에 합류하고 반년이나 지났지. 헌 데 그동안 번듯한 전공을 세운 적 이 있던가?"
"대답을 못하는군. 하긴, 못하겠지. 양심이 있다면 차마 대답할 수 없을 거다."
베르겐은 케니의 손아귀에 들려 있는 서류를 빼앗고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나가보 게. 조금 쉬고 싶군."
"… 알겠습니다. 단장 각하."
케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막 문고리를 잡고 방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아, 맞다. 이 말을 깜빡했군."
베르겐이 재차 입을 열었다.
"케니. 만약 자네가 대련에서 패배한다면, 나는 자네를 더 이상 내 제자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단장 각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 니까?"
"말 그대로다. 케니, 너는 한지훈을 얕보고 있지. 이해는 한다. 변변 찮은 평민 출신에, 오러를 각성한 것도 몹시 최근이니. 네가 상대하기 엔 격이 모자라다 생각하겠지."
케니는 문고리를 잡은 채 우두커 니 서 있었다.
베르겐의 말이 이어진다.
"헌데 그토록 깔보던 대상에게 패배한다면 스승인 내가 부끄럽지 않겠나. 직접 가르치는 수제자가 평 민 출신 오러 각성자에게 패배한다 니 말이야. 안 그러나?"
"전력을 다하게, 케니. 정말 자네 가 패배한다면 버릴 수밖에 없어."
까드득.
케니는 이를 악물었다.
"… 알겠습니다. 단장 각하. 놈을 이겨 보이겠습니다."
"그래. 나가보게."
덜컹.
케니가 집무실 밖으로 나가고, 베르겐은 비식 웃었다.
"오만한 원숭이가 사자를 못 알 아보는군."
케니는 방심하고 있다.
상대방이 평민 출신이라는 것에, 그리고 오러를 각성한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에 눈이 흐려져 있다.
조금만 감각이 날카로웠어도 방 심하지 못했을 것을.
반나절 전.
베르겐은 한지훈이 수련하는 것을 보았다.
검신을 타고 오르는 푸른색 불길은 선명했다.
주위를 장악하는 기세는 날카로 웠으며, 눈빛은 깊은 총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 이를 그 누가 일개 사관이 라 생각할까.
녀석의 기세는 전장에서 단련된 베테랑 기사의 그것이었다.
"자, 누가 이기려나."
한지훈은 뛰어난 재능을, 그리고 강렬한 카리스마와 기세를 지니고 있다.
허나 그가 오러를 각성한 지 얼마 안된 것 또한 사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성장하기엔 너무 촉박했다.
반면 케니는 철들기 전부터 영재 교육을 받아온 기사였다.
덕분에 나태하고 오만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나름의 경지를 이 룬 상태.
베르겐은 턱을 괴고는 중얼거렸다.
"가능성은 반반인가."
한지훈이 승리할 가능성, 패배할 가능성은 비등해 보였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 으나 여유시간이 고작 일주일에 불과했으니 .
피식.
베르겐이 재차 웃었다.
"뭐. 누가 이기든 상관없지."
케니가 승리한다면 한지훈을 기사단에 들일 수 있다.
반면 한지훈이 승리한다면 대련 의 패배를 빌미로 꼴 봐기 싫은 케 니를 내?을 수 있다.
"대련이 기대되는데 ."
베르겐은 일주일 뒤에 있을 대련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