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45화 (45/390)

45화.

눈을 떴다. 그러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암흑색 공간.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칠흑 의 장막만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익숙하지만, 생소한 공간이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블랙 오케스트라]

염병할 게임의 이름.

나를 강제로 끌어들인 이 개 같은 게임의 이름이다.

천천히 걸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 띠링!

[시나리오 챕터 1을 완료했습니다.]

[중간 정산을 시작합니다.]

[유저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아 또 뭔데."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난데없 이 이 검은색 공간이라니.

마치 처음 이 세상에 진입했을 때 같다.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봤다.

분명, 그 엑스트라 미션을 클리 어 한 것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피를 질질 흘리며 쓰러진 것까지도.

팔짱을 끼고 고민해봤다.

"설마. 나 죽었나?"

하긴, 꽤나 당하긴했다.

옆구리를 깊게 베이고, 가슴팍에는 검이 틀어박혔다. 그것도 오러 서린 검격에 의해 말이다.

당장 포션이 없다면 죽을 중상.

아무래도 나는 죽었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어쩌면 살았을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

- 띠링!

홀로그램이 일변했다.

[유저의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유저 ID : 한지훈][제국 백인장]

[스킬 : 백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중급)]

[스킬 : 기마술(하급)]

[스킬 : 투창(입문)]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14]

[민첩 53]

[내구 15]

[체력 29]

[마나 50]

(남은 포인트는 40pt 입니다.)

내 정보가 떠오른다.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것은 그간 내가 키워온 능력들. 보유하고 있는 스킬과 엑스트라 스킬, 그리고 키워 온 능력치다.

그것을 보는 순간 울컥 짜증이 올라왔다.

어째서 이 이상한 세상 속에 던 져진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잠시 서 있으니 , 홀로그램이 또다시 일변한다.

[보유 업적]

- 백인장- 대적자 NPC 처치(1) - 가장 먼저 성벽을 오르다.

- 오러 각성

[달성 퀘스트]

- 척후조 퇴각전- 고지대 정찰- 고지대 거점 점령전- 고지대 거점 방어전- 선도 정찰대 - 갈레이 요새 공성전 1- 갈레이 요새 공성전 2- 성문 방어전떠오른 것은 그간 내가 클리어 한 퀘스트와 업적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기억을 되짚어봤다.

참 개고생했다.

적에게 ?기고, 간신히 강적을 무찌르고, 생존해왔다.

- 띠링!

안내창이 떠올랐다.

[훌륭합니다! 정규 시나리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난이도를 상향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난이도 : 악몽(Nightmare)]

[상향 난이도 : 광기 (Lunatic)]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허."

보는 순간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 왔다.

나이트메어 난이도가 끝인 줄 알 았다. 하지만 그다음으로는 루나틱 난이도가 있다고 한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미쳤냐. 상향하게."

나는 홀로그램의 '거절' 버튼을 터치했다.

대가리에 총 맞은 것 아닌 이상 난이도를 상향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더럽게 힘드니까.

[상향을 취소합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난이도 상향을 거절할 수 있는 듯했다.

홀로그램의 문구가 다시금 변화 한다.

[시나리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보상을 수여합니다.]

[목록에서 선택해 주십시오.]

[1. 포인트 50pt]

[2. 부스터(1)]

[3. B등급 비밀 정보]

[4. 선택하지 않음.]

나는 지체 없이 요구했다.

"집에 보내줘."

[목록에 없는 보상입니다.]

[목록에서 선택해 주십시오.]

"난이도 낮춰줘."

[목록에 없는 보상입니다.]

"염병."

욕지거리를 뇌까리고는, 보상 목록을 자세히 살폈다.

아무래도 저 보상들은 기존 시나리오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었기에 그에 대한 보상인 듯했다.

하나하나 짚어봤다.

[1. 포인트 50pt]

"50포인트라. 애매해."

먼저 50포인트.

내 능력을 높이는데 꽤 도움이 되겠지만,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50포인트야 퀘스트 한두 개 달성하 면 얻을 수 있다.

다음 선택지를 살펴봤다.

[2. 부스터(1)]

"부스터. 이건 뭐지?"

- 띠링!

내가 읊조리자, 안내창이 떠올랐다.

[부스테

[일시적으로 유저의 능력을 대폭 상향시킵니다.]

[상향 폭은 유저의 능력치에 따 라 달라집니다.]

아무래도 일시적으로 능력을 상승시키는 아이템 같다.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이 될 법한 물건.

방금 전기사들에게 한계까지 맞 서 싸운 만큼, 조금 혹하기도했다.

다음 보상을 살펴봤다.

[3. B등급 비밀 정보]

"비밀 정보라…."

시나리오에서 숨겨진 정보를 해 금하는 것인 듯했다.

설명이 떠오른다.

[B등급 비밀 정보]

[유저가 모르는 정보를 랜덤 해 금합니다.]

[B등급 정보에 한해 개방됩니다.]

솔직히 이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기존 시나리오가 계속해 뒤틀리고 있는 만큼 배후 정보를 안다면 진행에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고작해야 B등급인데."

1등급도, 2등급도 아닌 B등급이다. 등급을 보아하니 저걸 선택한다 한들 그리 중요한 정보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잠시 고민하고는, 결정했다.

"그래도 비밀정보가 제일 낫다."

포인트는 그다지 귀하지 않고, 부스터는 단발성이다.

하지만 비밀정보는 호기심이 갔다.

내가 모르는 정보라니. 신경 쓰 일 수밖에 없다.

나는 B등급 비밀정보를 선택했다.

[B등급 비밀 정보]

[유저가 모르는 정보를 랜덤 해 금합니다.]

[B등급 정보에 한해 개방됩니다.]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 띠링!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시작합니다.]

내가 선택하는 순간, 시야가 천천히 가라앉아갔다.

"백인장님! 백인장님!"

카일은 한지훈의 몸을 잡고 계속해 흔들어댔다. 그의 다급한 눈동자 가지훈의 몸을 훑었다.

한지훈의 상태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허벅지와 가슴팍에서는 계속해 피를 흘려댔고, 눈동자는 완전히 초점을 잃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숨이 끊길 듯한 모습.

하지만 카일은 해줄 수 있는 일 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게는 포션 이 없었으니 .

카일은 한지훈의 생명이 얼마 남 지 않은 것을 직감했다.

그때였다.

"병사. 현황을 보고하라. 현장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의 곁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반짝이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 은 이였다. 특이하게도 머리는 중년 의 나이임에도 불구 하얗게 세어 있었고 갑주에는 붉은색 킬마크가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볼로냐 전투기사단장 베르겐 라 프랜시스 백작이다."

기사단장 베르겐 라 프랜시스 백작.

기사단장이라는 소리에, 카일은 자신의 소속을 밝히는 것조차 잊고 다급히 요청했다.

"기사단장 각하! 저희 백인장님을 살려주십시오! 포션이 있다면 살 수 있습니다!"

"… 포션이라."

카일의 부탁. 그에 베르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션은 목숨을 구해주는 귀물. 그리고 유사시 내 목숨을 살릴 물건이기도 하다. 고작 백인장에게 양보해줄 수는 없군."

"하지만…."

"그만. 무가치한 요청이군. 그것 보다 전장의 정보가 필요하다.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계속해 보고를 명령하는 베르겐 백작.

카일은 답답함에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상관 한지훈.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성문을 사수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이 좁은 공간 안에서 다수의 기사들의 협공을 견디고 견뎌 기사단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었다.

허나 정작 도착한 기사단은 포션이 아깝다며 그를 살리기를 거절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였다.

"… 잠깐. 마나의 잔향이 느껴지는 군."

무언가 느낀 것일까. 베르겐은 천천히 한지훈에게 다가갔다.

그의 우묵한 시선이 죽어가는 한지훈의 모습을 훑었다. 잠시 지훈을 주시하던 그가 카일에게 물었다.

"병사. 정확히 사실대로만 대답해라."

"… 알겠습니다. 기사단장 각하."

"이자는 정말 백인장이 맞는 건가?"

베르겐은 방금 전 마나의 잔향을 느꼈다.

마나의 잔향. 오직 마나 유저인 마법사와 기사들만이 품는 특이한 기운. 그것은 마나를 제어하더라도 그 기운이 흘러나와 자신의 존재감을 발한다.

그리고 베르겐은 다름 아닌 한지훈에게서 마나의 잔향을 느꼈다.

고작 일반 보병에 불과할 터인데 어째서 마나의 장향을 품고 있는 것인가. 베르겐은 그것이 신경 쓰였다.

카일이 대답했다.

"한지훈 백인장님은 분명 저희 4번 백인대의 지휘관입니다."

"허면 어째서 마나의 잔향이 느껴지는 거지?"

"그게…."

카일은 입을 열었다. 허나 그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직접 보았 음에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니 .

"방금 전, 갑작스레 오러를 발현 해적 기사들과 교전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일반 보병대 백인장이 기사들과 전투했다고?"

"그렇습니다. 한지훈 백인장은 기사들에게 공격당하는 순간 오러를 각성, 적 기사들과 싸우며 성문의 탈환을 지연시켰습니다."

"갑작스레 오러를 각성하다니. 이자는 기사 가문 출신인가?"

"아닙니다. 평민 출신입니다."

"평민 출신인데 오러를 각성했다 고… 설마 자연각성인가."

베르겐의 시선이 한지훈에게 향했다.

여전히 마나의 잔향이 느껴진다. 그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자연각성이라. 대단한 녀석이군."

그는 품속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유리병 속에는 붉은색 액 체가 넘실거리고 있다.

포션. 죽지만 않았다면 그 누구 든지 되살릴 수 있는 아이템.

그는 한지훈의 입 안으로 포션을 흘려 넣었다.

"자연각성까지 한 기특한 이를 죽일 수는 없지. 내 포션을 양보하 지."

"감사, 감사합니다! 기사단장 각하!"

카일은 감격해 감사를 표하고, 베르겐 기사단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나야말로 미안하군. 오러 까지 각성해가며 분투해 임무를 완 수한 병사에게, 포션을 아끼려 했다 니. 내 스스로에게 창피하도다."

그는 한지훈의 입가에 포션을 모조리 흘려 넣었다. 그러자 이변이 일었다.

한지훈의 가슴팍에서,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던 대량의 피가 멎어갔다. 상처가 아물고, 창백했던 혈색이 점차 붉은 기가 돌기 시작했다.

포션의 힘을 빌려 회복하는 모습.

"자네, 이름과 소속이 뭔가?"

"파트라헴 천인대 휘하 4번 백인대 1번 척후조장 카일입니다."

"이자가 자네의 직속상관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파트라헴 4번 백인대장 한지훈입니다."

"한지훈… 한지훈이라…."

베르겐은 고개를 주억이며 한지훈의 이름을 되되었다. 똑똑히 기억하겠다는 듯이.

그가 지시했다.

"병사. 한지훈이 회복하면 볼로냐 기사단장을 찾아오라 전해라. 물어볼 것이 있으니 ."

"알겠습니다. 단장 각하."

카일이 수긍하고, 베르겐 백작은 말에 올라타 요새 안으로 전진했다.

그는 요새 안으로 전진하는 와중 읊조린다.

"자연각성이라. 어지간한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닐 터인데."

그 또한 명망 있는 기사가문의 혈통을 이은 이었다. 그렇기에 마나 를 다뤘고, 오러를 운용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한지훈을 신기하게 여겼다.

자연각성. 혈통을 뛰어넘을 정도 로 극한의 노력을 이륙한 이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

그는 피식 웃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자연각성이 라."

그는 오랜 시간 전장을 전전한 고위 기사. 그렇기에 몇 번이나마 자연각성자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연각성자들은 모두 나이가 많은 중년인들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혈통 없이 오러를 각성하는 것은 결코 예사 노력으로 되지 않았으며, 때문에 오랜 기간 극한의 전투경험을 축적해야 했기 때문이다.

헌데 어째서인가.

저자 한지훈은 기껏해야 스무 살 언저리에 불과한 청년으로 보이는데 저토록 젊은 나이에 오러를 다 루게 되었다.

"탐나는 녀석이야."

그는 한지훈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렇기에 포션을 줬고, 그렇기에 살렸다.

볼로냐 전투기사단장 베르겐 라 프랜시스 백작. 그가 한지훈을 주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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