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저는 백인대에 남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의외인 것일까. 그레드가 되물었다.
"정말 백인장으로서 남겠다는 것 인가?"
"그렇습니다."
"어째서인가? 일개 백인장보다는 기병장이 훨씬 나을 터인데."
그레드의 의문은 합당했다.
확실히 일개 보병대의 백인장보 다는 기병대 조장이 훨씬 나았다.
기병이란 정예병력. 그들은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나은 무장을 가지 며, 전장에서의 영향력도 훨씬 크다. 더해 보병대보다도 그대우가 훨씬 나은 수준.
하지만 나는 기병대로의 보직 변경 대신 보병대 잔류를 선택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제 부하들을 버릴 수 없습니다."
카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한지훈 백인장님. 당신은 저희 백인대의 지휘관입니다.
-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습니다. 백인장님께서 혼자서 분투하신 것은 거점방어전 때로 족 합니다.
카일은, 그리고 내 백인대의 부하들은 나를 의지하고 있다. 그 위험한 상황에서 방진을 풀고 나를 구원하려 했을 정도로.
이미 나는 4번 백인대에서 빠뜨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 모자란 녀석들을 버릴 수는 없지.'
여태껏 나를 믿고 따라준 녀석들 이다.
녀석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백인대 잔류를 선택했다.
"음… 자네 의향이 그렇다면. 더는 권하지 않도록 하지."
그레드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가 안도한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 * *
천인장 막사에서 나온 뒤, 나는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기병대 조장이라. 확실히 아깝긴 한데."
사실 기병 조장으로의 보직 이동 은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거절 했지만 뒤늦게 아쉬울 정도로.
허나 나는 금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굳이 기병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어."
기병이 된다면 보다 수월하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높은 수준의 전공을 세울 수도 있으니 .
물론 아쉬움은 잠깐이었다.
"나에게는 유저 보정이 있으니까."
시선을 내려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한지훈][4번 백인장]
[스킬 : 백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하급)]
[스킬 : 기마술(하급)]
[스킬 : 투창(입문)]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14]
[민첩 53]
[내구 15]
[체력 29]
[마나 0]
(남은 포인트는 45pt 입니다.)
바라보는 것은 바로 나의 정보. 내가 지닌 능력치와 스킬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라 있다.
여태껏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나 만의 능력.
주먹을 꽉 쥐었다.
'유저 보정만 있다면. 나는 계속 해 강해질 수 있다.' 나에겐 유저 보정이 있다. NPC 들보다 훨씬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나만의 힘.
이런 유저 보정이 있는데 굳이 보직 변경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
시선을 돌려 저 멀리, 북쪽을 바라봤다.
공국 측 요새가 보인다. 나직이 읊조렸다.
"내일이 요새 공략전인가."
우묵한 눈으로 요새-포트 갈레이 를 바라봤다.
그리 큰 요새는 아니다. 그 규모는 파트라헴보다 훨씬 뒤떨어졌으 며, 안에 주둔한 병력들도 그리 많 지 않을 터이니.
하지만 그럼에도 요새다. 드높은 성벽으로 보호받는 요새.
"많이 죽겠네."
희생이 나올 터다.
나는 잠시 요새를 바라보곤, 계속해 발걸음을 옮겼다.
곧 요새 공략전이 시작된다.
갈레이 요새는 공국령 초입에 자리해있는 요새다.
제국과 공국 사이를 가로막는 산맥 바로 뒤에 건축되어있는 요새. 갈레이 요새를 점령한다면 본격적 인공국 침공이 시작된다.
"그리고 내일 그 갈레이 요새를 점령해야 한다는 거지."
나는 그리 말하며 막사 안의 인영들을 살폈다. 보이는 것은 내 휘하 십인장들.
지금 나는 백인장 막사에서 브리 핑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제 3군단 2만의 병력 중, 남쪽 정문에 1만. 동쪽과 서쪽에 각각 오천씩. 이렇게 배치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소속된 파트라헴 천인대가 배치된 것이 바로 남쪽 성벽이지."
지휘봉으로 요새의 남쪽을 가리 켰다.
"남쪽 성벽이 아군의 주공인 만큼 적의 저항이 격렬할 거다."
시선을 돌려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 표정에 긴장이 그득했다.
하기야 처음으로 겪는 공성전이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일.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군은 제 1열로서 전투에 참가한다."
"백인장님. 제 1열이라 하시면…."
"사다리 탄다고."
내 말에, 병사들의 얼굴 표정이 시꺼멓게 죽어갔다.
"즉, 저희들이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한다는 겁니까?"
"그래. 그것도 가장 먼저 말이다."
"아…
병사들의 얼굴에 또다시 절망이 스쳤다.
공성전 제 1열. 그 말인 즉 가장 먼저 성벽에 접근, 사다리를 타고 올라 성벽을 기어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다.
당연히 쉬울 리 없다. 손실이 많 으리라.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선도 정찰대로도 모자라, 공성전에서도 최선두라니요."
"어째서 저희 천인대만 항상…."
병사들의 불만. 그에 나는 씁쓸 한 표정을 지었다.
'상부에서는 계속해 파트라헴 천인대를 소모시키려 하는군.'
선도 정찰대 임무를 끝났다. 이제 파트라헴 천인대는 약 4개 백인대밖에 안 남은 상황.
무려 전력의 과반이 소모되었다. 그럼에도 상부에서는 계속해 선두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그레드가 평민이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계속해 말했다.
"이미 결정된 일이다. 어쩔 수 없지… 무사히 살아남기를 기원하 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또한 화 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계속해 소모에 소모를 거듭하게 만들다니.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 인장 그레드는 우수한 상관이지만, 출신 때문에 고된 일을 모조리 부여받고 있었으니 .
쯧 혀를 찼다.
'이래서 게임 속에서 계속해 선 봉만 섰던 건가.'
과거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를 진행했을 적. 항상 궁금했었다.
어째서 내가 지휘하는 부대만 가장 선봉에 배치되었던 것인지.
당시에는 그이유를 그저 '게임' 이었기 때문이라 추측했었다. 게임 이기에 위험한 임무를 부여하고, 그것을 고난과 역경 끝에 해결하고.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천인장이 평민이었기에 그저 계속해 앞에 섰던 것이었다. 평민 출신인 그레드는 군단 내 입지가 그리 좋지 않았으니 .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계속해 말했다.
"우리의 임무는 적성벽 장악.
그리고 성문의 개방이다."
"일반 보병만으로 전투합니까?"
"아니. 공성무기가 다수 동원될 것이다. 그리고 마법사들이 우리의 진군을 엄호하며, 기사들까지 전투에 참여한다."
"기사!"
병사들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기사. 마법사와 더불어 마나를 다루는 초인. 그들은 단신으로 보병 전열을 돌파할 수 있으며, 오러 서린 검격은 그 모든 것을 절삭해버 린다.
강대한 힘을 가진 엘리트 병종.
그것이 바로 기사였으니 .
"하지만 기사들이 전투에 참여하 기 위해서는 먼저 성문을 열어야 한다. 만약 우리 충차가 성공적으로 성문을 부순다면 전투가 훨씬 쉬워 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 보병대가 성벽 위로 올라야 하지."
때문에 먼저 성벽을 장악, 성문을 여는 것이 중요했다.
기사는 강대한 무력을 가진 전투 집단. 그들을 가능한 빠르게 전투에 참전시키기 위해서는 성문을 열어 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성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할 수 있으니 .
"그럼 모두 준비해. 내일은 공성 전이다. 무장 상태 다시 확인하고, 푹 쉬어 피로를 풀어라."
나는 그리 말하고는 브리핑을 끝 냈다.
- 띠링! 띠링!
[서브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0/2)
[갈레이 요새 공성전 1: 남쪽 성벽을 장악하라.]
[갈레이 요새 공성전 2: 남쪽 성문을 개방하라.]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공성전 이 시작됐다.
제국 공병대들이 밤새 조립해 완성한 공성무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성문을 부수는 충차. 원거리 투 석무기인 트레뷰셋. 원거리 화살공격을 막는 방벽차. 그리고 성벽에 붙어 병력을 위로 밀어 올리는 사다리차와 공성탑까지.
많은 수의 공격병기들이 대지 위에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들이 감탄했다.
"고작 하루 만에 저것들을 만들다니. 대단하군요."
"그래. 대단하지. 역시 공병대는 참 일을 잘해."
나 또한 병사들의 말에 동의했다.
고작 하루 만에 제국 공병대는 여러 공성무기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정비까지 해두었다. 덕분에 별다른 차질 없이 공성전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나는 서 있는 공성무기들 중, 사다리차를 주시했다.
"우리는 저 사다리차를 끌고 움직이겠군."
사다리차. 커다란 수레에 길고 튼튼한 사다리가 달려있는 차량이다.
우리 백인대는 저것을 타고 올라 성벽을 기어올라야 하리라.
후. 한숨을 내쉬며 내 백인대 병사들을 바라봤다.
'저들 중 몇이나 살아남으려나.'
내가 이끄는 4번 백인대의 부대원 수는 150여 명의 달한다.
명백한 증강백인대 규모. 하지만 가장 먼저 돌진하는 제 1열이다. 그리고 최선두인 이상,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칠 것이다.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인다.
"갈레이 요새."
내가 바라보는 곳은 다름 아닌 공국의 입구 갈레이 요새.
요새의 벽은 높았다. 그 높이가 최소한 십수 미터는 돼 보인다.
저 까마득한 벽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한다.
내가 멍하니 요새 성벽을 바라볼 때 누군가 다가왔다.
"한지훈 백인장. 준비는 되었나? 어째 긴장한 것 같군."
다름 아닌 천인장 그레드였다. 나는 천천히 그의 모습을 살폈다.
그레드는 경갑을 무장했고, 좌우에 쌍검을 패용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의 전투 준비 모습.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나는 나직이 말했다.
"많은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그래.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니."
시선을 옮겨,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확실히 전장에서 지겹도록 굴렀다는 것일까. 그의 눈동자는 긴장보다는 안타까움이 짙게 자리해 있다.
그가 문득 물어왔다.
"자네는 이런 대규모 회전은 처음이지."
"그렇습니다."
나는 여태껏 최대 백인대 단위 규모 전투로밖에 싸워본 적이 없었다. 거점방어전이 그러했고, 선도 정찰대도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려 2만에 달하는 병력이 공성전을 진행하려고 한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대규모 전투.
그레드가 나직이 말해왔다.
"뒤를 봐라. 한지훈."
시선을 돌려 도열해있는 군대를 바라봤다.
많은 수의 군인들이 돌진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공성무기도 보이고, 저 멀리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올리고 있는 마법사들 도 보였다.
"이제부터 진짜 전면전이다."
말 그대로 무지막지한 전력.
이 많은 수의 전력이, 요새를 차 지하기 위해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소름이 오소소 올라왔다.
모니터로 보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압도적인 광경. 그에 나는 긴장을 끌어올렸다.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레드가 픽 웃었다.
"긴장 풀게. 한지훈."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한지훈, 자네라면 당연히 살아남을 거다. 그러니 걱정 말게."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공성전, 그것도 제 1열입니다.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그냥 직감일세. 자네라면 이런 공성전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 할 것 같다는 직감."
나를 신뢰하는 것일까. 그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감을 가지게. 자네는 고작 이런 곳에서 죽을 녀석이 아니야."
그레드는 그 말을 남기고는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타 백인대들의 전열을 확인하러 가는 것 같았다.
피식 웃었다.
"참. 나답지 않게 쫄았구나."
솔직히 질린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어깨를 두드려 준 덕분에,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인트 보유상황을 확인했다.
(남은 포인트는 45pt 입니다.)
고민해본다.
'남아있는 45pt. 지금 모조리 사용해버릴까.'
다름 아닌 공성전이다. 막대한 병력을 갈아 넣어 요새를 차지하는 전투. 절대 쉽지 않을 터였다.
때문에 나는 포인트를 사용해 능력치를 올릴까 고민하고 있다.
올리고자 고민하는 능력치는 다름 아닌 체력과 내구.
'생존력을 높여야 하니까.'
오랜 시간 처절한 전투를 해야 한다. 그걸 대비해 체력과 내구를 올려놓는다면 나는 더 오래, 더 튼 튼하게 몸을 놀릴 수 있을 터였다.
그 말인 즉 생존능력을 높일 수있다는 소리.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일단 보류하자. 느낌이 안 좋아."
포인트를 차마 쓸 수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섣불리 능력치를 높인다면, 정말 중요한 위기상황에서 살아남 지 못 할 것 같은 예감.
그에 나는 일단 능력치 상향을 뒤로 미뤘다.
내가 그리 결정한 그때였다.
- 부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신호 깃발이 하나둘 을라 가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깃발은 전 진을 상징하는 붉은색.
"전진 신호다! 전진!"
"전진! 전진!"
"대열을 유지한 채, 앞으로 가!"
포트 갈레이 공략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