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저 개자식을 죽여버려라!"
"달려!"
두두두두!
공국군 기병대 놈들이 나를 향해 쇄도해오기 시작했다.
방금 연대장을 처치했다. 지금 놈들의 대가리는 죽은 상황. 그 덕분에 놈들의 움직임이 다소 산만해졌다.
"모두 따로따로 몰려오니 좋구나."
기병은 강하다. 그것은 놈들이 전투생명체인 말을 몰기 때문이기 도 했지만, 그만큼 집단으로 움직이 기 때문이었다.
철저한 훈련으로 다져져 완성된 유기적인 조직력. 특히나 기병의 조직력은 무섭다. 차례로 방진을 두들 기고 전열을 무너뜨리는 건 결코 단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
허나 지금 놈들은 제각기 마구잡 이로, 그저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상황.
즉, 일대일로 싸울 수 있다는 거다.
- 두두두두두!
말을 타고 달렸다. 다음 적을 찾 았다. 나를 노려보며 달려오는 적 기병의 모습이 보인다.
"죽어어어!"
놈이 기다란 기병창을 내 쪽으로 들이댔다. 교차하며 베어 죽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나는 검을 들어올렸다.
"어디 붙어보자고."
확실히 놈의 무장이 더욱 우월하다. 저 길쭉한 기병창이 훨씬 기니까 마상전에선 놈이 훨씬 유리할 터.
하지만 나에게는 스킬이 있다. 비록 익숙지 않은 마상전이라지만 스킬의 보정이 있는 이상, 이길 자신이 있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시야가 점차 느려진다.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체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살의가 그득한 놈의 눈동자도, 말이 달리며 느껴지는 진동도, 말발 굽에 일어나는 흙먼지도.
모조리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 부웅!
놈이 기병창을 휘둘러왔다. 녀석 이 노리는 것은 내 목.
허리를 한계까지 숙였다. 놈이 질러온 기병창의 검날이 아슬아슬 하게 투구를 스쳐 지나간 바로 그때.
나는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서걱.
절삭음이 들려온다. 놈의 모가지 가 베이는 소리다.
"커헉!"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비명소리.
핏물이 뚝뚝 흐르는 검을 쥐고 계속해 달려갔다.
"놈! 보통이 아니다! 흩어지지 마 라!"
다른 기병이 지휘하기 시작했다. 복장을 보아하니 기병 연대장 놈의 부관인 것 같다.
그래선 곤란하다. 기껏 연대장까지 죽여버렸는데, 놈들이 지휘체계 를 정비할 수는 없으니 .
녀석 또한 죽여야 한다.
나는 그쪽으로 말을 몰았다.
"흐읍!"
내가 노리는 것을 깨달은 것일 까. 놈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늦었다. 이쪽은 이미 녀석에게 근접한 상태.
"어림도 없다!"
부웅!
기병창이 나를 향해 겨눠진다. 번뜩이는 창날이 꽤나 위협적이다.
나는 씩 웃었다.
'느리다.'
이미 연대장까지 처치한 나다. 하물며 부관 따위, 나를 막을 수 없다.
- 파앙!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수평 베기.
창날이 아슬아슬하게 내 군복을 스쳐 지나가고 동시에 적의 목을 긁는 감각이 느껴졌다.
"끄으윽…."
녀석의 목에서 핏물이 치솟았다. 놈이 제 모가지를 움켜쥐고 휘청거렸다.
기병을 상대하는 게 점차 익숙해 진다. 그리고 흥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박동하고, 시야가 좁아졌다. 울컥이며 몸속 혈류가 가속되는 것이 느껴졌다.
전투의 열기가 전신에 몰아진다.
"오오오오오오!"
나는 함성을 내지르며 말을 몰았다.
이쪽으로 쇄도해오는 기병창들을 쳐내고, 피해내며. 흩어져있는 적 기병을 차례로 처치해갔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적의 목과 옆구리가 터져나갔다. 점차 내 검신 은 붉은색 핏물이 질척하게 묻어나 갔다.
그렇게 몇 명이나 죽였을까.
"놈은 강하다!"
"기수를 노리지 마! 말을 노려 라!"
놈들이 노리는 대상을 바꿨다. 검을 휘두르는 내가 아닌, 내가 타고 있는 말로 .
마상전으로는 상대가 안 되니 말을 노리는 거다.
- 콰직!
- 서걱!
공국 놈들의 기병창이 하나둘 스 쳐 지나갔다. 나는 그때마다 창을 쳐내거나 진로를 틀어 말을 보호하 려 했지만.
놈들의 리치가 너무 길었다. 말 까지 보호해줄 수는 없었다. 말의 피부 위로 자잘한 상처가 쌓여갔다.
- 퍼억!
기병창 하나가 내 말의 옆구리를 깊게 쑤셨다. 그것이 결정타였다. 말이 크게 휘청인다.
결국 달려가던 말이 나자빠졌다. 나 또한 말에서 굴러 떨어져 땅을 굴렀다.
쿠웅!
등이 지면에 부딪혔다.
"커헉!"
개 같은.
지랄 맞게 아프다. 하지만 바닥을 기어댈 시간이 없다. 적 기병이 낙마한 나를 노리고 있다. 바로 움직여야 한다.
파앙.
나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도약했다. 그와 거의 동시, 적 기병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기병창을 휘둘 렀다.
- 서걱!
"크아아아!"
회피하지 못했다.
내 허벅지에 기다란 자상이 그어 졌다. 강렬한 고통에 비명 지르고, 이를 악물었다.
피할 수 없었다. 붉은색 핏물이 울컥울컥 새어나와 군복 바지를 적 셔갔다.
"놈이 낙마했다!"
"다리를 베었다. 이젠 움직일 수 없을 거다. 마저 죽여버려!"
"개자식, 고작 백인장 주제에 이 토록 애먹게 만들다니."
"연대장님의 원수를 갚아라!"
놈들이 살기등등한 채 이쪽으로 쇄도해온다.
"하하."
허탈하게 웃었다.
말에서 낙마해버렸다. 다리에 부상을 입어 움직일 수도 없다.
당장 내 시야에 보이는 적 기병 만 십여 기. 놈들은 이쪽을 노리고 달려오고 있다.
놈들에게 저항할 방법이 없다.
곧 나는 죽을 것이다. 말발굽에 치이든, 혹은 기병창에 꿰뚫리든.
아마 곱게 죽지는 못하겠지.
"죽어어어!"
기병들이 달려온다. 나는 고통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피하려했다.
물론 이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놈들의 공격을 피하기란 불가능.
최후를 직감했다. 절망감과 공포 가 등골을 타고 오른다.
하지만,
"백인장님을 보호해라!"
"으아아아아!"
포기는 이른 모양이다.
분명 방진을 이루고 있었을 4번 백인대. 그들이 어느새 내 근처까지 달려와 창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꺼져라, 공국의 개!"
"기병돌격을 막아라! 백인장님을 둘러싸서 보호해!"
나는 멍하니 그들의 분투를 바라 봤다.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와 나를 둘 러쌌다. 창을 든 이들은 기병을 향 해 창대를 내밀었고, 활을 든 이들은 화살을 쏘아댔다. 그 덕분에 이쪽으로 달려오던 공국 기병들이 하나둘 진로를 바꿔나갔다. 그 덕분에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바로 근처에 다가온 카일의 멱살을 잡았다.
"카일!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 지?!"
"무슨 상황이냐니요, 백인장님."
"어째서 장창 방진을 풀었느냔 말이다!"
녀석에게 윽박질렀다.
기껏 완성해놨던 방진을 풀고 이쪽으로 돌진해오다니.
자살 행위였다. 방진 없는 보병 은 무력하다. 녀석들은 고작 나 하나를 구하기 위해 큰 위험을 무릅 썼다.
내 호통에 카일이 씩 웃었다.
"한지훈 백인장님. 당신은 저희 백인대의 지휘관입니다."
"카일."
"적 기병대를 혼자서 상대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지휘관이 그리 분투하고 있는데 저희라고 아무것 도 안 할 수는 없지요."
녀석이 멱살 잡은 내 손을 떼어 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습니다. 백인장님께서 혼자서 분투하신 것은 거점방어전 때로 족합니다."
"저희를 좀 더 의지해주십시오."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 방진을 구축한다! 창병! 장창 올려!"
"장창 올려!"
"궁병대는 계속해 사격해! 지금 이라면 유효 사거리 안이다! 기수 를 노리지 말고 말을 노려!"
얼빠진 나를 대신해 카일이 백인대를 지휘한다.
나는 피식 웃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전투소음 때문에 시끄러워서 잘 안 들렸습니다."
"못 들었으면 됐다."
나쁜 기분은 아니다. 나를 위해 서 위험을 무릅쓴 것이니.
곧 내 주위에 방진이 생겨났다. 다급하게 구축한 것이니만큼 완벽 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주위에 있는 소수의 기병을 견제할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그때.
- 두두두두두!
배후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아군 기병대였다.
"…목숨은 건진 건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카일과 4번 백인대 덕분에 살아났다.
나는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 띠링!
[서브 퀘스트 - '선도 정찰대'를 '우수하게' 완수했습니다!]
[시나리오보다도 더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가 추가로 정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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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를 완수했다.
"… 이번에도 활약했군. 한지훈 백인장."
그레드는 내가 들이민 보고서와 연대장 투구를 바라보고는, 그리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놀람을 넘어 허탈한 표정이 자리해 있었다.
마치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
"적 기병대 연대장 처치, 그 부관 처치, 더해 일반 기병 십여 기 처치…라. 이모든걸 혼자서 해냈 군. 그것도 처음 타보는 말을 몰고 말이야."
하기야 믿기 힘들 것이었다. 그만큼 나 혼자 세운 공훈이 이번에 도 퍽 대단했으니 .
기병 연대장은 보병으로 치자면 천인대와 동급인 상급 군관이다. 더 해 놈의 부관과 휘하 기병들을 십 여 명가량이나 처치했으니 .
일개 백인장이 단신으로 이루었 다기엔 너무나 큰 전공이었다.
"… 으음."
한참 동안 보고서를 바라보며 신 음하던 그레드. 그는 나직이 읊조?다.
"어쩌면 훈장을 하나 더 받을 수도 있겠군."
그러면 나야 좋다.
"그런데 말이다, 보고서 상으로는 자네가 꽤 큰 중상을 입었다고 나와 있는데 말이다."
"그렇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나는 적의 기병창에 두 번이나 베였다.
처음에는 등짝에. 그다음으로는 허벅지에. 등짝은 상처가 얕았기에 괜찮았지만, 허벅지는 그렇지 않았다.
꽤 깊게 베였다. 놈들의 기병창은 내 허벅지 근육을 깊게 베었고, 힘줄과 혈관까지 잘라내버렸다.
그야말로 과다출혈과 불구를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중상.
"하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 자네는 멀쩡해보이는군. 어찌된 일인 가'?"
허나 지금의 나는 멀쩡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포션을 섭취했습니다."
"포션? 자네에게 포션을 처방했 다는 기록은 없었는데 . 어디서 난 건가?"
"전리품으로 얻었습니다. 적 기병 연대장이 다행히 포션을 지니고 있더군요. 습득해 바로 복용했습니다."
"다행이었군."
전투가 끝난 뒤. 나는 곧장 공국 기병 연대장의 시체를 뒤졌다. 포션을 찾기 위해서.
다행히 발견할 수 있었다.
녀석의 품 안 속에 붉은색 포션 병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곧장 섭 취했고, 덕분에 부상을 말끔히 치유 할 수 있었다.
'운도 좋았지.'
적 연대장 놈이 포션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놈에게 포 션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 자리에서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 목숨은 꽤나 질긴 것 같다.
"그나저나 한지훈. 자네는 처음 타는 말을 몰고 적 기병대와 전투 했다고 했지. 정말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말을 타는 건 처음 이었습니다."
"대단한 재능이로군. 말을 타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닌데 말이다. 더해 말을 탄 채로 전투까지 하다 니. 검술도 그렇고, 전술도 그렇고.
꽤나 재능이 많은 녀석이군."
"과찬입니다."
물론 스킬빨이다. 스킬이 없었다 면 나는 말 위에 올라타지도, 무리 한 전투를 진행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유저 보정은 확실히 대단했다.
그레드가 문득 말했다.
"한지훈. 혹시 보직을 변경할 의사가 있나?"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는 말을 잘 타지. 더해 마 상전투에도 능하다. 혼자서 적 기병대 연대장을 처치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일반 기병 십여 기까지 처리할 정도니."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에게 물어왔다.
"자네가 원한다면 기병대에 추천 해줄 수도 있다. 전공이 있으니 말이다. 아마 보직을 변경한다면 기병대 조장이 되겠지."
"기병대 말입니까?"
"그래. 선택하게, 한지훈. 보병대 백인장으로 남을지 아니면 기병대 조장으로 보직을 변경할지."
다소 갑작스러운 제안.
그에 나는 잠시 고민해봤다.
기병. 전장에서 말을 몰며 움직이는 이들.
기병은 빠르고 강력하다. 그들은 드넓은 평지를 누비며 적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허점을 돌파하고 전선을 붕괴시킨다.
일반 병사보다 훨신 강력한 전력 기병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