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나는 말을 향해 달려나갔다.
- 푸르륵!
말은 콧김을 내뿜으며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군마이기에 전장에 익숙해진 것일까. 녀석은 도망치지 않았다. 다만 탑승자를 잃어 어리둥절 한 모습을 보일 뿐.
내심 감탄했다.
'크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하자, 새삼 말이라는 동물이 얼마나 큰지 체감되었다.
제대로 탈 수 있을까.
"일단 해봐야지."
결심한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로 달려가 등자를 밟고, 말 위에 올라탔다.
하지만 말을 처음 타보는 내가 간단히 올라탈 수는 없는 일.
휘청.
말이 몸을 흔들었다. 하마터면 튕겨나가 낙마할 뻔했다. 역시 승마 라는 것은 겉보기와는 달리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알림음이 떠올랐다.
- 띠링!
[새로운 행동으로 인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스킬 : 기마술 (입문)]
말에 올라타자 스킬이 생성되었다. 기마술. 말을 타고 몰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다.
역시 내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전투와 관련된 새로운 행동을 한다 면, 해당 행동에 부합하는 스킬을 얻을 수 있다.
- 띠링!
['스킬 : 기마술(입문)' 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나는 변화를 느꼈다.
말 위에서 자세를 잡는 게 한층 편해졌다. 말의 호흡을 느끼고, 교 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고작해야 입문에 불과한스킬. 말을 천천히 모는 것이라면 몰라도, 달리며 전투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허나 괜찮다. 나에게는 시스템의 보정이 있으니 .
나직이 읊조렸다.
"내 정보."
- 띠링!
[한지훈][4번 백인장]
[스킬 : 백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하급)]
[스킬 : 기마술(입문)]
[스킬 : 투창(입문)]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14]
[민첩 53]
[내구 15]
[체력 29]
[마나 0]
(남은 포인트는 25pt 입니다.)
떠오르는 나의 능력치. 그리고 25pt에 달하는 여유 포인트.
망설임 없이 포인트를 사용했다.
"기마술 상향."
- 띠링!
['스킬 : 기마술(입문)'을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1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 띠링!
['스킬 : 기마술(입문)' 이 '스킬 : 기마술(하급)'으로 상향되었습니다!]
(남은 포인트는 15pt 입니다.)
직후 변화가 일었다.
머릿속에 지식이 흘러들어왔다. 어떻게 말을 다루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마치 하루 종일 말을 타왔던 유 목민처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시선을 내려, 손아귀에 쥐어진 고삐를 바라봤다.
"스킬 시스템이라."
역시 개사기다. 순식간에 기술을 습득해버렸다.
고삐를 쥔 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힘을 빼고,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자세를 바꿨다. 허리를 숙이고 시선을 낮췄다. 다리의 간격을 벌렸다. 몸의 무게중심을 낮춰 말에게 전해지는 부담을 줄였다.
말의 허리를 붙잡은 다리는 언제 든지 박찰 수 있게 힘을 주고, 등 과 어깨를 바싹 긴장시킨다.
나는 말을 몰아 백인대 방진으로 되돌아갔다.
"백인장님?! 어떻게 말을…."
"말을 탈 줄 아셨던 겁니까?"
분명 평민 출신인 내가 말에 타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일까. 병사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 물음에 나는 픽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오늘이 처음이다."
"그게 무슨…."
"카일. 나는 이 말을 타고 적 기 병을 상대하겠다."
허리춤에 달린 장검집의 끈을 조정해 허벅지를 따라 아래로 축 늘 어지도록했다. 검집을 평소처럼 패 용한다면 이것이 계속해 말의 엉덩이를 칠 것이다.
물론 기마술 스킬에 의해 얻은 지식이었다.
"아무나 파이크 하나 줘봐. 내가 사용하겠다."
"백인장님! 미친 짓입니다! 생 초 짜가 말을 타고 전투를 벌인다니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놈들은 숙 련된 기병입니다!"
"글쎄. 그건 해봐야 알지."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나를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한 것인 가. 순해 보이는 눈깔을 뒤룩뒤룩 굴려댔다.
내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올라 왔다.
"어차피 여기 있어봤자 죽은 목숨이야. 그럴 바에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
"백인장님…."
"자, 그럼 가볼까."
나는 한 병사가 건넨 장창을 받아들고, 말의 배를 박찼다.
파앙!
말이 울음소리를 내지르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몸이 점차 가속된다.
손아귀에 들린 고삐를 꽉 쥔 채, 읊조렸다.
"기병새끼들. 다 죽여버린다."
놈들에게 한동안 일방적으로 몰 이사냥당했다.
이제는 내가 사냥할 차례다.
"몰아붙여라!"
공국 기병 연대장, 클락이 지시했다. 그에 휘하 병력이 빠르게 움직이며 적 방진을 몰아붙였다.
기병창을 들고 돌진, 적에게 쇄도해 틀어박는다. 그에 우수수 무너 지는 적의 진형.
"하하하하!"
그는 기분 좋게 웃었다.
클락은 진정으로 전투를 즐겼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 전쟁이란 참으로 유쾌한 일이었다.
말과 한몸이 된 듯 달려 나가 적 진에 돌진, 창을 틀어박는다. 일개 보병들은 그의 기병창에 속수무책 으로 당할 뿐.
그에게 있어 전쟁은 삶의 증명이었다. 전장의 스릴, 살인의 희열. 그는 적을 죽일 때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클락은 이자리에서 다시금 확신했다. 공국 기병대에 자원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다 죽여버려라!"
적 방진이 열렸다. 클락은 빠르 게 쇄도해 방진의 빈틈을 찔러 들어갔다.
기병창을 휘두르자 베여 쓰러지는 적 보병. 그들이 창을 내찔러 반항하지만 그래봐야 무력할 뿐. 일 개 보병은 결코 말에 탑승한 클락을 막을 수 없다.
그가 한창 전투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연대장님!"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자신의 부관이었다.
부관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적 기병입니다!"
"기병?!"
클락은 재빨리 시선을 돌려 부관 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멍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적 기병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혼자잖아?"
적 기병은 분명 혼자였다.
다소 이상한 일. 그에 클락은 적 기병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기병임에도 이상하게 제국군 보병사관 경갑을 입고 있다. 오른손 에는 기병창보다 훨씬 긴장창-파 이크-를 쥐고 있고, 왼손은 말의 고삐를 꽉 부여잡고 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위에 탑승해 있는 건 제국군이지만 전투마는 분명 공국 기병대의 것이었다.
탑승자와 말의 소속이 다른 다소 이상한 모습.
클락은 저기병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적 백인장이로군."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검은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 분명 어제 투창으로 자신의 부하를 처치했던 백인장이었다.
그가 피식 웃었다.
"어디서 말을 주워 타기라도 했 나보군."
클락이 기병창을 들어올렸다.
"가소로운 놈. 내가 처치하지."
무려 백여 명의 공국 기병을 이 끄는 연대장이 바로 그다.
그는 자신의 기마술 실력을 자부했다. 당연히 제국 전문 기마병도 아닌 일개 백인장 따위는 순식간에 처치할 거라 자신했다.
허나 클락은 몰랐다.
한지훈이 평범한 백인장이 아니 라는 것을.
"좋아."
말을 몰았다.
처음에는 속보. 천천히 걸었다.
배를 살짝 찼다. 조금 더 속도가 빨라졌다. 구보. 말이 비로소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말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
그러자 말이 울부짖고, 훨씬 빨 라졌다. 습보. 말이 전력질주 한다.
녀석이 거세게 달려 나갔다. 몸 이 흔들리고 격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고삐를 꽉 움켜쥐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쇄도해갔다.
'목표는 적 연대장.'
놈들의 대가리다. 녀석을 죽인다면 기병대의 조직력이 무너질 것이 니.
지휘관을 죽여야 한다. 나는 놈을 찾기 위해 전장을 훑어보았다.
"찾았다."
잠시 후 나는 놈들의 지휘관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등장한 것을 확인한 것일 까. 녀석은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씩 웃었다.
"얕보고 있구만."
적 지휘관의 표정을 읽었다. 가 소롭다는 듯이쪽을 바라보는 모습.
놈은 나를 얕보고 있다. 하긴, 기 병도 아닌 내가 말에 타고 있으니 . 약해보이겠지.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 두두두두!
내 몸이 돌진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 적 연대장 또한 이쪽을 향해 쇄도해오기 시작했다.
전황을 읽었다. 충분히 연대장 혼자서 날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인가. 다른 기병들은 다가오고 있지 않다.
방심이라.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천천히 창을 들어 올려 앞으로 겨눴다. 기병창보다도 훨씬 긴 파이 크 장창이 내 손에 꽉 쥐어진다.
"하하하! 덤벼라, 제국의 개!"
가까이 접근한 녀석이 기병창을 내찌르며, 이쪽으로 돌진해온다. 폼을 보아하니 마상전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이토록 기다란 장창을 들고 있으니 근접전을 벌이는 줄 알 터.
허나 놈의 예상은 빗나갔다.
나는 창을 보다 높게, 어깨 높이 로 들어올렸다.
"뭐..?"
순간 녀석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드러났다. 그야 창을 휘두르기엔 너무 불편한 자세로 보일 터이니.
씩 웃었다.
"미안하지만, 창술 스킬은 없어 서."
대신 투창 스킬이 있다.
나는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 장 창을 쏘듯이 던졌다.
후우우웅!
중후한 파공음과 함께 내 손아귀에 들려있던 장창이 앞으로 날아갔다. 말의 속도와 내 근력이 어우러 져 그것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놈에 게 쇄도한다.
"무슨!"
놈의 경악에 찬 외침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
콰앙!
장창이 연대장의 허벅지에 틀어 박혔다. 무시무시한 운동에너지가 실린 파이크는 놈의 다리뼈를 부수 며 완전히 관통해버렸다.
"끄아아아아!"
녀석이 고통에 차 비명 질렀다. 하지만 명색이 연대장이라는 것일 까. 놈은 고통에 휘청거릴지언정 낙 마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내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역시 창보단 검이지."
나는 검을 뽑아들었다.
스스릉, 청아한 쇳소리가 청각을 자극한다.
"죽여버린다."
오른손에는 장검을, 왼손에는 말 의 고뼈를 꽉 쥔 상태로 달려 나갔다. 말과 함께 내 몸이 적 연대장 에게 쇄도해간다.
"연대장님!"
"무슨!"
믿기지 않는 것일까. 적 기병들 이 당황에 차 경악했다.
하지만 놈들의 당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연대장님이 위험하다!"
"구해!"
적 기병대의 행동은 기민했다. 놈들은 제 상관이 위험에 빠지자, 구원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다.
허나 놈들은 멀다. 반면, 나는 어느새 연대장 놈에게 거의 접근한 상태.
두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겹쳐지고, 나와 적 지휘관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나는 검을 휘둘렀다.
파앙!
청아한 파공성. 번들거리는 검광 이 수평으로 그어졌다.
- 서걱!
직후 들려오는 절삭음. 더해 검 의 손잡이를 타고 느껴지는, 놈의 목울대를 베는 감촉까지.
검날을 확인해봤다. 핏물이 묻어 있다.
고개를 돌려 녀석의 모습을 확인했다.
"컥… 커허……"
녀석의 말이 어느새 천천히, 속도를 줄여갔다. 그리고 말 위에 있는 연대장은 손으로 목을 부여잡았다.
놈의 목에서 피가 새어나온다.
"이겼군."
쿠웅!
적 연대장이 말에서 떨어졌다. 놈의 모습을 확인했다.
녀석은 목에서 피를 콸콸 뿜어내며 바닥을 구르고 있다.
나직이 읊조렸다.
"적 지휘관 처치."
적 연대장을 죽여버렸다. 시선을 돌려 주위를 바라봤다.
"연대장님!"
"맙소사… 어떻게!"
적 기병들의 경악한 시선.
나는 씩 웃었다.
"말타기. 생각보다 쉽잖아?"
물론 스킬빨이었다.
나는 적 기병대를 향해 달렸다.
"말도 안 돼…."
카일은 멍하니 한지훈을 바라봤다.
말을 타고 있는 상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가 듣기로 한지훈 백인장이 본래 기마병이었다는 소리 를 들어본 적이 없다.
헌데 어째서일까.
한지훈은 지금 능숙하게 말을 몰 고 있다. 마치 베테랑 기병처럼. 그는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 달리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적 연대장을 처치했다고? 그것도 기마전에서?"
카일은 시선을 내려 지면올 바라 봤다.
아군 방진에서 그리 머지 않은 곳에, 시체가 하나 볼품없이 쓰러져 있었다. 적 기병대 연대장이었다.
기병 연대장. 분명 나름의 무력을 지닌 자였다. 그가 싸우는 모습 은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헌데 그런 그가 지금 바닥에 시체로 화해 쓰러져있다.
카일은 멍한 눈으로 한지훈을 바라봤다.
'단순히 검술에 조예가 깊으신 줄 알았는데 기마전까지 하실 줄 알았다니.'
분명 한지훈은 대단한 상관이었다.
평민 출신 병사로 시작해 사관계 급으로 진급했으며, 여러 힘겨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전공을 세워왔다.
더해 그가 지닌 검술 실력은 일 개 병사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수준.
헌데 지금 그는 말을 타며 적 기 병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것도 단신으로 말이다.
"대단합니다. 백인장님."
카일이, 그리고 그의 주위에 있는 병사들은 한지훈의 활약을 멍하 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