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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33화 (33/390)

33화.

다음날 아침. 제국 북부 제 3군단이 진군을 시작했다.

수많은 깃발이 올라가고, 대량의 사람들이 움직였다. 진형의 좌우로 기사단과 기병대가 엄호하며 천천히 북상했다.

무려 2만이 훨씬 넘어가는 대규모 행렬. 그리고 그대행렬의 최선 두에는, 우리 4번 백인대가 있었다.

"하필이면 선도 정찰대라니. 정말 재수가 지지리도 없군요."

"제일 위험한 자리 아닙니까?"

병사들은 긴장을 유지한 채 앞으로 향했다.

그들이 긴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도 정찰대. 본대보다 한 발자국 앞서 움직여 주변을 정찰하고, 위협요소를 파악하며, 아군 주력군 의 행군을 선도한다.

고상한 말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고기방패에 불과하다. 본대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제물. 극심한 피해를 상정하고 운용하는 자리이니.

정말 개 같은 포지션이 아닐 수 없다.

"공국 놈들은 바로 며칠 전 마법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는데, 설마 또 기어 나오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적 군단은 마법으로 초토화 시켜놓은 상황. 그렇기에 병사들의 사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저희 혼자만 앞서가는 것도 아 닙니다. 무려 4개 백인대 규모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니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설마 4백 명이나 있는데 큰일이 나겠습니까?"

더해 같이 행군하는 다른 백인대 들까지.

때문에 병사들은 희망찬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위협 없이 선도 역할을 끝낼 수도 있으리라 낙관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숨을 푹 쉴 수밖에 없었다.

'그 큰일이 일어난다고.'

이번 미션도 게임 속에서 겪어봤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표정을 필수가 없었다.

그렇게 잡담을 하며 얼마나 갔을 까. 곧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침공로가… 완전히 불타있습니다."

"아무것도 없군요."

침공로 중간으로 들어갔을 때. 불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구간이 드러났다.

광활한 영역의 숲속이 완전히 불 타서 잿더미가 되어있었다. 모든 나무와 풀이 타 잿더미로 화해있으며, 매캐한 탄내가 후각을 자극했다. 곳곳에서는 아직도 시커먼 연기가 자 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불 타 죽어있는 시체들까지.

"윽…."

처참하고 소름끼치는 광경. 그에 질린 것일까. 병사들이 하나둘 표정을 구겼다.

나 또한 얼굴을 찌푸렸다.

' 역겹다.'

시체 타는 냄새가 역하다. 절로 표정이 구겨진다.

병사들의 안색을 살폈다. 몇몇 비위 좋은 이들은 멀쩡했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표정이 심히 안 좋았다. 헛구역질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

시선을 내려 발치의 시체를 바라 봤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시꺼멓게 타있었다.

"… 이게 전쟁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공국 병사의 시체였다. 몸은 까 맣게 타올라 있었고, 군복은 완전히 불타 재로 변해 있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은 것일까. 시체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망할."

마법사들이 광역공격마법을 갈 겨댔을 땐, 그저 멋있었다. 마치 스 크린 속 전쟁 영화처럼 호쾌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 잔 해들을 바라보니 .

"기분 더럽네."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나는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하는 쇳소리가 울린다.

"모두 긴장해라. 공국은 이곳까지 진출했었다. 살아남은 적 잔당이 공격할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무장 확인하고, 주변 경계하면서 움직여."

병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들이 긴장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우리들은 계속해 앞으로 행 군했다. 지면을 밟을 때 풀 대신 타다만 나무잔해만 밟혔다.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역한 고기 타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그렇게 한참 가는 와중이었다.

"백인장님! 이걸 보십시오!"

병사 하나가 날 불렀다. 나는 그리로 곧장 뛰어갔고, 녀석이 바닥을 가리키며 알려왔다.

"공국군 생존자를 찾았습니다.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에 나는 시선을 내려 아래를 살폈다.

반쯤 타다 만 나무 아래, 한 공국 병사가 드러누워 있었다. 그 불 지옥 속에서 어찌 살아남은 것일까. 신음하며 가슴을 미약하게나마 움직이는 게 명백히 생존자였다.

"어떻게 처리합니까? 포로로 생 포해갑니까?"

병사가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죽여."

"… 정말입니까?"

"살릴 이유는 없다. 죽여라."

"하지만…."

차마 화상에 고통받고 있는 적병 까지 죽이는 건너무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병사들이 주저했다.

"뭐, 내키지 않다면 죽이지 않아 도 된다. 어차피 곧 알아서 절명할 거니까."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돌렸다.

"작열통에 고통받다 죽도록 놔둘 지, 아니면 이자리에서 바로 편하 게 해줄지. 마음대로 하도록."

사실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공국 병사는 이미 다 죽어가는 상태. 가만히 놔둬도 자연스럽게 절명 할 것이다.

- 서걱!

배후에서 절삭음이 들려왔다. 병사가 적 생존자를 처형하는 소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 진군했다.

* * *

우리들은 계속해 북진하며, 살아 남은 적 생존자들을 하나둘 처치해 갔다.

퍼억!

내 검날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 던 적병의 모가지를 꿰뚫었다. 녀석 은 끄르륵, 하며 피거품을 흘리더 니. 곧 절명해버렸다.

푹 한숨 쉬었다.

"이게 몇 명째냐."

마법사의 광역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공국 병사들이 생각보다 많 았다. 하기야 놈들의 수는 무려 2만에 달했다. 그 모두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는 않았을 터니. 분명 가까스로 살아남은 적병 또한 많았다.

그렇게 적 생존자들을 처치하며 앞으로 진군할 때였다.

"백인장님. 전쟁이란 정말 잔인한 것 같습니다."

문득 카일이 그리 말해왔다.

녀석을 바라보니, 막 작열통에 몸부림치던 적 병사 한 명의 생명을 끊어놓고 있었다.

파앙!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낸 녀석이 이어 말했다.

"칼로 베고, 창으로 꿰뚫고, 불에 태워버리고.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 으로 사람을 죽이려합니다. 정말 끔 찍한 일 아닙니까?"

아무래도 카일은 전쟁이라는 것 에, 그리고 자신이 군인이라는 것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 듯했다.

보이는 것은 불에 구워진 적병의 시체들. 그리고 불길에 휩쓸려 썰렁 해진 대지뿐이니. 더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저항조차 못하는 적 부상병을 하나하나 처치하며 그저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회의감을 느낄 만도 하다.

"뭐 그렇지. 전쟁이란 참 염병할 짓이야."

나는 카일에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나는 게임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려했다.

당시 내 칭호[냉혈]

,[학살]

은 괜히 받은 것이 아니었다. 모니터 속의 나는 위대한 정복자임과 동시, 잔혹한 학살마였다.

물론 게임 속이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고작 땅덩어리 차지하려고 사람이 사람을 죽입니다. 이게 같은 사람새끼가 할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카일이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나 또한 녀석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니,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 덕에 잿빛으로 보였다.

문득, 나는 게임 속에서 마주친 NPC들의 대사를 떠올렸다.

[롬스턴 리 아르그만트][2번 천인장]

["… 당신은 악마야. 피도 눈물도 없는 개자식! 한지훈, 나는 네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

도시를 몰살시키란 소리에 반발 하던 천인장.

놈은 결국 내 손에 의해 처형당했다.

[아르테니아 가이나스 비 오르페우스][제국 황제]

["… 한지훈, 너는 괴물이다. 권력에 미쳐버린 괴물!"]

나를 권력에 미친 괴물이라 매도 하던 황제.

녀석 또한 죽어버렸다.

[크라울러 디 아르마][동부 제 2군단 군단장]

[신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한지훈.]

[에일리 하르만][남부 제 1군단 군단장]

[전쟁광. 어서 나를 죽여라.]

[카르만 실버 프리드리히][중앙군 최고사령관]

[네놈은 지옥 속에서 영겁토록 불타리라!]

제국 점령 후, 내 통치에 반발하 던 고위 장성들.

놈들 또한 모조리 처형해버렸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건 정말 게임이었나."

어쩌면, 정말 사람이지 않았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긴장해야 한다. 이제 곧 적이나 올 것이니. 잡생각을 하느냐 집중을 흐트러트리면 안된다.

그렇게 내가 막 긴장을 끌어올리는 그때였다.

"백인장님."

누군가 나를 불렀다. 시력 좋은 병사 아르덴이었다.

그가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먼지구름이 일어납니다."

고개를 돌려 아르덴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저 멀리 먼지구름이 일렁이고 있다.

직감했다.

"기병대인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아직 멀어서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저건 분명 기병대일 터.

후,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놀람은 없었다. 적이 출현할 것을 미리 알았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모두 전투준비!"

나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곧 전투가 시작된다.

"모두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내 목소리에 병력들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확실히 힘든 전투를 여러 번 겪 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경계대형을 짰다.

"공국 놈들인가. 다 죽여버린다!"

"쓴맛을 보고도 다시 덤벼오는군."

병사들의 사기 또한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최근에 대승을 거둔 상황. 더해 공국군이 허접쓰레기라는 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기가 곤두박질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백인장님! 적은 기병으로 추정 됩니다!"

"잠깐, 기병이라고?!"

"기병이라니!"

아르덴의 이어진 보고에, 병사들 이 크게 당황했다.

녀석의 보고가 이어졌다.

"확인되는 적 기병… 약 백여 기. 일개 기병연대 규모입니다. 속도를 보니 경기병인 것 같습니다 만."

"맙소사."

병사들의 사기가 순식간에 하락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 보병이 아닌, 기병. 그것도 무려 백여 기에 달하는 병력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상황이니까.

기병.

말을 타는 병사. 그들은 커다란 덩치와 빠른 속도로 무시무시한 충격력을 가한다. 일개 보병들이 차마 대적할 수 없는 상대가 바로 기병 이었다.

나는 크게 외쳤다.

"닥치고 대기병 방진 짜! 멍하 니 있다가 놈들에게 사냥당한다!"

"대기병 방진!"

병사들이 허겁지겁 방진을 짜기 시작했다. 뭉쳐서 창병이 외곽에, 그 뒤를 검병이 보좌하고, 궁병은 가장 안쪽에 자리한다.

과연 베테랑이라 할까. 그들이 방진을 짜는 건 몹시 빨랐다.

하지만 내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희생자가 나오겠어.'

급한 대로 방진을 구축하긴 했지 만 저기병들을 제대로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기병을 제대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기다란 장창-파이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부대가 가지 고 있는 창은 모두가 일반창이다. 기병을 저지하기엔 리치가 모자라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후열이 도착할 때까지 일단 버텨야 한다.'

곧 선발대의 위협을 감지한 후열에서 기사나 기병을 출격시켜 놈들을 요격할 터.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나는 전령에게 지시했다.

"기병! 후열로 가위협을 알려라. 적 병력과 조우. 기병 약 백여 기."

"알겠습니다!"

기병이 크게 외치고는, 말을 박 차 뒤로 달려 나갔다. 나는 시선을 돌려 앞을 주시한다.

쯧 혀를 찼다.

'염병할 선도 정찰대.'

선도 정찰대의 진짜 존재의의가 이것이었다.

적의 매복 병력에 미리 두드려 맞는 것.

대집단인 주력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고기방패. 우리가 정보 를 전하고 적의 공격에 두드려 맞을 동안, 본대에서 대응을 결정할 것이다.

나는 앞을 노려봤다.

"적 기병대! 이쪽으로 달려옵니 다!"

"놈들이 가속합니다!"

단단히 벼르고 있는 건지, 기병 놈들이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무시무시하다.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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