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공국군 제 1군단 군단장, 페라다 루고 후작.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읊 조렸다.
"마법진…."
어둑한 밤하늘 위, 거대한 마법 진이 떠올라 있다.
마법진의 색은 너무나도 불길했다. 마치 피처럼 붉은 진홍색. 그것 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밝은 빛을 발해갔고, 장중한 파장을 일렁이고 있다.
페라다는 다급한 목소리로 수석 마법사에게 물었다.
"마법단장! 적의 마법이다! 저 마법진의 술식을 해석할 수 있나?"
그의 옆에 있던 수석 마법사는 침묵했다.
어째서 대답하지 않는 걸까. 답 답한 페라다 후작이 재차 물었다.
"마법사!"
"장군. 병력을 당장 뒤로 물리십시오."
마침내 입을 연 마법사가 한 말 은, 다름 아닌 병력을 뒤로 물리라는 소리.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 마법진은…."
마법사들이 하나둘, 품속에서 푸른색 액체가 넘실거리는 병들을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마나포션이었다.
명백히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
수석 마법사가 알린다.
"저 마법진은 폭렬폭풍마법. 제국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이 자랑하는 광역공격 마법입니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이라니. 설마…."
"맞습니다. 후작."
마나포션을 들이킨 마법사가 입가를 훔치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신비한 푸른색 기운이 그의, 그리고 그의 배후에 도열해있는 마법사들에게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저 고지 정상에 있는 것은 라브리에 마법단입니다. '그' 라브 리에 마법단 말입니다."
"… 맙소사."
페라다 후작은 침읍성을 흘렸다.
라브리에 마법전투단.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적어도 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의 군관이라면, 그 잔혹한 집단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수십 년간 제국 정복 전쟁에 종 군, 수많은 전장에서 무패의 화력을 자랑하던 최강의 전투마법단. 그들 의 공조마법은 군단을 쓸어버렸고, 성벽을 무너뜨렸으며, 도시를 불태 우고 왕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이, 그들의 앞에 있다.
"저희 마법사들이 전력을 다해 방호마법을 펼치겠습니다. 하지만, 막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저쪽 마법사들은 온갖 전장을 경험한 전쟁의 전문가."
마법사들이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푸르른 기운이 상승하고, 커다란 마법진이 생성되어간다.
"막아봐야 찰나를 버티는 것에 불과할 터입니다. 후작. 당장 병력을 뒤로 물리십시오."
마법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 허공에 푸르른 장벽이 펴졌다.
공국 마법사들이 발현할 수 있는 가장 고위의 방호마법, 천공의 수호 벽이었다. 무려 백여 명에 달하는 마법사들이 발현한 방호마법.
그리고 그때.
제국 전투마법사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 번쩍!
찬란한 섬광이 허공에서 터져 나 왔다. 드넓은 영역에 있는 모든 이 의 시력을 일순간 손상시킬 정도로 웅장한 빛이었다.
직후,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수 의 붉은 궤적이 비산해, 이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 콰과과과과과광!
붉은 궤적 하나하나가 강렬한 힘을 품고 있는 '폭렬구'였다. 그것은 허공에 펼쳐진 방호마법을 사정없 이 두드리고, 폭발했다.
수많은 폭발이 허공에서 일어나고, 고막을 뒤흔드는 폭음이 청각을 유린했다. 푸른색 장벽이 충격에 흔들렸다.
그 순간, 페라다 후작은 희망을 가졌다.
'막고 있다!'
분명 제국 마법사들의 화력은 강대했다. 저토록 많은 폭렬구가 쏟아 져 내리는 광경이라니. 몇 번의 전 면전을 경험해본 페라다 후작조차 처음 보는 웅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분명 막아내고 있다. 적의 폭렬구는 방벽을 파훼하지 못했 으며, 상공에 떠오른 거대한 방호마 법이 제국의 폭렬구를 막아내고 있다.
'그래. 라브리에 마법단이라 한 들, 그래봤자 일개 마법단에 불과하다.'
페라다 후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간 들려오던 놈들의 무위는, 예전 전공이 부풀려진 헛소문에 불과할 터다. 우리 또한 백여 명의 종군마법사를 이끌고 왔다. 무력하 게 지지는 않을 터!'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분명 우수 한 이들일 터다.
하지만 이쪽에도 마법사가 있다. 그것도 우수한 마법전력으로 유명 한 카렌 왕국의 마법사들이.
그들이 있다면, 할 만하다!
페라다 후작은 우습게도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곧 깨지고 말았다.
"쿨럭, 커헉!"
마법사들이 하나둘 입가에서 피 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에 페라다 후작은 놀라고, 수석 마법사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외쳤다.
"장군! 오래 버티기는 힘듭니다!"
콰득, 콰지직.
허공에 자리해 있던 푸른색 방벽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 은 불길한 파쇄음을 일으키며 점차 무너져 내리려 한다.
수석 마법사가 마나포션을 마시 며 힘겹게 읊조렸?
"광역 마법을 이토록 오래 난사하다니. 마나량이 말도 안 되는군. 제국의 마법사들은 정녕 괴물이란 말인가…."
마법사의 눈동자에는 체념의 빛 이 떠올라있다.
그제야 페라다 후작은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 마법사들은 자신의 생명마 저 갉아먹으며 분투하고 있다. 저 고통스러운 표정과 입에서 흐르는 선혈이 그것을 증명했다. 필시 자신 의 마나하트와 연산력을 한계까지 운용해가며 아군을 지키고 있는 것 일 터.
시간이 얼마 없다. 군단장이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깃발을 올려라! 전군, 전속 퇴 각! 흑기를 올려라!"
"흑기 올려!"
부관이 복창하고, 신호병들이 커다란 깃발을 올렸다.
올린 깃발의 색은 검은색. 전멸 의 위기이니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전장을 이탈하라는 뜻의 깃발 이었다.
- 부우우우우---.
뿔피리가 울린다. 군단장 기수가 검은색 깃발을 들어 올린 것을 확인한 다른 기수병들 또한, 검은색 깃발을 높이 들어 퇴각 명령을 전 파했다.
공국 군대가 퇴각하기 시작한다.
"포트 갈레이까지 후퇴한다!"
"보급마차는 버려라! 병장기만 챙겨서 뒤로 빠져나와!"
"이곳에 있다면 모두 죽는다!"
제국 방향으로 남하하던 그들이 순식간에 뒤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질서정연하게 행군하던 모습은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살기 위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공국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때.
- 콰직, 콰지지직!
허공에 떠올라있던 커다란 방벽 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균 열이 하나둘 생겨난다.
피를 쏟던 마법사가 하늘을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끝이군."
직후.
콰드드드득!
방호마법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 콰과과과과광!
유린이 시작되었다.
붉은색 궤적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커다란 폭발이 일고, 불길이 일어나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차마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폭렬구 가 공국군 진영에 틀어박혀갔다.
"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병사들이 후폭풍에 휘말려 날아 갔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은 지면을 뒤덮었고, 보급마차와 병사들을 불태웠다.
핏빛처럼 붉은 불길이 퍼져나간다.
번쩍! 콰르르르릉!
허공에서 빛무리처럼 반짝이는 섬광. 직후 수없이 터져 나오는 굉 음과 폭발. 병사들의 시체가 허공으로 비산하고, 그들의 파편이 핏물로 화해 지면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화르르륵!
화마가 번져나갔다. 광활한 침공 로는 순식간에 불꽃의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나무와 숲이, 사람과 마차가 타올랐다. 마법사들의 무차 별 광역공격으로 이 드넓은 침공로 가지옥으로 변하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지옥 속, 수많은 생명 이 스러져갔다.
공국군 제 1군단이 와해되었다.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50을 넘은 민첩 능력치가 동작을 보조했다.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사고를 가속시켰다. 전투분석이 최적의 경로를 도출해냈다.
지면을 딛고 달렸다. 내 몸이 앞 으로 향한다.
검의 그립을 꽉 쥐었다.
'한스 요한바르첸.'
내 코앞에, 놈이 있다.
빌어 처먹을 나의 대적자. 게임 속에서도, 그리고 이 개 같은 세상에서도. 내 앞을 가로막는 개자식.
'죽여버린다.'
녀석은 아직 섬광의 여파로 시야 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절호의 기회.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다.
"흐읍!"
기합을 내지르며 검격을 가했다.
파공성이 터져 나오고, 검광이 번뜩였다. 내 검날이 수평을 그리며 한스의 모가지로 쇄도한다.
하지만,
- 채앵!
한스가 검을 들어 올려 내 검격을 방어해냈다. 분명 녀석은 아직 시야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을 터 인데도.
내심 이를 갈았다.
'직감에 의지해 막은 것인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만큼 놈 의 직감은 비상식적인 것이었으니 .
하지만 그래봤자 느리다. 나는 검날의 방향을 비를어, 재차 놈의 목을 노리고 휘둘렀다.
쉬익!
쾌검이 그어진다. 보다 높은 각 도로 휘둘러진 횡 베기.
허나 놈은 그것마져 수월하게 막 아냈다.
- 키기기기긱!
녀석이 검신을 비스듬히 뉘여 내 공격을 흘려보냈다. 마찰에 불똥이 튀고, 쇳소리가 울렸다.
내 검끝은 놈의 뺨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고작.
미량의 핏물이 치솟았다.
"백인장님이 위험하다!"
"도련님을 보호해!"
마침내 상황을 파악한 것일까. 공국 병사들이 허겁지겁 가세하기 위해 달려온다.
하지만 늦었다. 나는 이미 녀석을 몰아넣고 있으니 .
치켜 올라간 검날을 빙글 돌려 회수, 검의 손잡이를 굳세게 쥐었다.
가속된 인지 속, 한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는 반쯤 시력을 회복 한 것인가. 놈의 눈동자는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스의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을 읽었다.
당황, 분노, 그리고 미약한 불안.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다음 일격으로 끝내주마.'
두 번의 검합을 나눴고, 그 덕분에 한스의 자세가 흐트러져있다. 때문에 빈틈이 드러난 상황.
물론 빈틈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극한에 달할 정도로 민감해진 내 동체시력이기에 겨우 잡을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후욱."
숨을 들이키며 자세를 낮췄다.
시야가 낮아진다.
극도로 흥분한 덕분일까. 사고가 더더욱 가속되고, 시야가 보다 느려 져갔다.
그리고 좀 더 명확하게 놈의 빈 틈이 눈에 들어왔다.
흐트러진 자세 속, 비어있는 중단. 가슴과 목까지 드러난 작은 틈.
나는 그곳을 노리고 검을 내찔렀다.
제국 검술의 마지막 초식, 찌르 기.
콰앙!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검신이 곧게 뻗어나갔다. 검날의 끝이 번뜩이 며 반사광을 흩뿌렸다.
이 순간 나는 놈의 죽음을 확신했다.
녀석은 아직까지 시야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 더해 두 번의 검합 덕분에 자세까지 흐트러져있다.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슬며시 미소가 올라왔다.
승리를, 그리고 대적자의 죽음을 확신했기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자신감과 기쁨이 용솟음친다.
직후.
- 퍼억.
내 검신이 한스의 목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문일까. 한스는 자신의 목에 검날 이 박혔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멍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하하."
멍청한 얼굴이다. 내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떠오른다.
놈이 부들거리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검을 휘두르려 한다. 그에 나는 아무 말없이 검신을 비틀었다.
콰드득.
녀석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
"쿨럭!"
한스가 부글거리는 피거품을 뱉 어냈다. 질척한 핏물이 내 뺨에 튀었다.
하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유쾌한 기분이 올라온다.
나는 검을 빼내며, 녀석의 몸을 발로 찼다.
쿵.
실 끊긴 인형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놈의 육신. 한스의 커다란 덩치가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비릿한 혈향이 올라온다.
- 띠링! 띠링!
[대적자 NPC를 처치했습니다.]
[업적 달성!]
['업적 : 대적자 NPC 처치(1)'를 달성했습니다! 포인트가 수여됩니다.]
[수여 포인트 : 10pt]
(남은 포인트는 10pt입니다.)
[서브 퀘스트 - '고지대 거점 방어전'을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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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산 포인트 : 20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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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포인트는 45pt입니다.)
나는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