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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3화 (23/390)

23화.

나는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 쳤다. 어둑한 시야를 헤치고 나무 사이를 누비듯 산을 달려 내려갔다.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아래로 던졌다.

시야 곳곳에 반짝이는 것은 적의 횃불.

거점을 향해, 산개해서 접근하고 있는 공국 놈들의 횃불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놈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척후조 병사들.'

달리는 와중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스무 명의 제국 척 후병들이 힘겨운 얼굴로 뒤쫓아 오고 있었다.

야밤에 산악지형을 달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강군인 제국군에서도 힘든 일일 정도로.

하지만 지금 나를 뒤따르는 이들은 모두가 제국 척후병이었다. 그 강군인 제국군에서도 한층 정예인 이들.

그런 그들이기에, 야밤의 산을 뛰어다닐 수 있다. 내가 굳이 전투 조원이 아닌 척후조원들을 데려온 이유가 이것이었다.

파앙!

나는 더더욱 속도를 높였다.

한시가 급하다. 어서 가서 공국 놈들을 교란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간을 벌 수 있으므로.

그렇게 나와 병사들은 계속해 산 의 아래로,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횃불의 붉은 빛이 점차 가까워진다.

'백인장님.'

카일은 달려가며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저 앞에 달려 나가는 한 병사의 뒷모습이 보였다.

검은 머리를 지닌 병사였다. 한때는 그의 직속상관인 십인장이었 으나 지금은 어느새 백인장의 지위에 이른 이.

한지훈.

카일은 한지훈의 뒷모습을 ?으 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저리 빠르게 성장하실 수 있는 건지….'

분명 과거의 한지훈은 그리 강하지 않았었다.

체력은 모자랐으며. 민첩과 근력 또한 평균 이하였다.

허나 어느새 그는 성장했다.

검술 실력이 늘었고, 민첩과 근력이 자신을 아득히 넘어섰다. 전투 가 있을 때마다 눈에 띄게 성장해 갔다.

지금도 그렇다.

그가 아무리 다리를 놀려 질주한 다 한들, 한지훈과의 거리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았다.

카일이 이를 악물었다.

'백인장님께서는 우리의 속도에 맞춰주고 계신다.'

한지훈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저토록 빠르게 움직이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선 전력질주가 아닐 것 이다. 전혀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으니 .

한지훈은 아슬아슬하게 부하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카일은 새삼 한지훈의 성장을 느 꼈다.

분명 그 또한 달리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

후욱!

그는 뜨거운 숨을 뱉으며 한지훈 의 뒤를 따랐다. 숨이 가빠진다. 전 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문득, 그가 생각한다.

'백인장님은 어디까지 올라가실 까.'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는 한지훈 이었다. 그리고 그의 성장세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상상해 보았다.

더 높아진 한지훈의 모습. 백인 장을 넘어 천인장, 혹은 그이상의 경지에 달한 그의 모습.

씨익. 숨 가쁘게 달리는 와중에 도, 카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

'한지훈 님을 따른다면, 승리할 것이다.'

카일은 한지훈의 등이 믿음직스 럽게 보였다.

* * *

나와 병사들은 계속해 달려 내리 막을 타고 내려왔다. 그러자 어느새 횃불을 들고 있는 공국 병사들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사들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모두들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백인장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 놈들의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야했다.

숲의 음영에 몸을 숨기고 놈들을 주시했다.

모두 합해 아홉 명으로 이루어진 병사들이었다. 그중 횃불을 들고 있는 병사가 셋, 검과 창을 들고 움직이는 병사가 여섯. 그들이 횃불의 제한된 시야에 의지해 산을 오르고 있다.

놈들의 모습을 보고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경갑을 입고 있어.'

본래 공국군의 무장이란 조잡했다. 그들은 절대다수가 징집병이었 으며, 그렇기에 가진 무기는 그 품질이 좋지 않았고, 방어구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하지만 지금 저기 보이는 공국 병사들은 달랐다.

제대로 된 경갑을 입고 있다.

복부와 가슴팍을 보호해주는 흉 갑, 그리고 머리 위에 을려져있는 것은 잘 만들어진 투구.

간간히 기다란 가죽장갑을 착용 한 놈들도 있다.

'…정예인 만큼 무장은 제대로 챙겨줬다는 이야기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 허술한 공국군이라 한들 정예병력까지 홀대 하진 않을 것이니.

검을 들어올리고, 숨을 골랐다.

"무기, 꺼내 들어."

내지시에 병사들이 하나둘 무장을 준비한다.

스르릉, 하는 소리는 역시나 들리지 않는다. 척후조 병사들 중 이런 상황에서 소음을 내는 멍청이는 없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전파했다.

"보다시피 놈들의 무장이 예사롭 지 않다. 아마 평범한 공국군 병사들보다 더 높은 전투력을 지녔다 봐야겠지. 다들 주의해라."

내 말에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다.

바스락, 사각.

놈들이 산을 타고 오른다. 녀석 들의 시선이 닿는 것은 오직 횃불 로 밝혀진 좁은 시야뿐. 주위에 내가 숨어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절호의 기회.

"지금이다. 가라!"

주저 없이 급습했다.

파앙!

다리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돌진했다. 그제야 이쪽을 발견한 것일 까. 놈들 중 하나가 검을 꺼내들었다.

꽤나 기민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녀석이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보다, 내 검격이 파고드는 것이 빨랐다.

"일단 하나."

후욱!

한껏 달궈진 숨을 내뱉으며 검을 찔러 넣었다.

내 검날이 공기를 꿰뚫듯 쏘아져 녀석의 목에 박혔다. 놈이 피를 울컥 흘렸다. 검을 빼내자 녀석이 각 혈하며 무너진다.

"적! 적이다!"

"거점에 있어야 할 놈들이, 어째서……"

"매복인가!"

놈들이 하나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 자세가 허술한 공국군 답지 않다.

역시 놈들은 정예였다. 허나 나 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더 강하니까.

"제국군이다! 교전해!"

공국 병사들이 냉병기를 들고 달 려들었다. 그들이 검과 창을 휘둘러, 나와 병사들을 노린다.

허나 느리다.

그 지랄 맞게 강한 한스의 검조 차 막은 나다. 아무리 공국 정예라 한들 고작 일반병보다 강한 수준에 불과하다.

부웅!

적병의 검이 반월을 그리며 쇄도 해온다. 하지만 녀석의 검날은 나를 베지 못했다.

고개를 숙여 검격을 피해냈다.

쿵! 검날이 허공을 가르며 내 뒤에 있는 나무를 쳤다. 나는 놈에게 몸을 낮춰 파고들듯 돌진, 검을 위로 치켜들다시피 올려 찔렀다.

푸우욱.

"끅…!"

내 검신이 적병의 아래턱을 찌르고 들어갔다. 검날이 병사의 구강까지 꿰뚫었다. 놈이 바로 즉사해 축 늘어진다.

"흐읍!"

힘을 줘, 녀석의 시체가 쓰러지 지 않게 붙잡았다. 방패로 쓰기 위해.

푹! 퍼억! 공국 병사들의 검격과 창격이 제 동료에게 쇄도했다. 방금 죽은 공국 병사의 등짝이 난자된다.

"제기랄! 감히!"

"시체를 방패로 쓰다니!"

놈들은 제 아군 시체를 찔렀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다시 검과 창을 회수해, 나를 죽이기 위해 움직인 뿐.

"쯧."

꽤 성가시다. 나는 검을 뽑아내고, 재차 휘둘렀다.

파앙!

파공성과 함께 공기를 가르는 검 날. 횃불에 의해 붉게 칠해진 검광 이 반월을 그렸다. 나에게 창을 내 찌르려 하던 적 하나가 모가지가 베였다.

놈이 목에서 피를 줄줄 뿜으며 비틀거렸다. 놈을 발로 차 쓰러뜨리 고 앞으로 도약.

부웅!

방금 전 내가 서 있던 곳을 적의 창격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피할 줄 몰랐다는 것인가. 창을 쥔 적병이 당황한다. 나는 그대로 파고들어, 검격을 가했다. 검 날이 수직으로 내려쳐진다.

서걱.

검날이 녀석의 손가락을 베었다. 손가락 여러 개가 잘려 후드득 떨 어진다.

"끄아아아!"

아픈 것일까. 제 손을 베인 놈이 부들거리며 고통어린 비명을 토했다. 덕분에 틈이 드러났다.

아래로 향했던 검을 빙글 돌리듯 휘둘렀다. 검날이 큰 궤적을 그리며 놈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피가 팍 튀어 나온다.

"짜증나는 놈들."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그리 중얼거렸다.

본디 공국 병사들은 처치하기 쉬운 적이었다. 방어구가 없었기 때문에, 복부나 가슴을 노려도 일격사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경갑은 입은 정예놈들은 달랐다. 놈들의 방어구 때문에 단번에 처치하기 힘들다. 더해 일반병보 다 기민한 움직임도 다소 귀찮았고 말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주위의 상황을 살폈다.

"으아아아악!"

"커헉…."

제국 병사들이 공국군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내가 순식간에 네 명을 처치한 덕분에 나머지 스무 명의 척후조 병사들은 아주 손쉽게 공국군을 요리할 수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홀로그램을 주 시했다.

[남은 시간 : 73: 29]

산을 내려오고, 적 분견대 하나 를 제압하니 30분이 흘러있다.

남은 시간은 약 70분.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일단은 최선을 다해볼 수밖에.

내가 그렇게 홀로그램을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백인장님! 놈들을 완전히 정리 했습니다."

카일이 이쪽으로 다가와 보고해 왔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카일. 느꼈지?"

"네. 모두 평범한 공국 병사들보 다 훨씬 잘 싸웠습니다."

"맞다. 놈들은 정예다. 장비로 보 나 실력으로 보나 평범한 공국 병사들이라고 생각할 순 없지."

나는 검을 휘둘렀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검날의 피가 후드득 지면으로 떨어져 내린다.

"방심하지 마라. 녀석들은 강하다."

내 심각한 표정을 본 것일까. 척 후병들이 긴장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직후.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보단 약하지만."

제국 척후병은 강하다.

본디 강군인 제국군 중에서도, 정예를 뽑아서 꾸린 것이 바로 척 후병들이다.

척후병들의 임무는 힘들고 가혹 하다. 초계망을 돌파해 적진을 탐색 하고, 본대의 앞에서 지형과 공격로 를 탐색해 아군을 선도하며, 소수로 험지를 뒤돌아 적의 뒤통수를 치기도했다.

제국 일반병들중 가장 높은 수준 의무력을 지닌 것이 바로 척후대다. 그 허접쓰레기인 공국군에서 정 예를 뽑았다 한들 우리보다 강하진 않다.

"그럼 이제 움직이자."

달칵. 나는 피를 털어낸 검을 검 집에 수납했다.

"백인장님. 앞으로 어찌하시려는 겁니까?"

"지금 적들은 산개해 움직이고 있다."

카일의 질문에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어둑한 야산을 바라봤다. 많은 수의 횃불이 흩어져 산을 오르고 있다.

"방금 전 우리가 처치한 한 개 조는 고작 아홈 명 규모였다. 아마 다른 조들도 그 정도 규모로, 뿔뿔이 흩어져 산을 오르고 있을 거다."

다른 병사들도 고개를 들어 올려 산을 주시했다.

"이제부터 흩어져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각개격파 할 것이다. 시간이 없어. 빠르게 움직여야 해."

놈들이 병력을 산개해 운용한 것은 실수였다.

물론 이해는 한다. 횃불 때문에 위치가 훤히 노출되니 화살공격과 매복을 염려했을 터다. 그렇다고 이런 야심한 밤 깊은 산속을, 횃불도 없이 움직이는 건 대량의 낙오자를 만드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었을 터.

그렇지만 그것 또한 잘못된 선택 이었다.

덕분에 승산이 보였다.

"어서 움직여. 다음 적을 급습한다."

나는 다른 적을 찾아 달렸다. 내 뒤를 척후병들이 따라온다.

다음 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산을 듬성듬성 밝히는 횃불을 향해 가면 되니.

나와 병사들이 움직인다.

* * *

한스는 산을 주시했다.

해가 떨어진 산은 고즈넉하고 적 막했다. 어두운 음영이 드리워진 산. 그 산의 곳곳에는 붉은색 빛이 흩어져 일렁이고 있다.

산을 타고 올라가는 붉은 반짝임 들. 병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의 빛이다.

그것을 바라보며 한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횃불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만."

분명 처음에는 횃불의 수가 더욱 많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금 그의 시야에 잡히는 횃불의 빛은 그 수가 다소 적어져 있다.

거슬린 것일까. 한스는 시야에 잡히는 횃불들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후욱.

문득, 그의 시야에 자리해있던 불빛들 중 하나가 사라졌다. 한스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역시."

산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접근을 배제하는 적이 있다.

한스는 주위에 있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산을 타고 오르는 와중이기에 그 수는 십 여 명에 불과했다.

그가 나직이 말했다.

"놈들이 우리 병사들을 사냥하고 있다."

제국의 병사들이 야음을 타고 아군의 병력을 각개격파 하고 있다.

거점을 틀어박히지 않고 오히려 앞서 나와 미리 교전하다니. 대담한 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병력이 분산되어있는 지금이라면 더욱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자신의 병사들이 각개격파 당하는 걸 그저 관찰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우리도 올라간다. 병력을 규합하고, 이쪽을 사냥하는 적을 찾아 죽 인다."

이미 적의 규모가 예상보다 적다는 것을 눈치챈 한스였다. 그리고 적은 수의 적을 사냥할 때는, 병력을 뭉쳐 밀어버리는 것이 제일.

철그럭.

한스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무거운 중갑이 철컥이는 소음을 울리고, 병사들이 뒤따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방금 전 횃불의 빛이 사라진 곳이었다.

한스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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