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21화 (21/390)

21화.

보고 직후. 나는 전장을 정리했다.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천막을 세워 야영 준비를 서둘 렀으며, 비콘을 사용해 위치좌표까지 본영으로 전송하기도했다.

그렇게 병사들을 지휘해 거점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백인장님. 이걸 봐주십시오."

한 병사가 나무상자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무슨 일이냐는 듯 녀석을 주시하고, 녀석은 꺼림칙한 얼굴로 상자를 건넸다.

"전장을 정리하다 발견한 물건인 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상자를 받아들었다. 뭐가 들어있는 건지 몰라도, 꽤나 묵직하다.

금화 같은 거라도 들어 있으려 나.

나는 기대하며 상자를 열었고, 고

"Q w 표정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상자 속에는 전대 백인장인 갈랜 의 목이 잘려 담겨있었다. 아마 전공을 증명하기 위해 수급으로 보관 한 것 같은데. 퍽 징그러워 역겨웠다.

상자를 닫으며 중얼거렸다.

"이 쓰레기 새끼는 죽어서도 기분 더럽게 하네."

상자를 병사에게 돌려주며, 몸통 이랑 같이 찾아 잘 수습해놓으라고 지시했다.

갈랜이 쓰레기인 것과는 별개로 놈은 귀족이다. 기껏해야 남작위에 불과하지만, 일단 귀족인 만큼 수습 은 해놔야 하리라.

내가 그렇게 전장을 하나둘 정리 해갈 때. 다른 병사가 와서 보고해 왔다.

"백인장님! 살아남은 공국 포로 를 데려왔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 니까?"

척 경례하며 알리는 병사. 나는 병사의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줄줄이 굴비 엮듯, 밧줄에 묶인 포로 대여섯 명이 자리해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포로."

아마도주 중 투항한 공국 병사들인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가,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일단 꿇려."

털썩!

포박된 포로들이 병사들에 의해 눌려 무릎 꿇려졌다. 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하나하나 물었다.

"이중 귀족인 자는 없나?"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귀족이었으 면 장교 계급으로 복무했지 이렇게 평범한 병사로 전장을 구르진 않았을 테니.

포로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폈다. 녀석들은 두려운 것일까. 내 눈길이 닿는 족족 고개를 아래로 처 박고, 어깨를 떨어댔다.

다시 물었다.

"혹은 십인장 이상 지휘관인 자 가 있나?"

녀석들의 군복을 살폈다. 역시나 지휘관 계급장을 단 포로는 없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공국측의 중요 정보를 알고 있는 놈. 없나?"

역시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지시했다.

"모두 죽여."

"……!"

"살려주십시오!"

"맙소사! 제발!"

내 말에 포로들이 경악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들이 오열하듯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나는 재차 지시했다.

"살려줄 이유가 없지. 죽여라."

나는 인도주의자가 아니다. 하물 며 이 세상에는 제네바 협약 같은 고상한 조약도 없다.

몸값을 받을 수 있는 귀족도 아니고, 지휘관도 아니며, 심지어 뽑아낼 정보도 없는데 .

포로를 살려줄 이유. 없다. 저렇게 살려놔 봐야 식량을 소모할 뿐 이니.

나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려, 임시로 설치된 지휘관 천막으로 향했다.

푹. 콰직.

등 뒤로 병사들이 포로들을 베고 찌르는 소리가, 그리고 째진 단말마 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지휘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경갑을 해제하고 투구를 벗어 구석에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임시 침 구류에 몸을 눕혔다.

일반 병사들의 천막보다 더욱 커다란 백인장 천막. 그곳에 나는 누 워 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 정보."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한지훈][제국 백인장]

[스킬 : 백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14]

[민첩 23]

[내구 5]

[체력 9]

[마나 0]

(남은 포인트는 40pt 입니다.)

그동안 성장한 내 능력치가, 홀로그램의 형식으로 시야에 자리했다.

시선을 내려 어떤 부분을 주시했다.

(남은 포인트는 40pt 입니다.)

여유 포인트가 무려 40pt.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보유하게 된 포인트다.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해."

보고가 끝난 직후, 포인트를 수 령 받았을 때.

그때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 여러 강적을 해치우고, 퀘스트를 공략하며 능력치를 상향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포인트. 이 염병할 게임 속 세상에서 나를 강화시켜주는 시스템의 보 정이다.

그렇기에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았었다.

40pt.

꽤나 많은 포인트다. 이 정도 포인트가 있다면, 지금의 나와는 비교 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해."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포인트를 많이 퍼주는 거지?'

지금 시점은 게임으로 따지자면 튜토리얼에 불과했다. 소설로 따지 자면 도입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초반에 불과한 상황.

헌데 벌써부터 포인트를 이리 많이 퍼준다니.

말이 안된다.

"업적 포인트라."

조금 억지 같지 않나?

고작 백인장으로 진급했을 뿐이었다. 헌데 시스템에서는 업적 포인트랍시고 10pt를 더 얹어 줬다.

절대 이런 게임이 아니었는데 .

[블랙 오케스트라.]

현실에 있을 적. 내가 그것을 클 리어 하긴 했지만, 더럽게 어려운 게임이었다.

불친절한 UI. 쓸데없이 세세한 명령. 점차 강대해지는 적. 빈약한 아군. 제한된 정보량.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이벤트.

절대 쉬운 게임이 아니다.

클리어 한 것은 내 실력, 그리고 운이 따라준 결과물이었다. 만약 운 이 조금만 안 따라줬다면, 그리고 내 실력이 조금만 뒤떨어졌다면 결코 그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나는 기억하고 있다.

[유저의 점수가 너무 높습니다!]

[난이도를 조율합니다.]

검은색 공간 속. 난이도를 변경 한다는 통보.

[적정 난이도 : 악몽 (Nightmare)]

[난이도를 변경합니까?]

[수락/거절]

난이도 이름이 '악몽(Nightmare)' 이라고했다. 그 괴랄할 정도로 어려운 게임이, 더욱 어려워졌다.

헌데 지금의 나는 잘 해나가고 있다.

백인장으로 진급했다. 스킬과 능력치를 해금하고 상승시켰다. 여유 포인트 또한 40pt에 달했다.

이 정도의 스펙이라면, 게임의 초반부쯤이야 아주 쉽게 헤쳐 나갈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그럴수록 의문이 든다.

"이렇게 쉬운 게임이 아닐 텐데."

본래는 포인트를 받은 즉시 사용 하려고 했었다. 이 정도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면 완벽하게 다음 퀘스 트를 클리어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포인트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앞으로 일어날 일이 어려워서가 아닐까.'

섬뜩한 생각이었다.

물론 나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있다.

어째서 공국이 침공해온 건지. 그이면의 배후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공국을 멸망시킨 다음의 복잡해 지는 전황, 뒤이어 일어날 일들. 점차 등장하는 강적.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모니터 너머로 겪었으니까.

때문에 확신하고 있었다.

이 게임 속 세상에서, 내가 했던 방향대로 일이 흘러갈 것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난이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 말은 시나리오 따위야 얼마든지 바 뀔 수 있다는 소리.

"… 빌어먹을."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포인트를 주시했다.

(남은 포인트는 40pt 입니다.)

여유 포인트창.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소모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어차피 미래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떤 능력치 를 얼마만큼 올려야 보다 유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허나.

포인트를 소모하는 것이 꺼려진다.

게임을 할 적의 나는 신중했다.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한 다음에야 움직였다. 전장의 안개 너머 자리한 적의 움직임을 끝없이 추측하고 예상했다. 신중하고도 정 교하게 병력을 움직였다.

그렇게 해서야 겨우 게임을 클리 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너무 방심 하고 있지 않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알고 있는 시나리오가 비틀리고 더욱 어렵게 바뀔 것 같은 예감. 짙은 안개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은 불쾌한 감각.

혹,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포인트는 아껴놓자."

너무 예감이 안 좋다.

결국 나는 포인트를 사용하는 것을 뒤로 미뤘다.

홀로그램을 꺼트리고, 눈을 감았다. 어지러운 머리가 점차 진정되어 갔다.

점차 밤이 찾아온다.

- 띠링!

[시스템 관리자가 시나리오에 개 입합니다.]

잠결에, 어떤 환청을 들은 것 같다.

"부르셨습니까, 공작 각하."

살풍경한 집무실. 그곳의 문을 어떤 청년이 밀고 들어왔다. 기다란 갈색 장발을 가진 이였다. 허나 그 의 장발은 중간에서 볼품없이 잘려 흐트러져 있었다.

한스 요한바르첸. 공국의 후계자 이자, 한지훈과 대등한 전투를 벌였던 이.

그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한 노인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주 시한다.

"왔느냐. 쓸모없는 놈."

공국의 지배자. 헤임스 요한바르 첸 공작.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한스에게 접근한다.

쯧. 공작이 혀를 차며 중얼거린다.

"패배한 개나 다름없군. 일개 병사 하나 죽이지 못하다니."

헤임스의 말에 한스는 무어라 항 변하지 못했다.

검은 머리의 병사 때문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던 것. 명확한 사실이 었으니까.

헤임스는 냉엄한 눈으로 한스를 주시하고, 한스는 그저 침묵해 아비 의 차가운 시선을 감내한다.

집무실에 침묵이 인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네놈은 이제부터 백인장이다."

문득, 헤임스가 그리 말했다.

그에 한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분명 한스는 일개 제국 십인대 하나 처치하지 못하고, 거점 확보조차 하지 못한 채 귀환했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심한 처벌이 뒤따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헌데 처벌은커녕 오히려 진급해 백인대를 지휘하라니. 무슨 일인 것 일까.

아직 해임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야습을 준비하라. 우리는 오늘 새벽, 군단을 진군시킬 것이다."

"공작 각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 니까? 본래라면 일주일 뒤 침공 아니었습니까?!"

한스는 당황해 물었다.

한스는 헤임스 공작의 아들이자, 공국의 후계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대략적인 전쟁 계획을 알고 있었다.

본래 공국군의 침공일은 일주일 뒤였다. 그때쯤 모든 부대의 재정비 와 병참선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뒤, 공국의 군단병력이 진군. 그와 동시 다수의 백인대가 고지대 거점을 장악하기 위해 산개 후 장악. 그것이 공국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헌데 지금 헤임스는 말하고 있다.

당장 몇 시간 뒤 공국 군단이 진군할 것이라고. 그리고 백인대를 지휘하라고.

갑작스럽게 바뀐 침공계획.

한스가 당황하고 있을 때. 헤임 스가 후욱,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뇌까렸다.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라니.

그에 한스는 불안한 눈으로 제 아비를 주시하고, 헤임스는 멍하니 이어 말했다.

"갑작스레 목소리가 들렸다.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일주일 뒤 진군하는 것은 오직 패배뿐이라고. 지금 당장, 가능한 빠르게. 군을 진군 시켜야 한다고…."

헤임스의 목소리에서 점차 기운 이 빠져나간다.

그리고 한스는 볼 수 있었다.

헤임스의 눈동자가 점차 풀려간다.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초점 이 흐트러지고 생기가 흐릿해진다.

"당장… 진군해야… 한다."

헤임스는 그렇게 뇌까리고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평소처럼 또렷하게 되돌아와 있다.

"한스. 네놈은 증강백인대를 움직여라. 가문 친위대인 바첼부대 병사 삼백을 주지."

"…저도 본대와 함께 진군합니까?"

한스는 갑작스런 헤임스의 변화에 당황스러웠지만, 무어라 지적하지 못했다. 그 변화가 아주 일순간에 불과했으므로.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물어볼 뿐.

그에 헤임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는 본대가 아닌, 다른 곳을 노린다."

"다른 곳이라 하시면."

"네놈이 꼴사납게 쫓겨났던 곳이다."

한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제국 놈들이 고지대 거점을 점 거했던 우리 군을 몰살시켰다. 필시 그곳에 마법사를 배치할 요량이겠지. 하지만 어림없다."

그가 날카롭게 웃었다.

"네놈은 아군 주력이 출발하는 것과 동시, 삼백의 병력을 이끌고 그곳을 탈환하라. 놈들이 마법사를 부르기도 전에 그곳을 몰살시켜버린다."

한스는 멍한 눈으로 제 아비를 바라봤다.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갑작스러운 계획의 변경, 헤임스 의 이상한 행동, 그리고 눈가에 일 렁이는 미약한 광기까지.

그는 꺼림칙한 감정을 숨기며 경 례했다.

"명령을 받듭니다. 공작각하."

"썩 꺼져라. 거점을 탈환해라. 반드시, 네 목숨을 걸고."

덜컹.

한스는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기묘한 불안감에 표정을 찌푸 렸지만, 재차 발걸음을 옮겼다.

명령받은 이상 따라야 한다. 아 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곧 제국 침공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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