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9화 (19/390)

19화.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탁 트인 거점 공터 지역의 양옆 숲속에서 쏘아지는 화살 세례였다.

궁병대의 일제사격. 뒤이어 계속 되는 무차별 사격이 놈들을 노린다.

"화살 공격이다! 당장 몸을 피해!"

"으아아악r 공국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다. 기껏 갖춰놨던 전열이 흐트러지고 혼돈과 공포가 놈들을 잠 식해갔다.

나는 그 꼴을 바라보며, 목에 가 져다 댔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좋아. 제대로 먹혔네."

방금 전 했던 목을 긋는 제스처. 그것은 적장에게 하는 도발임과 동시, 궁병대에게 보내는 사격개시 신호였다.

시선을 내려 전술창 미니맵을 바라봤다.

"완벽해."

절로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1번, 2번 척후조가 놈들의 후방 으로 파고들어 숨어있는 궁병들을 사냥했다. 아군의 궁수대가 좌우 숲에 배치되어 양각을 잡아 사격을 개시했다.

모두 내가 지시한 일이었다.

나는 백인대 지휘권을 계승받고, 스킬과 능력치를 올린 직후 재빠르 게 움직여 병력을 추슬렀다.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던 병력들을 규합. 전투조에겐 전열을 세우라 명 했고, 궁병조에겐 좌우 숲속으로 파고들어 대기하라 지시했다.

그리고 지금 이상황이 되었다.

"망할! 전열을 망치지 마라!"

"화살 공격은 곧 멎을 것이다! 자리를 지켜라! 도망치지 마!"

공국 놈들의 전열이 흐트러진다. 적 지휘관은 병사들을 추스르려 하지만, 화살에 맞을까 겁에 질린 공국 병사들이 하나둘 진형을 벗어나 달려나간다. 그 수가 퍽 많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것일까.

"탈영은 즉결 처형이다!"

적 백인장이 도망치는 병사들을 하나둘 참했다. 뒤로 달려가던 공국병사들이 제 지휘관에 의해 등이 베여 쓰러졌다.

허나 그럼에도 병사들은 도망쳤다.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의 한계였다. 날아오는 화살에도 도망 치지 않을 정도로 단련되기 위해서 는, 오랜 훈련과 나름의 실전경험이 필요하다.

화살 세례에 위축되어 혼란에 빠진 공국군.

기회는 이때다.

"돌진 준비!"

칼을 치켜들며 크게 외쳤다.

지휘술 스킬이 강화된 덕분일까.

내 목소리는 더욱 중후하고, 카리스마 있게 바뀌어 있었다.

철그럭, 철컥!

병사들이 검과 창을 들어올린다. 나와 병사들이 들어 올린 냉병기가 햇빛을 반사해 번쩍인다.

검을 아래로 내려그으며, 명령했다.

"돌격!"

제국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발을 굴렀다. 지면을 즈려밟고, 검 과 창날을 앞으로 내민다.

동시. 화살 세례가 멈췄다. 아군 의 돌격을 인식한 내 궁병대가 사격을 중지한 것이다.

나는 목청을 돋웠다.

"가라! 가서 모조리 다! 죽여버려 라!"

지금 돌진하는 아군의 수는 고작 오십여 명에 불과하다.

반면 적의 수는 약 백여 명.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다.

허나 지지 않을 것이다.

적은 갑작스러운 화살공격에 흐트러져있다. 게다가 놈들은 그 허접 한 공국군. 제대로 된 훈련도 변변 찮은 장비도 없는 허접쓰레기들이다.

하지만 이쪽은 정규군이다.

오랜 훈련 기간, 더 나은 장비. 더해 이쪽은 완벽한 통제를 되찾았다.

절대 질 수가 없다.

- 콰앙!

제국 병사들이 적진으로 난입해 창과 검으로 공국군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잘 통제된 오십의 충격력이 허술한 공국의 전열을 깨부숴 들어 간다.

지휘관이랍시고 뒷짐 지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나 또한 병사들과 함께 놈들의 전열에 난입했다.

다리로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도약했다. 당혹에 찬 공국 병사들의 모습이 시야에 잡힌다.

"뒈져!"

쉬익!

검을 찔러 넣었다. 민첩이 드디어 20을 돌파한 덕분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빠른 쾌검이 발현되었다.

시퍼런 검광이 적을 향해 파고들었다.

콰직. 공국 병사의 모가지를 파고들어 가는 나의 검날. 적병의 목에서 피 분수가 치솟는다.

녀석을 발로 차 쓰러뜨리며, 검 날을 회수. 또 다른 적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다른 적의 옆구리에 검날이 파고 들어갔다. 손잡이를 비틀어 장기를 난자한다. 놈의 입에 피거품이 올라 왔다. 녀석을 지나치며 외친다.

"적 지휘관은 어디 있나!"

달려 나가며 계속해 적병을 베었다.

하나, 둘, 다섯, 일곱. 내 앞을 가로막는 공국 병사들을 베고 죽이며, 앞으로 전진해갔다. 절삭음과 고통에 찬 비명이 청각을 어지럽힌다.

일개 병사들은 결코 나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몇이나 베었을까.

"망할! 물러서지 마라!"

공국 병사들 사이, 보였다.

유독 화려한 갑주를 입고 있는 이의 모습. 그리고 그 갑주의 투구 와 가슴팍에는 공국군 백인장 마크 가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미소가 흘러나왔다.

"찾았다."

내가 나직이 읊조리는 동시,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루디아 램퍼][공국군 증강백인장]

기억에 없는 이름이다.

그럴 수밖에. 백인장이라곤 하나, 게임 초창기에 죽어버린 녀석이다. 기억할 가치도 없는 잡몹일 터.

분명 가진 능력도 변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놈이 가진 계급은 백인장 이다. 잡는다면 나름의 전공이 되리라.

"후욱."

숨을 한껏 내쉬며, 돌진했다. 내가 향하고자 하는 곳은 적장이 서 있는 중앙.

가로막는 공국군이 좀 많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콰앙! 콰직!

내 돌진을 인식한 것일까. 바로 주위에 있던 병사들 또한 내 양옆을 보좌해줬다.

기다란 창날이, 날카로운 검광이. 내가 향하는 방향의 적병을 배제해 간다. 나는 열린 길을 따라 계속해 달려나간다.

"도망치지 마라! 빌어 처먹을 새끼들아아아!"

놈이 악을 내지르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루디아 램퍼. 공국군 백인장. 녀석은 지금 명백히 분노해있다. 겁먹 은 공국군이 하나둘 전열을 이탈하고 있기에.

사실 같은 지휘관인 입장으로서 약간의 측은한 감정이 올라왔다. 지휘하는 병사들이 제국군 같은 강군 이었다면 전열이 이리 쉽게 무너지 진 않았을 터다.

하지만 부하를 잘 만나는 것은 운이다. 그리고 운도 실력. 녀석을 봐줄 생각은 없다.

파앙!

검을 휘두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잡병이 하나둘 피 흘리며 쓰러져 간다. 내 검날은 민첩하게 가로막는 적을 하나둘 배제해갔다. 검광이 번 뜩일 때마다 나와 놈 사이를 가로 막는 병사가 쓰러져간다.

그렇게 몇의 공국 병사들을 베어 지나치자, 나는 마침내 적 지휘관의 지척에 이를 수 있었다.

놈이 나를 발견했다.

"너는…!"

이쪽을 확인한 녀석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른다. 나는 무어라 말하지 않고, 그저 검을 내찔렀다.

파앙!

파공성. 그리고 곧게 나아가는 검광. 일개 병사들은 결코 막을 수 없는 검격이다.

허나, 꼴에 백인장이라는 것인가.

채앵!

놈이 기민하게 반응해 내 검격을 막아냈다.

녀석의 검술은 나름대로 출중했다. 적어도 내 공격을 막을 수 있을 정도라니. 일개 병사 수준의 무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

놈이 내 검날을 비껴치고는 순식간에 반격해온다.

"병사 주제에, 감히 나를 노리는 것이냐!"

검날이 사선으로 내리쳐진다. 그에 검신을 비스듬히 치켜들었다.

키기기기기기직!

녀석의 검날이 내 검신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무난한 홀리기.

그러나 놈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죽어라! 죽어!"

녀석이 계속해 검을 휘둘러 공격 해왔다. 중갑을 입은 만큼 근력은 출중한 것일까. 놈의 검격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실린 힘이 퍽 중 후했다.

쾅! 콰앙!

파공성과 검격음이 쩡쩡 울려댔다. 나는 놈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 거나, 흘려냈다.

확실히 백인장이기에, 나름의 무력을 지니고 있다. 더해 꽤나 높은 수준의 근력까지. 묵직한 충격이 내 검신을 계속해 두드린다.

하지만.

'뭐. 이 정도인가.'

그래봤자 나에게는 안된다.

재차 기세를 끌어올린다.

- 띠링!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이 활성 화됩니다.]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이 활성화됩니다.]

드디어 엑스트라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러자 내 오감이, 온몸의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져 절호조에 달 한다.

사고가 가속되었다. 온몸의 피가 들끓는다. 그리고 녀석의 검이 쇄도 해오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집중 스킬 의 가속효과.

'이만 죽어라.'

가속된 사고 속. 검을 움직였다.

집중이 능력을 증폭시켰다. 전투 분석이 놈의 자세를 읽고 드러난 허점을 찾았다. 검술 스킬이 검로를 인도했다.

검을 당기고, 자세를 낮췄다. 하체에 힘을 모은다.

그리고 쏘아지듯, 검을 내찔렀다.

- 콰앙!

터져 나오는 파공성. 공간을 꿰뚫는 한 줄기 검광.

검날이 녀석의 검신을 스치듯 지나쳐, 놈의 목을 꿰뚫었다.

퍼억!

붉은 피가 후드득 튀었다.

"커…'?!"

목이 꿰뚫린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가. 놈이 검을 들어 올려 다시 나를 치려 한다. 하지만 녀석 의 손아귀에는 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탱그랑.

결국 놈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떨어지고,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진다.

"지휘관 처치."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성장했다. 이제 공국 백인장 정도의 적이라 한들, 내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백인장을 죽인 건 처음이군."

중얼거리며 검을 뽑아들고는,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내 주위에는 제국군 병사들밖에 없었다. 보이는 공국 놈들이 라곤 주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뿐.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시선을 던지니 제국 병사들이 계속해 공국 병사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완전히 압도하고 있어.'

예상대로였다.

제국군에 밀린 공국 전열이 뒤로, 뒤로 물리다가 결국 완전히 붕 괴되었다. 놈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도망치는 공국군을 제국측이 추격 한다.

"백인장님!"

내가 그 꼴을 멍하니 주시하고 있을 때, 한 병사가 다가왔다.

4번 전투조장 라이들렘이다.

녀석이 감탄한 눈으로 말해왔다.

"방금 전 모습을 봤습니다. 단신 으로 적 장교를 처치하다니, 대단하 셨습니다!"

"그러냐. 일단 현황 보고부터."

"알겠습니다!"

처억. 녀석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했다.

나 또한 병사이니만큼 평대를 할 법한데, 어째 존경심 가득한 눈치다. 방금 전 내가 보인 모습이 그만큼 대단하게 여겨진 듯했다.

"현재 적의 전열을 완전히 파훼 했고, 남은 잡병들이 뒤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전투피해는?"

"아군의 피해는 아직 정확히 확인할 순 없지만, 경미합니다. 도망 치는 공국 놈들을 추격한다면 완전 섬멸할 수 있습니다."

"좋아."

부응!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붉은색 핏물이 녹음 어린 대지 위로 후드득 떨어진다.

"나머지 잔당들까지 추격해 모조리 죽여 버려라. 굳이 살려줄 이유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라이들렘이 재차 경례하고는 뛰어갔다. 이제 내지시는 다른 전투 조원에게도 전파되어 공국 놈들을 계속해 추격할 것이다.

나는 군복 소매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전쟁인가."

이거점 점령전 미션이 전면전 전 마지막 퀘스트였다. 다음 전투부터 군단 규모의 전쟁을 볼 수 있으 리라.

"자, 그럼 이제 남은 건…."

시선을 돌려, 거점 한 켠에 설치 중 방치된 '비콘'을 바라봤다.

비콘. 마나를 이용해 좌표 정보 와 음성을 송수신하는 , 군사용 마법 아이템.

그것이 공터 한 켠에 덩그러니 자리해 있다.

나는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몇 포인트나 받을 수 있으려나."

와해되었던 부대를 재규합했고, 백인대를 지휘해 승리했으며, 더해 적 지휘관까지 직접 처치했다.

나름대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상황.

이제 비콘으로 전투 결과를 보고 하면, 포인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