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빌어먹을."
전투가 끝난 뒤. 나는 나무에 기대어 나직이 욕지거리를 뇌까렸다.
한스를 놓쳐버렸다.
내 검격은 분명 치명상이었다. 목의 피부 아래에 자리해있는 놈의 동맥까지, 확실히 절삭해버렸다. 녀석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허나 한스에게는 포션이 있었다.
"염병할, 개 같은 새끼들!"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크게 소리 쳤다.
억울해 미칠 것 같다. 다 죽인 네임드 유닛을 살려 보내다니.
그놈의 포션만 없었다면, 놈을 확실히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으윽……"
크게 소리쳤기 때문일까. 가슴과 복부에 아릿한 고통이 올라온다. 부 들거리는 손으로 다시금 내 배를 눌렀다.
부상이 너무나 심각하다.
나는 장비하고 있는 경갑을 벗어 살폈다. 그리고는 혀를 쯧 찼다.
"나 어떻게 안 죽었냐."
내 경갑은 이곳저곳이 움푹 패어 있었다. 모두 한스 놈에게 얻어맞아 생긴 흔적이다.
검격, 그리고 권격. 놈의 공격은 한 방 한 방이 묵직했고, 위협적이었다.
이 작은 갑옷이 내 목숨을 구했다.
만약 갑옷이 없었다면 진작 가슴을 꿰뚫렸거나, 혹은 장기가 진탕이 되어 쓰러졌을 것이리라.
"새끼, 더럽게 세네."
확실히 한스는 강했다.
놈에게는 고귀한 혈통이, 그리고 재능이 있다. 녀석의 능력치는 나를 압도했고, 검술의 경지 또한 이쪽을 상회했다.
아마 저 정도 무력이라면 기사 후보생 정도는 되지 않을까.
본래 내 능력이었다면 결코 생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살아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스킬이 없었다면 진작 죽었겠지.'
엑스트라 스킬 '집중'과 '전투분 석'.
집중은 가진 모든 능력을 전투에 끌어다 쓸 수 있게 해줬다. 전투분 석은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여, 적의 움직임과 행동을 예상할 수 있게 해 줬다.
만약 내게 스킬이 없었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으리라.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찌그 러진 경갑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였다.
"십인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한 병사가 말을 걸어왔다. 시선을 돌려 확인해보니 역시나 카일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반파된 경갑을 보여주며 말했다.
"너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음. 그렇게 멀쩡하게 말하시는 걸 보면, 괜찮아 보이는군요."
"망할 놈."
카일이 이죽 웃고,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녀석은 한동안 낄낄거리더니 문득 읊조렸다.
"그나저나. 많이도 죽였군요."
카일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에 나 또한 녀석을 따라 지척을 살폈다.
공국 병사들의 시신이 지면에 어지러이 흩어져있다.
"적병 열다섯을 처치했습니다. 꽤 괜찮은 전공입니다."
"… 아군 피해는?"
"다행이 전사자는 없습니다. 다만 중상이 둘입니다."
중상자라. 하긴, 교전비 1: 3의 전투였다. 부상자가 없을 리가 없다.
"누가 다친 거지?"
"아르덴이랑 리버입니다."
둘 다 이번에 배치된 신병들이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아프지만 부상자의 상태를 확인해야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부상자들 로 향했다.
"아르덴. 리버. 상태는 좀 어떠 냐."
"십인장님…."
녀석들의 상태를 살폈다.
둘 다 상태가 좋지 않다. 아르덴 은 팔이 부러졌고, 리버는 허벅지를 깊게 베였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모양.
나는 녀석들의 곁에 다가갔다.
그때.
"감사합니다."
부상자 아르덴이 그리 말했다.
감사하다니? 다소 생뚱맞은 말에 나는 녀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녀석의 말이 이어진다.
"십인장님께서 저희를 살릴 거라는 말. 사실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지휘관들처럼 전투 전 으레 하는 말이라 여겼었죠."
전투 시작 전. 내가 녀석들에게 한 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 나는 강하다.
- 내가 너희들을 살릴 것이다.
- 그러니 너희들은 나를 믿어라. 내지시에 따라라. 나와 함께 싸워 라.
되는대로 주워섬긴 말이었는데 역시 당시에는 그다지 믿음을 주지 못했나 보다.
"하지만 십인장님의 말은 거짓말 이 아니었습니다. 십인장님께선 공국 놈들을 해치웠고, 결국 저 괴물 같은 놈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그 괴물 같다는 놈은 아마도 한스를 말하는 것이리라.
아르덴이 감격에 찬 눈을 하며, 내 손을 꽉 붙잡았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십인장님."
픽. 가벼운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저 전투 전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지금, 그 말이 좀 다르게 느껴졌나 보다. 저리 감격한 모습을 보이다니.
나는 아르덴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고마우면 나중에 술이나 사라."
아르덴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직이 중얼거렸다.
"… 일단은 살아남은 것에 만족하 자."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다.
더해 네임드 유닛인 한스에게 나름의 타격 또한 먹였으니 , 어느 정도의 포인트를 기대해도 좋을 터.
나는 주위에 자리해있는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좋아. 임무는 끝났다. 부상자 추 스르고, 짐 챙겨. 이제 복귀한다."
나와 부하들이 기지로 귀환한다.
* * *
파트라헴 전진기지의 지휘관 그 레드. 그가 자신의 손에 들린 서류 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곧 지원군이 도착하겠군."
그의 손에 들려있는 서류는 다름 아닌 전쟁 전 작전 계획서였다.
지원군의 규모, 소속, 그리고 보 급계획과 기지증축계획까지 기재되 어있는 두터운 종이 뭉치.
그레드의 눈이 서류를 홅었다.
그는 서류에 올라와 있는 지원군 의 목록을 하나하나 살피며 파악하 기 시작했다.
"북부 제 3군단. 보병 2만 1천. 기병 3천."
먼저, 제 3군단.
제국 북부에 배치되어있는 군단 이다. 총원 2만 4천에 달하는 대군. 본래는 북부 주요 도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지만, 곧 재정비해 이곳 접경지대에 배치된다 한다.
제국 정복전쟁 당시 북쪽으로 진군했던 정예군이다. 나름대로 활약하리라.
"볼로냐 전투기사단. 총원 천."
다음으로 볼로냐 전투기사단.
볼로냐 전투기사단은 제국 서쪽에 자리해있던 대규모 기사단이다. 그리고 마나를 다루는 기사들이 으레 그러하듯, 무지막지한 무력을 지 니고 있다.
만족스러운 것일까. 그레드가 고개를 주억였다.
"다른 기사단도 아니고, 볼로냐 전투기사단이라. 정말 든든하군 그래."
수없이 전열을 돌파하고 적의 전선을 붕괴시키던 엘리트 기사단이다. 그리고 그런 볼로냐 기사단을 북부에 배치하겠단 것은, 순식간에 공국군을 쓸어버리겠다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그레드의 시선이 계속해 서류를 읽어 내려가고, 곧 익숙한 단체의 이름이 나왔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그가 멍하니 서류를 바라봤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정복전쟁 당시, 다수의 소국을 파괴하고 왕궁을 날려버렸던, 호전성으로 따지면 제국 제일의 전투마 법단.
그 라브리에 전투단이 이곳에 배치된다니.
"황제 폐하께선. 아예 공국을 멸망시켜 버릴 심산이신가."
막대한 화력을 가진 마법사들이다. 그들이 이곳에 배치된다라.
제 3군단에, 볼로냐 전투기사단, 더해 라브리에 전투마법단까지.
무시무시한 전력이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공국 따위 금세 멸망시켜 버릴 수 있으리라.
"……."
그레드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집무실 한 켠에 걸려있는 한 쌍의 대검을 바라봤다.
그가 현역일 적 수많은 적병을 베고 쓰러뜨렸던 쌍검.
"전면전이라."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제국은 팽창을 멈추고 내실을 다 지고 있다.
마지막 전쟁이 10년 전. 제국은 오랜 시간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향유했으며, 발전의 시기를 거쳤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전쟁이 일어나려 한다.
"이번에는 공국인가. 멍청한 놈 들."
확실히 공국은 어리석었다.
다름 아닌 제국을 건드리다니. 녀석들은 제국의 호전성을 얕봤다.
이전쟁이 끝났을 때, 공국이라는 국가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리라.
그가 그렇게 검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였다.
"천인장님!"
벌컥.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 왔다.
그레드가 시선을 돌려 입장한 이 를 바라보니, 다름 아닌 그의 부관이었다.
"부관이군. 무슨 일인가?"
"한지훈의 척후조가 돌아왔습니다."
"…그래. 한지훈이 돌아왔다고."
그레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가 부관에게 지시한다.
"녀석을 호출해라. 직접 보고받고 싶군."
나는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와 봤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테이블 위 자리해있는 커다란 전술지도, 제국기, 그리고 벽 면에 걸려있는 한 쌍의 검까지.
달라진 게 있다면 책상 위에 수 북이 쌓여있는 서류일까.
"아, 드디어 왔군. 척후조장 한지훈. 기다리고 있었다."
바스락. 그레드가 읽고 있던 서류더미를 정리했다.
그가 한탄하듯 말했다.
"전쟁 준비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단 말이지."
저 두터운 서류량을 볼 때, 확실히 그래 보인다.
하긴. 군단 규모의 병력이 배치 되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에 따른 인사처리, 보급안과 예산안, 전투계 획까지.
업무량이 폭증할 수밖에 없다.
내 쪽을 바라보던 그가 문득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자네. 그 몰골은 뭔가?"
나는 시선을 내려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착용하고 있는 경갑의 이곳저곳 이 패이고 찌그러져 있다.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자상이 아로새겨져 있고, 군복자락에 피가 묻어있다.
말 그대로 처참한 모습.
"꽤나 힘든 전투였나 보군."
맞다. 더럽게 힘든 전투였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경례했다. 그에 그레드가 내 경례를 받는다.
"좋아. 십인장 한지훈, 일단 보고 하게. 목표지점의 정찰 결과. 그리고 전투 내용까지."
"알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테이블 앞에 섰다.
손을 뻗어 지도를 짚으며 보고를 시작했다.
"저희는 야음을 타 움직였고, 하루 동안 행군해 정오 무렵 목표지 점에 도착했습니다."
"잠깐. 야간에 움직였다고? 위험 했을 터인데."
"밤에도 길을 찾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내게는 미니맵이 있었으니까.
"뭐, 무사히 도착했다면 다행이지. 하지만 다음부터는 야간행동을 지양하도록 하게. 자네가 길을 잘 찾는다 해도 병사들이 낙오될 수도 있으니 ."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야간에 움직이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긴했다. 만약 한스가 없었다면, 안전한 주간에 움직였을 거다.
하지만 그 정도로 한스가 위협적인 존재였다. 야간에 움직이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결국 만나버리긴 했지만.
나는 보고를 계속했다.
"정찰 결과, 목표 지점이었던 고 지대는 완벽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국군의 진군로를 완전히 관측할 수 있는 시야를 가졌고, 매 복과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습니다. 마법사를 배치하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런가. 역시 마법사는 그곳에 배치해야겠군."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내 말에 그레드가 시선을 올려 나를 바라본다. 나는 잠시 뜸들이고는 이어 말했다.
"적 또한 그곳을 탐내고 있습니다. 저희가 정오 무렵 도착해 모든 조사를 마쳤을 때, 공국군 삼십인대 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접근해왔습니다. 놈들 또한 시야 확보를 위해 고지대를 정찰하려 했겠지요."
예상했던 것일까. 그레드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가 갔던 고지대는 너무나 완벽한 곳이었다. 적도 아군도 탐낼 만한 시야를 가졌으니 .
공국측에서 요충지로 여길 법할 터.
"… 저희는 인근 수풀에 매복했고, 이동하던 공국군을 덮쳤습니다. 그리고 전투를 진행했습니다."
내가 손가락으로 어떤 지점을 툭짚었다. 전투가 일어났던 고지대 숲 이었다.
"적병 삼십여 명 중 스물셋을 처 치했습니다. 지휘관은 처치하지 못 했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중상 둘입니다."
"정찰 임무를 완벽히 완수하고. 더해 아무도 죽지 않고 삼십인대를 격파한 건가… 훌륭하다, 한지훈."
그레드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내가 세운 전공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
그의 미소와 동시.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서브 퀘스트]
[고지대 거점을 정찰, 결과를 본 진에 전달하라.](완료)
[서브 퀘스트 - '고지대 정찰'을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시나리오보다도 더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가 추가로 정산 됩니다!]
[정산 포인트 : 10pt]
[추가 정산 포인트 : 7pt]
(남은 포인트는 17pt입니다.)
17포인트라. 꽤 괜찮은 수확이다. 이 정도 포인트가 있다면, 능력치를 훨씬 더 상향할 수 있으리라.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어떤 능력치를 상향시킬까.' 이 포인트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부족한 체력을 상향시켜 보완할 까. 아니면 민첩을 더욱 늘려 내 강점을 살릴까.
선택지는 다양하다. 확실한 건, 나는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거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 한지훈. 그러고 보니 알려주 지 않은 게 있었군."
문득 그레드가 말했다.
"네 소속이 바뀌게 되었다."
"소속이라 하시면."
"자네는 여태까지 십인대 규모의 작전 활동을 해왔다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자네의 척후조는 4번 백인대에 배치될 것이다."
"4번 백인대…."
갑작스러운 소속의 변경.
…기억나는 것이 있다. 나는 그 레드에게 물었다.
"혹시 제 상관 백인장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것 아니지."
그레드는 고개를 주억이고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아무래도 인사서 류인 것 같다.
그는 잠시 서류를 훑더니, 알려 줬다.
"갈랜 알디니. 이번에 자네가 소속된 4번 백인대의 지휘관이다. 얼마 전 군사학교를 수료하고 배치된 신입 백인장이지."
"갈랜 알디니…."
알고 있는 이름이다.
표정을 찌푸렸다.
'그 새끼가 등장할 때가 되긴 했 지.'
한스 요한바르첸이 외부의 대적자라 한다면, 갈랜 알디니는 내부의 적이었다.
나는 고민한다.
'놈을 어떻게 처리할까.'
나는 알고 있다. 녀석이 내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칠지.
하지만 놈은 공국군이 아니다. 같은 제국군, 더해 내 직속상관이 되는 이다.
죽여야 할까. 아니면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려야 할까.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