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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1화 (11/390)

11화.

나는 수풀 속에서 검을 내찔렀다.

시야 없이 내지르는 공격이었지만, 성공을 확신했다. 홀로그램의 붉은 점이 있는 지점을 향해 정확히 검날을 밀어 넣었으므로.

푸우욱.

감촉이 있다.

검격이 수풀과 공기를 꿰뚫고, 인간의 연약한 살과 장기를 헤집는 감각. 그 물컹하고도 불쾌한 감각 이, 검의 손잡이를 타고 전해진다.

손목을 돌려 검날을 비틀었다.

"꼬으, 끄아아아아아!"

한 박자 늦은 비명.

나는 얼굴도 모르는 적병의 장기 를 헤집었다.

"일단 한 명."

이렇게 장기를 난자해 놓으면, 포션이 없는 한 무조건 죽는다.

지면을 박차며 외쳤다.

"기습해! 전투 시작이다!"

내 돌진과 동시, 수풀에 몸을 파 묻고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뛰쳐나 와 적병을 참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수의 공국 병사들이 피를 흘 리며 쓰러져갔다.

미리 매복을 준비하고 있던 제국 군. 그리고 무방비하게 산을 오르던 공국군.

기습이 실패할 리 없다.

놈들은 당황해 우리의 공격에 제대로 반응치 못하고 있다.

이때 최대한 많이 죽인다.

나는 검을 움직였다.

파앙!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울리는 파공성. 반월 모양으로 번뜩이는 검광. 그리고 잘려나가는 적병의 목.

허전한 공국 병사의 모가지에서 피가 뿜어진다. 녹음으로 이루어진 대지 위로 붉은색 얼룩이 흩어졌다.

"무슨, 무슨 일이냐?!"

누군가가 당혹성을 내었다. 그쪽을 바라보았다.

'거기 있었나.'

노리던 녀석을 찾았다.

[한스 요한바르첸][공국 삼십인장]

"당장 무기를 꺼내들어라! 진형을 갖춰라! 방어태세를 다져라!"

한스. 내가 죽여야 할 네임드 유닛.

놈이 검을 뽑아들고는 병사들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에 공국 병사들이 녀석의 주위로 몰려든다.

아마도 방어진형을 갖추려는 것 일 터.

"어림없다!"

공국 병사들이 진형을 짜기 전에, 놈을 죽여야 한다.

나는 지면을 박차고 돌진했다. 극대화된 민첩 능력치 덕분에 몹시 빠른 속도였다.

자신의 지휘관을 노리는 것을 직 감한 것일까. 공국 병사 여럿이 가로막는다.

허나 쓸데없는 짓이다.

"다 죽어라!"

포효하며 검을 내찔렀다.

가장 처음은 사선 베기.

촤악!

검이 우상단에서 좌하단으로, 기다란 사선을 그리며 내리쳐졌다. 나를 가로막으려던 공국 병사 하나의 가슴이 베어졌다. 녀석은 허탈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쿵. 진각을 밟듯 한 발자국 전진. 내 오른발이 앞으로. 검날은 약간 뒤로. 검의 첨단이 지면에 닿을 듯 말 듯 멈춘다.

다시 한번, 사선 베기.

파앙!

또 다른 적병이 베였다. 녀석이 겨드랑이부터 가슴팍에 이르는 자 상을 입고 휘청인다.

녀석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 몸을 낮췄다.

파바박!

방금 전 내 상체가 있던 곳에 여러 개의 창격이 스쳐지나갔다.

과연. 그래도 후계자 놈의 병사 인 만큼, 나름대로 베테랑 병사를 배치한 것인가. 놈들은 다른 공국 병사들보다 기민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래봤자 나보다 약하다.

"뒈져!"

몸을 낮춘 그대로, 적병에게 달 려들었다.

퍼억! 놈의 복부에 내 검날이 박 혀 들어갔다. 창병인 놈은 간격 안에 들어온 내게 반응할 수 없었다.

검을 비틀어 빼냈다. 녀석의 입가에서 울컥 피가 흘러나온다.

재차 날카로운 창격이 쇄도한다. 나는 비틀거리는 공국 병사를 밀어, 적의 창격을 대신 맞게했다. 휘청 이던 놈이 내 대신 창격에 꿰뚫려 절명한다.

"허억!"

아군을 찌르자 당황한 것일까. 공국 창병 놈이 당혹성을 내질렀다.

그때를 노려 검을 휘둘렀다. 파 공성이 일고, 제 아군을 찌른 놈의 목을 긁었다.

붉은 피가 뿜어진다.

"후욱, 후욱!"

전투의 흥분에 거친 숨이 흘러나 온다.

나와 한스의 경로에 자리한 적병 은 더 이상 없다. 한스는 당황한 눈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뿐.

이제 놈을 베어 죽일 차례다.

파악!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검을 뒤로 당겨 내찌를 준비 동작을 마친다.

악을 내지르며 검을 뻗었다.

"뒈져라!"

내 검격이 한스를 향해 쇄도했다.

날카로운 검날이 공기를 양단하고, 푸르른 검광이 반월을 그리며 녀석의 목을 노린다.

허나. 놈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스가 장검을 들어 올려 방어했다.

쩌엉!

검과 검이 맞부딪혀 커다란 검합 음을 토했다. 충격에 검신이 찌르르 울었다.

손이 얼얼하다.

"망할."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검을 회수.

간격을 벌려 한스에게서 물러났다.

단 한번의 검합에 불과했다. 허 나 그 잠깐의 접전 동안, 나는 절 절히 체감할 수 있었다.

'너무 강해.'

예상대로라 할까. 지금의 내게 힘든 적이다.

방금 전공격은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더욱 많은 힘을, 보다 민첩하게, 좀 더 정확하게. 놈의 모가지에 박 아 넣고자했다.

하지만 그런 내 공격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막혀버렸다.

쯧, 혀를 찼다.

'능력치의 차이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긴했다.

놈은 공작의 후계자라는, 꽤나 고귀한 출신을 지니고 있다.

고등 군사 교육과 검술 교육을 받았을 것이 당연할 터. 더해 녀석 의 재능은 결코 허접하지 않다. 분명 나름의 경지를 이루었겠지.

아무리 민첩과 근력을 상향시켰 다 한들, 현재 능력치로 이길 수 있는 적이 아니다.

후욱,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도망쳐야 하나?'

이미 목표했던 거점 정찰은 완료했다. 굳이 공국 놈들과 전투할 필요 없이, 후퇴해서 보고하기만 한다 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물론 이쪽의 체력은 거의 방전되었다. 하지만 방금 전기습 덕분에 열에 달하는 적병을 처치했다. 놈들 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은 만큼, 추격해오진 않으리라….

내가 그렇게 고뇌하고 있을 때였다.

"검은색 머리."

한스가 입을 열었다.

나 또한 고개를 들어 올려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쳤다.

녀석의 갈색 눈동자가 천천히 이쪽을 훑고 있었다.

"검은색 눈동자."

놈이 뇌까리고 있는 건 내 생김새인 듯하다.

한스가 나를 천천히 살펴보더니, 뒤이어 말했다.

"그리고, 십인장치고는 날카로운 검격."

그가 고개를 내려, 들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놈의 호화로운 장식이 박혀있는 장검에는 약간이나마 이가 나가있었다.

녀석은 검날을 지그시 살펴보고 는, 중얼거렸다.

"부하들에게 들었던 특징과 똑같다."

한스가 검을 고쳐 잡았다. 날카로운 검날이 이쪽으로 겨눠진다.

"네놈이 내 초계망을 돌파한 제국 병사로군."

흠칫. 순간 오한에 몸을 떨었다. 놈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살기가 일 렁였기 때문에.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녀석과 눈동자를 마주했다.

기세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듯이.

한동안 검은색 눈동자와 갈색 눈동자가 서로를 노려본다.

어째서 내게 저리 날카로운 살기 를 끌어올리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을 공격해서라고 여기기 힘든, 무시 무시한 적의다.

녀석이 입을 열었다.

"네놈 때문에. 아버지께 실망을 안겨드렸다. 덕분에 삼십인장으로 강등되었지."

곧 한스가 천천히 검을 당겨, 수 평으로 뉘였다. 녀석이 들고 있는 검은 아무런 흔들림 없이 고요하다.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네 목을 베 아버지께 진상하겠다. 그리하여 내 실책을 약간이나 만회하고자 하니."

나 또한 검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내가 돌파했던 공국군 초계망은 놈이 담당하던 구역이었 나 보다.

이런 지랄 맞은 우연이.

게임에서도 듣지 못했던 정보다.

"죽어라."

콰앙!

커다란 파공성이 터져 나온다.

그래, 말 그대로 '콰앙' 이었다. 놈의 검격이 발하는 파공성은 나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이쪽보다 아득히 강력한 놈의 검격이, 찰나에 공기를 꿰뚫어 내 머리를 노린다.

섬뜩.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머리가 새하얘진다.

몸을 움직인 것은 본능이었다.

"큭!"

신음하며 상체를 숙였다. 녀석의 찌르기가 방금 전 내 머리가 있던 공간을 꿰뚫었다.

뒷목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검풍 이 방금 전 검격의 위력을 증명했다.

"쥐새끼 같은 놈"."

빙글. 녀석이 손목을 움직여 검 의 진로를 틀었다. 노리는 것은 숙여진 나의 목.

이를 악물고 옆으로 도약. 녀석 의 검격을 피해내려했다. 검날이 아슬아슬하게 군복자락을 스쳐 지나간다.

허나 완벽히 피해내지는 못했다. 놈의 검로가 변화한다.

쿠궁!

굉음이 일고, 충격이 가슴팍을 강타했다.

"커헉!"

나는 녀석의 검격에 튕겨지듯 날 아가 지면을 굴렀다. 데굴데굴, 시야가 어지럽다. 땅바닥에 안면을 처 박았다. 흙먼지가 입에 파고든다.

"갑주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건가. 운도 좋군, 버러지."

나는 비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빌어 처먹을! 엿같이 아프다. 가슴을 묵직한 통증이 짓눌러댄다.

슬쩍 시선을 내려 내가 착용한 경갑을 바라보니, 움푹 패여 찌그러 져 있다.

일격에 경갑을 이렇게 완전히 우 그러뜨리다니. 저 괴물 자식. 근력 이어떻게 되어먹은 걸까.

"… 퉤!"

입에 고인 핏물을 내뱉었다. 흙 과 피가 섞인 질척한 액체가 지면에 떨어진다.

"더럽게 아프네."

전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어쩌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놈은 아직 본격적인 성장을 하지 않았으니 .

하지만 오산이었다. 저래 봬도 고위 귀족의 자제라는 것인가. 아니 면 본래 가진 재능이 뛰어난 덕분 인가.

녀석은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음에도, 강대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일반 병사들쯤이야 간단히 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살아나가기 힘들 것 같은데.'

불길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녀석, 한스는 나를 증오하고 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녀석의 초계망을 돌파했기 때문에 삼십인장으로 강등된 것이니.

나를 죽여, 자신의 실책을 조금 이나마 만회하고자 하겠지.

'이런 개 같은.'

욕밖에 안 나온다.

저렇게 강력한 힘을 지닌 놈이 살기등등해 이쪽을 죽이려 한다. 절 로 포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아른 거린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검의 손잡이를 더욱 굳세게 부여 잡았다. 이를 악물고, 눈에 독기를 품었다.

강적. 게임에서 많이 봤었다.

나는 천생 게이머였다. 어려운 적을 쳐 죽이고, 고득점을 올릴 때마다 희열을 느끼는.

그리고 그 강적이 지금 내 앞에 있다.

"죽여 버린다."

악을 끌어올렸다. 정신을 집중했다.

놈의 움직임을 살폈다. 녀석의 보폭, 시선, 그리고 날 끝의 방향과, 섬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그 모든 것들을 예의주시했다. 녀석의 행동을 예측했다.

저 개자식을 죽여 버리기 위해 서.

그러자.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와 동시,

"이제 죽어라."

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콰앙!

녀석이 이쪽으로 돌진해와 중후 한 검격을 내질렀다.

횡 베기. 내 검격보다도 더욱 크 고 웅장한 기세를 가진 그 검광이, 공기를 가르고 쇄도한다.

나로선 어찌 할 수 없는 공격이다.

막아내자니 내 근력이 부족하고, 피하자니 민첩이 모자라다. 나는 저 검격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이다.

본래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스킬이 발동되어 있다.

두근!

심장이 맥동했다.

모든 감각이 첨예하게 벼려졌다. 근육의 움직임이, 귓가에 들려오는 파공성이, 날아오는 놈의 검광까지.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그리고 보였다.

'놈의 검로.'

아니. 보인다기보단, 예측할 수 있었다.

녀석의 검이 어디로 향할지. 무엇을 베어버리려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러자.

- 띠링!

[각성!]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을 각성했습니다!]

뭔가 안내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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