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정오 무렵. 나와 휘하 병사들은 기지 밖으로 나와 행군을 시작했다.
막 기지 밖으로 나와 걸어가는 와중, 문득 카일이 말했다.
"저기, 아군 공병대로군요."
녀석의 말에, 나 또한 그가 주시 하고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이곳저곳에 각종 시설을 만들고 있는 제국 공병대의 모습. 그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건설작업에 열중 하고 있었다.
증원될 병력이 지낼 수 있는 막 사건물. 병사들이 식사할 취사장. 주위를 감시할 망루와, 적병을 막아 낼 성벽까지.
꽤 대규모의 증축작업이다. 나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다시피 곧 전면전이 일어날 거다. 그리고 그 최전선이 이곳 파 트라헴이다. 많은 병력이 이곳에 주 둔하게 되겠지."
과거 게임에서 경험했었다.
이 파트라헴 전진기지는 본래 천 여 명의 병사를 수용하는 것에 불과한 규모였다. 접경지대 곳곳에 흔히 널려있는 전진기지에 불과했으니 .
하지만 곧 파트라헴의 규모는 극 대화되어 , 군단 규모의 병력이 주 둔, 추후 침공군을 지원할 수 있는 대규모 병참기지로 변화하게 된다.
"정말 전쟁이로군요. 언제까지나 평화로운 줄 알았는데 ."
"하지만 그래봤자 공국 아닙니까? 아마 전쟁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긴, 우리 제국이 공국 따위에 고전할 리 없지."
병사들이 걸으며 두런두런 대화했다.
그들의 말은 합당했다. 공국은 약소국이고, 제국은 강대한 국력을 지닌 열강이다. 공국과의 전쟁은 순식간에 끝나버릴 것이 분명할 터.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공국과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하다만.'
공국의 침공은 대전쟁의 프롤로 그에 불과하다.
곧 대륙 전체가 휘말려들 거대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야말로 수 많은 생명이 소멸하는 , 아주 거대한 전쟁이.
후우. 한숨을 내쉬며 주위의 병사들을 바라봤다.
'저들 중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주위에 있는 열 명의 병사들. 저들은 결코 약한 이들이 아니다. 그 강군인 제국군에서도, 한층 정예 인 것이 바로 척후조의 병사들.
하지만 앞으로 기나긴 전쟁이 일어난다. 아무리 정예인 저들이라 한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는 얼마 되지 않으리라.
이후 나와 병사들은 오랜 시간 전진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북쪽. 그중에서도 공국군의 침공로를 한눈에 주시할 수 있는 산맥 방향이다.
그렇게 얼마나 행군했을까.
"십인장님."
해가 거의 떨어져 갈 무렵. 누군 가가 나를 불렀다. 확인해보니 이번에 새로이 배치된 신병, 하급 창병 리 버였다.
녀석이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곧 날이 저물 것입니다. 야영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버의 의견은 타당했다. 곧 해 가 완전히 떨어지면 시야가 어두워 질 터. 슬슬 야영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니.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밤이 되어도 우리는 계속 이동한다."
"계속 이동이라니… 위험합니다."
녀석은 밤중의 행군이 두려운 듯했다.
이 세상의 밤은 완전한 야생이다. 이곳저곳에 마물이 튀어나오며, 개중 포악한 종류는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기도 한다.
그런 야밤에, 아무런 대비 없이 움직인다니.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그리고 밤이 깊어진다면, 제대로 된 길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자칫 낙오될 수도 있습니다."
더해 길을 찾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밟아 행군하는 이 땅은 말 그대로 자연의 대지였다. 인위적인 길이나 이정표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는.
헌데 불빛 하나 없는 이 새카만 밤. 그것도 울창한 숲속을 지도 하나 없이, 감에 의지해 움직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괜찮다. 내게는 나름의 보정이 있었으므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십인대 지휘술."
- 띠링!
['스킬 : 십인대 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내 시야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이번에 떠오른 홀로그램에는 아무런 문구가 없었다. 그대신, 나름 대로 상세한 '지도'가 떠올라있다.
세세하게 표기되어있는 등고선. 가운데에 박혀있는 하얀색 점. 그리고 그 하얀색 점 주위에 자리해있는 푸른색 점들까지.
익숙한 화면이다.
게임 속 표시되던 지도. 전투를 벌일 때마다 정신없이 점멸하던 그 미니맵이 지금 홀로그램의 형태로 자리해 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낙오될 걱정은 하지 마라. 이곳 지리는 모두 꿰고 있으니 말이야. 잘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
내 말에 리버는 입을 닫고 발걸음을 옮겼다.
슬쩍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도 많이 불안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공국군에게 들키지 않고 이동하기 위해서는 야음을 타는 것이 최선이다.
쯧, 혀를 찼다.
'아침에 움직이는 것이 편하긴 하다만….' 사실은 나도 주간에 움직이고 싶었다. 적절히 시선이 안 닿는 지형 으로만 조심스레 이동한다면 적에 게 관측당하지도 않고, 보다 안전하 게 움직일 수 있으니 .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놈에게 걸리면. 많이 힘들어진다.'
이미션에서는 네임드 유닛이나 온다.
지금은 일개 기사 후보생 정도의 무력에 불과하지만. 아직 능력치가 낮은 내게는 그 정도만 해도 몹시 치명적이다.
'…일단 녀석을 만나지 않는 것 이 최선이야.'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현재 내 능력치로는 녀석을 상대 할 수 없다. 만약 놈과 조우한다면 목숨을 건사하기만 해도 다행이라 할 수 있으리라.
녀석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더 성장해야 한다.
그렇게 나와 병사들은 천천히, 밤공기를 헤치며 행군해갔다.
* * *
"제국이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차 린 것 같다."
삭막한 공간이었다.있는 것이라고는 자그마한 책상 과 약간의 병장기들. 그리고 벽면에는 커다란 지도가 걸려있는, 넓고도 공허한 방안.
그곳에 두 명의 인영이 자리해 있었다.
"필시 네놈이 놓쳤다는 척후가 우리의 움직임을 전달했던 것이겠지."
한 명의 인영은 중후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었다.
하얀색 턱수염은 기다랗고도 뻣 뻣했으며, 시선은 날카롭고도 강렬했다.
그는 화려한 의복을 입고 있었는데, 일견 그 신분이 범상치 않아보였다.
"… 죄송합니다."
그리고 노인의 맞은편에서 있는 이가 있었으니 .
갈색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길 게 늘어뜨린 젊은 청년이었다.
철그럭. 그가 몸을 움직여 고개를 깊게 박았다. 그러자 그가 입고 있는 중갑이 쇳소리를 일으켰다.
청년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진 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멍청한 놈'."
노인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에 청년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우리의 전쟁 계획이 완전히 노 출되었다. 모두 네 실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한스."
노인의 말에 한스라 불린 청년은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명백한 그의 실책이었다. 자신이 맡은 방면에서 제국 척후조의 침입을 저지하지 못하다니.
심지어 추격으로 보냈던 삼십인 대도 놈들에게 격파되었다.
결국 제국 척후조는 정보를 들고 무사히 귀환했고, 공국의 대규모 침공 계획을 읽어버렸다.
"첩자가 보고해오기를, 군단 규모 의 병력이 북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다. 그중에는 마법사도 포함되어 있다는군."
더해 제국은 공국군의 침공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
공국의 계획과는 점점 틀어지기 시작한다.
만약 한스가 제국의 척후조를 제대로 막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한스. 고개를 들어라."
노인의 말에 한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자리한 것은 노인의 눈동자. 너무나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동자였다.
노인이 고한다.
"너는 강등이다."
"… 강등이라 하시면."
"천인장 직위를 해제하겠다. 삼십 인장부터 다시 시작해라."
덜컹.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네놈에게 천인장의 자리는 아직 이른 것 같군. 삼십인장으로 시작해 네 능력을 중명하고, 실수를 만회하라."
노인이 문고리를 잡았다.
"먼저 시야가 보장된 고지대를 확보해 놔라. 고작해야 십인대 수준 의 임무다.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겠습니다."
"쓸모없는 녀석."
쿵. 노인은 말을 남기고는 문밖 으로 나가버렸다.
적막한 공간 속. 혼자 남은 청년 이 나직이 읊조렸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아버지……"
청년의 이름은 한스 요한바르첸.
그는 요한바르첸 공국의 후계자였다.
한스는 천천히 일어나, 벽에 걸 린 지도를 주시했다.
지도에는 확보해야 하는 고지대 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날이 밝아갑니다."
한 병사가 그리 말했다. 그에 시선을 돌려 동쪽을 바라보니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만나지 않았어.'
저번 게임을 했을 때는, 이동 중에 그네임드 적을 만났었다. 덕분에 게임오버 될 뻔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나는 야음을 타 행군했고, 그런 노력 덕분에 이동하는 와중에 놈과 조우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목표지역을 탐색하고 귀환하는 것뿐.
"자. 이제 고지대를 확보하러 간다. 다들 무장 점검해."
나는 그리 말하고는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오랜만에 듣는 서늘한 소리.
몇 번을 들어도 그다지 익숙해지 지 않는다.
"이상 있는 병사 보고해."
"좋아. 아무도 없군. 이동하자."
나는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으로는 나무를 짚어가며 이동했다.
날이 밝은 덕분일까. 병사들의 이동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밤새 걸었기에 피로한 기색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움직여야 한다.
'녀석이 나타나기 전에 정찰하고 가야 해.'
아마 그네임드 적 또한 고지대 정찰 임무를 맡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 으니까.
하지만 내가 먼저 해당 구역을 확인하고 돌아간다면.
그렇다면 녀석과 마주치지 않고 무사귀환 할 수 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나와 병사들은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근접한 것일 까.
"십인장님. 더 이상 걸을 수 없습니다."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병사들이 가쁜 숨을 헐떡이며 휴식을 요청해왔다.
마음 같아선 들어주고 싶다. 적 절한 휴식을 취해야 일정 이상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요청이다. 지금 잠깐 힘든 것이 전투에서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물론 나도 힘들다.
혹사당한 다리의 근육과 관절은 비명을 내지르고, 전신에는 땀이 쉼 없이 흐른다.
허나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노릇.
나는 가장 앞장서 산을 타고 올라갔다. 그에 병사들은 어쩔 수없이 내 뒤를 따라온다.
그렇게 우리 십인대는 쉴 새 없이 산을 올랐고, 곧.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탁 트인 시야. 청아한 산꼭대기 의 공기.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벌써 정오인 것일까. 태양은 어느새 머리 위에 자리해있다.
"좋아. 시야 상태 확인하고. 주위에 적 있는지 찾아봐."
"알겠습니다."
나는 병사들을 시켜 주위를 정찰 하게했다.
곧 열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적병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한동안 수색하던 병사들이 하나둘 보고해왔다.
"적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 좋아. 훌륭해. 아주 좋아."
내 입가에 절로 만족스러운 미소 가 번져나갔다.
병사들이 별다른 흔적을 못 찾았다는 것은, 네임드 유닛 놈이 아직 이곳에 안 왔다는 소리였다.
정말 다행인 일.
이제 시야 상태만 확인하고 기지 로 복귀한다면,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칠 수 있으리라.
나는 산 아래. 탁 트인 시야를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시야 상태 매우 좋음. 적의 침공로를 완전히 포착 가능한 위치. 마법사 배치에 최적… 적의 흔적 없음. 지형의 이점 덕에 먼저 점령 한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방어 가능."
내 눈으로 이곳을 분석한 내용이다.
귀환해서 천인장에게 똑같이 읊 어주기만 한다면, 내 임무는 완벽하 게 끝난다.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정찰은 끝났다. 이제 귀환한다. 모두 철수 준비해."
"… 십인장님."
하지만 어째서인가.
병사들의 표정이 안 좋아 보인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 쳤다.
'설마.'
주먹을 꽉 쥐었다.
제발 아니기를.
"적 병력을 발견했습니다."
망할!
나는 눈동자를 굴려 시야 한 켠에 떠올라있는 미니맵을 바라봤다.
미니맵의 끝단, 병사들의 시야가 가까스로 닿는 그곳에 붉은색 점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규모는 약 삼십인대."
병사의 보고가 이어진다. 그리고 미니맵에 자리해있는 붉은색 점이 더더욱 늘어났다.
이 정도면 삼십인대 수준.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 병사들 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그러자 보였다.
"적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 산 아래, 자잘한 수풀과 나무 를 헤치며 올라오고 있는 적병의 무리.
삼십여 명의 적. 그리고 그중 유 일하게 중갑을 착용한 귀티 흐르는 놈. 기다란 갈색 머리.
모니터에서 봤던 모습이지만, 낯 익다.
"빌어처먹을."
아무래도 네임드 유닛과 만나버 린 것 같다.
나는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모두 전투준비."
이런 일이 없었으면 싶었는데 .
아무래도 네임드 유닛과 싸워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를 강하게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