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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8화 (8/390)

8화.

"새로 배치된 중급 검병, 아르덴 입니다."

"중급 창병 리버입니다."

"중급 검병…."

나는 복잡한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쪽에 경례 하는 새로운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막 훈련소를 수료한 완전 풋내기들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베테랑인 상급 병사들에 비해선 손 색이 있는 이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내심 한숨 쉬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내가 그레드와 대화한 지 일주일 이 지났고, 새로운 신병이 들어와 십인대가 완전편성 되었다.

그리고 십인대가 완편되었다는 것은, 다음 퀘스트를 진행할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

입술을 짓씹었다.

'아직 능력치를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했는데 .'

근 일주일 동안 노력하긴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훈련장에서 검을 휘적거렸고, 몸을 움직여 근육을 혹 사시켰다.

그 치열한 노력 덕분에, 나는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근력 8]

[민첩 6]

[내구 4]

[체력 7]

[마나 0]

꽤나 눈에 띄는 능력치의 상승.

참고로, 처음 내가 이 염병할 게임 속 세상에 끌려 들어왔을 당시 의 능력치는 이러했다.

[근력 4]

[민첩 2]

[내구 3]

[체력 3]

[마나 0]

정말 처참한 능력치였다.

이런 허접쓰레기 능력치를 저 정도로 상승시키다니. 그야말로 일취 월장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게임 속 세상인 덕분인가. 아니 면 내 노력이 뛰어난 것일까. 능력치가 꽤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근력, 민첩, 체력이 두 배 가량 상승했으며, 내구도 약간이나마 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이 정도 능력치로는 하급 검술 스킬조차 제대로 살릴 수 없으니 .

시선을 내려 여유 포인트를 확인했다.

(남은 포인트는 15pt 입니다.)

15포인트라.

이 정도 포인트가 있다면 이번 퀘스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십인장님."

내가 고뇌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카일이 말을 걸어왔다. 그에 시선을 돌려 녀석을 시야에 담았다.

온몸에 자잘한 자상을 가졌던 카일은 어느새 완전히 회복해있다. 근 이주일 동안 치료소에 처박혀있던 덕분이었다.

녀석이 내게 묻는다.

"지휘소에 다녀오시던데. 뭔가 새로운 임무라도 받으셨습니까?"

아까 전 내가 지휘소로 가는 것을 본 것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속에서 어떤 종이를 꺼냈다.

작전 지도였다.

"그래. 염병할 임무를 맡았다. 자, 모두 주목. 신병들도 편하게 와 서 봐라."

나는 지도를 십인대 숙소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열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몰려들어 지도를 살핀다.

"또다시 척후임무 같군요."

"하지만 적진정찰이 아닌 것 같은데."

"여기는 왜 가는 겁니까?"

병사들의 의문 어린 목소리가 홀 러나온다.

그에 나는 손가락으로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붉은색 화살표는 적의 예상 진군로다. 최소한 군단급의 병력 이 이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거지."

지도에는 두터운 붉은색 선이 여러 개 그어져있다. 군단 규모의 적 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적의 침공 로였다.

"그리고 여기. 산 위 고지대에 보이는 여러 개의 푸른 점들은, 아 군의 방어거점 후보지들이고."

나는 손을 옮겨, 다수의 푸른색 점들 중 유독 높은 곳에 있는 점을 짚었다.

"이곳이 우리가 이번에 가야 할 곳이다. 주위에서 가장 높은 시야를 지닌 곳이지."

천인장 그레드는 다수의 척후조 를 풀어, 고지대 거점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 우리가 가야할 곳이 바로 이곳. 접경지대에 널려있는 산 들 중, 가장 커다란 산의 꼭대기 지점이다.

"우리는 이 산의 정상이 적의 진군로를 제대로 시야에 담을 수 있는지, 그리고 안전하게 거점을 확보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찰을 나간다."

"… 이해가 안 되는군요. 보통 방어전을 치른다면 진군로를 틀어막는 식으로 하지 않습니까?"

내 설명이 미흡했던 걸까. 한 병사가 의문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야 이해 가지 않을 것이다. 군단 규모의 적이 몰려오는데, 방어병력을 높은 산꼭대기에 배치한다니. 심지어 화살이 닿지도 않는 머나먼 곳이다. 이래서야 적의 병력이 이동 하는 것을 멀뚱히 바라볼 뿐, 전혀 방어할 수 없을 터이다.

거점에 일반 병사들이 배치된다 면 말이다.

나는 녀석의 말에 간단하게 답했다.

"우리가 확보해야 할 거점은 마법사가 배치될 곳이다."

"마법사!"

그제야 깨달은 것일까. 다시금 병사들이 지도를 시야에 담았다.

나는 지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푸른 점을 우리가 미리 정찰 하고, 이상 없이 확보할 수 있다면. 마법사들이 배치될 것이다. 추후 공국 놈들이 진군할 때 여기서 화력을 쏟아 붓는다는 거지."

나는 말하고는 병사들의 표정을 확인했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일 렁이고 있었다. 내 입에서 마법사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제야 그들은 전면전이 코앞임을 체감했으리라.

뭐.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여태 껏 경험했던 소규모 국지전이 아닌, 제대로 된 전면전이 있을 터이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도를 집어 들었다.

"모두 지도를 확인했겠지. 그럼 소각하겠다."

나는 품속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피웠다.

타닥, 화륵. 작은 불꽃이 피어올 랐다.

그것을 지도에 떨어뜨렸다. 얇은 종이로 되어있는 지도는 순식간에 불타 재로 화했다.

제국 척후부대는 기밀을 유지하 기 위해, 이렇게 작전 실행 전 지도를 소각하도록 하고 있다.

"자. 모두 무장해라. 30분 뒤 출발한다."

나는 풀풀 날리는 재를 손바닥으로 휘저으며, 이어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이번 임무는 정말 힘들 거다."

내 말에 병사들이 이해 안 간다는 눈을했다. 그야 위험한 적진정 찰도 아닌데, 괜히 힘준다고 생각하 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거점을 노리는 건 제국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갈 거점은 침공로를 옆에 끼고 있는 산의 고지대다. 인근에서 가장 높아 시야를 확보하기도, 그리고 방어하기에도 몹시 좋은 지형.

제국측만이 거점을 노릴 리 없다. 공국측 또한, 정찰과 시야 확보 를 위해서 해당 거점을 노릴 것이 분명할 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번 미션에는 그 새끼 가 나오지.'

이번 퀘스트에는 빌어먹을 네임 드 유닛 놈이 하나 나온다.

게임 속에서 온갖 악연으로 다져 진 적.

놈을 마주쳐서는 안된다.

- 띠링!

[서브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고지대 거점을 정찰, 결과를 본 진에 전달하라.]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 * *

"천인장님. 한지훈의 십인대가 막 출발했다고 합니다."

부관이 천인장에게 보고했다. 그에 천인장 그레드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이제 막 출발했나 보군."

그레드가 시선을 돌려 테이블 위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 위,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은 다름 아닌 이번 한지훈이 정찰 할 거점. 공국의 침공로를 관측할 수 있는 산의 고지대다.

문득 부관이 물었다.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걱정? 그게 무슨 소리지?"

"2번 척후조장 한지훈. 천인장님 께서 아끼는 병사 아닙니까? 이번 임무는 나름대로 위험할 텐데요."

부관이 시선을 지도로 옮겼다.

그가 바라보는 곳 또한 지도의 고 지대.

"공국군은 약하나 멍청하지 않습니다. 분명 그들도 고지대에 척후를 보내려 하겠죠. 아니, 어쩌면 이미 선발대를 보내 점령해놨을 수도 있습니다."

부관의 말에 그레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관측에 유리한 고지대는 공격과 방어 양측 모두에게 이점이 있는 장소였다.

방어측에서는 마법사를 보내 적을 효율적으로 타격할 수 있고, 공격측에서는 보다 유리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공국은 약하나 정찰 없이 진군하는 멍청이들은 아니다. 분명 놈들은 시야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먼저 점한 후, 진군하려 하리라.

즉 한지훈의 척후조는 고지대에서 공국군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런 부관의 말에 그레드는 코웃음 쳤다.

"부관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유 한 성격으로 비쳐졌나 보군."

그레드가 지도에 박혀있는 시선을 떼, 다른 것을 바라봤다.

그가 보는 것은 벽에 걸려있는 한 쌍의 장검.

그가 병사 시절 사용했던, 수많 은 적병의 목을 벤 장검이다.

"부관.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일반 병사로 시작해 천인장까지 올라 왔다."

부관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이었다. 그레드는 병사 출신 천인장 으로서 꽤 이례적인 인물이었으니 . 그만큼 그의 이름은 군부에서 나름 유명했다.

"그리고 나는 병사일적,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지. 일개 병사가 천인장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전공을 세워야 한다 생각하나?"

본래 병사가 사관 계급이 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엘리트주의 가 팽배한 제국에서 일개 병사란, 그저 명령을 하달받아 발로 뛰는 존재에 불과했으니 .

그렇기에 그레드는 이례적인 인물이었다. 병사라는 신분을 극복해 장교 계급에 이른 이. 제국 군부 내에서 몇 없는 병사 출신 고급 장 교였다.

"한지훈을 키울 것이다. 부관,"

그레드가 부관을 바라봤다. 부관 또한 고개를 들어 올려 그레드와 눈을 마주한다.

"대답해보게. 병사가 사관이 되려 하면 뭐가 필요하지?"

"개인의 무력과 전술적 소양 이…."

"아니. 그것 말고."

그레드가 테이블 위에 자리해있 던 서류를 들어올렸다.

"병사의 '인사고과'에 뭐가 필요 하지?"

"… 전공."

부관의 대답이 흡족한 것일까.

그레드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그 빌어먹을 전공이 필요하다. 아무리 강대한 무력을 가졌 든, 혹은 뛰어난 전술적 재능을 보였든. 그 실적을 상부에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단 말이다."

그레드가 이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부관 말대로 나는 한지훈을 눈 여겨보고 있다. 녀석에게서 재능을 보았기 때문이지. 그 젊은 나이에 믿기지 않는 날카로운 검술. 그리고 고등 군사 교육조차 받지 않은, 일 개 병사의 것이라 보기 힘들 정도 로 완벽한 지휘 능력."

그레드가 보기에 한지훈은 막대 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젊 었을 적 가졌던 재능을 훨씬 상회 하는 , 정말 대단한 재능이.

제아무리 강군인 제국군이라 한 들, 일개 병사 하나하나에게까지 고급 검술을 가르치진 않는다. 하물며 전술적 소양은 제국 사관학교는 가 야 얻을 수 있는 것.

하지만 한지훈은 경력이 일천한 일개 병사임에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 줬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제국 검 술. 더해 단순히 훌륭하다고 형용할 수 없는 전술적 움직임까지.

"한지훈은 나처럼 평민 출신이라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대단한 재능을 품고 있단 말이다."

부관 또한 고개를 주억여 수긍했다.

그 역시 한지훈의 작전기록을 본 적이 있기에. 녀석의 전술적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녀석은 아직 병아리다. 경험이, 그리고 전공이 더 필요하다."

그레드가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서류에는 한지훈이라는 이름이 박혀있다.

"놈이 진급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의 능력을 증명해야 할 거다."

부관이 설마, 하는 눈으로 그레 드를 바라봤다.

그레드는 씩 웃었다.

"나는 녀석을 사지로 밀어 넣을 거다. 계속해 시련을 부여하고, 그 걸 극복하게 할 거다. 중분한 전공 이 쌓일 때까지 말이야."

"…허."

"죽지 않는다면 진급할 수 있겠지.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뭐, 고지대 정찰이라. 적당히 몸 풀기로 좋아 보이는 임무군."

부관은 멍하니 천인장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지훈이라는 그 병사. 꽤나 고생하게 될 것 같군요."

부관은 잠시나마 한지훈에게 안쓰러운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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