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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5화 (5/390)

5화.

그리 크지도, 혹은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집무실 안. 그곳에 한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적당하게 기른 턱수염에는 하얀색 새치가 드문드문 나 있었다. 눈가에는 인자한 주름이 잡혀있었으 나 그 시선은 날카로웠고, 전신에는 은은한 카리스마를 두르고 있었다.

중년인의 이름은 그레드. 제국 북부군 천인장이자, 파트라헴 전진 기지의 수장이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지도. 그것도 이곳 파트라헴 인근 제국과 공국군의 세력을 정리해둔 전 술지도였다.

한참 동안 지도를 주시하던 그가 중얼거렸다.

"공국 놈들은 뭘 꾸미고 있는 것 인가."

그의 눈동자가 지도 위에 올려져 있는 각종 모형으로 향했다.

모형의 외양은 다양했다. 깃발 모양, 사각형, 작은 삼각형. 그것들 이 지도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시선을 어지럽히고 있다.

툭, 툭.

그레드가 손가락으로 집무실 책상을 두드리며 고뇌했다.

"분명. 놈들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공국군의 움직임이 너무나 수상 하다.

그들은 쉴 틈 없이 배치를 바꿔대고 있다.

평소 방어하던 거점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병력을 보내는가 하면, 여러 개의 자잘한 전진기지를 통합 시켜 보다 대규모 부대로 개편하기 도했다.

게다가 눈에 띄게 늘어난 공국군 의견제병력들까지.

확실히 무언가가 있다.

한참 동안 지도를 바라보던 그레 드가 쯧 혀를 차고는, 집무실 한 켠에서 있던 부관에게 물었다.

"부관. 아직도 귀환한 척후조는 정말 없는 것인가."

"천인장님."

부관이 나직이, 상관의 말에 대답했다.

"척후조를 보낸 것이 벌써 일주일 전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 어떤 척후도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알 고 계시지 않습니까. 척후조는 모두 전사했습니다."

"…그렇지."

그레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답하다는 듯 신음했다.

얼마 전, 갑작스러운 공국군의 움직임을 경계한 그레드는 다섯 개 의 척후조를 적진으로 급파했다.

그것이 일주일 전이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 동안, 다섯의 척후조중 그 어떤 조도 아직까지 귀환하지 않고 있다.

전멸했다고 보는 게 타당 할 터.

"하지만 믿기지 않는군. '그' 공국 놈들에게 우리 척후가 모조리 전멸하다니."

그레드가 복잡한 눈으로 다시금 지도를 주시했다.

제국군 척후조가 모조리 전멸하 다니.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수한 제국의 군인이, 하물며 일반 병들중 가장 정예인 척후병들이, 허술한 공국군 경계망을 뚫지 못했을 리 없을 터인데 말이다.

"놈들은 경계망을 강화한 것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척후 가 귀환하지 못하고 있는 게 말이 안 돼."

파견했던 척후조의 수는 한두 개 가 아닌 무려 다섯 개, 병사들의 수만 오십여 명이다. 그 모두가 전 멸할 정도로 경계망을 강화했다라.

공국 놈들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제기랄. 답답해 미치겠군. 누군 가 살아 돌아온 이가 있다면 뭐라도 알 수 있을 터인데."

털썩. 그레드가 주저앉듯이 집무실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전장의 안개가 모든 것을 가리고 있다. 분명 적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데, 도통 놈들의 의도를 알 수 없다.

부족하다. 정보가.

그는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책상 만을 계속해 두드려댔다.

그가 그리고뇌하고 있는 그때였다.

"천인장님!"

벌컥!

누군가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 왔다. 그레드가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이곳 지휘소를 지키고 있던 당 직 병사였다.

병사가 급한 표정으로 알렸다.

"척후조가 귀환했습니다!"

"뭐?"

그레드가 얼빠진 소리를 내고, 부관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만큼 병사의 말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레드는, 심지어 그의 부관마저 척후조의 전멸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귀환한 척후조 가 있다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병사에게 물었다.

"귀환한 척후조의 지휘관이 누구 지?"

"한지훈입니다."

"한지훈이라."

기억에 없는 특이한 이름이다.

허나 상관없는 일.

그가 곧장 지시했다.

"당장 이곳으로 불러와라. 보고를 듣고 싶군."

"알겠습니다."

병사가 집무실을 빠져나가 밖으로 향했다.

그레드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일주일 만에 귀환한, 유일한 척 후조라.'

흘깃. 그는 마지막으로 집무실에 자리해있는 지도로 시선을 던졌다.

지도 위에는 여전히 각종 모형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무언가. 공국 놈들의 의도를 파악할 만한 정보를 가져왔다면 좋겠 군.'

그레드가 자리에 앉아 한지훈을 기다린다.

"어서 오게, 2번 척후조장 한지훈."

나는 앞에 보이는 광경을 살폈다.

살풍경한 집무실의 광경이 시야 를 채웠다. 제국기가 책상 뒤에 펼 쳐져 있고, 중앙에 있는 테이블 위 에는 커다란 지도가 자리해있다.

더해 장식용인지, 혹은 실전용인 지 모를 제국 사관용 장검이 한 쌍벽에 걸려있다.

"역시. 보고받은 대로 많이 다쳤 군."

시선을 돌려 말을 건넨 이를 바라봤다.

온화한 얼굴을 지닌 중년 남성이었다.

"미처 치료도 못하고 부른 건 미 안하네. 하지만 그만큼 정보가 급해 서 말이지."

그를 바라보자, 내 시야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 띠링!

[그레드][전진기지 '파트라헴'의 기지장. 제국 천인대장]

천인장 그레드. 역시나 알고 있는 이름이다.

내가 안내창을 바라본 그때였다.

척.

나는 주먹을 심장에 가져다 대며 경례했다.

제국식 경례였다.

'뭐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스스로 경례를 하다니.

의식해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마치 이래야 자연스럽다는 듯,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제국군의 경례 따위는 본 적도 없을 터인데.

천인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례 를 받았다.

"그래. 척후조장 한지훈. 자네도 오는 길에 들었겠지만,"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걸어왔다.

"자네의 척후조가 유일하게 살아 남은 척후조다. 다른 녀석들은 아직 도 귀환하지 못하고 있지."

나는 당황한 감정을 추스르고는, 고개를 끄덕여 천인장의 말에 긍정했다.

내가 살아남은 유일한 척후조라는 것.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임에서 여러 번이나 언급되었으 니까.

"알고 있다면 설명이 빠르겠군. 자, 한지훈."

그가 테이블 위에 있는 지도를 가리켰다.

"내게 모두 알려주게. 자네가 보고 경험했던, 공국 놈들의 움직임을"

나는 천천히 그레드의 모습을 살 폈다.

겉으로는 인자한 분위기를 품은 중년인이다. 희끗희끗 난 허연 새치는 지저분하다기보단 인간다웠으며, 눈가에는 인망이 쌓여 만들어진 주름이 자리해있다.

하지만 시선을 약간만 내려, 그 의 몸을 본다면.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마냥 온화 한 이가 아니란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제국군 사관정복을 입고 있었다. 회색으로 이루어진 그 군복위, 중년의 나이에 맞지 않는 근육 의 음영이 자리해 있다.

더해 정복의 가슴팍 위로 자리해 있는 각종 약장들까지. 그것은 그가 일개 병사로 시작해 수많은 전공을 거쳐, 천인장의 자리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오랜 시간 전장을 굴러 성장한, 경험 많은 제국군 장교. 그게 바로 천인장 그레드였다.

나는 그레드에게서 시선을 떼 지도를 주시했다.

"… 척후 결과를 보고하겠습니다."

지도 위에는 여러 모형이 자리해있다. 난생 처음 보는 모형들이지만, 그 의미는 파악할 수 있었다.

깃발 모형은 적 천인대 본영의 위치. 삼각형은 십 인 단위 소수병력이 출현한 장소이며, 사각형은 백인대 이상 병력이 등장한 장소다.

내가 이사실을 아는 이유는 단순했다.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봤던 아이 콘들이다.'

과거, 블랙 오케스트라를 했을 적. 게임 전술 창에서 수도 없이 봤던 아이콘들.

그것들이 지금은 모형의 형태로지도 위에 올려져 있다.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설마 이런 부분까지 게임이랑 똑같을 줄 이야.

그나저나 곤란하다.

'척후 결과라. 이걸 어떻게 설명 한다.'

나는 난데없이 이 게임에 끌려 들어왔다. 그것도 척후조가 공국에 추격에 ?기는 그때.

하지만 그레드가 지금 내게 묻고 있는 것은 퇴각 과정이 아닌, 퇴각 전 척후에서 얻은 정보다.

당연히 척후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 리 없다. 게임 속에서든, 혹은 이 세계에 끌려 들어온 이후로든. 척후 그 자체를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

"… 아."

내 머릿속으로 어떤 기억들이 홀 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사진 뭉텅이처럼 단편적인 장면의 연속이었다.

산 능선을 타고 움직이는 제국군 척후조. 적의 삼엄한 경계망. 초계 병력의 추격. 그리고 공국 진영에서 본…

곧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무언가가 나를 보조하고 있다.'

천인장에게 했던 제국식 경례. 그리고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척후 당시의 '경험.'

현대인인 내게 모자란 지식과 행동을 채워주고 있다. 마치 내가 이 세상에 더욱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를 바라는 것처럼.

' 염병.'

기분이 더럽다.

내 행동과 사고를 정체 모를 무 언가가 주무르는 감각은 그리 유쾌 하지 않다. 마치 누군가의 장난감이 된 것만 같다.

허나 지금은 보고해야 할 때.

속으로 불쾌한 감정을 삼키고, 손끝으로 지도를 훑으며 입을 열었다.

"… 저희는 새벽에 출발해, 동쪽 산지 능선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머릿속에서 낯선 기억이 떠오른다.

동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양. 새벽의 어둑한 공기를 헤쳐 전 진하는 제국군 척후조. 경갑과 간소한 짐을 지닌 그들이 천천히 산 능 선에 몸을 숨겨 이동한다.

"공국군의 영역에 도달하자, 경계 가 너무나 삼엄했습니다. 절대 일반적인 경계 수준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평소와 달리 증원된 적 경계병 들. 십인대 규모의 적 초병이 주기 적으로 침입로를 정찰하고, 산지 이곳저곳에 놈들의 초소가 깔려있다.

계속해 내 것 아닌 기억이 떠오른다.

"저희는 공국군의 경계를 피해 밤공기를 타고 이동, 공국군의 본영을 찾아 움직였습니다."

해가 떨어져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린 병사들이, 발소리를 숨겨가며 움직인다. 그들은 사방에서 일렁이는 초소의 불빛과 초병의 횃불을 피하며 전진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병사들은 적 경계 병력에게 탐지되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 동이 틀 무렵. 저희는 고지대에 도착해 적의 본영을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봤던 적 본영의 광경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대량의 적, 그리고 다른 병사들 과 전혀 다른 복색의 이들.

나는 시선을 돌려 그레드에게 물었다.

"천인장님. 지도 모형의 위치를 바꿔도 되겠습니까?"

"…해보게. 어차피 이 배치는 한참 전의 것이니."

"감사합니다."

나는 손을 뻗어 모형의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깃발 모형을 움켜쥐고, 지도 위에 올려놨다.

하나, 두 개, 세 개… 지도 위에 모형을 올려놓을수록 그레드의 눈가에 경악이 깃든다.

"이 배치는…."

모형을 다 올려놓은 뒤. 나는 나직이 읊조렸다.

"천인장님."

"공국군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제 가 봤던 적 규모만 해도 군단 규모 였습니다."

"허."

그레드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 위에는 열 개에 달하는 깃발이 한군데에 몰려 있다.

천인대 열 개 이상의 규모. 즉 군단급 적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리.

믿기지 않는 것일까. 그레드는 아무 말 않고 침음을 삼킨다.

하지만 아직 내 배치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지도 밖에 있는 모형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 집어든 모형은 동그라미. 언뜻 보면 카지노 칩처럼 보이는 모형이다.

그것을 적의 본영 위치에 배치했다.

"맙소사."

결국 그레드의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방금 전 내가 배치한 동그라미 모형. 그것은 다름 아닌 적의 '마법 전력'을 의미하는 모형이었다.

그레드가 믿기지 않다는 듯, 나 에게 다급히 물어왔다.

"마법사. 마법사라니! 공국 놈들, 전면전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한지훈! 마법사를 본 것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저희가 본 적의 마법사 전력만 수십여 명이었습니다. 분명 더 많은 마법사가 있겠지요."

"맙소사. 제기랄, 맙소사!"

나는 그레드를 멍하니 바라봤다. 잠시간 바라봤음에도 그의 경악은 도통 가라앉질 않는다.

저리 놀라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법사란 전장에서 최대의 화력을 지닌 이들. 그들은 소수이지만 강력 하며, 막대한 운용비를 처먹는다.

그리고 이런 국지전에서는 마법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절대로.

기껏해야 수십 명단위의 교전이 일어나는 곳에, 혼자서 백인대 규모 를 쓸어버리는 괴물을 투입하는 건 전력과잉이 될 터이니까.

하지만 그 염병할 마법사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우리와 마주보고 있는 적진에.

'마법사의 발견.'

결코 심상치 않은 일이다.

비록 제국과 공국은 국경분쟁으로 잦은 소규모 국지전을 벌이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전면전에는 이 르지 않았다.

허나 지금 공국은 군단 규모의 병력을 집결하고 있다. 더해 적의 본영에 출현한 '마법사'까지.

이것은 단 한 가지만을 의미한다.

"천인장님. 공국은 대규모 공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면전을 대비해야 합니다."

내 말이 끝나는 동시.

- 띠링!

[서브 퀘스트]

[본대로 퇴각해 척후 결과를 전달하라.] (완료)

[서브 퀘스트 - '척후조 퇴각전'을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시나리오보다도 더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가 추가로 정산 됩니다!]

[정산 포인트 : 10pt]

[추가 정산 포인트 : 5pt]

(남은 포인트는 15pt입니다.)

내 시야에 안내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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