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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4화 (4/390)

4화.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무언가 안내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무시한다.

나는 눈앞의 적을 처치하는 것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아지경에 빠져 검을 휘둘렀다.

아드레날린이 뿜어지고, 심장이 맥동한다. 시야가 좁아졌다.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 통각이 사라져갔다.

아릿한 뺨의 상처도, 팔뚝에 그 어진 자상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전투에 필요 없는 감각을 모조리 소거해 버린 것만 같다.

익숙한 현상이었다.

과거, 게임에 몰입할 때마다 느 꼈던 감각. 다른 잡생각이 사라지고, 눈앞에 보이던 모니터와 스피커에 온 신경이 쏠리던 그 감각.

그것이 검을 휘두르는 지금 느껴 졌다.

- 서걱!

내 검이 푸르스름한 궤적을 이루 며 적의 목을 그었다. 적병이 목에서 핏줄기를 뿜으며 휘청였다.

녀석을 발로 차 쓰러뜨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다 뒈져버려라!"

악바리처럼 외치며 앞으로 뛰쳐 나갔다.

쏟아져 들어오는 적의 검로와 창격의 궤도를 비틀고, 피하며. 돌진 해 검을 내찔렀다. 푸르스름한 검광 이번뜩이고, 검의 첨단이 공국 병사의 모가지를 꿰뚫는다.

"커헉…!"

공국 병사가 목을 부여잡으며 쓰 러진다. 놈을 지나쳐, 계속해 검을 휘둘렀다.

이쪽으로 쇄도해오는 창격을 몸을 숙여 피했다. 적병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적병의 옆구리를 베었다. 연약한 살이 터져나가고, 질척 한 붉은 액체가 뿜어진다.

심장이 타오른다. 전신의 근육이 맥동한다. 격렬한 흥분이 전신을 달 궜다.

"오오오오오!"

뜨겁게 덥혀진 폐부의 공기를 내 뱉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검술 스킬이 나를 보조했다. 집중 스킬이 내 한계 그이상의 힘을 발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점차 느려 지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 덕분에.

'보인다!'

내게 쇄도해오는 검날과 창격이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그 모든 공격을 피하고 흘려보냈다. 간간히 놈들의 참격이 내 피부 를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팽팽히 당겨진 감각 이모든 고통을 소거해버렸다.

"괴물 놈!"

"막아! 놈을 막아!"

내 기세에 위축된 걸까. 공국 병사들이 질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녀석들을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

달려나가 녀석들을 도륙했다. 푸 르스름한 검광이 시야에 계속해 점멸한다.

"으아아아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댔다.

감각이 한없이 예민해져 날카롭 게 벼려졌다. 적의 움직임 하나하나 가 망막에 박혔다. 여태껏 경험 해 본 적 없는 흥분과 긴장이 두뇌를 들쑤셨다.

"살려줘…!"

검을 휘두르는 와중 적의 얼굴을 보았다. 놈들의 눈동자 속에는 두려움의 감정이 깊숙이 아로새겨져있다.

하지만 내 검날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저 불편한 얼굴을 치워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더욱 거세 고 날카롭게 허점을 찔러 들어갔다. 붉은색 피가 치솟고, 비릿한 혈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그렇게 얼마나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을까.

"허억, 헉!"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주위를 둘 러봤다.

나는 내지척에 더 이상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을 지면에 박고, 몸을 기대 숨을 골랐다.

그때였다.

"십인장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부른 이를 바라 보았다.

역시나 카일을 비롯한 부하들이었다. 녀석들이 거친 숨을 헐떡이 며, 내 바로 뒤에 도열해 있다. 방금 전 내 돌진에 맞춰 따라온 듯했다.

"무모하셨습니다. 갑자기 돌진이 라니!"

푸욱. 카일이 바닥에 나자빠져 경련하고 있는 공국 병사의 숨을 끊으며 그리 말했다.

허나 나를 나무라는 말과 달리, 녀석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대단하셨습니다."

카일이 검을 붕 휘둘러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러곤 시선을 앞으로 던지며 알린다.

"이제 열 명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 정도면, 할 만합니다."

녀석의 말에 나 또한 시선을 앞 으로 던졌다. 그러자 보였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조금 떨 어진 곳에서, 공국 병사들이 주춤주 춤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러다 한 공국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 공국 병사의 눈동자 속 에는 공포가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저놈이 적 지휘관인 듯합니다 만."

카일의 말에, 놈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다른 공국 놈들과 달리 간소한 경갑이나마 갖춰 입고 있는 모습. 그리고 투구와 가슴팍에 아로새겨 진 계급장까지.

확실히. 적의 지휘관처럼 보이는 놈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올리고, 다시금 검을 쥐어 올렸다.

'저놈만 죽이면.'

확신은 아니다. 단순한 추측.

'살아날 수 있다.'

허나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적은 가진 병력의 삼분지 이를 잃었다. 그 상황에서 지휘관마저 처 치한다면, 놈들은 전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을 터.

그러니,

"죽여버린다."

검의 그립을 굳게 잡았다. 검날을 적 지휘관에게 겨눴다.

이를 갈며 투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적 지휘관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봤다.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으윽…!"

내 기세에 눌린 것일까. 공국 지휘관이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차마 물러서지는 못하고 있다. 놈은 일선 전투부대의 지휘관. 녀석이 몸을 내빼면 단숨에 사기가 곤두박질친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그러자 적 지휘관이 한 걸음 뒷 걸음질 친다. 녀석의 얼굴에 있는 공포가 더더욱 진해진다.

"카일."

"네. 십인장님."

나직이 내 옆의 병사, 카일을 불 렀다. 그가 고개를 주억이며 응답한다.

나는 지시했다.

"마지막 돌진이다. 준비해."

끄덕. 카일이 재차 고개를 주억 여 수긍하고는, 검을 들어올렸다.

이번이 마지막 돌진이다. 나는 곧장 적 지휘관에게 돌격해, 놈을 베어버릴 것이다.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투지와 흥분이 전신에 휘몰아쳤다.

현실의 유약했던 내가 결코 경험 해본 적 없는 감각.

기분이 고조된다.

나는 입을 벌려,

"오오오오오오오!"

함성을 내질렀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 음친다. 그와 동시, 나와 제국군이 앞으로 돌진했다.

땅을 박차고 달린다.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은 오직 하나, 공국군 삼십인장.

녀석을 노리고, 돌진했다.

"크윽!"

공국 삼십인장 놈이 급히 검을 들어올렸다. 내 돌진에 반격하려는 듯한 행동.

소용없다. 놈은 죽을 운명이다.

순식간에 달려가 놈의 지척에 달했다. 녀석이 검격을 내찔러왔다. 날카로운 검의 첨단이 내 얼굴을 노리고 쇄도해온다.

나는 검을 빙글, 휘둘러 녀석의 검을 쳐냈다.

채앵!

청아하게 울리는 쇳소리. 직후, 팔을 당겨 검을 회수했다. 놈은 충격에 자세가 흐트러진 상태.

주저 없이 검날을 찔러넣었다.

- 피잉!

곧게 직선으로 나아가는 내 검 로. 시퍼런 검광이 번뜩인다.

퍼억.

검날이 녀석의 투구 아래, 드러 난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컥…."

놈이 폐부의 공기를 힘없이 내뱉었다. 나는 검을 아래로 내려박았다. 꿰뚫린 녀석의 목에서 내 검이 빠져나온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겼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전장의 다른 이들을 살폈다.

"적 지휘관이 죽었다!"

"몰아붙여라! 공국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제국 병사들 또한, 공국 병사들을 하나둘 죽이고 있었다.

그들이 검격을 가할 때마다 공국 병사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참 격 한번에 핏물이 치솟았고, 창격 하나에 적병 하나가 꿰뚫렸다.

분명 수적 열세였을 제국군. 허 나 그들은 공국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유야 다름이 아니었다.

"지휘관님께서 전사하셨다!"

"맙소사…!"

공국 병사들은 이미 상당한 손실을 입은 상태. 더해 지휘관마저 방금 전 내게 죽어버렸다.

그 말인 즉,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않은 놈들에게 사기의 부재는, 몹시 치명적이었다.

"이길 수 없다! 도망쳐! 도망쳐 라!"

"후퇴해!"

"으아아악!"

한 공국 병사가 전투를 포기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병사가 시발점이었다.

전투를 진행하던 공국 병사들이 모두 우르르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검이나 창을 내던지고 달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카일이 도망치는 공국 병사들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아무리 지휘관이 전사했다곤 하지만, 정말 오합지졸입니다. 하기야 절반 이상 죽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래를 내려다 봤다.

내 발밑에는 다른 공국 병사들과 달리, 경갑을 제대로 갖춰 입은 군인이 하나 죽어 나자빠져 있었다. 방금 전 죽인 놈들의 지휘관이다.

카일이 바닥에 쓰러져있는 적 지휘관의 철제 투구를 주워들어 내게 내밀었다.

"십인장님의 전공입니다."

카일이 내미는 투구를 받아들었다. 투구에는 피가 질척하게 묻어있었다.

이것으로 전공을 증명하라는 것 이겠지.

나는 투구를 대충 옆구리에 끼워 들었다.

"십인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도망친 공국 놈들을 추격합니까?"

카일이 검을 고쳐 잡으며 내게 물었다. 녀석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건데, 아무래도 잔당을 추격해 마저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피식. 절로 허탈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아까만 해도 공포에 질려 벌벌 떨던 자식이, 지금은 은근히 전투를 바라고 있다.

그만큼 자신도 공훈을 세우고 싶다는 것이겠지. 내가 싸우는 것을 보았을 테니.

더해 적은 무기마저 내던지고 도망치는 상황이다. 승기를 완전히 잡았다. 추격해 마저 섬멸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추격은 하지 않는다."

"어째서입니까? 적은 고작 열 명 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놈 들의 사기마저 바닥이지요. 지금 놈 들을 추격한다면 완전섬멸 할 수 있습니다만."

"힘들어. 내가 ."

나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체력이 넘치는 카일과 달리. 이 게 내 한계였다.

전투를 끝낸 뒤. 나와 병사들은 인근 숲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다.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안전한 본 대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렇기엔 전투에 소비한 체력이 너무 막중했다. 휴식이 절실하다.

"새로운 추격은?"

"없습니다. 공국 놈들은 추격을 완전히 포기한 것 같습니다."

"좋아."

후방 정찰을 다녀왔던 병사의 보고. 그에 나는 푹 한숨을 내쉬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아가는 것 일까.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아프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다. 몸 이곳저곳에 아로새겨진 자상이 날카로운 고통을 토한다.

손을 들어 올려 바라봤다.

평소 굳은살 하나 없던 내 손에 는, 어느새 물집과 잔 상처가 자리 해 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살아남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1: 5의 전력 비를 극복하다니.

사실 여러 요소가 중첩되어 만들어진 이변이었다.

병사 개개인의 기량이 공국군보 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제국군. 검술 스킬의 상향. 그리고 때마침 발현된 엑스트라 스킬 '집중'까지.

그중 단 하나라도 모자랐다면, 지금쯤 나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창연했던 하늘에는 어느새 노을 이 짙게 내려깔리고 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난데없이 게임 속 세상에 떨어졌다니.

- 달칵.

허리춤에 매어져있는 장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끈적한 피가 검날에 들러붙어 있었으므로.

붉게 칠해진 검날을 바라봤다.

"… 후우."

재차 한숨이 새어나왔다.

사실, 방금 전까지는 이 세상에 떨어진 것이 체감되지 않았다.

주위에서 있는 제국 병사들도, 현실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 녹음어린 경관도.

잠에서 깨어난다면 덧없이 사라 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피 묻은 검을 보고는,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은 현실이야."

손으로 검날을 쓰다듬어봤다. 반 쯤 말라붙은 피가 질척하게 묻어나 온다.

절로 씁쓸한 표정이 지어졌다.

"그리고 나는 살인을 했고."

나는 한동안 피 칠갑 된 검을 멍 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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