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나는 멍하니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한지훈][척후조 십인장]
[스킬 : 십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입문)]
[엑스트라 스킬 : 집중]
[근력 4]
[민첩 2]
[내구 3]
[체력 3]
[마나 0]
(남은 포인트는 10pt 입니다.)
[도움말 : 할당 포인트로는 스킬 이나 능력치를 상향시킬 수 있습니다.]
꽤나 익숙한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는 홀로그램 창. 그것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 정보…?"
안내창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게임 속 내 캐릭터의 정보였다.
가장 위에 표시되어있는 것은 나의이름 한지훈. 옆에 있는 것은 계급과 직책이었고, 그 아래로는 스킬과 스펙이 표시되어있다.
허,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가지고 이상황을 타개하 라는 건가?'
막 적과 조우하자마자 이런 홀로그램이 떠오르다니. 마치 이걸 활용 해 살아남으란 것만 같다.
내가 멍하니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자니,
"십인장님! 어서 퇴각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카일이 재차 악을 질러왔다. 나는 녀석을 바라봤다.
카일은 접근해오는 공국 병사들을 바라보며 겁에 질려있었다.
하기야 여섯이서 삼십을 상대해 야 하는 상황이다. 자신 없을 수밖 에.
접근해오는 공국 병사들을 바라 봤다. 놈들은 내가 멍 때리고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접근해와, 이제는 얼굴을 판별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와 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나는 곧장 포인트를 분배했다.
"제국 검술 상향."
- 띠링!
['스킬 : 제국 검술(입문)'을 상향 합니다]
[상향에는 10pt가 필요합니다.]
[유저의 능력치가 모자라 스킬의 모든 성능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그래도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내가 포인트를 투자한 것은 다름 아닌 제국 검술 스킬.
능력치가 모자라 제 성능을 낼 수 없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그럼에 도 수락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다른 능력치가 높더라도, 검 자체를 다를 줄 모르니. 검술에 투자 해야 한다.'
기본 능력치. 예를 들어 근력이나 민첩에 투자한다면 더 나은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검을 휘둘러본 적이 없다. 아니, 애초 현실의 내 몸을 움직여 누군가와 싸워본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런 내가 검으로 적을 벨 수 있을까?
당연히.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검술을 상향시켰다.
- 띠링!
['스킬 : 제국 검술(입문)' 이 '스킬 : 제국 검술(하급)'으로 상향되 었습니다!]
직후 변화가 일었다.
머릿속에 지식이 흘러들어왔다.
어떻게 검을 휘둘러야 하는지, 어떤 동작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마치 하루 종일 검을 휘둘렀던 검사처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시선을 내려 손에 쥔 검을 바라 봤다.
[제국군 보급 장검]
검을 쥔 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힘을 빼고,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자세를 바꿨다. 허리를 숙이고 시선을 낮췄다. 다리의 간격을 벌렸다.
검을 쥔 손을 약간 뒤로. 다리는 언제든지 박찰 수 있게 힘을 주고, 등과 어깨를 바싹 긴장시킨다.
"… 십인장님?"
내 변화를 눈치챈 것일까.
카일이, 그리고 다른 병사들이 나를 보고 경악한 눈을했다.
그야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후퇴해야 할 지금 이때, 마치 전투라도 하려는 듯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카일이 믿기지 않다는 듯 물었다.
"설마 싸우시려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의 얼굴에 자리한 경악이 더욱 짙어진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저희는 놈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적병이 삼십이란 말입니다! 후 퇴해야 합니다!"
병사들의 안색이 창백해져 갔다.
후퇴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니 두 려워진 모양.
하지만 물러설 순 없다.
"후퇴하면 죽을 뿐이다."
시선을 돌려 가장 커다란 덩치를 지닌 병사를 바라봤다.
카일. 처음 봤을 때 왠지 모르게 익숙했던 이름.
드디어 떠올렸다.
내가 과거 이미션을 어떻게 클 리어 했었는지, 기억해 낸 것이다.
사실, 클리어 방법은 너무나 간 단했다.
'단순 후퇴였었지.'
병력을 무작정 뒤로, 뒤로 물린 다면 이미션을 클리어 할 수 있다. 미션의 목표는 '생존"그리고 '귀환'이지, 전투의 승리가 아니니까.
즉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제국군 본대에 도착한다면 미션을 클 리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 게임처럼 퇴각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후퇴한다면. 카일, 너 혼자만 살아남고 다 죽는다."
게임에서는 체력이 좋은 카일 혼자만 살아남고, 나머지 병사들은 모두 죽어버렸었다.
물론 이것이 정말 모니터로 바라 보는 게임이라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카일이든, 혹은 다른 병사든. 한 명만 살아남아 본대에 도착한다 면 미션을 클리어 하게 되니까.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다. 내가 살아서 이 땅을 밟고 있다.
카일이 살아남아 미션을 클리어 한다 해도, 내가 죽어서는 안된다.
나는 다시 한번 내 능력치를 상 기했다.
[민첩 2]
[체력 3]
개쓰레기 같은 능력치다. 만약 10포인트를 투자해 상향한다 한들, 이 정도 능력치로는 절대 제국군 본 대까지 후퇴할 수 없다. 그전에 지쳐 쓰러지거나, 혹은 추격대에게 따라잡혀 죽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전투를 선택했다. 그쪽이 생존할 가능성이 조금이라 도 남아있으므로.
다시금 목소리에 힘을 실어 명령했다.
"전원, 전투 준비!"
"… 망할!"
외치며 검을 굳세게 쥐었다. 병사들 또한 가진 병장기를 하나둘 들어올렸다.
이쯤 되면 병사들이 탈영해 도망 칠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과연 기강이 잡힌 제국군인 덕이라 할까.
그렇게 우리가 전투를 막 준비하고 있을 때.
"으아아아아아!"
지척까지 접근해온 공국 병사들 이달려들었다.
놈들이 시퍼런 창날을 이쪽으로 찔러왔다. 나는 검으로 놈의 창날을 비껴 쳤다.
- 키기기직!
검날이 창대를 긁어냈다. 나무부 스러기가 튀겨 나오고, 둔탁한 소음 이 울렸다.
가까스로 나를 노리는 창격의 궤 도를 틀어낼 수 있었다.
결코 의식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향된 검술 스킬이, 이렇게 움직여야만 한다고 알려주었다.
스킬의 인도를 따라 검을 놀렸다.
곧장 검의 진로를 회전, 그대로 병사의 복부에 박아 넣었다.
푸욱.
물컹한 장기를 가르고 헤집는다. 그 질척하고도 불쾌한 감각이 손잡이를 타고 전해졌다.
"커허…!"
적병이 눈을 크게 뜨고 휘청이더 니, 몸을 축 늘어뜨렸다. 녀석의 몸 뚱이가 지면으로 털썩 쓰러진다.
검을 놈의 복부에서 빼냈다. 검 날에는 붉은 핏물이 질척하게 묻어 있다.
"망할…."
엿같은 기분이다.
다시금 확신할 수 있다. 이곳은 꿈이 아니다. 살을 가르고 찌르는 느낌이 너무나도 리얼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사람을 찔렀 음에도, 죄악감보다는 불쾌감이 강 하게 느껴졌다.
내 의식 한 켠에서는, 아직도 이곳을 꿈속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후욱.
숨을 한껏 내쉬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스킬이 내 움직임을 보조한다.
서걱!
달려오던 적병의 목이 베었다. 녀석의 목덜미에서 핏물이 확 뿜어 졌다. 그 질척한 붉은 액체가 내 얼굴에 후드득 뿌려진다.
역겨워 구역질이 나온다.
"저놈부터 죽여라!"
적병 둘을 처치하자, 내가 눈에 뜨인 것일까. 공국 병사 셋이서 한번에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시퍼런 창날 세 줄기가 이쪽을 노리고 찔 러 들어온다.
나는 이를 악물며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 내 머리가 있던 공간을, 창날이 스쳐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서걱 하고 잘려나갔다.
바닥을 구르며 검을 횡으로 그었다.
콰직.
적병 하나의 종아리를 깊게 베었다. 힘이 모자라 뼈까지 절단할 수는 없었지만. 무력화시키기엔 충분했다.
"끄으으!"
종아리를 베인 녀석이 신음하며 주저앉았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려했다. 허나 그렇지 못했다.
"죽어어어어!"
또 다른 적병이 검을 내리그었다. 검날이 내 머리를 노리고 내려 쳐진다.
피할 수 없다. 죽음의 위기에, 시야가 천천히 느려져갔다.
최후를 직감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십인장님!"
그때 누군가가 난입했다. 다름 아닌 예의 커다란 덩치를 가진 병사, 카일이었다.
쾅!
카일이 어깨로 적병을 들이받았다. 공국 병사가 뒤로 튕겨져 나자 빠졌다. 카일은 바닥을 구르는 놈의 목덜미에 검을 박아 넣었다.
퍼억! 피가 튀고, 낮은 비명이 울렸다.
적병을 처치한 카일이 나를 단숨에 잡아 일으켜 세웠다.
"십인장님! 조심하십시오!"
"… 고맙다."
휘청. 녀석의 손아귀에 이끌려 다시금 바로 섰다.
힘 한번 무식하게 센 놈이다. 한 손으로 나를 이렇게 일으켜 세우다 니.
가쁜 숨을 고르며 지면에 떨어진 검을 다시 쥐어 들었다. 검날은 적의 피로 범벅되어있다.
검을 쥔 손이 떨린다.
'무섭다.'
방금 죽을 뻔했다.
현실에 있을 적, 나는 보잘것없는 학식충이었다.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에 질색하던.
하지만 지금 이상황은 뭐란 말 인가.
게임 속에서나 봐왔던 중세 군인 들이, 병장기를 꼬나 쥐고 나를 죽 이기 위해 달려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온 힘을 다해 놈들을 죽이고 말이다.
분명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평소 와 같은 일상이었는데 .
어째서 나는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인가.
두려움이 척수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때 문득.
"스무 명만 더 죽이면 됩니다."
카일의 말이 들렸다. 그에 나는 상념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십여 구의 시체가 나자 빠져 있었다. 모두 공국 병사들의 시체였다.
어느새 나와 병사들은 공국 병사 십여 명을 처치했던 것이다.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마, 승산이 있는 건가.'
그 잠깐 사이 나는 두 명의 병사 를 죽였고, 한 명의 병사를 무력화 시켰다. 다른 병사들 또한 도합 일곱의 적을 눕혔고 말이다.
순식간에 적의 삼분지 일을 제압 한 상황.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고작 여섯이서 삼십여 명을 막고 있다니.
제아무리 군율과 기강이 튼튼한 제국군이라 해도, 그리고 상대한 적 이 조잡한 공국군이라 한들.
수적 차이를 생각해본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살아서 후퇴할 수 있다.
사라져가던 희망이 다시 생겨나 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심호흡하며 검을 들어올렸다.
검을 잡아든 손아귀가, 그리고 팔과 어깨, 등허리까지.
온 근육이 욱신거렸다.
이런 장검 따위 쥐어본 적도 없던 내가 온 힘을 다해 휘둘러댔다.
고작 몇 번의 검격이라 한들 몸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허나 그럼에도,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반드시.'
처음의 두려움과 공포는 어느새 희미해졌다. 지금 내 가슴을, 그리고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오직 전투의 흥분과 생존의 열망이었다.
이를 갈았다.
어째서 이 세상에 떨어진 건지, 이곳이 정말 꿈인지 현실인지,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꼬라지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살아남을 것이다.
무슨 짓을 해서든.
"아아아아아?!"
공국 병사 다수가 함성을 내지르 며 이쪽으로 돌진해왔다. 조잡한 검을 들고 있는 이들이었다. 놈들의 검끝이 향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여러 줄기의 검광과 창격이 쇄도 해온다. 나는 몸을 뒤로 빼냈다. 시 퍼런 창날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 나간다.
핑.
"크윽!"
뺨에 시큰한 통각이 올라왔다. 방금 전 창격에 스쳐 베인 것 같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주춤거 리는 자세를 추스르고 자리를 박찼다. 내 몸이 앞으로 돌진한다. 어느새 나는 적 창병의 간격 안으로 들어와 있다.
악에 차 외쳤다.
"뒈져!"
퍼억!
돌진을 살려, 내 뺨을 벤 놈의 겨드랑이에 검날을 박아 넣었다. 놈 이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그 틈에 검을 회수해, 다시 찔러 넣었다.
쿠드득! 적병의 가슴팍에 내 검 신이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끄르으으!"
놈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거품이 울컥 올라왔다.
검을 비틀어 빼냈다 날이 갈비 뼈를 긁는 것이 손잡이를 타고 느껴졌다.
검을 완전히 빼내자 적병이 허물 어지듯 쓰러졌다.
파앙!
내가 적 하나를 처치하기 무섭게, 다음 적이 돌진해왔다. 놈이 달 려오며 창격을 내찔렀다. 나는 몸을 기울여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완전히 피해내 진 못한 것인가. 팔뚝에 얕은 자상 이 아로새겨진다.
이를 악물며 검을 횡으로 그었다. 검날이 적의 목을 긁었다.
핏줄기가 치솟았다.
"커, 헉…!"
녀석은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다른 적들이 재차 돌진해온다. 나는 또다시 기세를 끌어올리고, 검을 휘둘렀다.
살기 위해서.
그때였다.
- 띠링!
[각성!]
['엑스트라 스킬 : 집중'을 각성 했습니다!]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무언가 안내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