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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화 (2/390)

2화.

눈을 떴다. 그러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암흑색 공간.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칠흑의 장막만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내가 멍하니 서 있는 그때.

- 띠링!

어떤 소음이 울렸다. 경쾌하고도 맑은 알림음이었다.

고개를 돌려 소음이 들려왔던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블랙 오케스트라]

검은색 공간 속, 오연히 떠올라 있는 하얀색 문양.

블랙 오케스트라. 익숙한 게임의 로고가 환하게 빛나며 어둠을 밝히고 있다.

"블랙 오케스트라…."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걸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로고가 서서히 사라지고, 새로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새로운 시나리오를 시작합니다.]

[유저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뭐야 이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지금 이상황은 다소 생뚱맞았다.

게임을 완전히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까지는 기억난다. 하지만 난데없이 검은색 공간 속 홀로그램 이라.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멍하니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자니, 표시되고 있는 화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유저의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유저 ID : 한지훈]

[칭호 : 학살]

[칭호 : 냉혈]

[칭호 : 정복자]

[칭호 : 제국 황제]

[업적 : (잠겨있음)]

[스킬 : (잠겨있음)]

홀로그램에 떠오른 건 다름 아닌 내 캐릭터의 정보였다.

ID 한지훈. 그리고 떠올라있는 칭호들까지. 왜인지 업적과 스킬란 은 표시되지 않았지만, 분명 게임블랙 오케스트라 속 내 캐릭터의 정보였다.

이쯤 돼서 나는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꿈이네."

지금 이곳은 꿈속임이 분명했다. 그야 어둑한 공간에 홀로그램이 떠 올라있고, 홀로그램 속에는 내가 했 던 게임 속 캐릭터의 정보가 자리 해있다니.

꿈이라고밖에 설명이 안된다.

얼마나 게임에 미쳐있었으면 이런 꿈까지 꿀까.

나는 이 개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뺨을 꼬집었다.

[유저의 점수가 너무 높습니다.]

[시나리오 난이도를 조율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뺨이 아릿하게 아프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지는 않았다.

양손으로 강하게 뺨을 쳐 보았다. 짝! 하는 소리가 공허한 공간을 울렸다.

너무 아프다.

[적정 난이도를 찾았습니다!]

[적정 난이도 : 악몽(Nightmare)]

[난이도를 변경합니까?]

[수락/거절]

하지만 그럼에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강하게 친 뺨이 발갛게 부어오르는데도. 아직 내 의식은 또 렷하다.

마치 꿈이 아니기라도 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올려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난이도를 변경합니까?]

[수락/거절]

여전히 떠올라있다.

난이도를 '악몽 (Nightmare)'으로 변경하냐는 물음이 자리해있는 홀로그램.

혀를 차며 손을 홀로그램으로 가 져다 댔다.

"별 이상한 꿈이 다 있어."

나는 홀로그램의 '거절' 버튼을 터치했다.

그저 직감이었다. 섣불리 저기 '수락' 버튼을 누른다면 뭔가 잘못 될 것 같은 직감.

봐라, 난이도 악몽이라 하지 않은가. 불길한 냄새가 풀풀 난다. 아무리 꿈속이라 한들 너무 꺼림칙했다.

하지만 내 행동은 헛짓거리였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난이도가 변경됩니다.]

[적용 난이도 : 악몽(Nightmare)]

"뭐야?"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걸까.

내가 표정을 찌푸리는 그때.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알림음이 연속되며, 홀로그램 속 문자가 갱신되어갔다.

[기존 이벤트 로그가 삭제됩니다.]

[새로운 이벤트 로그를 작성합니다.]

[전장의 안개가 증가합니다.]

[지형 정보가 변경됩니다.]

[오브젝트의 배치가 변경됩니다.]

[시나리오 불확실성이 증가합니다.]

기다란 텍스트들이 홀로그램을 가득 채워간다. 띠링거리는 소리가 계속해 울려대며 청각을 어지럽혔다.

나는 그 꼬라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차가운 알림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문자열이 계속해 갱신되어간다.

[적대 NPC의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우호 NPC의 잠재력이 하락합니다.]

[유저 보정이 하향 조정됩니다.]

[대적자 NPC 보정이 상향 조정 됩니다.]

[시나리오 무작위 이벤트를 생성 합니다.]

[시스템 관리자의 시나리오 개입을 허용합니다.]

쏟아지는 문자열은 하나같이 불길한 내용들.

나는 그 내용들에 압도되어 , 멍 하니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직감했다.

무언가 끔찍한 일에 휘말려들었다. 그것도 내가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서.

서늘한 감각이 뒷목을 간지럽힌다.

- 띠링!

[시나리오를 시작합니다.]

[적용 난이도 : 악몽(Nightmare)]

[깨어날 수 없는 악몽.]

[시나리오-챕터 -1]

마지막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내 시야가 천천히 가라앉아갔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십인장님! 십인장님!"

누군가가 내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에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흙바닥.

나는 지면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퉤! 입안에 들어온 흙을 뱉고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방금 전 까지 나를 뒤흔들고 있던 이를 볼 수 있었다.

"십인장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철제 투구와 경갑을 착용한, 기 골이 장대한 병사였다.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자 내 시야 한 켠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카일][상급 검병]

"…카일?"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인데.

내가 중얼거림과 동시, 녀석은 나를 확 잡아 일으켜 세웠다.

비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띵한 어지럼증이 두개골을 뒤 흔들었다.

"으윽…"

절로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몸 곳곳이 아프다. 팔다리에서 저릿한 고통이 올라왔다. 머리는 무 언가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웅웅 울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내 몸을 일으켜 세운 병사, 카일 이외쳐왔다.

"적의 추격이 너무 거셉니다! 십 인장님, 후퇴해야 합니다!"

나는 잠시 휘청거린 뒤 곧바로 섰다. 직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뭐야?!"

시체들이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지면을 피로 적시고 있다. 비릿하고 도 역한 혈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속에서 메스꺼운 감각이 올라오 려 한다. 나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구역질을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방금 전 어떤 꿈을 꾸었다. 검은색 공간에서, 난생 처음 보는 홀로그램들이 어지럽게 떠오르는 꿈.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 보니 주위에 시신과 피가 낭자해있다.

아직도 그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쏟아지려는 구역질을 억누르며, 천천히 발자국을 옮겨보았다. 그러자.

- 철그럭.

하는 쇳소리가 일었다.

고개를 내려 소리가 인 허리춤을 바라봤다. 내 허리 혁대에는 웬 장검 하나가 메어져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장검.

그것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소리가 시리다.

[제국군 보급 장검]

염병할 홀로그램.

"십인장님! 추격대가 다시 접근 중입니다!"

"수는 약 삼십… 십인대 세 개 규모입니다. 저희 전력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교전한다면 전멸입니다! 도망쳐 야 합니다!"

병사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알려 왔다. 시선을 돌려 그들이 주시하고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였다.

저기 까마득하게 먼 숲, 자잘한 수풀을 헤치며 수십의 병사가 이쪽 으로 달려오고 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검과 창이 햇빛을 반사해 반 짝였다.

"십인장님!"

카일이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녀석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깊숙이 자리해 일렁이고 있다.

나는 녀석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십인장…."

카일은 분명 나를 십인장이라고 불렀다.

십인장. 열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일선 지휘관. 현실의 내가 결코 들을 리 없을 호칭.

곧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게임 속인가."

블랙 오케스트라. 근 두 달 동안 내가 매달렸던 게임.

지금 이상황은 그 게임 속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주위에서 있는 병사들의 복장은 분명 제국군의 그것. 그리고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놈들은 공국군 병사였다.

그 말인 즉, 이곳은 제국 북부 접경지대라는 소리.

내가 그리 깨닫는 동시.

- 띠링!

알림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퀘스트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메인 퀘스트]

[시나리오를 완성하라.]

[서브 퀘스트]

[본대로 퇴각해 척후결과를 전달하라.]

[도움말 : '퀘스트창' 명령어를 통해 임무 현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 게임이랑 똑같다.

정말 이곳이 게임 속 세상이란 말인가?

"십인장님! 어서 명령을!"

멍하니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는데, 카일이 악을 내질렀다. 그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전방을 주시했다.

공국의 추격대가 이리로 달려오고 있다. 놈들은 내가 멍 때리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 접근해온 상황. 그리 머지않아 이곳까지 당도할 것이고, 곧 접전이 일게 될 터.

적들이 들고 있는 창 끝 반사광 이날카롭다.

그것을 보며 생각한다.

'저 창에 찔려 죽으면 꿈에서 깨 어날까.'

저 창에 꿰뚫리면 나는 죽고, 이 꿈속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이곳이 꿈속이라면 말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꿈이라기엔 너무 이상해.'

- 띠링!

['시스템 : 유저 정보'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유저 정보를 불러옵니다]

알림음이 울리고,

[한지훈][척후조 십인장]

[스킬 : 십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입문)]

[엑스트라 스킬 : 집중]

[근력 4]

[민첩 2]

[내구 3]

[체력 3]

[마나 0]

(남은 포인트는 10pt 입니다.)

[도움말 : 할당 포인트로는 스킬 이나 능력치를 상향시킬 수 있습니다.]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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