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86화 (86/90)

< 괴물 배터리 -086- >

086.

서서히 잠재력을 선보이고 있었다고 하나, 이날의 호투에는 엘리펀츠 팬조차 어안이 벙벙했다.

기대 속에서 입단한 만큼.

여전히 리그에서 손꼽히는 구속을 유지하는 만큼.

터질 듯 하면서 터지지 않는 서기찬의 존재는 엘리펀츠 팬들에게 애증의 대상 그 자체였던 것이다.

-엘리펀츠와 라이거즈의 경기. 오늘은 수훈선수인 서기찬 선수와 결승타를 날린 이규태 선수의 공동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겠는데요. 우선, 데뷔 첫 완봉 승리를 축하합니다. 정말 기쁘시겠어요.

“예, 감사합니다.”

-서기찬 선수에게 기쁜 일인 건 당연하지만, 엘리펀츠 팬들에게도 정말 뜻 깊은 경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서기찬 선수가 데뷔했을 때부터 잠재력이 깨어나기만 애타게 기다린 팬들이 한둘이 아닌 걸로 알거든요.

“맞습니다. 제가 입단 당시부터 다른 동기들과 비교해서 과분한 관심과 사랑과 기대를 받아 왔던지라…… 그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경기가 뜻 깊다고 표현한 건 예상 밖의 깜짝 호투가 아니었기 때문이거든요. 지난 몇 경기를 살펴보면 분명히 복선이 있었어요. 똑같은 구종을 던져도 자신감 있게 체중을 싣게 됐거든요. 기술적인 개선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계기가 있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하하하. 글쎄요. 계기라면 계기이긴 한데요. 저로 하여금 싫어도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피칭을 옆에서 계속 지켜본 영향 같습니다.”

-아, 일종의 롤 모델이 생겼다는 뜻인가요?

“비슷합니다. 투수는 좋은 공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타자를 잡아내는 사람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말로만 그렇지, 실제로 야구 10년 넘게 했어도 그걸 직접 체감하기는 어렵거든요. 공이 느린 베테랑 투수도 수 싸움이라거나, 변화구라거나, 제구력이라거나, 강력한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면 어떻게 저런 공으로 아웃을 잡는 건가, 싶을 때가 있거든요. 아니, 가끔 그러는 게 아니라 항상요. 그러다 보니까 공 하나하나에 악을 쓰는 게 정말로 열심히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하하. 누구 얘기를 하는지 알 것 같네요. 제가 생각하는 그 선수가 맞을까요?

“아마도 맞을 겁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까 머리는 여전히 불안해해도, 몸에 강제로 자신감이 새겨지더라고요. 저런 공으로도 아웃이 잡히는데, 내 공이라면 구위 좀 떨어지거나 제구 어긋나도…… 하고요.”

-굉장히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이네요. 모두가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으로는 실천 못 하는 부분인데, 옆에서 계속 지켜보다 보니까 강제로 인정하게 된다. 하하하. 재밌네요. 오늘 결승타를 때린 이규태 선수에게도 그런 계기 같은 게 있었을까요?

“저도 계기라고 표현하기는 애매한데, 지금 언급되는 최태웅 선수한테 확실히 비슷한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최태웅 선수는 투수고, 이규태 선수는 타자인데요. 이 경우는 어떤 식으로 전환점이 되었을까요?

“아시겠지만 타자들은 수비 실책을 범한다거나, 기껏 호투해줬는데 점수를 못 낸다거나 하면 굉장히 부담되거든요. 그걸 어떻게 만회하려는 마음에 힘이 들어가면 악순환만 되고요.”

-그건 그렇죠.

“투수가 짜증을 낼 때는 당연히 그러지만,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배려해줘도 사실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거든요.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그래요.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게 전혀 없거든요. 뒤에서 등짝을 보고 있으면 경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여요. 테트리스나 벽돌깨기처럼 그냥 혼자서 점수 쌓는 게임 하는 것 같아요. 이게 계속되면 기분이 참 이상해져요. 팀 스포츠가 아니라 개인 스포츠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아, 그건 좀 위험한 발언이 아닌가 싶은데요. 때로는 팀을 위해서 희생번트도 하고, 건드리고 싶은 공도 참아서 뒤로 연결하고,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공도 마이볼 사인이 나오면 물러나줘야 하고. 이런 팀워크에 악영향이 되지 않을까요?

“예.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건 플레이 스타일이나 입지가 정립된 베테랑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저같이 만년 유망주 소리나 듣던 선수는 일단 자기 밥그릇을 찾는 게 우선이거든요. 끼니 걱정이 없어야 주위를 살필 여유도 생기고 그러는 거니까요. 정리하자면 자기 밥그릇을 찾는 데만 집중하게 된 상황이 최근 선방의 원인인 것 같습니다.”

-과연……. 듣고 나서 보니까 이규태 선수 말고도 짚이는 선수가 많은데요. 엘리펀츠 약진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단면 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못 미더운 유망주를 최근에 말뚝 기용한다는 유승혁 감독에 대한 비난은 그 즈음해서 수그러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프로는 결과가 전부다.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기용한 선수들이 결과를 내기 시작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팔랑거리지 않고 소신을 지킨 감독의 뚝심이라며 칭송이 그치지 않았다.

젊은 팀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분위기를 잘 탄다는 것이다. 엘리펀츠가 마냥 젊은 팀은 아니지만, 기용에 여유가 생기면서 벤치 멤버들이 선발로 출장하는 횟수도 조금씩 빈번해졌다.

엘리펀츠 선수층에 세대 차이가 적다는 것은, 젊은 선수들은 젊은 선수들끼리 나이도 비슷하다는 얘기였다. 고교 시절에는 비슷하게 지지고 볶던 상대가 활개치는 모습을 보면서 호승심이 끓는 것은 당연했다.

[이규태. 데뷔 첫 만루 홈런!]

[약속된 9회. 손철민의 역전 끝내기 투런!]

[하이라이트 영상. 희비를 가르는 슈퍼 다이빙!]

경쟁심과 질투심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되었다.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아니라, 어떻게든 눈에 띄고 싶다는 승부욕에 불이 붙은 것이다.

이전이라고 몸을 사린 것은 아니지만, 정말 오늘만 야구하고 말겠다는 듯이 악에 받친 슬라이딩과 풀 스윙이 쏟아졌다.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팀 로고가 단골로 박히는 것은 물론. 엘리펀츠 담당 기자들은 전송 직전에 뒤집히는 경기 상황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생겼다.

하지만 분위기를 탄다는 말이 항상 좋은 쪽으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 저걸 따라가나요? 따라가나요?

-위험한데요! 그냥 원 바운드 처리하는 편이…….

-이규태 선수 슬라이딩! 아, 그런데 빠졌어요! 빠졌습니다! 주자는 3루까지!

“……!”

필사적으로 몸을 날린 슈퍼 플레이도,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초조감에 두는 무리수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무엇보다 흥겨워서 경기가 끝나고 연습하는 풍조가 돌았다고 해서 몸에 밴 실력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에 취해서 실력 이상의 연승하는 팀은 분위기에 짓눌려서 실력 이하의 연패를 하기도 한다. 팀을 환호시킬 슈퍼 플레이는 종이 한 장 플레이로 팀을 좌절시킬 실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책으로 인한 패닉과 동요는 주위에 전염되기 마련이다. 경험이 적어서 러너스 하이와 다름없는 정신적 고조에 의존하던 유망주라면 더더욱.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평소라면 가뿐히 잡아낼 공도 그날따라 실수를 하며, 평범한 확률로 벌어진 사고도 그날따라 운이 나쁜 것 같은 짜증에 사로잡힌다.

이건 웬만큼 카리스마 있는 감독이라도 일갈 한두 번으로 해소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모든 선수에게 2점대 방어율과 3할대 타율을 치게 하는 전설급 명장으로 두고두고 칭송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엘리펀츠에는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야구인들에게 전설로 추앙받는다거나 카리스마로 점철된 그런 베테랑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한없이 침체된 팀 분위기에 혼자 동떨어져서 찬물을 끼얹는 눈치 없는 놈이라고 할 만했다.

-삼진 아웃! 우와아아, 저걸 지금 여기서 던지나요! 한복판 슬로우볼!

-저건 이제 웬만한 팀은 다 아는 최태웅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거든요! 한복판에 저런 느린 직구를 꽂으면 카운트 손해는 둘째 치고 타자의 멘탈이 나간단 말이에요!

-어느 정도 스피드가 나온다면 모를까, 저건 오로지 타자의 허를 찌르는 데만 목적을 둔 버림수죠. 실투를 해서 저기로 들어가는 거지, 일부러 저기 던지고 싶어 하는 투수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최태웅 선수는 그걸 해요!

-사실 타자의 허를 찌르는 데 실패하면 저건 그냥 홈런 치라고 주는 배팅 볼이거든요. 실제로 각 팀에서 최태웅 선수에 대한 분석이 어느 정도 완료된 지금은 최태웅 선수도 많이 던지지 않아요. 데뷔 초에 비하면 정말 드물게 한 번씩 던지는 겁니다.

-문제는 그 한 번씩이 지금까지 무조건 먹혔다는 겁니다!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어요!

-심심하면 한 번씩 던지던 게 어쩌다 한 번이 된 만큼, 머릿속에 계속 염두에 둘 수가 없거든요. 왜냐하면 그걸 염두에 두는 만큼 다른 공에 대한 대응이 조금이라도 둔해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완전히 환장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그냥 짜증만 났을 텐데, 이제는 ‘왜 하필 나한테?’라는 생각까지 들어서 울화통이 치밀거든요!

-9회 말, 점수는 1점 차이. 우익수의 무리한 다이빙 시도로 3루까지 주자가 나갔지만, 돌부처 같은 투구로 끝끝내 자신의 승리를 지켜내는 최태웅 선수였습니다.

미친 듯이 폭주하는 연승은 없었으나, 와르르 무너지는 연패도 없었다. 선발 로테이션이라고 해봐야 엘리펀츠의 경우는 5명이다. 기나긴 정규 시즌의 전반기라고 불리는 올스타 이전까지만 해도 11승. 여러 선수의 컨디션에 따라 일정 조정한 걸 감안해도 최소한 일주일에 1승씩은 꼬박꼬박 가져온 셈이었다.

단일 리그였던 시절에는 5할에 살짝 못 미치는 승률로도 4강 포스트 시즌에 들어가는 시즌이 종종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혼자서 2할 승률을 책임지는 셈이니, 연패에 대한 부담감은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싹 지워져 있었다.

엘리펀츠의 이런 기세는 다른 팀 입장에서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젊은 놈들이 기세까지 타니,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라인 드라이브! 우익수가 따라가는데요! 따라가는데요!

-빠졌습니다! 중견수 커버! 2루에서 승부가…… 아, 주자가 뛰지 않았네요. 충분히 보고 나서 뛰어도 될 만한 타이밍 아니었나요?

-아무래도 요새 엘리펀츠 야수들이 저런 다이빙 캐치를 시도해서 성공하는 확률이 어마어마하거든요. 만약에 노 바운드로 잡히면 중간에서 협살당할 위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안타를 때렸지만 루를 하나씩 손해본 느낌이죠?

-정신적으로 밀렸다고도 볼 수 있겠죠.

선수 개개인의 성적으로만 따진다면 엘리펀츠는 그리 위협적일 것도 없었다. 투수와 타자를 통틀어 상위 10걸에 이름을 올린 선수도 넷밖에 안 될 정도다. 그렇다고 팀 워크나 역할분담 같은 게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기술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박력이 분명히 있었다.

예컨대, 도루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모든 주자가 리드를 한계까지 잡는다. 이것은 똑같은 승부를 해도 배터리의 스태미나를 심각하게 소모시킨다.

평범한 우익수 앞 안타가 나왔을 때는 송구미스가 두렵지도 않은지 일단 1루로 던지고 본다. 물론 안타성 타구를 치고도 느리게 뛰다가 아웃당하는 일은 드물지만,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여유로운 타구를 때리고도 마음 놓을 수가 없다.

칼싸움으로 예를 들자면 막기가 없다. 이쪽에서 팔을 베려고 하면 그것을 막으려고 하므로 칼싸움이 성립하는 건데, 자기 팔이 베이든 말든 이쪽의 목을 노리고 달려드니 도무지 박자를 맞춰서 어울릴 재간이 없다.

그런 막무가내 플레이를 소화할 만한 기술이 부족하니 내버려 두면 언젠가 제 풀에 걸려 넘어질 일이다. 하지만 멧돼지처럼 덤비는 모습에 움찔해서 물러나다 보니, 리스크는 저쪽이 더욱 큰데도 자꾸만 손해만 보는 양상이 벌어졌다.

이르자면 폭탄 돌리기와도 같았다.

누군가 작정하고 부딪쳐서 분위기를 깨면 와르르 무너질 성 싶기는 했다. 그런데 멧돼지 같은 전법을 받아치는 것이 은근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꼭 자기들이 아니라도 어느 팀에선가 해줄 것 같아서 무난하게 응수하다 보니, 어어어 하는 사이에 엘리펀츠의 순위가 상위권에 못박히고 말았다.

-믿어라. 그러면 구원받을 것이다.

-믿음의 갓승혁! 뚝심의 갓승혁!

-그렇다. 5월의 참사는 쪼렙들한테 경험치 몰아주는 노가다 타임이었던 것이다.

-올해 리빌딩이라고 하지 않았어? 근데 왜 이렇게 치열해 ㅋㅋㅋㅋㅋ

-그런데 솔직히 시합 중에 유승혁 감독이 벤치에서 하는 거 있냐? 딱히 작전 지시하는 타입도 아니고, 다리 꼬고 앉아서 그냥 야구 관람하던데.

-그리고 솔직히 순 치킨 게임이라……. 가을야구 올라가서까지 밥값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유승혁 감독은 원래 작전형이 아니라 육성형 감독이다. 올챙이 시절 생각 좀 해라;; 똥망 시궁창 팀 여기까지 끌어올려줬더니 코시 우승까지 내놓으라고 지랄들이네.

-기왕 올라온 김에 하는 말이지. 내년에 1등으로 올라오면 뭐가 달라져?

최근 몇 년 동안 하위권에서만 맴돌았던지라 적잖은 엘리펀츠 팬은 가을야구 진출권을 놓고 싸운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다. 시즌 초부터 올해는 성적보다 리빌딩에 힘쓰겠다고 정식으로 못을 박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배부르면 등 따시고 싶은 동물이었다. 엘리펀츠가 총체적 난국이라는 소리를 들어온 탓에 리빌딩 선언이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으나, 보통 ‘올해는 리빌딩만 하겠다’라는 말 따위는 프로의 세계에서 통하지 않았다.

기왕 가을야구가 사정권까지 들어온 상황에 일부러 승패를 도외시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남부 리그. 1강 2중 3약. 정규시즌 우승, 사실상 판도 갈려…….]

[가을잔치 티켓. 마지막 한 자리의 주인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가을야구 세력판도.]

[엘리펀츠. 기어이 두 마리의 토끼 잡나.]

“솔직하게 말해서 엘리펀츠는 논외다. 단기전에서 우리한테 먹힐 팀이 아니야.”

이제 서서히 가을야구 출전팀 확정에 가까워지는 시기. 웨일즈의 전력분석팀이나 코칭스태프는 다소 거만하면서도 신랄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엘리펀츠 자체도 자체지만 유승혁 감독의 타입이 그래. 동물적으로 흐름을 잘 끊을 때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맞수를 잘 놓는 거지. 자기가 나서서 획기적인 공격을 시작하는 적이 없어. 시즌 내내 그런 식으로 운영했는데, 토너먼트전에서 갑자기 작전 낸다고 코흘리개들이 바로 소화할 수 있겠어?”

“정규 시즌 중에도…… 젊은 애들 기세 타고 올라오기야 했는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반쯤 객기지. 귀 좀 따가워도 찬물 한두 번 끼얹으면 못 꺾을 것도 없어.”

여기서 말하는 ‘찬물’이란 뭔가 치사하고 비열한 수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 보이자면 조금만 상태가 이상해도 투수를 바로바로 교체하는 벌떼야구가 있겠다.

투수 교체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뒤바꾸는 가장 기초적인 전략이었다.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백 하나로 먹고 사는 젊은 팀이 상대라면 분위기가 바뀐다는 상황 자체가 독으로 작용할 터였다.

“엔트리를 보면 샤크즈하고 스콜피온즈는 그냥 유망주들 굴려보는 잔여경기로 쓰려는 것 같다. 타이틀 걸린 놈도 없고, 우리나 엘리펀츠나 이쪽에서 발목 잡힐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2위 팀인 웨일즈와 엘리펀츠의 승차는 1.5게임.

남겨두고 있는 정규 경기는 모두 여섯.

3경기는 순위 싸움에서 밀려난 2약과의 대결이니, 사실상 엘리펀츠와 맞대결하는 3연전에서 모든 명암이 갈릴 가능성이 높았다.

단기전이 어쩌고 운운한 것도 이러한 전황으로 인한 것이었다. 개념이 달라졌다 뿐이지, 준 플레이오프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3연전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그래도 굳이 우열을 나누자면 유리한 것은 웨일즈 쪽이었다.

1.5게임 차이.

웨일즈에서 스윕을 한다면 그 시점에서 포스트 시즌 진출 결정이다.

위닝 시리즈만 가져간다고 해도 사실상 확정.

반대로 루징 시리즈나 스윕을 당한다고 해도 경우의 수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 셈이다.

유리한 입장이라고 해서 방심할 애송이들도 아니고, 이 정신적인 압박이 엘리펀츠에게 좋은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다. 성급한 팬 중에는 이미 샴페인을 터뜨린 경우마저 있었으나…….

도무지 간과할 수 없는 장애물이 하나 있었다.

“문제는 최태웅이다. 이놈은 지금 12개 구단 어디에서도 답을 못 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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