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83화 (83/90)

< 괴물 배터리 -084- >

084.

자기 팀에서 대기록이 나왔음에도 엘리펀츠 팬들은 조바심이 앞섰다. 부상으로 이탈한 주영호나 황민호는 오랜 경력의 베테랑. 정신적인 면은 물론이거니와 전력으로서도 팀 내에서 큰 축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대교체란 원래 반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도 평균 이상을 보장하는 주전과 아직 포텐이 덜 터진 유망주를 저울에 올려놓으면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바짝 달려도 간당간당한 느낌이었는데, 올해 가을야구 되려나…….

-누가 보면 코끼리가 가을야구 한 자리 맡아놓고 시즌 치르는 줄 알겠네. 언제부터 잠바 입고 야구 봤다고 그러냐.

-부담 주지 마라. 유승혁 감독, 처음부터 리빌딩에 주력한다고 못 박고 시작했다. 시작해놓고 보니까 진흙탕이라서 그런 거지.

-리빌딩하는 시즌은 버리는 거라고 누가 정해놓기라도 했냐? 이겨지면 이기는 거지.

-DTD는 과학입니다.

자포자기하는 팬도 많았으나, 한편으로는 유망주들이 활약하면 해결될 문제이기도 했다. 또한, 어느 시대의 어느 팀이건 한 번은 거쳐 가야 할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야구의 신은 엘리펀츠의 세대교체가 딱 맞물리도록 안배해주지 않았다.

[엘리펀츠 6연패! 예견된 비상!]

[기록으로 본 하락세와 흐름으로 본 하락세.]

[탈꼴찌 전쟁. 5위 탈환 맞대결의 향방은?]

유망주라고 해도 일단은 2군의 벽을 넘어서 1군 벤치에 앉을 만한 프로다. 전성기의 S급 선수와 맞교대한 게 아닌 다음에야 참담할 정도로 폐를 끼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6경기 동안 유망주들의 평균 타율은 2할 5푼 정도. 득점력이 떨어지기야 했어도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클래식한 스탯은 팀 전력을 표현하는 데 별 도움 안 된다는 사실이 이런 데서 드러났다.

‘출루가 너무 산발적이야. 공격이 이렇게 연결이 안 되면 분위기 자체가 안 살아.’

유승혁 감독은 가슴이 답답했다.

요컨대, 선수들의 자신감과 책임감 문제였다.

나쁜 공을 건드려서라도 자기가 해결하겠다는 의지, 주역이 못 될지라도 후속타자에게 연결해주겠다는 희생정신.

어느 것도 무조건 옳기만 하지는 않았다. 최상의 결과란 이런저런 것들이 적당히 맞물려야 찾아오는 법이었다.

‘특히 득점권 타율이 바닥이 됐어.’

산발적으로 출장하던 때에는 유망주들의 집중력이 날카롭게 갈려 있었다. 한심하게도 어느 정도 출장이 보장되었더니 바로 이 꼴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유망주들이 나태해졌다는 말은 아니었다. 가끔 땜빵으로 나갔을 때는 오로지 자기 입지를 위해 플레이하면 되었다. 그러나 베테랑의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자기 플레이가 승패를 좌우하게 된 상황에 몸이 굳어진 거겠지.

밑천이 떨어지는 녀석들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부담감에 익숙해지도록 진득하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가장 간편한 대증요법이다.

문제는 바로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혹은 허비한 시간을 수복할 수 있느냐 하는 건데…….

-자, 아마도 선발투수 예고를 보고 많은 분들이 흥분하지 않으셨을까 싶은데요. 언젠가 찾아올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죠.

-엘리펀츠와 하이에나즈의 10차전. 선발 마운드에 최태웅 선수가 올라옵니다.

만원 관중까지야 아니었으나, 근래와 비교하면 족히 2천은 관중이 불어나 있었다. 하루 전에 공개한 선발 예고의 위력이었다.

-사실 지금 상황을 유추할 만한 단서는 있었죠. 등판 때마다 3이닝 이상씩 소화한 점이나, 그런데도 혹사 소리가 못 나올 정도로 간결했던 투구수나, 지난 6경기 동안 등판 타이밍이 있었는데도 등판하지 않은 점 등이 그렇지요.

-불펜용으로 컨디션을 맞춰두고 있었던 만큼, 선발용 어깨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등판한 라이거즈전 직후에 선발 전환이 결정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최태웅 선수의 이닝 소화능력을 보면, 선발로 전환할 구상 자체는 더 일찍 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연속 노히트 기록 중이라 섣불리 보직에 손을 댈 수 없었던 거겠죠.

최태웅의 선발 데뷔 상대가 된 김진호로 말하자면 미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록이 있으니, 느린 공을 던지는 신인이라고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강 어떤 피칭을 하는지 자체는 널리 알려진 지 오래. 선발투수 최태웅은 아직 여러모로 물음표가 붙어 있는 셈이었다.

“구원으로 나오니까 그때까지 140~150짜리에 눈이 익숙해져 놔서 더 어려운 것도 있지.”

“그건 그래. 처음부터 던진다면야…….”

“패턴도 사실 따지고 보면 강중약 뿐이잖아.”

구원등판해서 던진 투수가 어어어 하는 사이에 3~5이닝을 버틴 것과, 처음부터 5이닝 이상을 던질 작정으로 올라온 것은 또 다르다.

이번에야말로, 하고 선수들은 어금니를 물었다.

퍼억! 퍼억!

“아웃!”

“스트라이크!”

그런 의미에서, 순식간에 흘러간 3이닝 정도는 선수들에게 그리 절박감을 주지 않았다.

경기 흐름에 가장 큰 변화가 찾아오는 것은 보통 타순이 두 바퀴째에 돌입했을 때다. 일부러 칠만한 공을 보낸 것까지야 아니지만, 공을 지켜보는 데만 치중한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첫 변화는 엘리펀츠 쪽에 먼저 찾아왔다.

“볼! 베이스 온 볼스!”

“와아아아!”

방망이를 내팽개치고 유유히 걸어가는 타자의 모습에 관중이 환호성을 질렀다.

무사 만루. 여차하면 일찌감치 승패를 못 박을 수도 있는 대찬스가 찾아왔던 것이다.

“마지막 공 나쁘지 않았어. 흔들린다 생각하고 멀뚱멀뚱 지켜보면 안 돼. 칠 수 있는 건 쳐라.”

“예…… 예…….”

한편, 차려놓은 밥상 앞에 앉게 된 이규태는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이럴 때는 무리하지 말고 뒤로 이어줄 생각만 하면 된다고 해줄 수 없나? 아니, 병살만 면해도 된다고 긴장 풀어주면 안 됐던 건가? 칠 수 있으면 치라니, 뭐야 그게. 당연히 나보고 해결하고 오라는 것 같잖아.

퍼억! 퍼억!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그러한 찬스의 긴장감은 이규태를 삽시간에 투 스트라이크까지 내몰았다.

부드럽게 심호흡하는 투수를 봤더니 목이 타들어갔다. 자신은 아무래도 상대 투수에게 진정할 시간마저 줘버린 듯했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힘차게 방망이를 헛돌린 이규태가 털레털레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만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맥 빠지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뒤이어 타석에 들어가는 손철민의 심장이 묵직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데뷔 이래, 실전에서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만루. 여기서 임팩트만 보여준다면 두고두고 야구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전에 실수한 최태웅의 선발 경기라는 점이 문제였다.

따악!

“큭!”

방망이가 공을 때리는 찰나. 손철민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타이밍은 그럭저럭 맞았을 텐데, 스윙이 위축되었던 탓인지 완전히 힘에서 밀려버린 것이다.

“아웃!”

“아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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