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73화 (73/90)

< 괴물 배터리 -074- >

074.

“에라이, 위아래 없는 새꺄.”

“싸가지 밥 말아 먹으니까 배부르냐?”

“그 똥볼 언제까지 가나 보자! 우리 승호 형한테 홈런 처맞고 질질 짜지나 마라!”

“좋냐? 저딴 무개념한테 업혀서 승리투수 되니까?”

교류전. 재규어즈와의 원정 3연전.

리그가 다른 만큼, 엘리펀츠와는 이렇다 할 갈등도 없는 사이임에도 관중석에서는 연습 시간부터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벤치 클리어링 다음 날 같은 살벌함은 없다. 그렇다고 재규어즈 팬들의 빈정거림이 상대를 가려가며 꽂히는 것도 아니었다.

베테랑들이야 기본적으로 심드렁했다. 이런 일은 팀에 논란거리가 생길 때마다 으레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이 적은 유망주들은 쏟아지는 시선과 야유가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훈련에 집중이 안 되는 정도를 넘어서 먹은 게 다 얹힐 지경이었다.

“똥 싸지른 놈은 따로 있는데…….”

“왜 엄한 우리까지…….”

한편으로 최태웅의 파격 인터뷰가 안티만 양산해낸 것은 아니었다.

타팀에게야 괘씸한 도발이라도, 엘리펀츠 팬이 볼 때는 패기만만한 출사표다. 11개 구단 전체에 ‘능력 있으면 쳐봐라’라는 식으로 선전포고하는 정신 나간 신인을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언놈이 찌질하게 주둥이로 야구 하냐?”

“패왕똥볼이라고 들어나 봤나?”

“살살 던져줘도 못 주워 먹으면서! 하여튼 야알못 새끼들은 강속구가 다인 줄 알지!”

“꼬우면 점수 내보라고! 그러면 진지 빨고 던져준다잖냐!”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

논란이고 자시고 간에, 최태웅이 완벽에 가까운 성적을 유지 중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엘리펀츠의 팬덤은 우리 팀에도 진짜배기 또라이가 나타났다며 낄낄낄 환호했다. 플랜카드까지 만들어서 원정 응원을 온 팬도 적잖을 정도였다.

그래도 사실, 여기까지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자기는 사실 다른 팀 팬이라거나, 하도 답답해서 직접 프로가 되어봤다거나. 골 때리는 신인 인터뷰로 따지자면 최태웅이 딱히 독보적인 것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태웅이 형! 태웅이 형! 오늘 경기 나오나.”

“그거야 경기 돌아가는 거 봐야 알죠. 불펜 투수가 나올지 말지 어떻게 알아요.”

“아, 형! 좀 추격할 때 올려달라고 어필 좀 해봐요. 노히트로 몇 이닝씩 먹으면서 4~5점 차이 날 때만 올라오는 건 재능낭비라니까.”

“신인이 어필은 무슨 어필을 해요? 올라가라면 올라가고, 내려오라면 내려오는 거지. 그리고 왜 자꾸 형이라고 부르세요? 아무리 봐도 우리 삼촌뻘은 되어 보이시는데…….”

“그런 게 어딨나! 야구 잘하면 형이지! 아, 거기. 날짜도 같이 써줘야지. 사인 한두 번 해봐요?”

“아, 죄송. 제가 사인을 아직 많이 안 해봐서.”

익사이팅존 근처에서 관중들과 시시덕거리는 최태웅의 모습에, 유망주들은 혀를 내둘렀다.

“멘탈 한 번 끝내준다…….”

“저쯤 되면 깡이 좋다기보다 바보 아니냐?”

“어제 코치님한테 혼나는 것 같던데……. 어떻게 저렇게 쌩쌩하지?”

“혼나기는 뭘. 그냥 잔소리 조금이지.”

슬슬 주위에 사람이 늘어나자, 최태웅은 적당히 둘러대고 자리를 피했다. 몰려드는 족족 사인을 해줬다간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에 따라서는 경기 전의 팬 서비스 일체를 금지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실내 연습장에서는 아직 몇몇 투수가 남아서 불펜 피칭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최태웅이 갑자기 무너지듯이 쪼그려 앉았다. 위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명치 근처를 문지르면서 그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헉헉. 위장에 빵꾸나겠네. 내가 무슨 나라를 다 팔아먹었다고 그렇게 꼬라보냐. 관중석에서 날계란 날아오는 줄 알았네.”

“왜? 이제 슬슬 사고 친 게 실감 되냐?”

서기찬의 공을 받아주고 있던 채영선이 피식 웃으면서 이죽거렸다. 그러나 최태웅은 언제 끙끙거렸느냐는 듯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눈썹을 까딱할 뿐이었다.

“사고라뇨? 그냥 소신표명 조금 해본 건데요.”

“소신표명은 얼어죽을. 다 덤벼보라고 광역 어그로 끌어놓고선.”

“저도 프라이드라는 게 있는데. 일부러 대충 던진다는 소리 들으면 얼마나 스트레스받는데요.”

“얼씨구.”

“저래놓으니까 지금 보세요. 야구 대충한다는 소리는 쏙 들어갔잖아요.”

경기 외적인 요소가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메이저리그 몇몇 구단에는 선수 사생활을 케어하는 부서까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논란을 정면돌파로 대처하는 것은 나쁜 방법도 아니었다.

단지…….

“야구 대충한다는 소리가 싸가지 없다는 소리로 바뀌었을 뿐 아니냐? 욕먹기는 똑같은데, 그런 데도 스트레스가 풀려?”

“취, 취향 문제죠. 야구 대충한다는 소리보다는 싸가지 없다는 소리가 그나마…….”

“너, 변태냐!”

게슴츠레한 눈초리에 최태웅이 쩔쩔매면서 시선을 피했다.

“건방지다는 소리는 야구만 잘하면 알아서 작아지게 돼 있어요.”

“대충한다는 소리도 마찬가지 아니냐? 야구만 잘하면 똥볼을 던지든 강속구를 던지든 아무도 신경 안 쓸 텐데.”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는지라, 최태웅은 그냥 어색하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비상식적인 피칭 패턴’을 주목받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발각될 일은 영원히 없다고 생각하지만, 야구 이론이고 나발이고 씹어먹을 수 있는 근간은 초능력이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이라도 알몸으로 시선을 받으면 안절부절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이러저러해서 강속구에 제한이 있다고 둘러댈 수도 있지만, 그건 강력한 무기를 스스로 봉인하는 꼴이다. 그럴 바에는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봉합해버리는 편이 나았다.

어쨌든 모든 문제는 자신의 경력이 짧다는 데서 비롯하니까. 커리어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다.

그렇게 구장 전체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시간은 흘러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재규어즈의 선발투수는 송남호.

유망주라는 딱지를 벗은 주전 3선발.

4승 2패에 평균자책점은 2.82.

정규 시즌이 4분의 1 쯤 흐른 시점이라고 생각하면 커리어 하이급 활약도 기대할 수 있는 상승세의 정통파 우완 투수였다.

하지만 기복 없이 경기마다 꾸준히 두어 점을 실점하는 타입이라 막막한 느낌은 없었다.

더군다나 엘리펀츠 1번인 신석진은 작년 4홈런 중 하나가 송남호를 상대로 한 것이기까지 했다.

타율도 4타수 2안타로 정확히 절반.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얼마든지 잡아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품고 있었으나…….

“스트라이크 아웃!”

“어?”

풀카운트까지 가는 승부에서 루킹 삼진.

몸쪽으로 날아오다가 휘어져 들어가는 슬라이더에 꼼짝없이 눈만 끔뻑거리고 말았다.

“뭐지?”

마치 면도칼이 목덜미에 닿은 듯한 서늘함.

허무하게 당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신석진은 뭐라고 표현하기 모호한 위화감이 피부에 추적추적 들러붙는 걸 느꼈다.

***

결과만 놓고 말해서.

신석진이 감지한 위화감은 헛발질이 아니었다.

-밀어친 타구! 라인 드라이브! 2루수 머리를 훌쩍 넘기는 깔끔한 우전…….

-어어어어? 우익수? 우익수 던집니다! 1루, 1루로!

깔끔한 외야 타구를 때려낸 주영호가 별안간 기겁해서 질주했다. 짧은 바운드로 공을 잡아낸 우익수가 그대로 1루에 총알 송구를 쏘아낸 것이다.

“세이프!”

“……!”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주영호는 엉겁결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해가며 종이 한 장 차이로 1루에서 살아남았다.

주영호는 갑작스러운 대쉬에 놀란 허벅지를 문지르면서 험악하게 으르렁거렸다.

“뭐야, 저 새끼? 뭐 잘못 먹었어?”

외야에 공이 바운드하면 거의 틀림없이 안타지만, 타구가 빠르면 1루에서 아웃될 가능성도 있다. 흔히 농담 삼아서 말하는 ‘우익수 땅볼’이 그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은 드물었다. 외야까지 공이 날아간 시점에서, 타자가 어지간히 건성으로 뛰지 않는 한은 잡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차피 안 되는 걸 알기에, 우익수는 굳이 악송구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어차피 안 던질 걸 알기에 타자도 전력 질주하지는 않는다.

팬의 눈에는 불성실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선수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무의미하게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하지 않는, 동업자 간의 암묵적인 합의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 방금 던지는 순간에는 우익수가 조금 무리한 판단을 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슬아슬했죠?

-이 정도로 깔끔한 타구라면 사실 악송구의 위험이 더 큰지라 모범적언 플레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만큼 파이팅이 느껴지는 송구였죠?

-그렇습니다. 주영호 선수는 아주 간담이 서늘했을 것 같은데요. 이런 플레이 하나하나가 상대팀 선수들을 조급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웨일즈의 경우에는 투수 앞 땅볼을 치더라도 전력 질주하지 않으면 그날 시합 끝나고 지옥의 펑고가 기다리거든요. 어차피 죽을 게 뻔한 타구에도 전력 질주하면, 그걸 처리하는 야수는 조급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안 해도 되는 실책을 범하게 되는 거고요.

-어차피 못 치겠으면 시원하게 선풍기질이라도 하고 오라는 오더도 같은 맥락이겠죠.

-맞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공이라도 눈 질끈 감고 휘두르면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우연히라도 얻어걸리면 넘어갈 것 같으니까, 투수로서는 아무래도 위축이 되는 거죠.

이런 분위기가 2회까지 이어지자, 엘리펀츠 선수 전원이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니, 이쯤 되면 위화감도 뭣도 아니었다.

재규어즈는 자신들에게, 오늘 경기에 완전히 독기를 품고 있었다.

“야, 누구 혹시 쟤들 때렸냐? 아니면 나 모르게 술 퍼마시고 패싸움했다거나?”

유승혁 감독이 기막혀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어봤을 만큼, 재규어즈의 플레이는 치열했다.

작년에 도루 5개도 못한 놈이 리드를 무지막지하게 벌리질 않나. 주자도 없는 2아웃 상황에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질 않나. 몸에 맞혀서 퇴장시킬 기세로 위협구를 찔러대질 않나.

그나마 타자들은 나았다. 타구가 좋은 방향으로 날아가기만 하면 끝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엘리펀츠의 선발투수인 박승호였다.

따악! 따악! 따악! 따악!

“파울!” “파울!” “파울!” “파울!”

4이닝 무실점.

이닝 당 한 번씩 1루 베이스를 허용했을 뿐이지만, 박승호는 벌써 입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5회의 선두타자를 상대하는 시점에서 이미 투구수는 83개.

재규어즈 타선이 딱히 작정하고 투구수 테러만 일삼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노림수를 갖고, 마음에 안 드는 공만 걷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남들은 왜 못하는가 싶겠지만. 재규어즈 타자들은 시비를 거나 싶을 정도로 악착같이 홈 플레이트에 달라붙어 있었다.

“개새끼들. 지금이 무슨 한국 시리즈냐?”

죽어보라며 컨트롤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몸쪽에 붙여보기도 했으나, 누구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몸에 맞고서라도 나가기를 바라는 듯한 집념이었다.

퍼억!

“볼! 베이스 온 볼스.”

물리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진 것은 둘째치고, 기세에 눌리다 보니 승부 자체가 안 되었다. 투구수야 여유가 있지만, 투수의 체력 소모는 투구수와 정직하게 비례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쟤네 진짜 왜 저러냐? 특별히 순위싸움 치열하거나 한 것도 아니잖아.”

선수들은 이제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저놈들이 왜 저러는지가 궁금했다.

투지? 집념?

다 좋은데, 리그전인 정규시즌의 투지와 토너먼트인 가을야구의 투지는 종류가 다르다. 막말로 독한 마음 먹고 몸에 맞혀서 시즌 아웃이라도 시키면 저쪽은 시즌 전체가 헝클어진다.

“점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광역 어그로 끌어놔서?”

“……네?”

갑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최태웅은 놀라서 펄쩍 뛰었다. 처음 말을 꺼내는 순간에는 반쯤 농담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설득력이 있는 지라 다들 눈빛이 냉랭하게 변했다.

“아니, 뭐여 이건? 마녀사냥도 정도가 있지! 저는 닭다리 두 개를 남한테 양보한 적도 있는 사람이에요! 지금껏 살면서 남한테 원한 맺을 일을 해본 역사가 없는데!”

“지랄 옆차기하고 앉았네. 저어기랑 저기. 저기도. 다른 팀 유니폼 입은 사람들 다 1루 쪽에 앉은 거 안 보이냐? 재규어즈 응원이 아니라 우리 까려고 앉은 거잖아.”

“우와, 몰아가는 거 봐! 신인이 포부를 밝혔으면 다독이면서 등 떠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최태웅이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쾅쾅 친다.

그런 최태웅을 향해서 다들 한 마디씩 구시렁거리는 사이에, 벤치 한쪽에 있던 서기찬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저, 혹시 그거 아닐까요? 진호권 선배님, 재활치료하고 일주일 전부터 복귀했다는데…….”

“으으응?”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선수들이 무심코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히 모르는 이름은 아니었다.

FA가 되는 해의 부상으로 그대로 한국에 잔류해 통산 109승의 족적을 남긴 재규어즈의 레전드.

왜 그 이름이 언급되었는지도, 들은 후에야 퍼뜩 떠올랐다.

“17이닝 노히트가 진호권 선배님 기록이었나.”

“그거 때문에 저런다고? 아직 최태웅이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뭔 상관이야?”

“올라가든 말든, 우리랑 붙는 것만으로도 독기 품을 수는 있지.”

“좀 이르지 않나? 아직도 7명 더 연속으로 잡아야 타이잖아. 무실점이면 몰라도, 벌써 초읽기 하기에는 좀…….”

올해는 은퇴해야지, 올해는 은퇴해야지, 하는 말을 3년째 반복하는 진호권이다. 최근에는 플레잉코치로서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맡았던 만큼, 선수들이 분기충천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저쪽 동네는 의리가 있네요, 의리. 어디처럼 다른 팀이 깐다고 덩달아 마녀사냥하지도 않고.”

“닥쳐. 결국은 너 때문인 거 맞는 거잖아.”

“…….”

괜히 한 마디 깝죽거렸던 최태웅이 싸늘한 면박을 받고 침울해진 순간이었다.

따악!!!

“……!”

“와아아아아!”

귀 따가운 함성이 그라운드를 덮쳤다.

밤하늘에 파묻히듯 사라지는 공을 보면서, 유승혁 감독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불펜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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