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72화 (72/90)

< 괴물 배터리 -073- >

073.

야구만큼 경기 숫자가 많은 프로 스포츠도 달리 없다. 웬만한 골수팬도 모든 경기를 체크하지는 못할 정도다.

일반적인 팬이라면 자기 팀 경기를 위주로 시청하면서, 이슈가 생겼을 때만 다른 팀 경기를 둘러본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 외에는 몇몇 국가대표급 선수밖에 못 알아보는 라이트 팬도 적은 편은 아니다.

이렇게 며칠에 한 번씩 야구를 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태웅’이라는 이름은 아직 미묘하게 생소했다. 날짜로 따지면 1군에 올라온 지 일주일이 조금 넘을 뿐. 등판도 불규칙한 구원투수로서 3경기 만에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었기 때문이다.

-데뷔하자마자 쾌도난마! 최태웅 14.2이닝 노히트!

-역대 신인 최장 노히트? 역대 최다 이닝도 이미 사정거리!

-엘리펀츠 불펜의 과부하를 해소한 젊은 산소 호흡기!

-경기당 3이닝. 그러나 혹사 논란은 없다?

지금까지도 등판이 끝날 때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으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최태웅을 직접 조명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유감스러운 점이라면 80퍼센트 가량이 허겁지겁 자료를 긁어서 정리한 수준이라는 정도.

물론, 기자들 입장에서도 살짝 억울한 부분은 있었다.

퍼펙트 게임이나 노히트 노런이라면 어차피 한 경기 만에 달성하는 기록이니까 신인이 뜬금없이 해치워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속 이닝 노히트는 조금씩 쌓아가는 종류의 기록. 구원투수라면 한두 이닝씩 야금야금 기록에 다가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걸 등판할 때마다 3~4이닝씩 뭉텅뭉텅 잘라나갔으니……. 노히트가 뉘 집 개 이름인가? 라면서 취재를 미루던 기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그래도 모든 기자들이 게으른 것은 아니었다. 기록이 언급된 시점에서 기계적인 성실함으로 최태웅의 경력을 꼼꼼하게 체크한 기자도 대여섯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것은 야구전문기자 이호섭의 칼럼이었다.

-신인 최다 노히트ing 최태웅. 역경을 넘은 챌린저.

-잘하는 야구가 아니라, 하고 싶은 야구를 하게 해주고 싶었다.

초등야구 경력이나 우완투수 전향, 사회인 야구경력쯤이야 기자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호섭의 칼럼은 실속의 정도가 달랐다. 최태웅이 속했던 사회인 야구팀과 토네이도즈 선수 몇몇, 심지어는 가족과 초등학교 시절 감독의 인터뷰까지 곁들여졌던 것이다.

-솔직히 놀랐죠. 재수까지 한 놈이 갑자기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태웅이 눈을 보니까 차마 말릴 수가 없더라고요. 이전까지는 무슨 일이든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놈이었거든요. 그렇게 절실하게 자기 뜻으로 뭔가를 원한 적은 처음이었어요.

-어릴 때의 태웅이는 그냥 평범한 영재였습니다. 하하, 말이 이상한가요? 평범한 야구 영재들이 그랬듯이 강속구 하나면 게임이 끝났다는 말이지요. 오른팔로 전향했으니까 당연히 변화는 있겠지만, 그래서 지금 피칭 스타일이 의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지금의 신체 조건에서도 야구를 할 수 있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말이겠지요.

-샤크즈 박진효 선수가 같은 부대였거든요. 어쨌든 야구하던 사람들이라 자주 어울렸는데, 진효 형이 태웅이한테 야구를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웃자고 한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지금 프로 돼서 하는 걸 보니까 진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 이틀 판 발품으로 나올 내용이 아니기에 동료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취재 내용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나중에 포텐 터지면 써먹으려고 ‘소재’를 미리미리 갈무리하는 거야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써먹으려고 미리미리 갈무리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그 비실비실한 똥볼에서, 어떻게 이런 행동력을 발휘할 만큼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인가?

기자들이 뿌린 정보는 최태웅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팬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았다.

이미 최태웅을 눈여겨 봐두고 있던 골수팬들은 괜히 우쭐대면서 주워들은 썰을 풀기도 했다.

[최태웅이가 저래봬도 2군에서부터 방어율 1위였다. 그것도 0점대. 떡잎 알아본 사람은 많았음. 멘탈만 흔들리지 않으면 어느 정도 활약은 예약된 거지.]

[누구 앞에서 멘탈 얘기를 하고 있어? 직구가 150까지 나오는데도 120도 안 되게 줄여서 던지는 놈이다. 아무리 자기 피칭 스타일이라지만, 1군 데뷔전에서부터 이러는 게 어디 다이아몬드 멘탈 정도로 될 일이냐? 똘끼 레벨이지.]

[단순히 체인지업이라서 느린 거 아니야?]

[체인지업은 더 느리다. 70~90 정도.]

[떡잎 얘기를 하려면 초딩 때까지 거슬러 가야지. 전국체전 우승도 했다잖아.]

[중고딩 때는 야구 완전히 접고 있었다는 게 사실?]

[야잘잘(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이 진짜구나. 공백이 최소 6년인데, 오른팔로 전향한 지 1, 2년 만에 프로 데뷔해서 이렇게 깽판 치고 있다는 거잖아.]

[잘난 놈만 잘난 더러운 세상. 하느님 밸런스 패치 좀 해주세요.]

하지만 최태웅이 압도적인 성적을 찍었다고 해서 우호적인 찬탄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에게 쏟아지는 찬사 자체를 고까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나 최태웅의 피칭 스타일에는 물어뜯을 구석도 많았다.

[방어율 4점 후반대 투수도 메이저에서 사실상 퍼펙트한 적 있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 오심 때문에 퍼펙트로 기록만 안 됐을 뿐이지.]

[원래 배짱 좋은 신인이 막 던지면 초반에는 잘 먹히는 거 하루 이틀 보나? 14.2이닝 정도로 설레발치기에는 이르다고 보는데?]

[야알못(야구 알지도 못하는)들이 꼭 기록 하나 세우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빨아주고 그러지. 진심으로 저게 오래 갈 공이라고 생각하냐?]

[그런 거 떠나서 건방지지 않냐? 빠른 공 던질 수 있잖아. 그러면 그냥 던지면 되는 거 아니야? 선배들을 얼마나 병신으로 보면 저딴 똥볼로 체력 안배를 해?]

[하도 어처구니없는 공을 던지니까 선수들이 당황해서 잠깐 헤매는 거지. 홍콩전에서도 추세훈이 120km/h에 헛스윙하는 거 못 봤냐?]

‘까’들의 불평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불성실하다’라는 것이었다.

여러 이닝을 소화하는 투수가 완급을 조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완급 조절이 목적이 아니라도 메이저리그의 그렉 매덕스처럼 제구와 두뇌 피칭을 위해 일부러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야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느림의 미학’으로 널리 알려진 메이저리그의 선수들도 어지간해서는 130이 넘는 공을 던졌다. 그보다 레벨이 낮은 한국이라지만 110km대는 지나치다. 무엇보다 110km 후반의 직구도 7~90km/h의 체인지업 사이에 하나씩 끼워 넣는 수준이 아닌가.

[그래도 결과만 내면 장땡 아니냐? 느린데도 못 치는 타자가 쪽팔려할 문제지, 일부러 느리게 던지는 투수가 욕먹을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 결과가 설레발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계속 나올 리 없다는 거다.]

[나올 리가 없기는 개뿔. 얻어맞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 빠르게 던지면 되는 거 아니냐?]

[나중에 가서 그럴 거면 지금은 뭐야? 스타일이 아니라 단순히 대충 던졌다는 거잖아. 그게 싸가지 없는 게 아니면 도대체 뭔데?]

[그러니까 결과가 나왔는데 대충 던지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대충 던지는 동안에는 체력이 아껴지고 그만큼 팀에 기여되는데.]

한 번 불이 불은 야구 커뮤니티는 하루 내내 식을 줄 몰랐다. 딱히 엘리펀츠와 나머지 구단의 대립 구도도 아니었다. 엘리펀츠 팬 중에도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있었고, 기록의 제물이 된 팀에서도 뭐가 문제냐는 사람이 나왔다. 야구에 무관심한 사람 눈으로 보자면 아무런 생산성도 없는 키보드 배틀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편 가른 갑론을박도 딱 하루 동안이었다.

그러니까, 다음 날.

경기 전에 올라온 인터뷰 기사를 보기 전까지.

***

“기록을 의식 안 할 수가 없죠. 그런데 새삼스럽게 기록을 위해서 제가 따로 할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안타 맞을 생각으로 마운드에 서지는 않으니까요. 늘 하던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톰 글래빈이랑 그렉 매덕스요? 딱히 처음부터 지향한 건 아닙니다. 느린 공을 먹히게 하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지향점이 비슷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아직 타이밍만 가지고 속이는 단계라서 아직 멀었죠.”

“아, 저는 팬으로서는 야구를 라이트하게 즐긴 편이라서 특별히 응원하는 팀 없습니다. 재밌는 이슈가 생겼다 하면 다 챙겨봤어요.”

엘리펀츠에서는 기본적으로 신인의 인터뷰를 제한한다. 일찌감치 헛바람이 들면 야구에 집중을 못 하게 된다는 논리인데, 당연히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처럼 큼직한 기록을 경신했다거나 해버리면 인터뷰를 하나 안 하나 거기서 거기다. 야구도 결국은 인기 장사라, 끝끝내 침묵하면 오히려 팬들의 불만만 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프런트가 완전히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복잡해지기 전에 친(親) 엘리펀츠 성향의 기자 몇몇으로 간소한 인터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구단으로서 당연히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거야 원.

-기록을 의식하십니까? 누구를 롤 모델로 삼은 거 아닙니까? 프로가 되기 전에는 어느 팀의 팬이었습니까?

아무리 구단 친화적인 기자들이라지만 너무 고리타분한 거 아니야? 질문하는 입장에서나 받는 입장에서나 영양가 없는 데에도 정도가 있지. 이런 질문을 누가 궁금해 하겠느냐고. 그렇다고 뭐 대답하기 곤란할 정도로 자극적인 질문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럴 바에는 차라리 싼 티 나더라도 애인 있느냐 없느냐 같은…….

“스포츠피아 이호섭입니다. 각종 야구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최태웅 선수의 피칭 스타일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은데요.”

“아, 예.”

오호라. 저 아저씨가 이호섭 기자였구나. 우리 집에 와서 인터뷰까지 하고 간? 아버지한테 전화로 들은 바가 있었던 나는 관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기자가 우리 집까지 찾아가서 인터뷰했다는 건 별일이 아닌데,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칼럼의 밀도를 보면 하루 이틀 취재해서 될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호섭 기자는 남보다 이른 타이밍에 나를 주목했다는 말이다. 그게 나한테 무슨 영향을 미친 일은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데. 나를 알아봐 준 사람한테 좋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최태웅 선수의 피칭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다양한 스피드의 슬로우볼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식이죠. 이런 타입의 투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태웅 선수가 유독 논란이 되는 것은 최고 구속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칼럼도 그렇더니만, 처음으로 흥미진진한 질문이네.

마침내 올 게 왔다는 생각에,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이 논란은 나한테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였다. 언젠가 한 번은 어떤 식으로든 봉합해둘 필요가 있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느리게 던지는 건 논외다. 이미 세상 사람들이 내 150km/h짜리 직구를 봐버린 데다가, 애써 오픈한 특성을 봉인하는 셈이 되니까.

“150km/h를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일부러 120km/h도 안 되는 공을 던진다. 이 상황 자체를 일종의 태업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없습니까?”

“할 말보다는 질문하고 싶은 건 하나 있는데요.”

가볍게 심호흡한 뒤, 나는 이호섭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분들은 제가 오늘까지 상대한 타자들이 설렁설렁 던진 공에 아웃당했다? 이 말을 하고 싶으신 거죠?”

“……!”

시니컬하게 뱉은 목소리에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아니겠나. 새파란 신인이 세간의 논란을 정면으로 받아치고 나왔는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논리적으로 내 피칭을 대중에게 납득시킬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방향에서 논란이 종식될 만한 ‘개연성’이라도 부여해야 했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선발투수가 아니더라도 이닝을 많이 소화하는 건 투수의 미덕입니다. 오프 스피드 피치는 그걸 위해서 제가 찾은 해답이고요. 물론, 느린 공이 빠른 공보다 위험하다는 건 압니다.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저는 많은 수단을 강구하고 있고요. 살살 던진 공은 있어도 대충 던진 공은 없습니다.”

“…….”

“이게 안 통한다면 당연히 스타일을 바꿔야겠죠. 하지만 적어도 14.2이닝 동안은 통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력투구는 제가 한 경기 3실점한 뒤부터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잘 가라, 착한 남자 최태웅.

띠링띠링, 악플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만…….

야구만 잘하면 이것도 개성이지.

인생 뭐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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