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배터리 -072- >
072.
따아악!
흉포함마저 느껴지는 장작 패기 스윙에, 밋밋하게 떨어지던 체인지업이 자취를 감추었다.
투수로서는 뒤를 돌아볼 의욕도 안 생길 만큼 까마득한 궤적. 뜬금없는 대형 타구에 구장이 일순간 침묵에 잠겼다.
초대형 홈런의 주인공은 무심하게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는 것처럼, 이쯤이야 일상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담담한 얼굴로.
너무나도 태연한 광경에 얼빠졌던 관중들이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홈런을 때려낸 우리 팀 영웅에게 열렬한 함성을…….
“야이 씨, 왜 또 안 하던 짓거리를 하고 자빠졌어?”
열렬한 환호를…….
“왜 존나 오버하고 지랄이야? 영양가 없는 새끼!”
“차라리 혼자 뒤지랄 때는 기어이 주자까지 잡아먹더니만.”
“넌 시발 눈치도 없냐?”
엘리펀츠의 포수 장기석은 동료들과 영혼 없는 하이파이브를 하고서 더그아웃 한쪽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쏟아져 내리는 홈팬의 야유를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부루퉁했다.
“시발, 삐뚤어질 거야. 내가 이 팀에 뼈 묻은 게 몇 년인데…….”
“이해해라.”
투수가 대기록 중일 때. 대다수 관중은 응원팀 타자일지라도 안타 치는 걸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처럼 점수 차이가 10점 넘게 벌어진 상황이라면 더더욱. 어차피 승패는 결정되었으니 빨리 피칭이나 감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골수팬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보이지 않을 미성숙한 관람 문화지만, 어쩌겠는가. 대중적인 문화는 언제나 골수팬보다 라이트하게 즐기는 팬의 숫자가 압도적이기 마련인데.
팔콘즈 투수가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자 관중석의 야유가 조금 더 강해졌다. 쓸데없이 홈런으로 상대 투수를 흔들어 놨다는 것이었다.
“집에 가고 싶어……. 할머니 된장찌개 먹고 싶어…….”
더욱 시무룩해진 장기석을 동기인 권병철이 토닥거릴 때였다.
따악!
“그렇지! 석진이 니가 드디어 한 건 하는구나!”
“멋있다! 잘생겼다 김석진!”
”그래, 그래! 야구는 이렇게 센스 있게 하는 거지!”
“융통성이 있어야지, 사람이!”
누가 언제 야유 따위를 날렸냐는 듯. 홈 관중석 쪽에서 통쾌한 환호성이 울렸다.
방금 타석에서 총알 같은 타구를 쏘아버린 김석진이 함성에 화답하듯 으쓱거리면서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이하하하, 쑥스럽게 뭐 이러실 것까지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등번호 120번 김석진입니다. 감사…….”
실실거리던 김석진의 뒤통수로 타격코치의 주먹이 날아갔다.
“야, 웃음이 나오냐? 병살타 친 새끼가 뭐가 좋아서 실실 쪼개고 지랄이야? 미쳐 돌아가지고. 요새 특타 안 한지 좀 됐지? 퇴근하기 싫지? 야구가 장난이냐? 동아리 야구 해? 요새 빠따 좀 잘 돌렸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어?”
“……죄송합니다.”
급격하게 풀죽은 김석진을 보면서, 장기석은 남몰래 히죽 웃었다.
***
12.2이닝 노히트.
데뷔 직후의 신인이 느닷없이 쌓아올리기 시작한 기록에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신인으로서의 기록은 이미 경신했지만, 노히트 행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신인으로서 최다’라는 어중간한 수식어를 떼어버리지 못하리란 법도 없었던 것이다.
“연속 이닝 노히트 최고가 몇이라고 그랬지? 17이닝이었나?”
“될까? 좀 많이 남았는데…….”
“일단 오늘은 팔콘즈잖아. 남은 2이닝은 어떻게 먹고 시작하지 않을까?”
“꼭 끝까지 던지게 할 거 있나? 1이닝씩 짤라서 올리는 편이 나올 것 같은데…….”
“아니야. 지금 점수 차이 봐봐. 지금처럼 부담 없는 상황도 없어. 벌 수 있을 때 벌어둬야 돼.”
평범하게 말하는 소리가 마운드까지 들릴 리도 없건만. 몇몇 관중은 괜히 긴장해서 귓속말을 속닥거리기까지 했다.
마치 퍼펙트나 노히트 노런이라도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1루 쪽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반대로, 원정 응원석 쪽은 경기가 넘어간 지금에 이르러 오히려 열기가 차올랐다. 진짜 노히트노런 따위가 아니기에, 응원가를 쩌렁쩌렁하게 트는 것도 거리끼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톱니 하나가 살짝 어긋났다.
퍼억!
“볼!”
초구부터 냅다 덤벼든 8회의 선두타자가 황급히 방망이를 거두었다. 정면에서 볼 때는 살짝 애매했으나, 1루심은 망설임 없이 노 스윙을 선언했다.
‘소음이 좌우 짝짝이라서 거슬려.’
최태웅은 살짝 혀를 찼다.
아마도 방금 볼 하나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넉넉한 심판이라면 스트라이크를 줘도 이상하지 않은 코스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심판이 지금껏 잡아준 스트라이크보다 안쪽에 붙이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보통 투수와 달리, 최태웅으로서는 실투가 하나 나왔을 뿐이라며 웃어넘길 수 없었다. 자신은 아직도 구속을 15km/h 이상 줄여서 제구를 잡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악!
“오케이! 마이 볼!”
차분하게 찔러 넣은 2구째에도 곧바로 방망이가 튀어나왔다.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뜬 공. 제법 애매한 코스였으나 침착하게 의사소통을 한 끝에 우익수가 어렵잖게 플라이로 처리했다.
‘이번에도 빗나갈 뻔했어.’
현 시점에서 13이닝 연속 노히트. 기록을 연장해놓고서도 최태웅은 입 안이 조금씩 텁텁해졌다.
차라리 계속 시끄럽게 떠들면 백화점 배경음악 취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섯 자리 숫자에 이르는 관중의 조마조마한 시선에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딱히 몸이 무거운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균형 감각이 오락가락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긴장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긴장감이 움직이는데 영향을 미친 경험은 없었다.
다들 자신을 강심장 투수로 생각하지만, 사실과는 조금 달랐다. 자신이 마운드 위에서 남들보다 침착한 것은 그저 ‘믿는 구석’이 든든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자신은 일반적인 투수와 선수로서의 출발점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남들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화유리 위에 있다면, 콘크리트 바닥을 밟고 있는 셈. 똑같이 수십 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있다고 해도 마음을 다잡는데 필요한 정신력의 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따악!
“파울!”
게다가, 노히트 기록 중인 그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일도 기어이 찾아오고 말았다.
“왜 그래? 조금 산만해진 것 같은데. 구위는 신경 쓰지 마. 딱히 변한 거 없으니까.”
“그야 그렇죠. 지금 던지는 것보다 어떻게 구위가 더 떨어집니까?”
“알기는 아는구나, 새끼. 그러면 뭔데? 특별히 뭐 신경 쓰이는 거 있어?”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 던진 초구.
까딱하면 장타가 되었을 타구에 한숨 한 번 쉬었더니, 장기석이 곧바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최태웅은 ‘감’이라는 게 참 묘하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만 보면 자신의 투구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똥볼이다. 그런데도 파울 타구 하나에 마운드까지 올라왔다는 건, 뭔가 이상한 점을 캐치했다는 게 아니겠는가.
“별 건 아니고요. 2군에서도 맞을 때는 종종 이런 패턴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신경 쓰여서요.”
“이런 패턴?”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타자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보고서 휘두를 때. 저는 여태 안타 맞은 거 대부분이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
도무지 투수를 공략하지 못하겠다면 타자는 어떻게 나올까?
게스 히팅이니 무심타법이니 하지만, 요약하자면 ‘예측해서 때리거나’ ‘생각 없이 보고 때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전자는 ‘매의 눈’의 먹잇감이지만, 후자는 솔직히 까다로웠다. 야구는 운에 좌우되는 부분이 많은 스포츠이므로, 수 싸움의 절대성이 사라지면 타구 방향에 따라서 얼마든지 안타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봤자 대단한 확률은 아니지만, 노히트 기록 중이라는 게 문제였다. 피지컬 하나로 밀어붙인 타구에 운 좋은 타구가 나온다면…….
“얌마. 노히트 그거, 기어이 역대 최다까지 해먹어야겠어서 그러냐? 이미 신인 신기록 중인데 뭘 그렇게 집착하고 그래?”
심각해져 있는 최태웅의 이마를 장기석이 손가락 끝으로 쿡 찔렀다. 눈이 살짝 커진 최태웅을 보면서 장기석이 가볍게 코웃음쳤다
“야구는 안타 치느냐 못 치느냐 하는 게임이 아냐. 점수 내느냐 못 내느냐 하는 게임이지. 초딩도 아니고 내가 이런 소리까지 해줘야겠냐.”
“…….”
“저번에도 느꼈는데, 너 신인 주제에 목표치가 좀 이상해. 무슨 역대급 성적 못 찍으면 본전도 못한 것처럼…….”
최태웅은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진상을 알 리도 없는 장기석의 말이 정곡을 푹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자신에게는 그런 면이 있었다. 초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평범하게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선수들에게 부채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만약에 자신이 종이 한 장 차이로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을 땄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종이 한 장차이로 밀린 투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똥물이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애초에 야구계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하지만. 야구가 하고 싶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 이런 힘이 생겼다고 야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면 오히려 자신에 대한 역차별이다.
그러니까 자신은 ‘역대급’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평범하게 훈련하는 선수들의 존엄을 위해서라도 초능력자다운 위업을 달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너 인마. 기록 깨기에도 매너가 있어야 하는 거 몰라?”
“예?”
“만약에 네가 대뜸 한 30이닝쯤 노히트 해버린다고 해봐. 다른 투수들은 얼마나 허망하겠냐? 그걸 무슨 엄두로 쫓아가.”
“…….”
“야구계에 있어서도 손실이지. 18이닝, 19이닝, 20이닝, 이렇게 조금씩 깨야지 스타도 많이 나오고 이슈도 늘어나는데. 혼자 해먹으면 두고두고 써먹을 소재가 없어지잖아.”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 안 되는 말에 최태웅이 눈을 끔뻑거렸다. 엉망진창인 말인데, 가만히 들어보면 설득력이 있는 듯도 해서 기가 막혔던 것이다.
“여태 공 받아본 내가 장담하는데, 이 기록 뽀록 아니다. 깨지면 1이닝부터 다시 쌓을 수 있어. 평생 한 번 뿐인 기회 아니니까, 집착할 필요 없다고.”
장기석의 주먹이 최태웅의 가슴팍을 쳤다. 격려하는 퍼포먼스치고는 힘이 묵직하게 실린지라, 최태웅은 몸이 다 휘청거렸다.
“기록은 덤 얻어간다고 생각할 때 제일 잘 쌓이는 거야. 신경 끄고 힘껏 던져. 전력투구도 안 하면서 기록 깨질까봐 끙끙대는 것도 웃기잖아. 안 그래?”
“…….”
장황하게 한바탕 말을 쏟아낸 장기석이 자리로 돌아가 마스크를 다시 썼다. 격려인지 핀잔인지 모를 소리에 떨떠름하기도 했으나 최태웅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래서 투수가 흔들리면 포수가 한 번씩 흐름을 끊어주고 하는 거구나.’
당연히 기분 탓이겠지만, 스파이크가 마운드에 단단하게 박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거창하게 늘어놓고 간 말 중에서 건질 게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전력투구도 안 하면서 기록 깨질까봐 끙끙대는 것도 웃기잖아.
사정을 모르기에 한 소리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정곡이었다. 어차피 운에 맡겨야 한다면, 시도해볼 만한 게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닥터 K’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만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지.’
‘닥터 K’가 발동한 상태에서 공을 던진 기억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더 수준 높은 변화구를 던졌던 투구 감각이 몸에 남아 있는 것이다.
구속은 어쩔 수 없지만, 체인지업의 낙폭 정도는 약간 흉내낼 수 있다. 아니, 싫어도 몸에 남은 감각 때문에 자연스럽게 낙폭이 생겨버린다.
익숙하지 않은 공인 데다가 제구에 악영향을 미치는지라. 지금까지는 오히려 낙폭을 줄이는데 집중했을 정도지만…….
‘볼로 빠지는 유인구면 제구는 상관없잖아?’
***
부웅!
“스트라이크!”
어라? 배팅 서클에서 다음 타석을 준비하고 있던 4번 석영진이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이닝부터 벤치에서 낸 전략은 단순했다.
이미 투구수고 나발이고 따질 때가 아닌 상황.
방망이를 짧게 잡고, 팔 휘두르는 속도로 스피드를 파악한 뒤, 그나마 밋밋하게 들어오는 초구 2구에서 안타 하나만 뽑아내라는 것이었다.
무브먼트 자체는 모두 6시 방향뿐이다. 그러니 스피드만 파악해서 보고 때리라는 지시도 무책임한 것만은 아니지만…….
‘방금 떨어지지 않았나?’
상대는 포크볼만큼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도 구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결정구’는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만 던졌다.
왜 지금에 와서 ‘투 스트라이크에만 던진다’라는 패턴을 바꾼 거지? 아니, 단순히 방금 공이 떨어졌다는 게 내 착각인가? 딱히 바운드를 한 것도 아니었고, 똑똑히 본 것도 아니긴 한데…….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지금까지 쭉 그래왔듯이.
투 스트라이크로 몰리자, 깡패 같은 147km/h짜리 직구가 한가운데에 훅 들어왔다. 이미 느린 공을 두 개나 봐버린 뒤라서 그런지, 3번 타자는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방망이는 무조건 짧게. 스피드 구분은 팔 휘두르는 속도로. 코스는 눈으로 보고 임기응변.’
석영진은 차분하게 심호흡만 하고서 곧바로 타석에 이어 들어갔다.
방망이를 움켜쥐자, 투수도 특유의 깔끔하고 느릿한 폼으로 와인드업했다. 성질 급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른 투구 간격이었다.
초구는…… 체인지업! 바깥쪽 아래!
부웅!
“스트라이크!”
나름대로 콤팩트하게 휘두른 스윙이 허무하게 바람을 가른다. 힘을 못 이기고 제자리에서 반 바퀴 돈 석영진이 눈을 부릅떴다.
‘초구인데 떨어지는 체인지업? 진짜로? 그럼 방금도 잘못 본 게 아니었던 거야?’
석영진은 혀를 찼지만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최태웅은 원래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투 스트라이크에만 던졌다 뿐이지, 언제 던질지는 사실 최태웅의 마음인 것이다.
‘딱히 공략당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투구 패턴을 바꿨지? 노히트 기록 중이라서? 슬슬 적응했을 때가 됐다 싶어서 먼저 선수 친 건가?’
상대가 패턴을 바꾸면, 당연히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석영진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딱딱 부딪쳤다.
부웅!
“스트라이크!”
2구도 거의 비슷한 코스.
어차피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해서 뻗은 방망이가 난폭한 파공성만 일으켰다. 궤도를 수정해볼 여유도 없이, 공이 방망이 아래를 휙 지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좀 달라!’
석영진은 자신이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건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날아오던 ‘폭포수 체인지업’이 아니다. 명백하게 그보다 세 단계쯤 급이 떨어지는, 하지만 그럭저럭 헛스윙을 유도해낼 정도는 되는, 완전히 새로운 체인지업이었다.
‘당췌 이해가 안 가는 놈이네. 더 좋은 공도 있으면서 왜 자꾸 어중간한 걸 던지는 거야?’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린 직후, 석영진은 자괴감에 빠졌다. 현실적으로 자신들은 최태웅의 ‘중간 레벨’ 공에도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지금처럼 투 스트라이크에 몰리면…….
빠각!
“오케이, 잡았어!”
“1루! 1루!”
묵직한 직구를 가까스로 갖다 맞추기만 한 석영진이 1루 앞에서 여유롭게 아웃되었다.
어린애처럼 농락당한 기분에 석영진은 신경질 적으로 헬멧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말이나 되는 소리야? 썅! 이 판국에까지 패 감추고 있는 신인이 어딨냐고!”
이건 비장의 무기를 아껴둔 것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전력 자체를 다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자기 패를 다 드러내지도 않았던 놈 상대로 세운 공략법에 의미가 있을 리 없다.
이런 놈한테서 안타를 뽑아낸다고?
남은 세 타자 안에?
“바랄 걸 바래라, 젠장.”
***
최태웅.
소속 : 엘리펀츠.
상대 : 팔콘즈.
결과 : 세이브
ERA (평균자책점) : 0.00
TBF (타자 상대수) : 12
1P(이닝) : 4
H(피안타) : 0
HR(피홈런) : 0
BB(볼넷) : 0
HBP(몸에 맞는 공) : 0
SO(탈삼진) : 4
R(실점) : 0
ER(자책점) : 0
AVG(피안타율) : 0.000
NP(투구수)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