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배터리 -068- >
[뭐임? 8회 초 끝나고 화장실 갔다 왔는데 왜 9회 초임?]
[8회 말 통편집잼ㅋㅋㅋㅋㅋㅋㅋ]
[깡다구 보소 ㅋㅋㅋㅋㅋ 무슨 신인이 스트라이크만 던져ㅋㅋㅋㅋㅋ]
[오히려 신인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 무서운 거 모르고 막 던지니까.]
[ㅇㅇ 오히려 신인한테 마무리 맡기는 경우도 있음. 구위 되는 애 시키면 블론 한 번 하기 전까지는 은근히 먹힘.]
[근데 쟤 언제까지 던지냐? 9회 말에도 올라오는 거 아녀?]
[6회부터 올라왔는데 뭔 9회 말이여 ㅋㅋㅋㅋ 지금 소화한 것만 해도 2.2이닝인데. 신인이 1점 차에 올라와서 이만큼 해준 것만도 우쭈쭈쭈구만.]
[2.2이닝이고 자시고 간에 지금 19구임… 9타자 상대했는데… 점수 차가 6점인데 투수 하나 새로 꺼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음? 가뜩이나 엘리펀츠 불펜도 빠듯한데…]
[……그러면 타자 한 명에 공 몇 개냐?]
[타자 한 명당 2.1111개 ㅋㅋㅋㅋㅋㅋㅋ 삼진 꺼졍ㅋㅋㅋㅋ]
[너나 꺼졍. 이 와중에 삼구 삼진 3개 잼.]
[헐…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참고로 데뷔전에서도 7이닝 7k.]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깝쳐서 ㅈㅅ]
[나 오줌 지림. 팬티 갈아입고 옴.]
[존나 대단하긴 한데… 막상 던지는 장면 보면 이상함 ㅋㅋㅋㅋㅋ 비실비실해서 난타당할 거 같은데 왜 자꾸 아웃이야 ㅋㅋㅋㅋㅋㅋㅋ]
[그건 공감. 계속 맞을 것 같은데 안 맞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지컬 괴물도 한 달쯤은 굴려봐야 거품인지 알맹이인지 견적 나옴. 쟤처럼 맞혀 잡는 애는 너무 일찍 판단하면 안 됨.]
[근데 맞혀 잡는 투수가 맞기는 함? ㅋㅋㅋ 저 와중에 이닝당 삼진 하나라니까? ㅋㅋㅋㅋ]
[Aㅏ…]
***
이미 승패는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임.
이런 경기에서는 적잖은 관중이 붐비기 전에 나가려고 일찌감치 자리를 터는 편이다.
실제로도 샤크즈 쪽은 자리에 듬성듬성 구멍이 생겼으나, 엘리펀츠의 3루 원정 응원석은 변함없이 바글바글했다. 승패와는 별개로, 팬이라면 꼭 지켜봐야 하는 이벤트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여기가 엘리펀츠 홈 구장이었다면? 분위기 띄우느라 전광판에서 일찌감치 온갖 설레발을 쳤을 터였다.
“야야야. 신인이 데뷔하고서 연속 이닝 노히트한 게 얼마지?”
“어, 잠시만요.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여깄네. 퍼펙트는 이규석이 11이닝 했고요. 노히트는 민섭호가 12이닝입니다.”
“민섭호. 볼넷이야, 에러야?”
“볼넷이요. 이건 당시에 제가 직접 봐서 기억하는데, 초구에 파울 홈런 하나 맞은 다음에 그대로 볼 4개였어요. 10.2이닝째예요.”
“오케이. 그러면 9회도 채우면 무사사구 노히트로는 최초라는 거네? 그거 붙여서 자막 넣고. 관련 영상 좀 찾아봐. 오늘 하이라이트에 넣어보자. 빨리빨리 움직여!”
오래 걸리는 경기의 TV 중계에는 일찍 끝난 팀의 팬이 들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엘리펀츠와 샤크즈 전은 득점에 비해 전개가 빠른 편인데도 야금야금 시청자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신인이 무사사구 노히트 기록 경신을 코앞에 뒀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노히트면 노히트지, 무사사구 노히트는 또 뭐냐 싶겠지만…… 마케팅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대중은 언제나 ‘최초’라는 것에 열광하기 마련.
그리고 현실적으로, 야구팬에게는 사사구 노히트보다 에러 노히트를 높이 쳐주는 풍토가 있기도 했다. 사사구는 투수의 과실이지만, 에러는 투수가 잘했는데도 야수 실수로 출루를 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9회 초. 엘리펀츠 타선에서 1점을 추가했으나 거기에 관심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쓸데없이 안타를 쳤다면서 조그맣게 야유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였다.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계속하면 돼. 점수 차도 한두 개 아닌데, 무리할 필요 없는 거 알지?”
“그럼요. 까짓 거 맞으면 맞는 건데, 무리를 왜 하겠어요?”
태평스러운 최태웅의 대꾸에 투수코치는 내심 안도했다. 무난하게 해나갈 수 있는 선수가 기록 의식하다가 흐름을 말아먹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속 이닝 노히트 같은 기록이야 그리 인지도 있는 편도 아니다. 관중들이 웅성거리는 정도로는 알아차리지 못한대도 이상하지 않았다.
따악! 따악!
“파울!” “파울!”
9회 말. 흐름은 완전히 엘리펀츠 쪽으로 넘어왔다.
기록이 걸렸을 때 초조해지는 것은 상대도 마찬가지다. 두고두고 자료화면에서 패배자 역할로 반복노출되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진효가 제시한 타법은 완전히 논외로 취급당했다. 여러 이닝 동안에 꾸준히 타율을 뽑아내는 경우라면 모를까. 당장 1이닝 안에 안타를 때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이런 썅!”
폭포수처럼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
분명히 이 공도 머릿속에 있었지만, 나승현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저것과 비슷한 구속에 낙폭이 미미한 슬로우볼을 존 한복판에 일부러 꽂아 넣기도 하는 투수다. 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휘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으아아! 미친 새끼! 80km/h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 아냐? 어떻게 이 기록을 앞두고도 마이 페이스야?”
“기록 진행 중인 거 모르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건 정상이 아니지! 마음만 먹으면 140도 넘게 나오면서 어떻게 공 3개가 다 90도 안 나오냐고!”
관중들은 울상 반 환희 반인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마치 갓난아기가 식칼 가지고 노는 걸 보는 듯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뒤이어 타석에 들어오는 이담휘는 내심 어처구니가 없었다.
2점밖에 못 내기야 했지만, 잔루가 많아서 그렇지 안타는 제법 나왔다. 자기만 해도 오늘 2안타에 1볼넷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노히트 노런 위기에 몰린 듯한 분위기를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파울!”
“……큭!”
초구. 공의 궤적이 눈에 익기 전에 승부 보려다가 빗맞은 타구가 나왔다.
정말로 아까운 코스였기에 이담휘는 탄식했다.
‘이번에 때려야 돼. 투 스트라이크 가면 골치 아파.’
엄밀히 말해서 최태웅에게 결정구는 없었다. 던지는 공은 포심 패스트볼과 두 종류의 체인지업뿐이다.
하지만 투 스트라이크 이전에 던지는 공은 똑같은 구질이라도 스피드나, 구위나, 무브먼트가 한참 떨어진다. 그로 인해서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전력투구는 전혀 새로운 구종인 듯한, 아니, 한 등급 위의 전혀 다른 투수의 공인 듯한 효과가 나온다.
따악!
“마이 볼! 마이 볼!”
정말로 오래간만에 나온 뜬공.
컨택에 급급해서 그런지, 주먹 하나쯤 빠지는 높은 공에 방망이가 튀어나왔다. 우익수가 앞으로 서너 걸음 걸어와서 가뿐히 잡아내는 모습에 이담휘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스트라이크만 던지던 새끼가! 왜 하필 지금 빼는데! 왜 하필 무조건 휘두르기로 한, 딱 그 타이밍에!’
상대 타자가 험악하게 으르렁거리거나 말거나. 최태웅은 느긋하게 송진 가루를 손에 묻히다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뭔 플래시가 자꾸 이렇게 터져?’
아웃 카운트가 하나 남아서 그런가? 하지만 저번 경기 때는 안 그랬는데? 저번에도 그랬는데 내가 눈치를 못 챘을 뿐인가? 어쩌다 한두 명씩 찍는 게 아니라, 포토타임 수준…….
“어라?”
최태웅은 그제야 묘하게 긴장한 더그아웃의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귀 기울여봤더니, 어디선가 ‘노히트’ 어쩌고 하는 웅성거림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나 무슨 기록 중인가?’
그러고 보니까 마지막 타자를 잡아내면 10.2이닝 노히트가 된다. 정확히는 모르겠어도 신인 최고 기록이 그 근처쯤 되었던 것 같기는 했다.
야구선수에게, 특히나 투수에게 있어서 ‘노히트’와 ‘퍼펙트’라는 단어는 항상 어떠한 종류의 마력(魔力)을 띠기 마련. 최태웅도 예외가 아니어서 숨이 조금 거칠어졌으나…… 한편으로는 단지 그뿐이었다.
등판하기 전에는 알지도 못한 기록이었다. 신경은 쓰였지만, 딱히 실감이 안 났다. 아니, 그보다는…….
‘연속 노히트라? 이거 써먹을 수 있으려나?’
***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에 있는 힘껏 스윙하려던 강성규는 흠칫해서 방망이를 뺐다. 아쉽게도 방망이 헤드가 돌아갔지만, 끝까지 휘두르지 않은 덕에 궤도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빠졌다?’
강성규가 머릿속을 정리할 새도 없이, 최태웅이 투수판을 밟았다.
“볼!”
초조하게 더그아웃을 왔다갔다하던 샤크즈 선수들이 홱 뒤돌아보았다.
최태웅이 오로지 스트라이크만 던졌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상황이었다.
“볼!”
“흔들리나?”
“오케이! 됐다!”
기록을 앞둔 선수가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히트 계열의 기록을 진행 중인 선수라면 더더욱. 안타만 안 맞으면 되기에 자꾸만 도망가는 피칭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샤크즈에게 있어서 당연히 기회가 된다.
8회를 보면 최태웅은 분명히 주자 견제에 서투른 편이었다. 1번 타자인 강성규가 1루에서 위협하면 피칭이 계속해서 흔들릴 가능성이 있었다.
“올라가 봐야 될까요?”
“글쎄……. 보통은 그래야 하는데…….”
타임으로 투수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벤치나 포수의 당연한 임무 중 하나다. 그러나 유승혁 감독도, 장기석도 쉽사리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금 게 119짜리 직구…….’
‘기록 때문에 긴장한 놈이 여전히 힘 빼고 던진다는 게 말이 돼?’
신인에 대한 평가치고는 조금 과할지도 모르지만……. 왠지 지금의 볼 2개는 최태웅의 노림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따지자면, 겁먹고 도망가는 피칭을 하는 거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볼넷을 줘도 노히트 기록은 안 끊어진다. 볼넷이 나오면 그때 타임을 불러도 늦지 않을 터였다.
“볼!”
“우와아아!”
3볼 1스트라이크.
가장 장타가 많이 나온다고들 하는 카운트다. 3볼이라면 포기하고 볼넷이라도 줘버릴 텐데. 기껏 잡아놓은 스트라이크 하나가 아까워서 억지로 욱여넣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3볼까지 갔다면 이미 대부분은 제구가 흔들리는 상태. 그럴 때에 억지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하니 공이 한가운데로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딱히 제구가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아서 문제란 말이야…….’
볼이라고는 해도 존에서 공 하나 정도 빠지는 코스. 이쯤 되면 제구가 흔들린다기보다는 기록을 의식해서 피하는 중이라고 봐야 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니나 다를까.
바깥쪽 아래, 방망이로부터 가장 먼 코스를 120km/h짜리 직구가 휙 뚫고 지나간다.
강성규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한편, 최태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따, 투 스트라이크 잡기 겁나게 힘드네. 뭘 저렇게 자꾸 봐?”
평범하게 던지면 초구나 2구에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파울 확률을 높이려고 조금씩 뺐는데 자꾸 지켜보기만 하니 귀찮기 짝이 없었다. 3구는 페어가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던진 공이었다.
어쨌든 결과는 운 좋게 루킹 스트라이크.
원하는 대로 ‘닥터 K’를 발동시킨 최태웅이 나직하게 심호흡했다.
‘닥터 K’ 최대효과를 확실하게 파악하려면 지금이다.’
‘닥터 K’ 효과로 143km/h가 나왔지만, 그것은 전력투구가 아니었다. 불펜에서 못 던지는 공을 실전에서만 던지면 태업이라는 오해를 살까 봐 힘을 빼고 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고두고 힘 뺀 공만 던질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애써서 ‘닥터 K’를 손에 넣은 의미가 퇴색한다.
확고한 주전으로 인정받은 뒤라면 어쨌든 결과가 나오니까 상관없겠지만…….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나.
그러니까 기회는 지금이다.
노히트라는 기록을 진행 중일 때.
여론 때문에라도, 아무리 자신이 이상하게 보여도 한두 경기쯤은 출장시킬 수밖에 없는 지금이라면.
“……?”
장기석이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껏 던지는 대로 받기만 했는데, 최태웅이 처음으로 사인을 보냈던 것이다.
‘빠른 직구?’
생뚱맞았지만, 상대가 최태웅이기에 바로 이해했다. 140km/h가 넘는 그 직구를 던지려는 모양이다. 아무리 직구라도 갑자기 구속이 확 달라지면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뜻이겠지.
고개를 끄덕이자, 최태웅이 투수판을 밟았다.
방망이를 쥔 강성규의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뻐어억!
“……!”
존 귀퉁이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날카롭게 제구된 공.
여기까지는 언제 나와 마찬가지였으나…… 장기석은 포수라는 보직이 무색하게도 눈을 질끈 감을 뻔했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눈을 감았다면 손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쓰벌……. 뭐가 이렇게 뜬금없이 무거워? 손바닥으로 받았으면 난리 날 뻔…….’
속으로 구시렁거리던 장기석이 흠칫했다. 바로 정면에 보이는 전광판의 말도 안 되는 숫자 때문이었다.
“150km/h?”
“미친…….”
경악한 장기석과 강성규의 시선이 마운드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최태웅 또한 전광판을 확인하고서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오 씨. 이건 좀 심한데……. 실험해보지 말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