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배터리 -048- >
048.
타격 부문에서 5개 타이틀을 휩쓴 윤대훈이라는 타자가 있다. 그는 눈부신 타격 센스를 가졌지만, 130kg에 달하는 체중 때문에 감독이 바뀌고 나서야 출장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직구만으로 0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은 오정환이 슬라이더 장착 이후에 실점이 늘어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 외에도, 성적 좋은 선수가 비효율적인 폼에 손댔다가 시즌을 말아먹는 경우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는 성적만 잘 나오면 막말로 방망이를 거꾸로 쥐어도 참견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이론과 어긋나더라도 그 선수의 스타일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살아남은 선수’를 골라서 쓰는 메이저리그이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팜이 작은 한국은 있는 선수를 키워서 써야 하기에, 모범답안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문제는 지도자가 그러한 현실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느냐 마느냐 하는 점이다.
세상에는 ‘내가 그렇게 배웠으니까.’ 라는 이유로 모범답안만 강요하는 머리 굳은 지도자도 많다. 자기 자신이 실제로 가본 길이기 때문에 틀릴 리 없다고, 그러니까 문제는 선수의 근성에 있다고 폄하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승덕 감독은 분명히 깨어 있는 마인드의 소유자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나는 뭘 어떡하면 되는 거야?”
저건 내 훈련에 잘못된 점이 보여도 먼저 나서서 지적해주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언뜻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나의 ‘돌연변이적 개성’일 수 있으므로, 괜히 건드렸다가 망가질지 모른다는 거지.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는 이해되는데……. 이거 참, 난감하구만. 잘못된 걸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으면, 애초에 그 잘못을 안 하지. 혼자서는 자각할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지도자가 있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제 스타일이 이상한 건 초능력 덕분입니다.’라고 자진 납세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모르겠다. 혼자서 훈련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뭐.”
얼떨떨하기야 했는데, 언제까지고 우왕좌왕할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지금 고급 기술을 전수받을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구속 올리는 거랑, 체인지업 완전히 소화하는 것부터 해야지.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수준이 높고 낮고를 떠나서, 내가 배운 기본기 자체는 상당히 정석이다. 노가다 하듯이 훈련을 반복하면 틀림없이 피지컬은 올라간다.
“선배님. 혹시 손 비면 공 좀 받아주실 수 있습니까?”
“나? 그러지 뭐.”
낯선 선배들과 뻔뻔스럽게 뒤섞여서 몸을 푼 나는 휴식 중인 포수 한 명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7회짜리 친선경기에 불과하다지만, 역시 야구선수에게 ‘노히트’라는 기록의 무게감은 상당한 모양이다. 연습 투구를 하겠다고 하자 선수들이 ‘도대체 어떤 공을 던지길래?’ 라면서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연예인 시구를 구경하는 듯하던 분위기는 내 공이 미트에 박히는 순간 사라졌다. 옆에서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지켜본다고 해서 내 구속이 늘어날 리도 없었던 것이다.
“뭐야, 저거?”
“캐치볼……은 아니지?”
열다섯 개를 던졌을 때쯤 되자 구경꾼들의 표정이 아연하게 변했다. 안 그래도 느린 공을 7~80퍼센트 정도의 힘으로 몸 풀듯이 던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상할 것도 없어요. 원래 저 정도니까.”
“뭐?”
“캐치볼 아니라고요. 친선경기 때도 대충 저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요.”
선수 하나가 뚱하니 말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나한테 노 히트를 당한 타자 중 하나겠지.
“연습이 아니라 원래 저 정도라고?”
“아까 말했잖아요. 볼 거 없다고.”
“그런데 니네는 저런 공에 왜 노 히트 당했냐?”
“……!”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 말을 들은 몇몇 선수들이 갑자기 명치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나에 관한 관심은 차갑게 식었다. 신경 쓸 만한 경쟁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빈정 상한 것은 없었다. 나 같아도 반대 입장이라면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거든. 저러다가 나중에 내가 실전 투구하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해질 걸 미리 상상하면 즐겁기도 하고.
그렇다고 선수들이 나를 무시한다거나 따돌리는 것은 또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2박 3일짜리 동원 훈련에서 만난 아저씨나, 쿵짝이 잘 맞는 택시기사 아저씨 정도? 보이는 동안에는 그럭저럭 친근하게도 대해주지만, 언제 갑자기 못 보게 돼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독립 구단이라고 마냥 기회를 퍼주는 거 아니야. 여기서까지 밀려난 사람은 정말로 갈 데가 없어.”
“큼지막한 모기업이 버티는 것도 아니고……. 내년부터 2군에 합류한다고 해도, 적자는 못 면할걸.”
“여기는 평범한 2군하고 달라서, 오랫동안 품고 있어주지도 않아. 이미 한 번 밀려났거나 기회 놓친 사람들한테 발판 하라고 만들어준 구단이니까.”
“중간에 내보내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겨울에 방출하는 숫자는 오히려 보통 구단보다도 많아.”
독립 구단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선수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치열하게 훈련했다.
그런 ‘알아서 훈련하는 분위기’는 나한테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우완투수인 최태웅은 아직도 지루한 기본기를 반복해야 하는 레벨이었기 때문이다.
피지컬적인 면만 보면 나는 2군급인 이곳에서도 최하위권이었다. 어쩌면 프런트에서 내 느린 공만 보고 박승덕 감독님의 낙하산으로 오해할지 몰랐다. ─아니, 반쯤은 낙하산이 맞나? 아무튼, 초능력과 상관없이 피지컬은 끌어올리면 끌어올릴수록 무조건 좋은 거니까.
혹한기가 오자 팀 전체가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거의 구단주 사비로 운영되는 독립 구단이다 보니, 다른 12개 팀처럼 따뜻한 해외까지 나갈 팔자는 아니었다.
“최태웅. 어깨 풀고 있어 봐. 다음 이닝에 올라갈 수 있도록.”
“예.”
한국에는 토네이도즈 말고도 독립 구단이 2팀이 있다. 해외로 나갈 처지가 아닌 것은 다들 마찬가지라 제주도에 웅기종기 모여서 훈련했는데, 며칠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연습경기를 가졌다.
“리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허리케인즈와의 첫 경기.
우리가 2점 앞서는 6회 말의 수비.
실전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 포수 정휘경이 대놓고 난감하다는 얼굴을 했다.
면전에서 이러는 게 조금 찜찜하기는 하다만……. 알아. 이해한다니까? 왜 저런 반응인지.
겉으로 보이는 나는 시속 120km 남짓한 패스트볼과 어설픈 체인지업을 던지는 삼류 우완투수다.
구질은 뭐 패스트볼밖에 못 던진다고 해도 리드하려면 할 수 있지만, 구속이 마음에 걸릴 것이다. 어떤 코스에 어떤 패턴으로 던져도 얻어맞을 것 같을 테니까.
“선배님. 볼 배합은 제가 해보면 안 될까요?”
“뭐?”
“제멋대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요. 솔직히 선배님은 저만큼 느리게 던지는 투수 다뤄본 적 없으시잖아요. 저는 그래도 나름대로 제 공 써먹는 노하우가 있거든요.”
“으음…….”
“어차피 연습경기인데 뭐 어때요? 그리고 막말로 제 공 정도는 사인 안 나눠도 보고 잡으실 수 있잖아요. 체인지업이든 직구든.”
저번 트라이아웃에서 얻은 교훈이 있는지라, 정휘경을 대하는 내 말투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정중했다.
대부분 포수가 투수에게 맞춰주는 편이라서 잘 몰랐는데, 포수에게도 고집스러운 부분은 있었다. 까딱하면 공을 받기만 하는 표적판이 되어버려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고 보면 포수가 선배인데도 후배인 투수가 볼 배합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도 하고.
사근사근하게 부탁한 덕분인지, 애초에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야 모르지만, 일단 시도는 통했다.
“그래라. 어차피 청백전인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지 뭐.”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때쯤에는 내가 친선경기에서 노 히트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거의 잊혀 있었다. 그 기록을 자꾸 되새길 만큼 대단한 모습을 보여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노 히트를 당한 선수들은 가끔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지만서도.
따악!
“1루! 1루로!”
“아웃!”
하여튼, 내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틀어막고 내려와도 유별난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고작해야 타자 세 명. 공은 둥글고 배트도 둥글기에, 중학생 투수라고 해도 운이 아주 좋으면 한 번쯤 프로한테서 삼자 범퇴를 잡아낼 수 있는 것이 야구였기 때문이다.
[일반 미션 ‘홀드’를 달성하셨습니다.]
[25포인트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흐……. 역시 프로가 좋기는 좋구나. 꼴랑 1이닝 던지고 왔는데도 이렇게 포인트가 다 들어오고. 홀드 하나 했을 뿐인데, 사회인 야구에서 1경기를 완투한 만큼 들어오네.
감질나는 건 마찬가지지만, 1이닝밖에 던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롱 릴리프나 선발로 던지게 되기라도 하면 포인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야, 그런데 너 은근히 센스 있다? 데이터 가져다가 분석도 하고 그러냐? 딱히 비디오 보는 것 같지도 않던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야? 타자 약 올리는 거 완전히 쩔던데. 미리 분석한 거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던지냐?”
내가 나간 경기만 다섯 번쯤 되었을 무렵일까. 포수인 정휘경 선배가 조금씩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네가 던지는 거 보면 되게 신기해. 가끔 한복판에다가 던지잖아, 너? 그거를 멀뚱히 지켜본다니까. 그리고 다른 공도 곱게 휘두르는 적이 없어. 밤에 부엌에서 쥐새끼 밟은 것처럼 움찔움찔하느라 맞추지를 못해.”
“신기할 게 뭐 있다고요. 빠따 쥐고 선 거 보면 대강 어떤 공 노리겠구나, 감이 오니까 찔러보는 거죠. 그리고 제 공이 스피드가 3패턴이잖아요. 잘못 읽으면 훅 가는 거죠.”
“얌마, 그게 신기하고 대단한 거라니까? 척 봐서 알 것 같으면 누가 고생해? 그냥 빈 코스에 던지면 되는걸. 한복판에 던지는 것도 은근히 깡이 필요해.”
“…….”
이제 슬슬 한 번에 2~3이닝씩도 소화하는지라, 연습경기에서 나는 야금야금 8이닝 무실점을 기록 중이었다.
하지만 팀원의 연습경기 성적을 어디다 써 붙여 놓는 것도 아니다. 타구 자체는 강한 것도 많아서 선수들은 자각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역시 포수라 이건가? 상대하는 투수가 한둘도 아닌데, 섬세하네.
제주도 훈련이 끝날 때쯤 돼서, 나는 패스트볼의 구속이 최고 132km까지 올라왔다.
물론, 객관적으로 말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최고 구속은 어디까지나 최고 구속. 반대손이라서 그런지 훈련량에 비해 제구력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매의 눈’을 활용할 만큼 제구하면 여전히 120km/h에도 못 미치는 구속만 나왔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우완 최태웅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초능력은 여전히 건재.
2군 정도를 상대로는 당장에라도 차원이 다른 위력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손에 넣었다.
「야구를 사랑하는 팬 여러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프로야구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북부 리그와 남부 리그, 12개의 구단이 오늘부터 144경기라는 기나긴 페넌트레이스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3월.
정규 시즌이 시작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이 선수들의 뇌수를 흔들었다. 독립 구단이라서 시범 경기를 구경만 했다는 소외감이나, 작년에 예정되었던 승격이 한 번 물먹었다는 울분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퓨처스 리그의 개막전은 1군보다 조금 늦은 나흘 뒤.
보직에 대해서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 선수들이 한 사람씩 감독실로 불려 가서 면담했다. 감독실에서 나온 선수들은 환희를 감추지 못하고 입꼬리가 씰룩거리거나, 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 태웅이.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예. 쌩쌩합니다.”
“내가 다 미안할 정도로 방목했는데, 이래라저래라 참견하지 않아도 정말 열심히 하더구나. 그때그때 말하지는 않았어도 다 지켜봤다. 진짜 재산은 구위나 변화구보다도 그런 습관인 거야.”
흔해빠진 덕담을 듣는 동안에 나도 무심코 어깨가 뻣뻣하게 굳었다.
연습경기에서 거둔 성적이 있으니, 나를 마냥 벤치에 앉혀놓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박승덕 감독님은 나의 ‘돌연변이성’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여기서 어떤 보직을 받느냐에 따라서 빙 돌아가느냐, 지름길로 가느냐가 갈린다. 아무리 나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실 말이야. 나는 자네를 선발 타입으로 보고 있어.”
“예.”
“일단은 최고 구속을 거의 안 내는 점이 그렇지. 스타일 때문인지 어떤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페이스 배분이 최고 수준이라는 거야. 선발투수한테 이닝 많이 먹어주는 것보다 큰 미덕이 어디에 있겠나.”
여기서 나는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러면 그냥 선발 자리 하나 내주면 되지.
이렇게 애매하게 서론을 깐다는 사실 자체가, 결론에는 뭔가 반전이 있다는 말인데…….
“하지만 이건 자네 개인의 얘기고. 팀 사정을 따지고 보면 조금 골치가 아파져. 다른 선발 후보 중에서는 책임 이닝까지 제대로 먹어줄 만한 녀석이 없거든. 결국, 한 시즌을 돌리려면 불펜이 그만큼 과부하가 된다는 건데…….”
감독님은 뭐라고 말을 꺼내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착잡하게 입맛을 다셨다.
“이거는 어디까지나 내 구상일 뿐이지만, 자네가 조금 유동적인 포지션을 맡아줬으면 부담이 줄어들 것 같아.”
“유동적인 포지션이라뇨?”
“5선발 정도에서 가끔 불펜을 왔다갔다 해줄 수는 없는가 하는 거지. 매주 불펜이 풀가동되지는 않을 테니까.”
“…….”
나도 프로야구를 안 보는 것이 아니기에, 이게 무슨 소리인지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에이스를 급한 대로 불펜으로 돌리는 기용 정도는 프로야구에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도 미봉책이기는 하네. 연습경기에서 가망성이 보였다고 해도, 자네도 데뷔 시즌인 건 마찬가지니까. 체력적인 문제도 그렇지만, 당장에 통할지 자체도 여러모로 미지수라…….”
“하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먼저 제안해놓고도 미안한 기색이던 감독님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렇게 막 결정할 것까진 없네. 나는 일단 생각해보라는 차원에서…….”
“괜찮습니다. 하겠다니까요? 시켜주세요. 요점만 말하자면 그거 저 경기 많이 내보낸다는 말씀이잖아요?”
벌떡 일어나서 얼굴까지 들이미는 내 기세에 감독님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표정을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맡겨만 달라며 가슴을 쿵쿵 치는 내 입꼬리가 미친 듯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루키는 원래 까라면 까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소처럼, 노예처럼 뛰겠습니다. 제발 굴려주세요.”
띠링띠링. 어디서 포인트 굴러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건, 아마도 내 착각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