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배터리 -046- >
046.
“폭투인가?”
“저 구속에 폭투까지 나와?”
포수의 요구와 정반대 코스에 공이 꽂히자, 스카우트들은 잠시 의아해 했다.
이어지는 공도 마찬가지였다. 방금처럼 정반대로까지 날아가지는 않았으나, 계속 포수의 요구에서 공이 2개 정도씩 빠졌다.
따악! 따악!
“아웃!”
“아웃!”
결과적으로야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지만 스카우트들은 고개를 저었다.
‘쟤는 아니겠네.’
‘저 구속에 제구까지 안 돼서야…….’
강재황이라는 투수 조련사가 행차한 경기.
어디 진흙 속 진주라도 있나 싶어서 눈에 불을 켰으나, 최태웅이라는 투수는 기준 미달이었다. 2차 테스트를 어떻게 통과했는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쓰리 아웃! 체인지!”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최태웅은 일단 삼자 범퇴로 깔끔하게 이닝을 틀어막았다.
묵묵하게 관찰하던 강충식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라이브 피칭에서는 제구 괜찮았는데……. 실전에서는 흔들리는 타입인가? 아니면 포수랑 문제가?’
어느 쪽이건 좋게 평가할 만한 일은 아니다.
강재황과 박승덕 쪽을 힐끗 보았더니, 둘이서 뭐라고 쑥덕거리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탓에 시선이 어느 쪽에 있는지는 알기가 조금 어려웠다.
일단은 다음 회에도 최태웅이 올라왔다. 난타당한 게 아니라면 되도록 2이닝 투구는 보장해주기 때문이었다.
따악!
“아웃!”
더그아웃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번에는 포수가 리드를 하지 않았다. 뚱하니 쪼그려 앉아 있다가, 공이 날아올 때에만 미트를 움직여 잡아낼 뿐이었다.
‘아까는 제구 문제가 아니라, 포수랑 볼 배합 문제로 싸웠던 건가?’
하긴. 2부 리그에서는 괜찮게 먹힐 만한 공이라고 해도, 0점대 방어율을 찍을 공은 또 아니다. 나름대로 볼 배합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던 거겠지. 포수도 평가전이니만큼 볼 배합을 양보할 수 없어서 투닥거렸을 테고.
“아웃!”
1루수 정면 땅볼. 거의 제자리에서 공을 잡아낸 1루수가 직접 베이스를 밟는다.
이때쯤 돼서 강충식의 눈빛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왜 저렇게들 못 쳐?’
아무리 봐도 칭찬할 만한 구석은 없는 공이었다. 전 이닝이나 이번 이닝이나, 타자들이 못 치는 거지 투수가 잘 던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야 느린 공으로 타자를 잡아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공은 둥글고 배트도 둥글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니까. 1억 달러짜리 메이저리거 추대호도 아시안게임에서 시속 100km도 안 되는 홍콩 투수의 공에 두 번이나 삼진을 먹지 않았는가.
문제는 ‘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결과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따악!
“아웃!”
최태웅은 기어이 마지막 타자까지 투수 앞 땅볼로 간단하게 잡아냈다.
2이닝 퍼펙트. 투구수는 16개.
훌륭한 성적표였지만, 대다수 스카우트는 형편없는 구위 때문에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운이 좋으면 충분히 나올 수도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강충식은 기분이 묘해졌다.
2차 테스트에서도 최태웅은 2군 타자 세 명을 가뿐히 제압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박승덕과 강재황이 눈여겨 보는 투수도 최태웅인 듯 싶었다. 사회인 2부 리그에서 저 공으로 0점대 방어율을 찍은 점도 신경 쓰였다.
“…….”
몇몇 선수가 교체되고, 경기가 계속되었다.
훨씬 뛰어난 구위의 투수들이 나왔지만, 강충식의 눈에는 도저히 그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차던 강충식이 문득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막연하게 최태웅이 속했다던 사회인 야구팀을 검색했더니 몇몇 게시물이 튀어나왔다.
양손으로 던진다거나, 무패 투수라거나…….
이미 아는 내용이라서 무심하게 스크롤을 내리다가, 강충식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강재황 감독님과 함께 하는 주말.」
「직접 1루 견제 시범을 보여주시는 강재황 감독님.」
아마도 팀원 중 누군가가 운영하는 블로그이리라.
주말 코치로 강재황을 초빙해서 레슨 받았다는, 지극히 평범한 포스팅이었지만…….
“진짜로 저 친구였네.”
사회인 야구팀에서 레슨을 받았다는 접점. 토네이도즈 감독인 박승덕의 동행. 별다른 위력도 없어 보이는데 끊임없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
픽을 소모해야 하는 드래프트라면 모를까. 트라이아웃에서라면 투자를 결심하기에 부족함 없는 퍼즐 조각들이었다.
***
털썩 벤치에 주저앉은 나를 포수 아저씨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딴 똥볼로 어떻게 6타자를?’ 이라는 생각이라도 하고 있겠지. 이미 익숙한 반응인지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처음 그거 때문에 점수 깎는 건 아니겠지?’
스카우트가 소눈깔이 아닌 다음에야, 제구 미스가 아니라 포수와의 기싸움이라는 건 알아차렸을 거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평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수 리드대로 던질 수도 없으니, 똥 밟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지. 떨어지면 다른 데 지원하면 되는데, 뭘.’
내 차례가 이미 끝나서 그런지 나머지 경기 진행에는 아무리 해도 관심이 가질 않았다. 느린 공이지만 실전에 통한다는 것이 충분히 어필되었을까, 그 생각에 애간장이 탈 뿐이었다.
“오늘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합격 여부는 내일 오전 중으로 개별 통보됩니다. 최선을 다하신 만큼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고, 또 좋은 인연으로 다시 뵙게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두 시간쯤 더 걸려서 10대 8로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스코어 따위에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내일까지 마음 졸이고 있어야 하나, 하면서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수고혔어, 최 군. 기똥차더구먼. 체인지업 배워간 걸 고래 잘 써먹고 있었네.”
“감독님?”
나도 집에 가려고 장비를 챙겨서 일어나다가 뜻밖의 인물과 맞닥뜨렸다. 박승덕 감독과 강재황 감독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1, 2차 테스트 때도 오셨죠? 멀찍이서 뵈었는데,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 드렸네요.”
“아이구, 다 그런 거지 멀. 테스트 받으러 온 친구가 여기에 집중해야지, 한눈 팔고 그러면 되겄어?”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고요.”
엉겁결에 허리를 숙이기는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얼떨떨했다. 두 분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안 이상한데, 이렇게 날 따로 찾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기껏해야 ‘안면은 있다.’라고 말할 정도의 사이다. 일반인인 내가 먼저 아는 체하는 거라면 몰라도, 이렇게 감독님들이 먼저 찾아오다니? 설마 체인지업 그거 요령 좀 전수해줬다고, 나를 제자로 생각하시나?
“많이 늘었더구만. 그렇잖아도 볼 배합이 기똥찼는데, 이제 타이밍까지 가지고 놀게 됐어?”
박승덕 감독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저번 시합 때는 우리 애들이 단체로 낮술이라도 한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결과 내는 걸 보면, 내 눈이 모자랐던 걸 인정해야지. 인정해. 자네, 센스 있어.”
“가, 감사합니다…….”
두 분은 길에 선 채로 잡다하게 말을 걸어왔다.
대꾸하는 거야 상관없는데, 아무래도 불편해서 좀이 쑤셨다. 야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편하게 대할 만한 분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 나한테 볼일이 있으신 건가? 그냥 지나가다가 아는 얼굴이 있어서 붙잡은 느낌은 아닌데.
“그런데 혹시 무슨 얘기 있었나?”
“얘기요?”
“야구 말이야. 계약서 쓰자고 나오는 팀 없었느냐고.”
“그런 건 아직 없었어요. 내일 오전 중에나 개별적으로 통지한다고 하던데요.”
내 말에 박승덕 감독이 피식 웃었다.
“이 친구야. 그건 다 모인 자리에서 탈락 통보하기가 뭐해서 그런 거지. 뽑을 사람은 벌써 개인적으로 연락이 다 갔을 거야. 앉은 자리에서 도장 찍는 건 아니라도, 계약서쯤은 쥐여서 보내지.”
“……정말요?”
“내가 자네 붙들고 뭐하러 흰소리를 하겠나? 자네 스타일이 한눈에 진가 알아보기 어렵다는 건 알지? 그러니까 소눈깔들이 아리랑볼 투수로 알고 넘긴 거겠지.”
“…….”
이건 뭐지. 영화관에서 표 끊은 직후에 OO가 범인이다! 라고 스포일러를 당한 기분인데.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얻어맞은 훅이라, 탈락했다는 좌절감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얼떨떨해 있는데, 박승덕 감독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지 않겠나?”
“예? 저랑요?”
“자네 아니면 누구겠어? 우리도 조만간 트라이아웃 하는 거 알지? 여기 떨어졌으니까 거기 지원할 텐데, 번거롭게 빙 돌아서 갈 필요가 어딨어?”
“자, 잠시만요. 그게 무슨…….”
뜬금없는 권유 자체도 그랬지만, 트라이아웃 얘기가 나오니까 더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잠깐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나도 눈치 없는 바보가 아니다. 괜히 김칫국부터 마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지금 트라이아웃 얘기를 꺼낸다면…….
“어이구, 어이구, 그러시면 안 되죠, 감독님. 순서를 지키셔야죠. 이 친구는 우리 쪽에 지원한 선수인데요.”
뭐라고 대답하려는 찰나에, 한 남자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다름 아니라 1, 2차 테스트에서 내가 속한 조의 심사를 본 스카우트였다.
“안 되긴 뭐가 안 되나? 어차피 다른 트라이아웃 금방 지원할 친구인데. 바로 데려가면 쓸데없이 기운 낭비 안 하고 좋잖아?”
퉁명스러운 말투로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스카우트와 안면이 있는 듯했다. 박승덕 감독의 불평에 스카우트가 웃으며 말했다.
“전제부터가 이상하잖습니까. 선수 계약하려고 트라이아웃 보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뭐 하러 토네이도즈까지 갑니까? 그냥 지금 여기서 계약하면 되지.”
“뭐?”
“아니, 그럼…….”
두 감독님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내 눈이 둥그레졌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곱씹고 있으려니, 스카우트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화기를 꺼놓으셨나 보더라고요. 계속 전화해도 안 받으시길래요.”
“예? 아, 그러고 보니 연습 전에 꺼놓고 아직…….”
“혹시 아직 안 가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급하게 찾아다녔습니다. 다행이네요.”
다행이라고?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박승덕 감독이 운을 띄웠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엘리펀츠에서 최태웅 씨한테 선수 계약을 제안드리려고 합니다. 규정은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트라이아웃을 주최한 구단이 우선적으로 협상하게 돼 있습니다.”
뒷말은 왠지 나한테 하는 게 아닌 듯한데? 아니나 다를까. 돌아봤더니 박승덕 감독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이 일그러져 있었다.
“야, 충식이!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이냐뇨? 일하잖아요.”
“왜 하필 이 친구냐고! 아까 보니까 140짜리 쌩쌩 던지는 친구들도 많더구만! 그런 애들이나 데려갈 것이지!”
“140이고 150이고가 뭐가 중요합니까? 아웃만 잘 잡아내면 됐지. 최 선수 혼자만 6타자 연속 범타 잡아내는 거 못 보셨어요?”
“그거야 혼자만 100짜리 80짜리 던져대니까 타자들이 낯설어서 타이밍을 못 잡은 거지! 명색이 스카우트라는 놈이, 직구 120짜리 똥볼 투수를 뽑는 게 말이 돼?”
“사람을 무슨 그렇게 월급도둑처럼 말씀하십니까? 저도 알아볼 만큼 알아봤거든요. 오른팔로 전향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부족해도 장래성이 있다고요. 나이도 아주 많은 거 아니고, 군필자이기도 하고.”
“그게 프로 스카우트가 할 소리냐? 바닥부터 키워서 쓰게? 지금 당장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애들을 데려가서 써먹어야 할 거 아냐!”
“그러는 박 감독님도 최 선수 데려다가 토네이도즈에서 쓰려는 거 아니었어요? 120짜리 아리랑볼에, 폼도 요상망측한 체인지업 하나 벼락치기한 투수를 감독님이 직접 와서 데려가는 경우가 어딨어요?”
“프로라도 우리는 경우가 다르잖냐, 이놈아! 이런 애들 데려다가 재활용하는 거에 창단 의의가 있는데!”
“우완이 좌완으로 바꾼 것도 아니고! 왼팔 아작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른팔 쓰는 걸 재활용해서 어따 써먹겠다고요?”
“너도 그 팔병신 데려가서 쓰려고 하잖아!”
“…….”
뭐지 이건.
분명히 서로 나 데려가겠다고 경쟁하는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 씁쓸하네.
기분이 좋지가 않아.
욕을 바가지로 처먹는 것 같아.
착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