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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배터리-43화 (43/90)

< 괴물 배터리 -043- >

043.

이건 또 무슨 퍼포먼스야? 삼진으로 물러나는 박현성의 모습에 심사관 강충식은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일반인까지 참가한 공개모집 테스트이니만큼, 별꼴 다 보게 되리라는 것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최고 구속을 보여주려다가 포수가 잡지도 못하는 폭투를 던진다거나. 심사관의 표정이 심드렁하니까 괜히 조급해져서 그립만 아는 변화구를 처음 던져본다거나─ 그래도 이런 케이스는 애교에 속했다. 부담감에 짓눌려서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진짜 시답잖은 잔재주로 심사관에게 인상을 남기려는 테스트생들이었다.

거의 번트나 다름없는 자세로 투구수 테러를 벌여놓고, 리드오프의 소양이라고 우기는 타자. 싸움닭 기질을 보여주겠다며 위협구만 던져대다가 기어이 몸에 맞히는 투수.

강충식은 개인적으로 그런 놈들을 질색했다. 단순히 눈에 띄고 싶어서 환장한 능들이 꼼수를 부리는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딱 보니까 벼락치기 한 공이네.’

강충식의 눈에 비친 최태웅은 양쪽 모두에 속했다.

낙폭이 적은 거야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체인지업의 생명은 얼마나 패스트볼과 구별하기 어려운 폼으로 던지는가에 있다. 지금처럼 처음 보는 사람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여서야 배팅볼밖에 되지 않는다.

‘우완으로 전향한 지 얼마 안 된대서 기대했는데……. 근성이 글러 먹었어. 겉멋보다는 실속이 있어야지.’

예고 삼진이라니.

듣기에야 근사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때에 확실하게 삼진을 따낼 수 있는 투수가 어디에 있겠는가.

막말로 시속 150km짜리 강속구 투수라면 패기라고 생각해줄 수나 있지. 던지는 공이 저따위여서야 허세가 운 좋게 맞아떨어진 것밖에 안 된다.

“좋습니다. 다음은 1사 3루라고 가정하고 던져주세요.”

드래곤즈에서 나온 소정학이 곧바로 다음 타석에 들어갔다.

선수 입장에서는 그저 여흥에 불과한 대결이지만, 마냥 안이하게 승부할 수만도 없었다. ‘명색이 프로’라는 체면을 지킬 만한 뭔가는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의 수준 나름이었다.

박현성과 저 투수가 대결하는 모습을 지켜본 소정학에게 별다른 긴장감은 없었다. 저만한 공이라면 언제 어떤 코스로 들어와도 충분히 때려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악!

“파울!”

초구. 포심 패스트볼.

스트라이크존을 절묘하게 걸치는 제구에 심사관들이 조금 놀라서 스피드건을 보았다.

“113이야?”

“불펜 피칭 때는 그래도 120km 후반쯤 나오지 않았어요?”

“제구 잡느라 속도가 저렇게 된 건가?”

공의 스피드를 줄여서 제구 잡는 투수야 많다. 하지만 그래 봤자 보통은 4~5km를 줄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제구만 생각하다가 구위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감속은 처음 보는지라 다들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튀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만.”

구속보다 제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투수야 헤아릴 수 없지 많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지. 오늘 상대하게 될 타자를 미리 알고 분석했을 리도 없는데, 저 속도로 노린 코스에 정확히 넣는다고 뭐가 된단 말인가.

따악!

“큭……!”

“파울!”

2구. 스트라이크존 하단을 지나가는 밋밋한 공에 방망이가 움찔 따라나온다.

-86km/h

팔 스윙이 느슨한 시점에서 바로 알아봤지만, 이번 공은 박현성에게 결정구로 써먹은 그 체인지업이었다.

아니, 낙폭도 없고 던지기도 전에 알아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단순한 배팅볼일 뿐이다.

“정학이 저놈도 콜업되려면 멀었네. 저런 공도 한 방에 못 날리고…….”

이번에도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기도 전에 구질이 한눈에 알아봐졌다.

느릿한 스로잉.

체인지업.

“……큭!”

진작 체인지업인 걸 알아봐 놓고서도, 타격하는 순간 소정학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흘렀다. 미묘하게 중심을 빗겨 맞은 공이 난폭하게 그라운드에 처박혔다가 마운드를 향해 굴러간 것이다.

“……!”

날렵하게 타구를 낚아챈 최태웅이 3루 쪽을 노려보는 시늉까지 했다. 1사 3루라는 상황 설정에 걸맞은 대응까지 보여준 것이다.

“쯧쯧쯧…….”

“저걸 또 저렇게 치네.”

성실한 기본기야 칭찬할 만도 했으나, 심사관 중에 딱히 감탄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플레이라고 하기에는 허접한 구위가 눈에 훤히 보이는 탓이었다.

잠시 눈썹 사이를 좁히고 생각에 잠겨 있던 강충식이 말했다.

“다음은 무사 만루로 한 번 가보죠.”

“무사 만루요?”

“예. 주자가 들어오면 동점이 되는 상황으로 가정하겠습니다. 실점한다고 탈락하고, 잘 막는다고 합격하는 건 아닙니다. 위기관리능력 패턴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평범하게 시합하듯이 던지면 됩니다.”

“……”

상황 설정이야 솔직히 상관없지만, 1점 차 무사 만루라면 아무래도 빡빡한 면이 있다. 하지만 굳이 트집 잡을 일도 아닌지라 심사관들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라이거즈의 2군 타자인 서민석이 타석에 들어갔다.

최태웅은 가늘게 뜬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와인드업했다.

따악!

“파, 파울!”

“……어?”

시속 114km.

정말로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포심 패스트볼이 배트를 스치고서 안전망 뒤로 넘어간다.

“왜들 저래?”

“왜 자꾸 똑바로 못 때리고들 그래?”

이쯤 되어서 그라운드에 묘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공은 둥글고 배트도 둥글다는 말이야말로 야구의 가장 큰 진리다. 초등학생이 던진 공에 메이저리거 세 명이 아웃당하지 말라는 법도, 절대로 없다고는 못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회인 야구에서나 먹힐까 싶은 공에 프로 셋이 저렇게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심사관들은 솔직히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

퍼억!

“볼!”

2구째. 체인지업.

포물선에 가까운 궤적인지라, 자칫하면 원 바운드를 했을지도 모를 만큼 낮은 코스에 공이 꽂힌다.

그리고 3구.

부우응!

“……스트라이크!”

날카로운 파공성에 사람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박현성 타석에서야 갑자기 슬로우볼이 날아왔으니 허를 찔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테스트생이 어떤 공을 던지는지 뻔히 알아보면서도 설마 하던 헛스윙이라니─.

“74km……?”

“예?”

“체인지업, 아까는 86km 아니었어요?”

스피드건을 본 심사관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113km/h짜리 포심을 던지는 투수가 86km/h짜리 체인지업을 던지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구속 차이가 수준급이기는 해도,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싸구려에 속한다.

문제는 지금 던진 74km짜리였다.

“2단 체인지업…… 인가?”

“저 친구, 진짜 별걸 다 하네요…….”

패스트볼과 달리, ‘중속 체인지업’과 ‘저속 체인지업’은 거의 구별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12km의 구속 차이는 타자를 위협하기에 그렇게 부족하지 않았다.

따악!

“파울!”

4구째.

모서리를 살짝 걸칠 듯한 시속 85km짜리 바깥쪽 공에 서민석의 폼이 엉거주춤 무너졌다. 한 뼘 정도 차이로 간신히 페어 라인 밖에 공을 굴려낸 서민석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미친……. 뭐가 이래?’

마음만 먹으면 눈 감고도 무한정 걷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다시 자세를 잡고 섰더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140, 150짜리 강속구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저냥 프로지망생다운 구위만 되었어도 곱게 나가 떨어져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똥볼은 정말 아니다.

아무리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다지만, 명색이 프로인데. 저런 개똥 같은 공에 나가떨어진다면, 그 참담함을 어떻게─.

퍼억!

“……!”

맨발로 뱀이라도 밟은 것처럼, 팔다리가 굳었다.

말 같지도 않은 아리랑 볼을 연속으로 본 직후여서 그런 걸까. 스트라이크존 한복판에 훅 들어오는 공이 마치 대포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스, 스트라이크 쓰리.”

“그렇지!”

삼자 범퇴. 깔끔하게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생각해서인지 최태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연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응시하던 심사관들이 수군거렸다.

“잘 막기는 했는데……. 뭔가 좀 조잡하지?”

“예. 저도 딱 그 생각 했어요. 체인지업은 일단 딱 봐도 벼락치기고요. 지금 테스트 넘기려고 급하게 써먹은 것뿐이라는 느낌이라서…….”

“맞아. 막상 뽑고 나면 지금 스타일로 안 던질 것 같은데. 그러면 지금 이걸 본 의미가 없잖아.”

“우완 전향한 지 얼마 안 됐다는 거 감안하면 그래도 포텐셜은 기대되지 않아요?”

“피지컬적인 포텐셜은 그런데, 멘탈적으로는 별로. 문제 생기면 그 순간에만 어떻게든 꼼수로 벗어나려고 할 것 같아. 지금 잠깐 본 걸로 이런 말하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어차피 여기서 즉시 전력감 찾는 것도 아니니까요.”

“확실히, 그렇게 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력서 보면 군필자라고도 하고. 데려가서 직접 키워보고 싶다는 데가 하나쯤 나와도 이상할 거야 없는데……. 팀장님 스타일 때문에 우리는 좀?”

다른 심사관들이 떠드는 소리에 강충식은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첫 타석을 보고서 했던 생각들이 고스란히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인상대로라면 자신도 그대로 평가표에 X표를 찍찍 그어댔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에 홀린 듯한 얼굴로 굳어져 있는 세 타자를 봤더니 초심을 관철하기가 괜히 껄끄러웠다.

‘오프 스피드 피치를 여러 단계로 나눠서 쓰면 좋기야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구속이 나올 때 얘기지. 아무리 그래도 7~80km짜리 공 때문에 애들이 저렇게 혼이 쏙 나갈 수가 있나?’

이론적으로만 봤을 때, 저 최태웅이라는 테스트생에게는 굳이 침 발라 놓고 싶을 만한 매력은 없었다. 기껏해야 아무도 안 데려갔다면 우리가 데려가 주지 못할 것도 없다는 정도였다.

그래. 이론적으로.

지난 7년 동안, 스카우트 노릇을 해온 경험에 따르면 분명히 그러했지만…….

“……응?”

입맛을 다시던 강충식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관중석에서 선글라스 낀 두 남자가 이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박 감독님? 강 감독님?”

야인(野人)인 강재황이야 그렇다 치고. 박승덕 감독이 여기에 온 이유는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트라이아웃 참가자 중에 쓸 만한 떡잎이 없는가, 미리 눈독을 들여놓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장소가 틀렸다. 이쪽 구역은 일반인 참가자를 테스트하는…….

“……에이, 설마?”

강충식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말도 안 되지. 저 양반들 짬밥에…….”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강충식의 손은 평가표에 미친 듯이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스카우트의 수칙 하나.

남이 탐내는 것 같으면, 왜 그런지 모르겠어도 일단 침부터 바르고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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