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42화 (42/90)

< 괴물 배터리 -042- >

042.

박현성. 내 팔꿈치를 망가뜨린 장본인.

설마 저놈하고 이런 식으로 맞닥뜨리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엘리펀츠 유니폼을 입은 모습에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일단은 전국체전 결승전에 나올 만한 떡잎이었으니까. 그대로 계속 야구를 했다면 프로로 지명받았을 수도 있지.

따악! 퍼억! 퍼억!

“스트라이크!” “볼!” “볼!”

박현성은 무뚝뚝한 얼굴로 테스트생과의 투타 대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문득 ‘박현성이 나를 알아보기는 한 건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침착한 타격을 보니, 아까 나를 빤히 쳐다보던 게 맞기는 하는가 싶어진 것이다.

‘진짜로 못 알아본 거면 좀 괘씸한데…….’

사실, 중 고등학교 때는 박현성이라는 이름을 되새긴 적 자체가 거의 없었다. 일상생활에서는 통증 한 번 느낀 적이 없는데 무슨. 평범하게 살았다면 몇 년 뒤에는 아예 이름을 듣고도 생각 못하게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마운드에 돌아왔다.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훈련이 고될 때마다 ‘왼팔만 멀쩡했더라면’ 하는 미련을 안 가질 수가 있겠나.

그때 위협구를 안 던졌더라면 어땠을까, 타자한테 집중하면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일부러 나를 노리고 던진 거였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에 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때는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반 죽여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다.

딱히 박현성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식도 다쳐서 야구 접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밖에 안 했다. 양심적으로.

하지만 내 사고를 잊고 멀쩡하게 살아가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크게 비틀었다는 자각쯤은 평생 가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런 자각이 있었다면…… 나를 한눈에 못 알아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있어서는 안 된다.

따악!

“지금 타구는 짧은 좌전안타로 판정하겠습니다. 2루에 있던 주자는 3루까지만 진루했고, 타자 주자는 1루에 들어온 걸로 가정하고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안타를 쳐낸 박현성이 그라운드 밖으로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테스트생인 투수는 한탄스러운 얼굴로 마운드를 골랐고, 드래곤즈 타자가 타석에 이어 들어갔다.

따악! 따악! 따악!

“스트라이크!” “볼!” “파울!” “파울!”

테스트가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그라운드 쪽으로 향했다. 그 통에 나는 슬금슬금 박현성의 옆으로 다가갔다.

“우리 구면이지? 오랜만이네.”

“…….”

말을 걸자, 박현성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달팽이가 더듬이를 움츠리는 것만큼 급격한 변화라서, 말을 건 내가 오히려 움찔했을 정도였다.

“내가 니 친구냐?”

“……뭐?”

“구면이든 아니든, 우리가 친하냐고. 뭔데 테스트 받으러 온 새끼가 반말 찍찍이야?”

“……”

연달아 날아온 잽에 나는 말문이 막혀서 눈만 끔뻑거렸다. 상식적으로, 이런 대꾸가 돌아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예예. 그렇긴 하죠. 말이 구면이지 친하다고 할 만한 사이도 아닌데, 동갑이라고 대뜸 반말하면 안 되죠. 제가 잘못했네요. 실수했습니다. 이건 인정. 그쪽도 반말 찍찍했지만, 내가 먼저 반말해서 그런 거라고 치죠.

그런데…….

“하여튼, 나 기억은 한다는 거네요? 박현성 씨.”

누구는 성깔 없냐? 배알이 뒤틀린 내가 싸늘한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멱살부터 잡았을지 모를 만큼 머리카락이 다 쭈뼛주뼛 섰다.

그러나 박현성은 길 가다가 ‘도를 믿습니까?’한테 붙잡히기라도 한 듯한 얼굴이었다. 이쪽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했다.

“네에에. 그러네요. 구면입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안녕히 잘 지냈으니까, 테스트생은 저리 가서 준비나 하세요. 귀찮게 말 걸지 말고.”

“진짜로 기억하는 거 맞아요? 내가 누군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면…… 지금 이거, 나올 만한 반응이 전혀 아닌데.”

“구면인 거 맞고, 기억한다고. 전국체전 결승전, 경훈 초등학교, 최태웅. 내 빠따 맞고 팔꿈치 나간 투수.”

“……!”

파리라도 쫓듯이 손을 휘휘 젓는 태도에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영화 속 그 어떤 사이코패스의 대사보다도, 귀찮아 죽겠다는 목소리로 지껄인 저 말이 잔악하게 심장을 울린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딴 반응이 나온다고?”

“지랄하고 있네. 경기 뛰다가 선수 몸뚱이 아작나는 거 하루 이틀 봐? 게임 중에 다쳤다고, 다치게 한 사람한테 치료비 물리는 거 봤어? 뭐 어쩌라고?”

“…….”

“이건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나한테 아는 척하는 저의가 뭔데요 지금? 미안하다 소리 한 번 더 들으려고? 무릎 꿇으면 돼? 죽빵 한 대 깔래요? 대줄까? 아니면 뭐? 점수 잘 받게 아웃이라도 당해줘?”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그러면서도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짜증과 박력이 침전해 있었다.

말문이 막혀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으려니, 박현성이 내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서 짓씹듯 으르렁거렸다.

“나도 그때 그러고 나서 희희낙락하면서 야구한 거 아니거든? 고삐리쯤 돼서 우왕좌왕 안 하게 일찌감치 리타이어 시켜줬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팔병신이 왜 또 이 바닥에 나타나서 사람 속을 긁어대고…….”

“……다음, 최태웅 씨? 들어와 주세요.”

면접관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박현성과 으르렁대는 사이에 앞사람 테스트가 끝난 것이다.

“…….”

박현성이 코웃음을 치고서 다시 타석에 들어갔다.

반쯤 홀린 듯이 마운드에 오르는 나는 기막힌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었다.

‘저 새끼, 사이코 아니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렇게까지 획기적인 똘끼는 난생처음이라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팔꿈치 아작나서 인생 유턴한 건 나 아니었어? 사이코패스 짓거리에도 정도가 있지. 오래된 일이라서 죄책감도 없이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면 그래도 이해나 간다.

이건 뭐야, 도대체? 자기가 피해자라도 되는 것 마냥 짜증을 다 부리고?

“……밟아버린다. 개새끼.”

속이 끓다 못해 창자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으나,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방망이로 뼈다귀를 으깨버릴 거야, 아니면 멱살 잡고 바깥으로 나가서 맞다이를 깔 거야?

정당하게 화풀이할 기회는 지금 하는 투타 대결 정도였다.

팀에서 저 새끼 위상이 어떤지야 모르겠지만, 뻔할 뻔자지. 1군에서 활약했다거나 대형 계약을 맺은 신인이라면 내가 이름조차 못 들어봤을 리가 없다.

그래도 일단은 명색이 프로 야구선수. 그에 비해서 나는 반대팔로 전향한 지 몇 개월밖에 안 되는 8년 공백의 아마추어.

그러니 지금 나한테 밟히면 충격이 없지는…….

“어랍쇼?”

씩씩거리면서 마운드에 올라간 나는 당혹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싸늘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박현성의 스트라이크존이 온통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스트라이크존의 상태가 저 모양인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이게 어떤 상황인지는 바로 알았다.

‘칠 마음이 없다고?’

아니, 이거 진짜 뒷골 때리는 새끼일세.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생각이야? 첫 마디부터 적반하장으로 시비 털 때는 언제고?

-아는 척하는 저의가 뭔데요 지금?

-점수 잘 받게 아웃이라도 당해줘?

불현듯, 박현성이 짜증내면서 비꼬듯이 던졌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내가 테스트 결과 잘 나오도록 옆구리 찔러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거 완전히 미친 새끼 아니야?

“최태웅 씨는 1점 리드하는 상황에서 1사 1, 3루로 설정하겠습니다. 준비되셨으면 바로 던져주세요.”

대줄 테니까 먹고 떨어지라는 건지 뭔지.

평소의 나라면 이게 웬 떡이냐면서 넙죽 받아먹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붙어서 이길 자신이 있어도 100퍼센트는 아니니까. 2차 테스트 합격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거라면 더더욱.

하지만 나도 비위라는 게 있다. 저딴 생 양아치새끼가 떠먹여 주는 걸 꿀꺽 삼켰다가는 탈나서 앓아누울지도 모른다.

퍼억!

“큭……!”

순간적으로 박현성이 허리를 뒤로 휙 젖혔다.

초구. 파공성을 내면서 날아간 포심 패스트볼이 얼굴 옆을 휙 지나갔던 것이다.

-이런 씨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입 모양만 봐도 박현성이 나한테 으르렁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새끼, 쫄기는. 가만히 서 있어도 안 맞았을 코스인데.

‘그래도?’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새끼 성깔을 생각하면 이거 하나로 마음이 바뀔 줄 알았는데. 스트라이크존은 여전히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만 더 해봐?

부우웅!

“……!”

2구째를 뿌리는 순간, 이번에는 내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있는 힘껏 스윙한 박현성의 방망이가 그라운드를 향해 날아왔던 것이다.

“……새끼, 성깔 좀 있네.”

나는 이빨까지 드러내고서 씨익 웃었다. 지레 놀랐을 뿐이지, 방망이도 딱히 나를 향해서 날아온 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뜻하는 바는 뻔했다.

전국체전 결승전의 재연.

박현성이 내 선전포고를 정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 진작에 이래야지.”

일부러 아웃당해 주겠다는 놈을 밟아봤자 속이 시원할 일도 없다. 스트라이크존에 붉은색이 섞여들자 나는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얼마 전에 진효 형을 상대해봐서 그런가?

‘위험 코스’가 5분의 3 정도밖에 안 되는 스트라이크존을 보니까 피식 비웃음이 나왔다.

‘저런 새끼는, 그냥 밟아주는 걸로 끝내면 안 되지.’

개인적인 화풀이는 둘째고. 나한테는 프로 입단이 걸린 중요한 테스트이기도 하다. 임팩트가 필요하다.

“……?”

타석에서 자세를 잡고 있던 박현성이 의아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신발로 마운드의 흙을 꾹꾹 밟아서 다지던 내가 대뜸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던 것이다.

어디, 기대해봐라.

따악!

“파울!”

위협구 볼 하나와 헛스윙 스트라이크 하나.

무난한 카운트에서 던진 3구째 직구에 박현성의 방망이가 곧장 따라나왔다.

“꼴에 또 프로 아니랄까 봐……. 배트 스피드는 꽤 되는데?”

이죽거리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사실 배트 스피드가 빠른 타자는 내게 있어서 가장 까다로운 타입이다. 허를 찌르는 코스에 던져도 어떻게든 갖다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으응?”

“…….”

투수판을 밟기 전에, 이번에는 오른손가락 두개를 펼쳐 보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본 테스트생이나 면접관도 ‘저게 무슨 사인이지?’라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퍼억!

“볼!”

4구째. 이번에도 포심 패스트볼.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의외라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높게 뜬 코스다.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서너 개 정도나 빠졌기 때문에 박현성은 스윙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

이번에는 손가락 하나를 펼친다.

비로소 뭔가 심상찮은 낌새를 느꼈는지, 면접관마저 눈썹 사이를 좁혔다.

“……!”

제 5구.

손가락 세 개로 감싸 쥐었던 공이 홈 플레이트를 향해 난다. 나의 팔 스윙에 맞춰 왼발을 디뎠던 박현성의 몸이 움찔 경직되었다.

-슬로우 볼!

처음으로 던진 직구 이외의 공이지만, 느슨한 팔 스윙만 봐도 느린 공이라는 것쯤은 뻔히 알 수 있다. 박현성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으나, 절반도 안 휘두른 배트를 빼는 것쯤은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퍼억!

“스, 스트라이크!”

“……뭐라고요?”

박현성은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면접관을 홱 돌아보았다.

몸쪽, 무릎 위를 살짝 넘어가는 코스. 일반적인 체인지업이나 변화구라면 거기서부터 떨어져서 볼이 되어야 마땅하다, 뭐 그런 얘기일 테지만…….

미안해서 어쩌냐? 벼락치기로 배운 공이라서 그렇게 뚝 떨어지고 그러질 않아요. 나중에 시간 나면 제대로 연습할게. 뚝 떨어지게.

나는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이 다 접힌 주먹을 내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얼굴에 아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예고 삼진?”

“삼진 예고였다고? 프로 상대로?”

“…….”

어, 아닌데…….

삼진 예고가 아니라 공 3개 이내로 잡겠다는…….

아,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삼진 예고였던 거 같아.

음음. 임팩트 있고 좋네. 예고 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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