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41화 (41/90)

< 괴물 배터리 -041- >

041.

한국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대부분 엘리트 야구인이다. 어릴 적부터 야구를 진로 삼아서 달려온 선수 중, 상위 실력자들이 프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재능은 있는데 야구를 접하는 것이 늦은 유망주도 있기 마련. 각 구단이 매년 개최하는 트라이아웃은 그런 늦깎이들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다.

이 트라이아웃의 시기는 다소 불규칙적이었다. 시즌이 끝난 뒤에 하기도 하고, 다른 팀이 가을 야구 하는 사이에 후딱 해치우기도 한다. 스프링캠프 직전에 하는 곳도 있고, 아예 트라이아웃이 없는 데도 있다.

한 마디로 구단 마음대로.

요새는 자격요건이 많이 완화되어서, 결격사유 없는 적정연령의 남성이라면 누구나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래도 물론 유리 천장은 존재한다.

구단이 노리는 인재는 드래프트 탈락자나 재기를 준비한 방출선수 정도. 솔직히, 다 커서 야구를 시작한 사람이 진흙 속 진주이길 기대하지는 않는 것이다.

피칭 센터에서 괜찮은 구속이 나왔다거나, 동네 야구에서 영웅 노릇 좀 해봤다거나─ 이런 사람들은 대개 서류심사 단계에서 탈락한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일단은 유소년 전국체전우승에 사회인 2부 리그 0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은 나도 두 군데서 탈락했거든. 커트라인이 높다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한 번 걸렀을 텐데도 이렇게 많네…….”

그런 내가 가까스로 서류심사에 합격한 곳은 엘리펀츠, 라이거즈, 드래곤즈가 합동으로 모집한 트라이아웃이었다.

사방을 둘러본 나는 기가 질렸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는데도 야구장 주위에 기백 명의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나 가족에게 둘러싸인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소풍 분위기는 소수파였다. 대다수 참가자는 사법고시라도 치르러 온 것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긴장감을 다스리고 있었다.

아이고, 경쟁률 올라가는 소리 들린다. 다른 트라이아웃도 다 여기 정도려나? 그러면 골치 아픈데. 이거는 3개 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이라서 서류 심사 기준이 낮은 거라거나. 뭐 그런 경우면 좋으련만…….

“강서훈 씨, 이기종 씨, 최태웅 씨. 지금 호명한 분들은 투수 C조입니다. 저를 따라와 주세요.”

시간이 되자, 진행요원들이 여기저기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면서 참가자를 통제했다.

투수조의 1차 테스트는 심플한 라이브 피칭이었다.

보호구 찬 타자를 타석에 세워놓고, 테스트생인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던진다. 그러면 그걸 안전망 뒤에서 지켜본 면접관 셋이 저마다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가끔 면접관이 질문을 던질 때도 있지만, 대수로운 건 아니었다. 이력서에서 의아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그럼 방기석 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어깨 풀리면 말씀해주세요. 테스트는 번호가 빠른 순이니까, 순서가 된 분은 미리미리 어깨 풀고 있어주시고요.”

체대 실기 같은 것과 비교하면, 투수 테스트는 오디션처럼 주관적인 데가 있었다. 이걸 해내면 만점, 저걸 해내면 만점, 이런 식으로 딱 잘라 수치화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런 테스트로는 진가를 알아낼 수 없는 내가 지나치게 특별한 케이스일 뿐이니까.

다만 조금 의아한 것은 1차 테스트부터 라이브 피칭을 시킨다는 점이었다. 보통은 타석에 안 세운 채로 불펜 피칭부터 해보기 마련인데…….

퍼억! 퍼억!

‘……이거 혹시, 버리는 조인가?’

앞사람들의 피칭을 느긋하게 구경하던 나는 갑자기 입안이 텁텁해졌다. 내가 이런 말 하긴 뭐한데, 프로를 지망한다기에는 다들 턱없이 공이 느려터졌던 것이다.

“예, 잘 봤습니다. 다음 김국한 씨요.”

그러고 보니 수상하네. 번호는 접수 순서대로 받았는데 왜 우리 조 사람들은 띄엄띄엄이야? 이름이 가나다순인 것도 아니고. 어중이떠중이들은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도매금으로 처리하는 건가?

뻐억!!

“오오오…….”

중간에 한 명. 시속 140km쯤 되는 강속구를 뿌린 참가자가 나오기도 했다. 썩 제구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면접관은 다른 참가자와 다르게 5구만에 그의 채점을 끝냈다.

“예, 잘 봤습니다. 김국한 씨는 여기 통제요원 따라서 그대로 B조에 합류해주시겠어요? 다음 김정수 씨요.”

“……·.”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지. 나 같아도 용 찾으려면 개천이 아니라 최소한 한강 고수부지를 뒤져보겠다.

프로 구단이 일반인 참가자를 받은 것은 이미지 광고일 뿐. 진짜로 뭔가 건져내려는 욕심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솔직히 조금 그러네. 초등학교 때랑 사회인 야구 2부 리그 성적은 아예 쳐주질 않는 건가?

“다음 최태웅 씨요.”

“예.”

기다리던 끝에 내 차례가 왔다. 시간 맞춰서 몸을 풀어두었기 때문에 곧바로 전력투구할 수 있었다.

퍼억!

“오…….”

제구를 도외시한 오른손 전력투구는 제법 우렁찬 소리를 내며 미트에 꽂혔다. 자기 차례 기다리던 참가자 한둘이 살짝 탄성을 내기도 했지만, 면접관의 표정은 덤덤했다.

하기야, 내 어림짐작대로라면 지금 던진 공은 시속 130km보다 살짝 아래쯤. 앞서 던진 투수들과 비교하면 눈에 띌 것도 없는 속도였다.

2구를 던지려고 다시금 자세 잡는데, 면접관이 문득 의아한 얼굴을 했다.

“어, 잠깐만요. 최태웅 씨는 여기 우투좌타라고 나오는데……. 그러면 원래는 어느 손인 거예요?”

“원래 왼손잡이인데 우완으로 전향했습니다. 전향한 지 8개월 됐다고 적은 것 같은데요. 비고란에 없어요?”

“아, 그러네요. 여기 비고란에 적혀 있었네요. 오른팔로 전향한 지 8개월이라고요? 8개월…….”

맙소사. 이력서에 적어놔서 알아서 놀라줄 줄 알았는데, 비고란을 보지도 않았다니. 진짜로 버리는 조였구만.

그제야 이력서를 꼼꼼하게 훑어보기 시작한 면접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초등학교 야구부 다음이 바로 사회인……. 그러면 중고등학교 때는 야구를 아예 안 한 건가요?”

“예. 부상 이력 보시면 알겠지만, 왼팔이 나갔거든요. 그래서 그만뒀다가 오른팔로 사회인 야구를 했습니다.”

군대에서 오른팔로 야구하던 것까지 치면 조금 더 오래지만……. 그건 솔직히 빼야지. 서투른 채로 그냥저냥 던진 거니까, 전향을 시도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마저 던져보세요.”

면접관 얼굴에 흥미로워하는 표정이 떠오르자, 내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저 흥미가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야 모르겠으나, 진효 형 말대로 내 경력이 오히려 임팩트로 작용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회식 자리에서 농담 한마디 잘 해가지고 사장님 빵 터뜨린 신입 사원 기분이 이런 건가? 대단한 것도 아닌데 괜히 막 으쓱해지네.

퍼억! 퍼억! 퍼억!

“예, 잘 봤습니다. 그러면 다음…….”

테스트 15구를 꽉 채운 뒤. 나는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먼저 끝난 참가자들이 있는 그늘 가에 주저앉았다. 왠지 3개 구단이 주관하는 트라이아웃치고는 뭔가 도떼기시장 같은 느낌인데 이거.

아까 들은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합격점을 못 받은 사람은 그 시점에서 탈락이다. 2차 테스트고 뭐고 없이 짐 싸서 집에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상대평가인지 절대평가인지 모르겠지만……. 상대평가라면 일반인 조로 들어온 게 오히려 다행이려나? 다른 참가자들이 던지는 거 보아하니 아주 가망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

“야야, 저기 봐봐.”

“응? 뭐를?”

“박승덕 감독이랑 강재황 감독 아니야?”

“누구라고?”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지금 여기서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진짜네. 여긴 웬일이시지?”

정말로 저쪽 관중석 위에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두 분 감독님이 서성이고 있었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홱 돌린 듯한 기분도 들지만…… 착각이겠지.

진짜로 여긴 왜들 오셨지? 토네이도즈에서 트라이아웃하기 전에 괜찮은 사람 없나 눈도장 찍으러 왔다거나?

“인사라도 해야 하나…….”

박승덕 감독님은 토네이도즈와의 친선 경기에서 한 번 봤을 뿐이지만, 강재황 감독님께는 한동안 신세를 졌다.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관중석 위라서 가는 길이 애매하네. 그렇다고 소리쳐서 인사하기에도…….

“투수 C조! 1차 테스트 합격자 발표합니다! 합격자분들은 곧 2차 테스트 진행할 테니 모여주세요!”

“어, 벌써?”

순간적으로 우왕좌왕했지만, 뭐가 먼저인지는 사실 뻔한 문제였다. 내가 놀러 온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큰 결례가 되거나 하지는 않겠지. 두 분도 놀러 오신 게 아닐 수도 있고.

“……뭐가 이렇게 적어?”

화이트보드에 적힌 합격자 명단을 멀리서 보고는 가슴이 다 철렁했다. 투수 C조는 20명 남짓 되는데, 저기 적힌 합격자는 5명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후우우……. 또 탈락인가…….”

“아아악, 씨발! 내 공이 어디가 어때서!”

나는 땅이 꺼질 듯이 한숨 쉬는 사람들을 헤치면서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거기서 합격자 명단 맨 아랫줄을 확인한 내 눈초리가 파르르 경련했다.

-27번 최 태웅 (○)-

“……먹혔구나! 작전이!”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희열보다도 뒤늦게 간담이 다 서늘해졌기 때문이다.

‘진짜로 위험했어.’

20명 중에서 5명이라면 상위 25퍼센트.

하지만 객관적으로 말해서 내 피칭은 4분의 1에 속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괜히 점수만 까먹을 거라는 생각에 체인지업은 꺼내 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체조나 다이빙처럼 심판이 점수 매기는 종류를 안 좋아한다. 운까지 포함해도 잘하면 잘한 거고, 못하면 못한 거지. 스포츠의 결과가 심판 몇 명의 주관에 좌지우지된다는 것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소리도 못하게 생겼다. 지금은 명백하게 면접관의 주관적인 판단 덕을 본 거니까.

진효 형의 말처럼 오른팔 전향이나 중 고등학교 때의 공백이 오히려 플러스로 작용한 것이다.

“2차 테스트는 실전 피칭입니다. 엘리펀츠, 라이거즈, 드래곤즈에서 2군 타자를 한 명씩 차출했습니다. 여러분은 세 타자를 상대로 시합처럼 투구하시면 됩니다.”

합격자 다섯 명이 모이자, 면접관이 유니폼 입은 타자 세 명과 함께 나타나서 담담하게 설명했다.

“저희가 임의로 2사 만루라거나, 1사 3루라거나, 상황을 지정해드릴 겁니다. 실점하거나 안타 맞았다고 탈락, 이런 건 아니고요. 엄밀히 말하면 위기관리능력에 관한 테스트니까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이스.”

프로 상대로 실전 피칭을 해야 한다는 말에 안색이 굳은 참가자들과 달리. 난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써야 했다.

내가 ‘양손잡이’를 놓치고도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배짱을 부린 이유는 하나였다. 피지컬 테스트만 턱걸이로라도 통과하면 실전에서 얼마든지 ‘임팩트’를 박아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차 테스트부터 벌써 투타 대결이라면, 장애물이라고 할 만한 건 이제…….

“응?”

나는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지그시 쳐다보던 엘리펀츠 선수가, 내가 쳐다보니까 황급히 시선을 피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랑 구면인가?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낯익은 정도까지는 아니다. 말 그대로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있을 뿐이다. 내 또래 같은데, 프로 2군 선수랑 나랑 무슨 접점이 있나? 초교 야구부 친구였던 애가 프로 데뷔했다거나?

“그러면 2차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2번 강서훈 씨부터 준비해주시겠어요? 최초 상황은 무사2루입니다.”

테스트가 시작한 지라 쓸데없이 기억이나 더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나중에라도 생각나겠지, 하면서 물러난 순간…… 내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경직되었다.

타석에 들어간 엘리펀츠 선수의 유니폼. 거기에 박힌 이름 세 글자가 내 뇌리에 불쑥 날아 박혔던 것이다.

“박현성?”

얼굴은 잊어도, 저 이름까지 잊을 수는 없었다.

방금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왼쪽 팔꿈치가, 어째선지 타는 듯이 욱신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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