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배터리 -040- >
040.
강재황에게는 흑역사가 하나 있었다. 포심 패스트볼만 주구장창 던지면서도 통산 1점대 평균자책점을 지키는 오정환이라는 고졸 마무리 투수에 관한 일이었다.
오정환은 데뷔 시즌에 직구만으로 0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었다. 그럼에도 강재황은 ‘직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라며 한 번씩 오지랖 부리는 인터뷰를 했다. 딴에는 유망한 후배에게 간접적으로 조언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고, 솔직히 그런 지적을 한 야구인이 한둘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정환은 꿋꿋하게 직구만 던지면서 2년 차, 3년 차에도 리그를 씹어먹었다. 그의 스타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한 전문가들은 뻘쭘해질 수밖에 없었다.
강재황도 그런 식으로 조금 뻘쭘하고 말 수 있었으나, 감독과 선수의 관계로 만나면서 일이 꼬였다. 지금보다 위대한 투수로 성장할 여지가 있다며, 기어이 슬라이더를 강요하고 말았던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수준급의 슬라이더가 완성됐는데, 느닷없이 그 해의 평균자책점이 2점 후반대까지 솟구쳤다. 새로 익힌 슬라이더뿐 아니라, 언터처블이던 포심 패스트볼까지 깡깡 얻어맞았다.
강재황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전설적인 투수를 보통 투수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구위나 제구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지라 강재황은 혼란스러웠다. 오정환이 일부러 태업하는 것도 절대로 아니었다.
다음 시즌 전반기에도 비슷한 양상이기에 슬라이더를 봉인해보라고 했더니만, 어이없게도 페이스가 예전처럼 돌아왔다. 구위는 그대로인데, 직구만 던지기 시작했더니 확실하게 타자를 제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재황은 자존심이 상했다. 부상도 없는데 자신의 코치를 받고 오히려 성적이 하락한 케이스는 오정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돼서 답답하기도 했다.
오정환의 직구는 분명히 톱클래스지만, 최고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 빠른 공도 잘만 쳐 내는 타자들이 왜 오정환 앞에서는 선풍기가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이 흑역사지, 실제로는 트라우마에 가까웠다. 강재황은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아예 놓아버렸다.
‘저놈은 그냥 외계인이다. 현대 과학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원래 저런 놈인 거다.’
다행히도 오정환 이외의 선수에게는 자신의 지도가 잘 통했다. 덕분에 ‘투수 조련사’라는 명예는 그럭저럭 수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외계인과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거늘, 옛 제자인 박진효가 묘한 동영상을 가지고 찾아왔다.
-아마추어급 직구 하나로도 저러는 놈이 강속구랑 변화구까지 차면 어떻게 되겠어요?
박진효야 단순히 느린 공으로도 통하는 놈이 좋은 공까지 쥐면 굉장해질 거라고 생각했을 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 번 데인 적 있는 강재황의 생각은 달랐다.
원리를 모르는 물건은 함부로 분해하거나 개조하는 게 아니다. 가전제품이라면 망가져도 새로 사면 그만이지만, 선수에게는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한 번 느낀 관심이 갑자기 어디로 갈 리는 없었다. 왜 저런 피칭이 통하는 건가, 강재황은 틈나는 대로 최태웅의 경기를 찾아가서 관전했다. 방향성이 묘하기는 해도 야구 선수에 대한 팬질과 다를 게 없었다.
“오늘부터 이주일 동안 레슨을 해주기로 하신 강재황 선생님입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서 재능 기부를 해주기로 하셨으니 모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강재황 감독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말씀 편하게 해주십쇼!”
“이, 이따가 끝날 때 싸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팬심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멀리서 지켜보다보면 가까이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지기 마련. 결국에 강재황은 체면 불구하고 재능 기부입네 어쩌네 하면서 먼저 나서기에 이르렀다.
“감독님, 스윙하면서 왼발 딛는 타이밍을 잴 때마다 긴가민가한 데가 있는데요…….”
“패스트볼을 기다리다가 변화구인 거 같으면 잠깐 멈췄다가 치라고 하잖아요. 그럼 허리에 힘을…….”
타격과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지만, 지도해주기는 썩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처럼 전 과목을 넓고 얕게 가르치는 것은 최근에 늘 해온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에이스인 최태웅은 투수 조련사인 자신의 지도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먼저 손을 대기에는 부담스러워도 먼저 질문을 해오면 대답해줄 용의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그냥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한쪽 구석에서 표적판에 공을 던질 뿐…….
“으응?”
틈틈이 힐끗거리던 강재황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항상 다트 게임이라도 하듯 위력보다 스트라이크존에 꽂아넣는 것만 신경 쓰던 최태웅의 공이 휙휙 빗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씩 절레절레 고개 흔드는 걸 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강재황은 그가 뭘 하는 중인지 곧 알아차렸다.
“변화구 연습하는갑네. 그립을 보니께 투심?”
“예? 아, 그냥 조금요. 그립만 바꿔도 벼락치기로 써먹을 법한 변화구 없나 이것저것 해보는 중이에요.”
“그럴 거믄 내헌테 물어봐도 됐을 낀디. 머덜라고 구석에서 혼자 그러고 있는댜?”
“포심 말고는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요. 그렇다고 책이나 인터넷에서 야매로 배웠다가 폼 이상해지면 부상 유발할 수도 있다고…….”
거기까지 말하던 최태웅이 흠칫하면서 고쳐 말했다.
“아, 그렇다고 감독님한테 야매라는 건 당연히 아니고요. 꾸준히 뵐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중간에 잘못해도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허기사. 야구 오래 할라믄 약간 신경질적일 정도로 그런 거에 민감한 편이 좋기는 혀.”
왜 최태웅이 직구만 던지는지 종종 궁금했던 강재황은 살짝 허탈했다. 외계인다운 고집이라도 있는가 싶었는데 그냥 배운 적이 없어서 혼자 독학하기 부담스러웠을 뿐이라니.
다소 억지스러워도 최태웅으로서는 최선의 변명이었다. ‘양손잡이’ 특성으로 오른손 감각이 자유로워진 다음에 익히려고 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투심이여? 직구랑 폼이 거의 비슷혀서, 혼자서도 검토가 될 거 같으니까?”
“그것도 그렇고요. 기왕이면 땅볼 유도하는 공을 갖고 싶기도 했고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투심이 제대로 꺾이게 할 라믄 뿌릴 적에 손목을 쬐께 꺾어야 하는디. 검지랑 중지 떼는 타이밍에도 차이를 줘야 혀서, 반대손 전향한 사람이 벼락치기로 써먹기에는 손끝 감각이 까다로울…….”
“네? 저 원래 왼손잡이인 거 어떻게 아세요?”
무심코 떠들던 강재황이 흠칫했다. 하지만 그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냥 오늘 레슨허기로 한 팀이 어떤 덴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까 자네 얘기가 쪼까 나오더라고. 그래서 알았지.”
“아아, 그러셨구나.”
납득하는 최태웅의 모습에 내심 안도하면서 강재황이 말했다.
“하여튼, 그러믄 요점은 직구랑 거의 같은 폼 쓰믄서, 그립만 바꿔가지고 벼락치기가 될 만한 공을 찾는다는겨? 기왕이면 땅볼 유도도 되고?”
“예에. 뭐 말로 표현하자면 그렇기는 한데요…….”
“그립만 바꾼다고 그렇게 공이 휙휙 바뀌는 거이 아니기는 헌데……. 그 조건들 채우는 공들이 아예 없는 거는 또 아니기도 허고…….”
그러면서 강재황은 최태웅의 눈치라도 살피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써먹을지 말지는 자네 멤이지만, 한 번 쥐어나 볼텨?”
***
거의 머리 높이로 날아왔던 공이 ‘톡’하고 떨어졌다.
퍼억! 도 아니고 툭! 도 아니다.
여기까지 닿기는 할까 싶도록 비실비실한 공이 스트라이크존 아래를 빠져나가 바닥에 ‘톡’ 떨어졌다.
“아이고, 좀 빠졌네. 이건 볼이다, 인정.”
“……뭐야 이건?”
임팩트를 줄 공이라기에 내심 두근두근하면서 타석에 섰던 박진효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언젠가 군대에서 그가 자신에게 던졌던 이퓨즈와도 달랐다. 그냥 무슨 걸그룹 시구자가 던진 공처럼 가까스로 홈 플레이트에 다다른 완만한 공이었다.
“체인지업이야. 어때? 멋있지?”
“체인지업? 아니, 무슨 체인지업을 초구에 던지냐?”
최태웅의 괴이한 볼 배합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하는데도 한순간 말문이 다 막혔다.
체인지업은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변화구이자 투구법이다. 빠른 공을 기다렸는데 똑같은 폼에서 느린 공이 날아오니까 ‘어어어?’ 하다가 스윙을 미처 못 멈추고 당하게 되는 식이다.
느린 공 위주로 보여주다가 갑자기 빠른 공을 던지는 볼 배합도 없다고는 못하겠지. 하지만 그건 ‘빠른 공’이 진짜로 ‘빠른’ 투수들이나 써먹는 방법 아닌가?
‘생각한 게 있겠지 뭐.’
저 괴랄한 피칭이 어디 하루 이틀 된 일인가.
박진효는 천천히 방망이를 고쳐 잡았다.
퍼억!
“스트라이크!”
2구는 무릎 위를 지나는 몸쪽 코스.
건드리려면 못할 건 없었다 싶지만, 제대로 때려내기에는 반응이 늦었다. 파울이나 스트라이크나 마찬가지이기에 일단은 차분하게 지켜보았다.
‘맨날 던지던 공인데 이건?’
도대체 뭘로 임팩트를 주겠다는 건지. 궁금해하면서 자세를 잡았더니, 최태웅의 다리가 다시 울라갔다.
제 3구.
‘……느려!’
공이 손을 떠나기도 전에 바로 빠른 공인지 느린 공인지 알아챘다. 폼 자체는 흡사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힘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따악!
“……파울!”
예상대로 겨울 똥파리처럼 비실비실한 공이 날아왔으나 정타를 때리지는 못했다. 드물게도 최태웅의 공이 또 스트라이크존을 조금 벗어났던 것이다.
“원 볼, 투 스트라이크. 긴장 타라, 형.”
“…….”
일부러 노린 건가? 제구가 안 되는 건가?
차라리 최태웅과 첫 승부였다면 지금 공은 때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웬만해서는 스트라이크만 던진다는 선입견 때문에 코스를 조금 잘못 읽었으니까.
‘그런데 저게 뭐가 체인지업이야? 어떤 게 느리고 어떤 게 빠른지 확 알아보겠는데.’
뭣보다 지금 던진 공은 폼이 아니라 날아오는 궤적을 보고 반응해도 충분할 정도로 밋밋하고 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패스트볼과 섞어 던진다고 속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제 4구.
힘 빠진 폼을 보아하니 이번에도 느린 공.
“……!”
타이밍을 딱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타격 순간에 방망이가 살짝 무거웠다. 중심에서 조금 빗나간 모양이지만, 그쯤은 힘으로 얼마든지 때울 수 있었다.
따악!
특, 투두둑─.
총알 같은 땅볼 타구가 순식간에 내야 위치를 빠져나갔다. 저 멀리까지 굴러간 공을 보면서 최태웅이 외쳤다.
“유격수 땅볼! 아웃! 이건 인정하지?”
“……야, 그건 아니지. 지금 게 어떻게 아웃이야? 딱 봐도 3유간 안타구만.”
“이게 어떻게 해서 안타야? 엘리펀츠 주영호 금요일에 수비하는 거 못 봤어? 몸만 딱 날리면 글러브 안으로 쏙 들어가겠구만.”
“왜 니 맘대로 유격수를 주영호라고 치는데? 손태호일 수도 있잖아!”
“내가 감독이라면 손태호 유격수로 안 써!”
“걔네 팀 투수들도 똑같이 생각하는데 현실적으로 꾸준히 나오잖아! 그리고 잡기만 하면 뭐하냐! 백모션이라서 송구도 늦을 텐데! 내가 이래봬도 18도루야!”
“…….”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린 끝에 방금 타석은 무승부였던 걸로 하기로 했다.
‘쟤 오늘따라 왜 저래? 공 던지는 것만 해도, 무슨 연예인 시구도 아니고.’
박진효는 뚱한 표정으로 방망이를 고쳐 잡으면서도 살짝 걱정되었다.
혼자서 뭔가 시도하다가 잘못 맞물리게 된 거 아닐까? 변화구 하나를 익히다가 원래 가진 공에 악영향이 생기는 경우도 결코 적은 게 아닌데.
최태웅이 다시 와인드업했다.
‘빠른 공!’
폼을 본 시점에서 곧바로 감이 왔다. 그만큼 팔스윙하는 속도 차이가 컸던 것이다.
따악!
“파울!”
힘차게 스윙한 박진효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앞선 공 2개는 익숙지 않은 구질이라서 제구가 흔들렸다고 생각했는데, 늘 던지던 포심 패스트볼까지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던 것이다.
따악!
투두둑…….
언제나 허를 찌르는 코스에만 던져오지만, 오늘의 투구 패턴은 정말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느린 2구째를 건드려 투수 앞 땅볼로 만들고 말았다.
“1대 0.”
박진효는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볼을 던진 것은 당연히 잘못이 아니다. 이제는 볼도 종종 날아올 거라 생각하고 대응하면 된다.
퍼억! 따악! 따악!
“스트라이크!” “파울!” “2루 땅볼!”
따악!
“2루 땅볼. 아웃.”
따악! 따악!
“파울!” “아웃!”
가끔 빠른 공. 대부분 느린 공.
종종 스트라이크. 가끔은 볼.
전부 눈으로 보고 대응해도 될 만한 공인데 자꾸만 엇박자가 났다. 영화 자막이 대사보다 한 마디씩 늦게 나타나는 것처럼 답답했다.
‘뭐지? 이거 기분이 무지하게 더러운데…….’
최태웅의 피칭이 사람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분명히 칠 만한 공인데, 독심술을 하는 것처럼 가장 의식이 비어있는 코스에만 푹푹 들어오니까.
하지만 그것도, 연예인 시구 같은 공을 자꾸만 빗맞히게 되는 지금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따악!
“……이번에는 1루 땅볼. 맞지? 7대 0.”
“뭐?”
최태웅이 갑작스럽게 내뱉은 스코어에 박진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러 타석 범타를 당하는 거야 알았지만, 벌써 이만큼이나 지났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20개도 안 던진 거 같은데……. 7타석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프로 타자의 자존심이 있지.
이전에는 그래도 최태웅 상대로 3할에 가까운 타율이 나왔다. 현역 프로와 느린 직구밖에 모르는 아마추어라는 점 때문에 그렇지, 이렇게까지 농락당한 건 아니었다.
박진효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렇게 된 거……. 느린 공은 무조건 걷는다.’
최태웅이 독심술이라도 하듯이 이쪽 노림수를 쉽게 간파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도 저만큼 느린 공이라면 어지간히 허를 찔려도 분명히 커트할 수 있었다.
따악! 따악!
“파울!” “파울!”
8번째 타석.
공 2개를 작정하고 걷어내자 최태웅이 히죽 웃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박진효는 괜히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느린 공!’
3구째. 느슨하게 휘둘러지는 팔을 보는 순간, 허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이번 타석에서는 연속으로 느린 공만 봤기에 다행히도 타이밍이라면─.
부우응!
“오예! 삼구 삼진!”
박진효는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분명히 지금까지 적응한 타이밍대로 스윙했는데, 반 박자 늦게서야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지나갔던 것이다.
“너, 설마…….”
왜 자꾸만 타이밍이 어긋났는지, 그제야 짚이는 데가 생긴 박진효가 얼떨떨한 눈으로 최태웅을 보았다.
“빠른 공이랑 느린 공이 아니라……. 강 중 약이었어?”
“어때? 괜찮은 것 같아?”
최태웅이 피식 웃으면서 그립을 보였다.
하나는 손가락 세 개로 감싸면서 공을 손바닥에 바짝 붙인 쓰리 핑거 체인지업. 하나는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고서 남은 손가락으로 감싸는 서클 체인지업.
“그립만 바꿔서 던지는 건데 희한하게 두 개가 속도가 다르더라고. 떨어지지도 않고. 그래서 오히려 섞어서 써먹어 봤지.”
“…….”
“‘빠른 공’이랑 ‘느린 공’은 한눈에 구별해도, ‘느린 공’이랑 ‘더 느린 공’은 섞어 던져도 구별이 안 되잖아.”
지금부터 죽어라 연습한다고 며칠 안에 구속을 올릴 수는 없기에 태어난 역발상이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던가? 결과만 따라준다면 확실히 이런 것도 160km 강속구 못지않은 임팩트를 줄 것이다.
‘느리게, 더 느리게……. 톰 글래빈이었나?’
하여튼, 이렇게 옆길만 골라서 걷는 놈이 또 있을까.
박진효는 왠지 걱정해서 손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