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35화 (35/90)

< 괴물 배터리 -035- >

035.

[일반 미션 ‘한 바퀴’를 달성했습니다.]

[50포인트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3이닝 퍼펙트는 의미 있는 기록이다. 상대 타자들을 모조리 한 번씩 아웃시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여얼! 최태웅 쩌는데?”

“역시 우리 에이스!”

“야, 살살 좀 해봐. 우리 너한테 눈치 보이잖아.”

우리 선수들은 지금 상황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태도였다. 운이 좋았을 뿐, 이런 페이스가 계속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내 생각도 같다만. 그래서 한 타석 한 타석이 더욱 짜증났다.

‘미진 새끼들이 왜 자꾸 톡톡 건드려? 치려면 화끈하게 치고, 말려면 말 것이지.’

‘매의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타자들은 쿨존에 공이 꽂힐 때마다 일일이 허를 찔렸다는 얼굴로 움찔거렸다.

문제는, 그런데도 다들 무너진 스윙으로나마 배트에 공을 맞힌다는 것이었다.

‘아까부터 삼진이 안 잡히잖아!’

삼진을 쓸어담으리라는 기대는 안 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삼진을 잡기가 어려울 줄은 몰랐다.

쿨존에 대한 대처능력이 전혀 다른 것이다.

아웃을 당해도, 이만한 공에 쉽게 헛스윙하지는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선수급으로 이뤄졌다는 압박감도 상당했다.

아무 생각 없이 초능력이 리드하는 대로 던지기만 하면 되리라 여겼는데,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 딱딱 잘라지나.

저래 봬도 스트라이크존의 8할이 핫존이다. 조금만 실투해도 위험 코스로 날아갈지 모른다는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게다가 우리 타선이 점수를 내기도 요원해 보였다.

야구공과 배트는 둥글다는 말도, 최소한 상대의 발뒤꿈치 정도는 따라갈 수 있을 때에나 해당하는 거지.

탈삼진 관련 미션으로 포인트를 벌기는 글렀으니 승리 투수라도 노려봐야 하는데. 이것도 현시점에서는 너무 막막했다. 나는 도저히 무실점 장담 못하겠거든.

한 마디로 포인트 나올 구멍이 막혔다.

내 표정이 구겨지는 것도 당연했다.

설상가상.

4회가 되자 토네이도즈 선수들의 눈빛이 변했다.

따악!

“으아아악!”

“나가라, 나가라, 나가…… 그렇지 파울!”

아슬아슬한 홈런성 파울 타구에 벤치 멤버들이 비명을 터뜨렸다. 나도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가 험악하게 투덜거렸을 정도였다.

“에라이. 더러운 새끼들…….”

작작 좀 해라. 너네 지금 아마추어랑 친선경기하는 거야. 고삐리 야구부도 아니고, 사회인 2부 리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정색 빨고 게임 하냐?

퍼억!

“스트라이크!”

처음 1, 2회의 토네이도즈 타자들은 ‘어어어?’ 하다가 삼자범퇴로 나가떨어진 느낌이었다. 3회에는 다소 집중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나를 얕보는 기색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3이닝 퍼펙트를 당하고 나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마추어 투수에게 그렇게 당했다는 사실이 제대로 자존심을 긁은 모양이었다.

시발, 홈런 못 치면 폭탄 터뜨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대도 믿어지겠네.

따아악!

“……!”

벼락같은 스윙에 본능적으로 뒤를 휙 돌아보았다.

라이너라고도, 플라이라고도 하기 애매한 타구를 중견수가 필사적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넘어가나? 펜스인가? 아니, 저 궤도라면…….

“뛰어! 뛰어!”

“잡을 수 있어!”

콰아앙!

둔탁한 충돌음이 들렸다. 정신없이 뛰던 중견수가 펜스를 들이받고 나동그라진 것이다.

“잡았…….”

“아니야! 흘렸어! 뛰어, 뛰어!”

“일단 3루까지! 3루까지 무조건 가!”

“중계! 중계해!”

용케 노 바운드로 받아냈던 공이, 펜스에 부딪히는 충격으로 글러브에서 흘러나왔다. 야수들이 백업하려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상대 타자는 바람 같이 달려서 3루 베이스를 밟았다.

“야야야, 괜찮아? 안 다쳤어?”

“머리 괜찮아, 머리? 구역질난다거나 그런 거 없어?”

“괜찮아, 괜찮아……. 흔들지 마. 그렇게 세게 갖다 박은 거 아니야. 다친 데 없어, 괜찮아…….”

펜스에 충돌한 중견수의 상태를 보느라 경기가 장시 중단되었다. 다행히도 큰 부상은 아닌지라 선수 교체만 하고 경기를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장타가 나온 건…… 우연인가?’

잠깐 숨을 돌리던 나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이닝부터 저쪽 타자들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방심을 버리고 집중하게 됐으니, 타격 능력이 올라가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매의 눈’은 타자의 심리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반영해서 약정 코스를 내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항상 구속을 희생하더라도 실투 없이 쿨존에 공을 꽂아넣는 것만 신경 썼다.

그야 물론, 정확하게 약점 코스를 찔러도 장타가 나올 수는 있지만…… 하필 이 타이밍에?

“플레이!”

왠지 떨떠름했으나 답을 내릴 만큼 시간이 넘쳐나지는 않았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만한 일도 아니고.

시합이 재개되자, 난 천천히 다리를 들어올렸다.

퍼억!

“스트라이크!”

초구가 미트에 꽂힌다.

타자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단지 그뿐.

오랜만의 루킹 스트라이크에 내 눈썹이 꿈틀했다.

‘지켜봤어……?’

앞선 3이닝 동안은 다들 내 공을 ‘보고’ 쳤다.

서로의 역량 차이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괜히 수 싸움을 하는 것보다도 효과적인 방법일지 몰랐다.

한 마디로 타격 방식이 바뀌었다는 건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나 더.

부응!

“스트라이크!”

살짝 빠지게 던진 2구에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을 쪼개버릴 듯한 기세의 풀 스윙.

그걸 보니 저들이 어떤 작전을 들고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노림수를 갖고, 확실하게 자기 스윙을 하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엉거주춤한 스윙으로는 안타 치기 어려운 공이라는 걸 인정하고 들어온 것이다.

생각해보니 방금 1번 타자는 핫존과 쿨존의 색깔 차이가 유달리 선명했다. 노린 공은 볼이 되어도 치고, 버린 공은 한복판에 들어와도 무시하겠다는 느낌.

방금은 내 공이 노림수 근처로 날아간 덕분에 덜 무너진 스윙으로 때릴 수 있었다는 건데

‘머리는 좀 굴렸는데, 땡이다. 이것들아.’

이제부터 어떤 노림수를 가져도, 내가 그 근처로 공을 던져줄 가능성은 0이다. 타자가 어떤 코스를 의식하는지가 내 눈에는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일반 미션 ‘삼구 삼진’을 달성했습니다.]

[5포인트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눈 멀뚱멀뚱하게 뜨고 구경만 해줄 생각이라면, 나야 땡큐지.

***

“아유아유. 벌써 시작했구먼. 아까버라…….”

자동차 접촉사고 때문에 지각한 강재황은 시합이 한창인 모습을 보고 가볍게 투덜거렸다. 오늘 경기는 저들끼리 친분이나 쌓으라고 주선해준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었다고 해봐야 1시간 남짓. 놓친 이닝이 아까웠으나, 일반적으로는 피칭이 가장 안정되었을 타이밍이기도 했다.

마침 서로 무득점이니, 감상하기에는 충분히…….

“6회 말? 벌써?”

느긋하게 자리 잡고 앉으려던 강재황이 점수판의 숫자를 보고는 멈칫했다. 2~3회쯤 되었으리라 생각한 경기가 너무 많이 흘러서 당황한 것도 있지만…….

“노히트 노런? 퍼펙트?”

점수판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틀림없이 그랬다. 양 팀 모두 무안타. ‘날아오르라’의 실책 한 번을 제외하면 아무도 살아서 루를 밟지 못한 상태였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퍼펙트가 진기록이라는 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팀끼리 붙을 때에나 해당하는 얘기다. 아직 6회밖에 안 되기도 했고, 독립 구단이 사회인 야구팀한테 퍼펙트를 따냈다고 해봐야 별다른 이슈도 못 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심상치 않았다. 토네이도즈는 내년에 프로 리그로 합류할 것이 예정된 팀이다. 1군의 톱 클래스 투수도 결코 손쉽게 노히트를 뽑아내지는 못한다.

당연히 운이 따라줬겠지. 아무리 위대한 투수도 실력만 가지고 노히트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거기에는 최소한의 밑천이 필요했다.

‘그 직구만 가지고, 노히트가 가능하다고?’

그야 물론,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안다. 최태웅이란 투수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토네이도즈와의 친선경기를 주선한 게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 전개가 순순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저들은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이 직접 지도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6회 말의 마지막 타자가 방망이를 헛돌렸다.

토네이도즈의 투수인 김진환은 뭔가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타자들이 저런 아마추어 투수한테 농락당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7회 초.

토네이도즈의 공격.

마운드에 선 최태웅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도 토네이도즈를 여기까지 몰아세운 것치고는 차분한 축에 드는 태도였다.

반면, 타자의 얼굴색은 완전히 흙빛이었다.

‘공이 문제가 아니야…….’

‘타이밍이나 코스나, 던지는 놈이 이상해…….’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3, 4번 타자도 표정이 썩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구차하더라도 변명하자면, 처음에 상대를 얕봤다.

포심 하나밖에 없는 아마추어 투수를 무슨 수로 진지하게 경계하나. 그래서 조금씩 삑사리 타구가 나와도 ‘운 좋은 놈’이라며 혀를 차고 말았다.

퍼억! 따악! 따악!

“스트라이크!” “파울!” “아웃!”

제대로 때린 타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명백한 안타성 타구도 4개나 있었는데, 지랄 맞은 방향으로 날아가 야수에게 잡아먹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놈이 지금까지 얻어낸 아웃카운트는 결코 운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무기를 가졌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운만’ 좋은 게 아니다.

지금 녀석에게는 ‘운까지’ 따르고 있는 것이다.

따악!

“씨발! 도대체 왜!”

몸쪽 공을 쳐올린 3번 타자가 험악하게 으르렁거리며 1루로 달려갔다. 그러나 타구는 그가 베이스 근처에 가기도 전에 일찌감치 내야 플라이로 처리되었다.

“……도대체 뭐지?”

“저 새끼, 우리 데이터 분석하고 온 거 아니야?”

“나한테 인하이만 던지는 거 봤어? 내 약점 미리 아는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나한테만 그러냐고.”

“아니, 이상하다니까? 스트라이크존을 뚝 잘라서 반만 벼르고 있는데, 벼르는 쪽은 절대로 안 준다고.”

사회인 야구팀이 상대이다 보니, 이 경기는 처음부터 연장 없이 7회까지로 잡혔다. 이번에도 점수를 못 내면 7회 말에 ‘무승부’냐 ‘패배’냐를 놓고 싸우게 된다.

물론, 저들이 점수를 낼 리가 없으니까 거의 틀림없이 ‘무승부’라고 보기야 하지만.

“내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저 새끼는 조진다.”

4번 타자인 강호진이 으르렁거리면서 배팅 박스에 들어갔다. 그 독기는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남겨두고 심호흡하는 최태웅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꼬나보면 뭐 어쩔 건데?”

특정 상대한테만 집중할 거라면, ‘매의 눈’은 굉장히 유익한 초능력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약점 코스로 공을 던지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파울!” “파울!”

제구에만 신경 쓰던 최태웅은 5구째쯤 돼서야 강호진의 독기가 무슨 의미였는지 눈치챘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커트를 해대는데, 바보가 아니고서야 무슨 꿍꿍이인지 모를 리 없었던 것이다.

‘아웃 하나 남겨놓고 뭐하는 짓인지 원. 이런 거 하려면 일찌감치나 하던가.’

사회인 야구를 하면서 느낀 건데, 이렇게 타자가 작정하고 커트만 하면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자신의 구질은 직구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괜히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일컫겠나.

여러 번 당했는데도 여태껏 대책이 없다면, 그건 야구선수로 살아갈 마음이 없다는 말이 된다.

“…….”

최태웅은 일부러 타자와 시선을 마주친 뒤에 피식 웃었다. 그 도발적인 제스처에 강호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왼발이 투수판을 밟는다.

격렬한 기세로 몸이 움츠러들었다가─ 숨이 턱 막일 정도로 느린 똥볼을 태연하게 왼손에서 쏘아냈다.

“이, 씨입──!”

강호진의 양팔이 격렬하게 꿈틀거렸다가, 감전이라도 된 듯이 딱딱하게 경직되며 방망이를 멈추었다.

판단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척수반응.

반사적으로 휘두를 뻔했던 방망이를, 역시 반사적으로 거둬들인 것이다.

“……볼.”

굳이 심판에게 따져볼 필요도 없을 만큼 깔끔한 체크스윙이었다.

강호진이 험악하게 찌푸린 얼굴로 마운드를 보았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 밑도 끝도 없이 날아온 똥볼이라, 어지간히도 가슴이 철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호진은 금세 차분한 얼굴로 방망이를 고쳐쥐고 타석에 섰다. 흔들기 따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고 위세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참 불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운이 없으면 하필.

그냥 척 보기만 해도, 끊어진 집중력을 간파할 수 있는 초능력 투수와 마주 서게 되었을까.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최강의 아마추어 팀을 압살한 뒤, 최태웅은 피로한 얼굴로 터벅터벅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

“소년가장은 밥값 다 했슈. 나머지 알아서들 해요.”

“야, 왜 자꾸 눈치 주고 그래…….”

“우리도 시무룩하단 말이야…….”

내가 벤치에 털썩 기대면서 내뱉자, 선수들이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구만. 내가 작정하고 눈치 주면 이 정도에서 끝날 거라고 생각하나?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다만, 인정할 건 하니까 참는 거다. 오늘 야수들의 탈(脫) 아마추어급 수비가 없었다면 장타가 최소한 세 개는 나왔다. 점수 못 냈다고 구박하자니, 실력 차이 큰 게 뻔히 보이고.

“야야야, 태웅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우리도 한 건 해줘야지?”

“맞아. 못 이기더라도 퍼펙트는 깨야지. 아무리 그래도 저기도 아마추어이긴 마찬가진데, 퍼펙트가 뭐냐? 쪽팔리게스리.”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걸 보여주자!”

토네이도즈 선수들이 마지막 수비를 하려고 그라운드에 나왔다. 내가 어깨 스트레칭하는 사이에, 우리 타자들은 퍼펙트를 깨보자며 한데 모여 기합을 넣고 있었다.

할 일을 다한 나로서는 이제 상관없는 장면이다.

“저번 경기에서 딴 게 15점. 오늘 경기에서 딴 게 70점. 그러면 오픈까지 390점 남은 건가?”

솔직히 말해서 ‘경험치 몹’이 아홉인데도 삼진 미션을 이렇게까지 못해낼 줄은 몰랐다. 3이닝 퍼펙트로 얻은 ‘한 바퀴’ 미션이 아니면 정말 시간과 체력만 낭비한 셈이 될 뻔했다.

퍼억! 퍼억!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그래도 포인트와 별개로, 묘한 보람이 남는 경기이기는 했다. 처음 마운드에 올라갈 때는 7이닝 노히트 같은 거 상상도 못했으니까.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한다. 이것도 솔직히 저쪽에서 나를 얕잡아 봤다가 ‘어어어어?’하고 허둥댔으니까 해낸 거지.

퍼억! 따악!

“스트라이크!” “아웃!”

체력 소모가 컸지만, 그래도 오늘 얻은 포인트가 3경기 분량은 된다. 수지타산이 안 맞았지만,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체력이 아니라 시간이니까.

만약 우리 타자들이 지금이라도 1점을 낸다면, 승리 투수가 돼서 포인트 대박이 터질 텐데. 음, 이건 너무 허황된 기대겠지?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페이스를 보아하니, 재수가 없으면 올해 안에는 특성 오픈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뒤집어 말하자면 내년에는 틀림없이 된다는 말이다. 운동선수로서 데뷔가 1년 늦어진다는 건 뼈아프지만, 남들은 상상도 못할 무기를 쥐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너그럽게…….

[스페셜 미션 ‘비운의 에이스(노히트 노런)’를 달성했습니다.]

“……응?”

생각에 잠겨 있던 내 눈이 둥그레졌다. 마운드 밖에서 이 알림창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비운의 에이스(노히트 노런) : 투수가 노히트 무실점 완투를 달성했으나, 무득점으로 노히트 노런 성립에 실패한다.]

[단축 경기 페널티로 포인트 20%가 차감됩니다.]

[400포인트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어리둥절했으나, 미션의 설명을 보고 바로 이해했다.

경기가 끝나서 내려왔어도, 아직 우리 팀의 공격이 남아 있으니까. ‘비운의 에이스’가 성립되려면 마지막 이닝까지 무득점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제야 본 기억이 난다. 설마 내가 노히트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안중에 없던 미션이었다. 스페셜 미션에 400포인트?

그럼 혹시…….

[특성 오픈에 필요한 포인트를 모두 모으셨습니다.]

[새로운 특성을 선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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