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배터리 -034- >
034.
갑자기 스마트폰이 띠링띠링거려서 봤더니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운동 중이라 귀찮아하면서 확인했다가, 나는 곧바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지사항입니다. 12일 토요일에 토네이도즈와 친선경기 일정이 잡혔습니다. 라인업 편성을 위해, 해당 날짜에 출전 가능하신 분은 카페에 댓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카페 공지글을 확인해주세요.]
[?????????]
[어디랑 뭘 한다고?]
[?????????????????]
[토네이도즈??? 독립구단 거기????]
[??????]
[설마. 이름만 같은 데겠지.]
폰이 계속 울리는 건 다른 팀원들도 어이가 없어서 자꾸만 되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면 내가 글자를 잘못 읽은 건 아닌 모양이다만…… 이게 말이 돼?
“……진짜였네.”
카페 공지글에는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상대팀 소개까지 나와 있었다. 만우절도 아니고, 수재 형님이 일단 이렇게 공들여 뻥칠 사람은 아니지. 아니긴 한데…….
“이게 진짜 되는 거야?”
중학교 야구부만 해도 베스트 멤버로는 사회인 야구팀과 경기를 안 해준다. 엘리트 야구를 하는 중학생과 순수한 아마추어는 그만큼 수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끔 운동장 빌려 쓰는 중학교 야구부 애들도 시합은 같이 안 해주더라. 중학생이 이럴진대,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대뜸 토네이도즈가 튀어나오다니?
거기는 애초에 선수들의 프로 입단을 지원하고자 만들어진 독립 구단이다. 승률 문제인가 뭔가로 무산되었다지만, 원래는 올해 2군 리그에 입성할 예정이기도 했다.
‘아마추어’라는 건 형식적인 분류일 뿐. 토네이도즈는 이미 프로나 다름없는 팀인 것이다.
-형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저기가 왜 우리랑 놀아줘요?
일단 댓글로 참가 의사부터 밝힌 뒤에 수재 형님한테 메신저로 물었다. 동시에 여럿을 상대하는 중인지, 수재 형님의 채팅 속도가 조금 느렸다.
-내가 한 거 아니야. 진효가 대뜸 물어 왔어.
-??? 진효 형 짬밥 찌끄레기 아님??? 그 형이 무슨 끗발이 있다고 이런 걸 물어다 줘요???
-나도 몰라 ㅎㅎㅎㅎ 강재황 감독님이 우리 경기를 언제 인상 깊게 봤다나 봐. 어쩌다가 얘기가 나왔대.
-??????????? 그게 다예요?
-난 그냥 전화로 대뜸 할래 말래? 이러길래 한다고 대답한 거뿐임. 걔한테 직접 물어봐 ㅎㅎㅎ
하기야. 토네이도즈가 한판 붙어주겠다는데, 앞뒤 잴 게 뭐 있나. ‘어머나, 깜짝이야’ 하면서 단칼에 거절할 거 아니면 덥석 물어야지.
진효 형한테 전화를 해봤는데 훈련 중인지 뭔지 받지 않았다. 나는 얼떨떨했지만, 한편으로는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설 만큼 희열에 사로잡혔다.
“이거 진짜, 대박인데…….”
이건 단순히 경험치 몹이 9명으로 늘어나는 것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 큼지막하게 포인트를 주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타선’을 상대로 한 미션이다. 웬만큼 활약한다면 단번에 10경기 분량에 가까운 포인트를 긁어모을 수가 있다.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만약에 퍼펙트게임처럼 커다란 미션이라도 달성한다면? 그 시점에서 포인트 노가다는 끝이 난다. 아니, 그때부터는 세 번째 특성을 오픈하기 위한 노가다를 시작하게 되겠지.
‘그런데 지금 내 공이 저기 타선에 통하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문(思問)이다.
안 통하면 어쩔 건데? 영혼까지 탈탈 털려서 10실점쯤 해버리면 뭐? 그런다고 포인트가 깎이나?
잘하면 로또, 못해도 본전.
고민할 여지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건 분명히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박승덕 감독님. 뵙게 돼서 정말로 영광입니다. 저희 주제에 이렇게 붙는 게 폐는 아닐까 모르겠네요.”
“폐는요 무슨. 다 같은 야구인이고, 사실 우리도 아마추어이긴 마찬가지인데요. 좋은 경기 부탁합니다. 재밌게 해봐요.”
토요일. 오늘이 휴일이 아닌 사람도 있을 건데, 우리 팀의 출석률은 거의 90퍼센트를 찍었다. 시합에 못 나가도 벤치에서 직접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좀…….’
일찌감치 나와서 몸을 풀던 나는 갑자기 입안이 텁텁해졌다. 저만치서 운동 중인 토네이도즈 선수들의 태도가 상당히 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저들의 분위기가 쌀쌀맞다는 걸 눈치도 못 챘을지 모른다. 준 프로급과 붙는다는 사실에 들떠서 꼼지락거리는 우리 선수들과 비교해보니 위화감이 느껴졌을 뿐이니까.
‘생각해 보니까, 저쪽 입장에서는 시시할 수도 있겠네. 친선경기를 선수 전원한테 동의받고 하는 것도 아닐 테고…….’
중간과정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뻔했다. 사회인 2부팀 ‘따위’와 퓨처스리그 입성을 노리는 독립구단이 사적으로 친선경기를 벌이게 됐다면 인맥빨이지.
삐딱하게 말하자면 감독의 인맥 관리에 선수들이 이용당한 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프로지망생들이 감독님한테 감히 어떻게 불만 표출을 하겠나. 까라면 까는 거지. 다만, 표정관리까지 할 의욕은 안 생긴다……. 뭐 이런 건가?
“……내가 알 게 뭐야.”
친선은 무슨. 니미 뽕이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댁들 기분이 어떻든 관심 없다.
딱히 친해질 마음도 없고.
오늘 찬스에서 포인트만 알뜰하게 우리면 된다.
“……어?”
“왼팔로 던지게?”
우리 선수들이 마운드에 올라가는 나를 보고서 살짝 반응했다. 오늘 나는 시작부터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번부터 9번까지 모두가 ‘선수 출신’ 이상의 선수라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력만 빼면 왼팔의 투구능력이 오른팔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금까지도 ‘선수 출신’ 상대로는 왼팔을 썼는데 뭘.
“플레이 볼!”
건들거리면서 타석에 선 타자를 보고,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해.’
상대는 프로지망생들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군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진효 형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나도 체력이 붙었다. 공 던질 때 체중을 싣는 요령도 생겼고.
무엇보다, 진효 형과 달리 저들의 스트라이크존에는 파란색이 군데군데 섞여 보였다. 약점 코스가 보인다는 건, 내가 저 타선과 붙을 자격쯤은 있다는 말이겠지?
퍼억!
“스트라이크!”
한복판 초구를 보낸 뒤, 타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지금껏 상대한 사회인 야구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어쭈? 좀 빠른데?’ 정도로 해석할 만한 반응이다.
까앙!
“파울!”
몸쪽 낮은 공. 한순간 움찔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커트해내는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수준이 다르고만. 분명히 허를 찔린 반응이었는데도 어떻게든 갖다 맞추기는 하는 걸 보니.
난 호흡을 빠르게 가져갔다.
포심 패스트볼밖에 없는 나는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지 않는다. 다음에 노릴 코스가 눈에 뻔히 보이니, 볼 배합을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럼 굳이 타자가 숨 돌릴 틈을 줄 필요가 있나.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받자마자 거의 바로 뿌린 공에 1번 타자가 멀뚱히 선 채로 삼진을 먹었다. 놀랐다기보다는 기막혀하는 눈빛이 나에게 지그시 쏟아지고 있었다.
뭐뭐뭐, 왬마. 꼬우면 덤벼. 나는 튈 거지만.
[일반 미션 ‘삼구 삼진’을 달성했습니다.]
[5포인트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직 힘쓴 것도 없는데 숨이 거칠어진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
솔직히 말해서 박승덕 감독은 입맛이 조금 썼다.
독립 구단의 감독은 친선경기 청탁을 심심찮게 받는 자리다. 아마추어 중에서는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팀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야 뭐, 인맥에 기댄 청탁이라도 못 받아줄 것은 없었다. 시합 경험은 선수들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여기에도 정도라는 게 있었다.
사회인 야구의 2부 리그 팀이라니? 차라리 이벤트성 자선경기라면 또 몰라! 그것도 전임 감독이란 사람이!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공수 교대!”
물론, 선배의 청탁을 꿋꿋하게 튕겨내지 못한 자신의 잘못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박승덕 감독은 벤치 멤버들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다.
따악! 따악! 따악! 따악!
“파울!” “파울!” “아웃!” “스트라이크!”
베스트 멤버가 아니라지만, 사회인 야구의 1부보다는 월등하게 세다. 선배가 주선했을 정도면 그래도 완전히 맹탕은 아닐 터. 이 정도면 서로 간에 그럭저럭 뭔가를 남겨가는 경기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아웃!”
“아니, 그런데 이것들이…….”
큰 관심이 없는지라 심드렁하게 지켜보기만 하던 박승덕이 무심코 혀를 찼다.
커트. 커트. 커트.
마음에 드는 공이 을 때까지 투구수를 늘리는 것이 나쁜 전략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실투 외에는 쳐내기 어려운 에이스급 투수를 상대로나 써먹는 플레이다.
사회인 야구인으로서는 괜찮은 구속이지만, 프로지망생들에게는 보고 때려도 될 법한 공이다. 구질도 포심 패스트볼뿐이 아닌가.
“혹시 니들 콜드 게임 못 내면 굴욕이다, 뭐 그딴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때릴 만한 건 바로 쳐. 어차피 직구밖에 없는데 수 싸움이고 뭐고 없잖아? 괜히 공짜로 투 스트라이크까지 만들어주니까 이렇게 꼬이는 거라고.”
“……예!”
이미 타석에 들어갔던 선수들이 움찔했으나, 그걸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선수 대부분은 벤치에 걸터앉아서 따분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진짜로 직구밖에 없는 건가?”
“희한한 친구네. 요즘 세상에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변화구를 하나도 안 던질 수가 있나?”
“구속 보면 사회인 야구에서는 나름 에이스급일 것 같은데. 설마 아끼고 있을 리는 없고.”
“그냥 보고 때리면 되겠네 뭐.”
시합 하나하나에 목마른 독립 구단의 벤치 멤버임에도 선수들은 텐션은 느슨했다.
프로 2군 평균 구속에도 못 미치는, 직구 일색의 아마추어 투수. 그런 상대에게는 경계심을 품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살짝 꼬인 공격과 달리, 수비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너무 씹어먹는 것도 잔인하다 싶어서 포심 패스트볼만 던졌는데, ‘날아오르라’ 팀의 타자들은 방망이를 헛돌리기 바빴다.
“아웃!” “아웃!” “아웃!”
“……이것들이.”
3이닝 퍼펙트.
타순이 한 바퀴 돌도록 아무도 1루를 밟지 못했다는 굴욕적인 사태에, 박승덕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벤치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니들이 프로 지망하는 거 맞냐? 프로 가고 싶은데 실력이 안 됐어서, 그래서 최후의 보루로 여기에 온 거 아니었나? 말년에 동네야구 나가서 ‘나 프로 지망생이었다’ 이러고 거들먹거리고 싶은 것뿐이었어?”
“아닙니다!”
“쟤들이 가소로워? 똑같은 아마추어 주제에. 한 번씩 인터뷰도 하고 기사도 탄다고, 어깨에 힘 들어가? 쟤들이랑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아?”
“아닙니다!”
박승덕 감독이 선수들을 질책할 때의 목소리는 결코 크지 않다. 하지만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기이할 정도의 신랄함과 한기를 띤 채로 뼈 마디마디에 스며든다.
‘……빌어먹을.’
어어어어, 하는 사이에 잃어버린 아웃 카운트가 벌써 9개라니? 0으로 도배된 점수판을 본 선수들은 새삼스럽게 어이가 없어졌다.
이제부터 탈탈 털어도, 저 투수는 토네이도즈 상대로 3이닝 퍼펙트를 했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겠지.
그런 생각을 했더니 갑자기 뱃속이 부글거렸다. 건들거리면서 타석에 섰던 몇 분 전의 자신들을 두들겨 패고 싶을 지경이었다.
“……?”
그때, 험악한 눈빛으로 상대 투수의 모습을 쫓던 몇몇 선수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투수 이름이 최태웅이라고 했던가?
상상 이상의 호투를 하고 환희에 사로잡혀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어째선지 그의 얼굴은 뭔가가 안 풀린다는 듯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