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33화 (33/90)

< 괴물 배터리 -033- >

033.

‘퍼억!’ ‘퍼억!’ ‘까앙!’ ‘까앙!’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2루! 2루로 던져!’

박진효가 튼 동영상은 어느 경기의 편집본이었다.

그렇다고 TV에서 흔히 해주는 것처럼 하이라이트만 모아놓은 것은 아니었다. 공수 교대나, 송진가루를 바른다거나, 그런 걸 생략하고 오로지 투수와 타자가 맞붙는 장면만 모아놓은 영상이었다.

‘그런데 이건…….’

굉장히 뜬금없었지만, 여기까지는 괜찮다. 영문을 알건 모르건 그냥 한 번 보면 되는 일이다.

다만 의외였던 것은, 동영상에 나오는 얼굴이 전부 낯익다는 점이었다.

‘어제 경기잖아?’

그쪽 팀 이름이 ‘날아오르라’였나? 화질이나 구도를 보니까 어디서 누가 찍은 영상인지도 대강 감이 왔다.

‘프랑켄슈타인’의 공격만 모아놓은 거라서 동영상은 금방 끝났다.

강재황은 의아한 얼굴로 박진효를 바라보았다.

“이거 찍던 아가씨, 니가 보낸 거였냐?”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야들 나가 레슨해준 아들이잖어. 어저께 나도 저기 있었어. 뭔 처자가 박격포 같은 카메라 들고 와가지고 찍고 있드만.”

“어, 진짜요? 와, 인연이 또 그렇게 되네…….”

박진효가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듣자하니 저 영상을 찍으러 온 처자가 박진효의 여동생이라고 했다.

“그나저나 좀 어떠셨어요?”

“머가 워뗘?”

“저 투수,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 안 드세요?”

“어. 생각 안 드신다.”

“…….”

박진효의 얼굴이 급속도로 시무룩해졌다.

거뭇거뭇하게 수염 난 아저씨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 강재황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쳤다.

“이눔아. 뭘 또 그런 눈깔로 쳐다보고 있어? 무슨 길고양이 키워보라는 거도 아니고, 대뜸 이런 거 들이밀면서 헛소리 싸대는 니가 이상한 거제.”

“왜, 사퇴하실 때 그러셨잖아요. 감독직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려는 것뿐이라고. 감독 아니더라도 야구계 발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많다고.”

“거야 관둘 때 뽀대 좀 나라고 대본 읽은 거제. 그냥 관두면 성적 때문에 쫓겨나는 거 같잖어.”

그러면서 강재황은 태블릿 PC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밑도 끝도 없는 소리인 거는 둘째 치고. 진지하게 얘기해도 마찬가지 아녀? 이게 어디가 키워보고 싶게 생긴 넘이냐?”

들은 바에 따르면 이 친구는 양손잡이가 아니라 우완으로 전향 중인 왼손잡이라고 봐야 했다. 이래서는 야구를 처음 배우는 것보다 다소 나은 정도밖에 안 된다.

그야 물론, 사람의 가능성을 함부로 단정할 마음까지는 없었다. 이 세상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노력으로 뚫어버린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서른 넘어서 야구를 시작한 메이저리거도 있다.

그러니 잘만 하면 프로 선수로 성공할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저 투수가 잘 커서 역대급 몬스터 시즌을 찍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다였다.

만약에 어떤 식으로 인연이 닿게 된다면 성심성의껏 지도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생판 남남인 상태에서 저 영상만 보고 ‘키워보고 싶으냐’라고 묻는다면?

“보아하니 구속 줄여서 제구 잡은 모양이니까. 익숙해지면 구속은 오르겄지. 헌데, 나가 볼 때는 그래 봤자 평균이여. 폼이 독특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유연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직구도 순 작대기고…….”

눈에 띄는 ‘장점’도 ‘개성’도 없다.

비평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다.

먼저 나서서 ‘키워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만한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더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

“감독님 말씀대로 무기라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도’ 아웃은 이렇게 계속 잡아내고 있잖아요.”

“아이고, 인마…….”

강재황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봤자 상대도 똑같이 아마추어 아녀. 기냥 이 날이 계탄 날이라서 뽀록으로 하나둘씩 주워 먹은 거던데. 대단하기는 뭐가 대단혀?”

“하지만 뽀록도 어느 정도죠. 두 번, 세 번씩 반복되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잖아요.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어요?”

“……아니, 인마. 야구 하루 이틀 허냐? 원래 공은 둥글고 빠트도 둥근겨. 딱 맞게 때렸다고 홈런 되고, 삑사리 났다고 무조건 아웃되는 거 아니잖여. 저 날은 어쩌다 보니까 계탔던 거여. 별거 없는 게 딱 보면 보이잖어.”

“어쩌다 저런 게 아니라면요?”

“…….”

강재황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박진효가 두 번째 동영상을 틀었다. 강재황은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하면서 떨떠름하게 화면으로 시선을 향했다.

‘까앙!’ ‘까앙!’ ‘까앙!’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이것도 아까와 다를 바 없는, 사회인 야구팀과의 경기를 편집해놓은 영상이었다.

던지는 공은 여전히 직구 일색. 선수 출신으로 보이는 타자에게 가끔 왼손으로 던지는 것만 빼면 전혀 다를 게 없는 패턴이었다.

‘볼!’ ‘볼!’ ‘볼!’

“……으응?”

강재황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커트를 당하더니, 크게 빠지는 볼 3개가 연달아 들어온다.

어제 경기에서도 본 적 있는 장면이었다.

내내 괜찮은 제구를 보이다가 한 번씩 크게 빠지는 볼을 연달아 던지는 게 이상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흔들리는 제구는 금세 돌아왔다.

그 타자는 풀 카운트에서 탈삼진으로 돌려세우고, 후속 타자도 부담 없이 틀어막았다.

‘까앙!’ ‘까앙!’ ‘까앙!’

범타. 범타. 범타.

경기는 굉장히 스피디하게 흘러갔다.

별 무브먼트도 없는 작대기 직구일 뿐인데, 약 올리는 것 같을 정도로 공은 방망이의 중심을 피해 갔다.

‘8이닝 무실점. 완봉승.’

시간제한을 두는 리그인 탓에 8회만에 경기가 끝났다. 경기 전개가 빨랐기 때문에 저만큼 간 거지, 사회인 야구에서는 보통 5회나 6회짜리 경기가 더 많이 나온다.

그래, 다 봤다. 이게 뭐 어쨌냐?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더니, 박진효가 새로운 동영상을 틀었다.

‘까앙!’ ‘퍼억!’ ‘까앙!’ ‘까앙!’

‘아웃!’ ‘세이프!’ ‘아웃!’

비슷한 소리와 영상이 반복된다.

강재황은 약간 짜증이 났지만, 별말 않고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볼!’ ‘볼!’

“……응?”

강재황이 무심코 눈살을 찌푸렸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던진 결정구가 미묘한 코스에서 볼 판정을 받았는데, 다음 공 2개가 연달아 크게 빠졌다.

그렇게 풀 카운트가 되자 페이스가 돌아왔다.

‘뭐여, 이건? 삼구 삼진 못 잡을 바에는 풀 카운트 삼진 잡겠다는 것도 아니고. 징크스인가?’

이번 경기도 굉장히 스피디하게 흘러갔다.

상대 투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앉아서 숨 돌릴 틈도 없다며 조금 짜증이 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7이닝 무실점. 완봉승.’

박진효가 네 번째 동영상을 틀었다.

‘까앙!’, ‘까앙!’, ‘까앙!’

강재황은 짜증을 낼까 하다가 일단 침묵했다.

사실, 가만히 보면 몰입되는 부분도 있었다. 과연 언제쯤 실점을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5이닝 무실점. 콜드 게임, 완봉승.’

다섯 번째 동영상.

어수선한 걸 보니, 이번 건 친선경기인 듯도 했다.

‘6이닝 1실점. 완투승.’

마침내 실점했지만, 굳이 말하자면 외야수의 실책이었다. 그가 던지는 공들은 정말 귀신에게 홀렸는가 싶을 정도로 스위트 스팟을 미묘하게 피해 갔다.

여섯 번째 동영상에 이르러서는 강재황도 보는 내내 침을 꼴깍꼴깍 삼키기만 했다.

“……뭐여, 이거?”

강재황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박진효를 보았다.

배트 스피드와 폼만 봐도 타자의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알 수 있다. 저들 입장에서 최태웅이란 투수의 공은 결코 언터처블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치지 못한다.

뻔한 한복판 코스가 오는데, 허를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흠칫하고 만다. 노림수가 맞아떨어졌다는 듯이 자신 있게 방망이를 휘두르는데도 중심에서 빗나간다.

던지는 공이라고는 직구 하나밖에 없는데.

못 칠 정도로 빠른 공도 아닌데.

저렇게나 방망이에 자주 맞아 나가는데.

“편집 이상하게 한 거는 아니지? 아웃 따는 장면만 막 모아놨다거나…….”

“감독님. 쟤, 올해 처음 사야 뛰는 애예요. 편집할 만한 다른 경기도 없어요.”

“됐어.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여.”

강재황은 괜히 입술이 바작바작 말라붙었다.

별거 없는 게 딱 보인다고 말했던 게 갑자기 멋쩍게 느껴졌다. 박진효의 말이 새삼스럽게 뇌리를 부유했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확실히 뭔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렇죠? 그렇죠?”

마침내 인정을 받아낸 게 기뻤는지, 박진효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얼마나 흥분한 건지, 황소처럼 콧김이 씩씩 뿜어져 나올 정도였다.

“이게 뭐가 대단하냐면요. 육체적으로는 아직 아마추어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누구는 강속구에 변화구에 별별 걸 다 동원해서 간신히 아웃 잡아내는데, 얘는 직구 하나로도 그게 된다고요! 그런데 변화구야 익히면 되는 거고, 구속도 계속 훈련하면 늘어날 거잖아요! 아마추어급 직구 하나로도 저러는 놈이 강속구랑 변화구까지 차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거야 뭐…….”

강재황도 젊을 적에는 강속구 투수였다가 나이 먹고 팔색조 투수로 변신해 롱런한 타입이다.

젊을 적에나 나이 먹어서나 괜찮은 성적을 찍었지만,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힘이 빠져서 기술로 커버하는데도, 예전과 비슷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쌩쌩하던 시절에 기술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내가 멀 해주기를 바라는 건데? 진짜로 야 좀 키워주기라도 해달라, 이거여?”

강재황은 약간 떨떠름하게 말했다.

받아들이고 말고를 떠나서, 왜 저런 영상을 자기한테 가져왔는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가르쳐 보라고 한다면 조금 막막한 부분도 있었다.

야구를 보다 보면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스펙에 비해 결과를 잘 내는’ 선수가 꼭 한 명씩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대표 마무리인 오정환만 해도 그렇다.

똑같은 시속 150km짜리 포심인데도 타자들은 그의 공에 유달리 죽을 쑨다.

회전수가 많다느니, 이중키킹 동작 때문이라느니, 마무리라 1이닝만 던져서 그렇다느니,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은 가설이다. 진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강재황의 감각으로는 저 투수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논리나 이론으로는 분석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손을 대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왜 잘 던지는지를 이해 못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더 잘 던지도록 키울 수 있겠는가.

“물론, 그것도 있지만요. 제가 키워달라고 했던 건 그런 의미가 다가 아니거든요.”

“그러믄?”

“이런 말씀 드리기는 조금 뭐한데……. 지금 토네이도즈 박승덕 감독님이 감독님 후배시잖아요?”

박진효는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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