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32화 (32/90)

< 괴물 배터리 -032- >

032.

대한민국 세 번째 독립 구단인 토네이도즈에게 있어서 그해 겨울은 유달리 추웠다. 당초에 예정되었던 2군 퓨처스 리그의 가입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만들어진 독립 구단들이 텃세와 갑질에 시달린 것과는 사정이 달랐다. 번외 경기의 승률이 1할대밖에 못 되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기 때문이다.

“프로는 원래 실력으로 말하는 거잖여……. 실력으로 쥐어터진 건데, 뭔 투정을 허겄냐…….”

“아니, 코찔찔이들 데려다가 7명씩이나 프로로 만들었으면 됐지! 감사패를 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빠구를 먹이는 게 말이나 되는 거유?”

“애초에 그거 하라고 만든 구단이고, 그거 하라고 연봉 받은 건데 뭔 공치사를 혀……. 못한 거는 그냥 못한 거지…….”

“그러게 내가 팀 굴릴 애들은 좀 남겨두라고 했수, 안 했수?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겨울에 드래프트 신청하면 되는 걸, 뭐 하러 시즌 중에 컨택 오는 걸 꼬박꼬박 받아줘유?”

“운동선수한테는 젊음도 재산이여. 한 해라도 빨리 프로 가야지, 뭐덜라고 2군도 못 되는 데서 계속 굴리고 있겄냐?”

“어이구야, 보살 나셨네. 보살 나셨어.”

감독인 강재황은 구단주와의 면담 끝에 자발적으로 사퇴하는 모양새를 내기로 했다. 구단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으나 강재황의 뜻은 확고했다.

“삐쳐서 때려치우는 거 아녀. 내가 조련은 좀 해도, 작전 내고 이러는 건 원래 잘 못혀. 애들 대충 사포질은 해놨으니까, 쓸 만한 머리 붙여서 굴리면 내년에는 성적 쏠쏠찮게 나올겨. 그때 다시 앵겨보면 되지.”

“부르는 데는 있습니까?”

“약발 떨어진 거 사방팔방에 다 뽀록냈는데 누가 날 부르겄어? 출퇴근하는 것도 지겨운데, 걍 짬짬이 아르바이트나 받아다가 해야지 뭘.”

송별회 자리에서 그렇게 엄살을 부렸지만, 강재황도 일단은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본인이 의지만 비춘다면 불러주는 곳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감독님. 현역 시절부터 꾸준히 팬이었습니다.”

“아우, 됐슈. 짤린 지가 언젠데 아직도 감독이유.”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오늘 하루는 저희 선생님이신데요.”

“에헤이. 낫살 좀 먹었다고 대뜸 그러면 쓰나유. 돈 주는 사장님들이신데.”

“레슨 잘 부탁드립니다!”

“이따가 사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강재황이 말하는 아르바이트란 아마추어 야구의 주말 레슨 같은 것들이었다.

어차피 돈이라면 선수 시절에 잔뜩 벌어뒀다. 그러니 이건 용돈 벌이라기보다 소일거리나 취미생활에 가까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출퇴근하기 지겹다는 것도 빈말이 아니었다.

주말 레슨은 그때그때 일당을 받는 일이니, 마음대로 쉴 수 있었다. 물론, 강재황이 그만큼 인지도 있는 야구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거기는 그립이 너무 모범적이유. 자기 손가락에 맞는 그립을 찾아야지,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 했구먼. 손가락을 이렇게 쪼끔 벌리고 던져 봐유.”

“봐유, 봐유. 스텝을 이렇게 하면, 견제할 때 까먹는 시간이 줄어들잖아유. 견제할 때는 아예 견제할 작정을 혀야지, 투구하려다가 갑자기 견제를 할라니까 그런 거유.”

사회인 야구 2부쯤 되면 초보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아마추어인 것은 사실.

강재황은 그런 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쏠쏠한 재미를 느꼈다. 어느 정도 자기 색깔과 고집을 가진 프로와는 달라서, 자신이 읊어주는 노하우 하나하나를 신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받들었던 것이다.

재미를 붙인 강재황은 5주 가까이 ‘프랑켄슈타인’ 팀의 레슨을 맡았다. 그가 별로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음에도 레슨하는 동안 선수들과 소소하게 정도 들었다.

“혹시, 다음 주에 시간 괜찮으세요?”

“으음? 시간은 와?”

“저희 경기나 한번 보러 와주셨으면 해서요. 나름대로 빅 매치거든요. 상대도 저희처럼 무패 찍고 있는 팀이에요.”

“하이고. 별게 다 빅 매치구먼. 그래 봤자 14팀 있는 리그에서 꼴랑 5승한 게 다임시롱.”

강재황 눈에야 재롱잔치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일단 흥미는 동했다. 어쨌든 몇 주 동안 땀 흘려가며 가르친 제자들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은퇴한 노인네가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음 주.

경기장을 찾아온 강재황은 뜻밖의 광경에 약간 얼떨떨해졌다. 관중석 쪽에 한 처자가 방송국에서나 쓸 법한 대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거 혹시 테레비에도 나오고 그러냐?”

“아뇨, 그럴 리가요. 희한한 걸 다 보네……. 파워블로거 같은 건가?”

“블로거면 인터넷에다가 사진 일기 같은 거 쓰는 거 아녀? 취미생활에 저런 카메라를 써? 한두 푼이 아닐 건디…….”

“어우, 감독님. 요새 팬들은 장난 아니에요. 경기장에 가보면 수천만 원짜리 대포 같은 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도 한 무더기예요. 아이돌 콘서트도 그렇고요.”

내가 1군 감독할 때는 그런 거 없었는데. 강재황은 묘한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나저나, 저런 카메라꺼정 들고 다니는 거 보면 웬만한 팬은 아닐 낀디. 2부에 뭔 볼거리가 있다고 저런 대포를 다 들고 왔댜?”

“그러게요. 저런 헤비 팬이 관심 가질 만한 게…….아, 혹시 쟨가?”

갸웃거리던 주장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서는 상대 투수로 보이는 20대 청년이 느긋하게 어깨를 풀고 있었다.

“저 친구가 양손 투수거든요. 최태웅이라고, 지금 우리 리그 방어율 1등이에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이쪽 동네 사야인들한테는 꽤 유명했어요.”

“호오, 양손 투수라고……. 희한하구마잉.”

양손으로 공을 던지는 건 투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일이다. 강재황도 투수 출신인지라 흥미롭게 최태웅의 연습을 구경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약간의 ‘흥미’에 불과했다.

피칭은 끊임없이 손끝의 감각을 갈고 닦아야만 하는 섬세한 운동이다. 양손을 쓴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훈련량이 절반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좌우 놀이가 큰 영향을 미치는 레벨까지는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수준이 올라갈수록 연습량의 분산이 독이 되리라는 것이 강재황의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폼은 참 깔끔하네잉. 취미생활 수준이 아닌데? 저그는 선수 출신 읎다고 안 혔나?”

“아아. 저 친구는 선출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까지만 야구하고 접었대요. 사야는 성인 되고 나서 시작한 거고요.”

“그려? 뼉다구 좀 있어 보이는데 와 관뒀댜?”

“부상이죠 뭐. 저래 봬도 전국체전 결승전 우승투수래요. 우리 리그에서는 유명해요. 방어율도 0점대고.”

“0점대? 저 공으로?”

강재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범적인 투구 폼이지만, 공 자체는 그렇게까지 위력적인 것도 아니었다. 물론, 사회인 야구 선수들 수준에 맞춰서 봤을 때의 이야기였다.

2~4점쯤은 무난히 따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시합 시작하면 뭔가 달라지겄지.’

강재황은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0점대 평균자책점은 압도적인 뭔가를 가져야만 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레이 볼!”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의 눈빛이 변했다. 당사자들끼리는 상대가 무패 행진 중이라는 걸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독기를 품었다고 해서 항상 결과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까앙! 까앙!

“아웃!” “아웃!”

‘프랑켄슈타인’의 1번과 2번 타자는 힘도 써보지 못하고 4구만에 나가떨어졌다. 최태웅 투수의 공은 포심 패스트볼 일색이었다.

“……응?”

구경하던 강재황이 문득 눈썹 사이를 좁혔다.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가자, 최태웅 투수가 심판에게 신호하고 글러브를 반대손에 끼었던 것이다.

’우타자인데, 와 굳이 왼손으로 바꿔서 던진다?’

그저 어리둥절했으나, 미트에 꽂히는 초구를 봤더니 대강 이유가 짐작되었다.

뻐억!

“스트라이크!”

벤치에서 지켜보던 선수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짐작으로 보기에도 공이 최소한 10km/h는 빨라졌기 때문이다.

“원래는 왼손잡이라더니…….”

“왼손잡이? 양투람서?”

“저도 인터넷에서 본 건데, 원래 왼손잡이래요. 부상 때문에 양손 섞어서 던지는 거라나, 뭐라나…….”

“그러면 현식이는 선출이라서 왼손으로 붙는겨? 쎈 놈한테는 왼손으로, 약한 놈한테는 오른손으로?”

“그렇겠죠?”

“별 희한한 캐릭터가 다 있구먼…….”

사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상한 점은 없었다. 부상 때문에 반대손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좌우 상관없이, 강타자 상대할 때만 원래 손으로 돌아가겠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까앙! 까앙!

“파울!” “파울!”

정말로 다친 팔인가 싶을 정도로, 좌완 최태웅이 뿌리는 포심은 위력적이었다. 연달아 커트해냈음에도 3번 타자의 표정에는 막막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볼!” “볼!” “볼!”

“……응?”

사람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지금까지의 기막힌 제구는 어디로 가고, 공 3개가 크게 빠졌던 것이다.

“뜬금없이 풀 카운트네…….”

“뭐야? 왜 흔들리는 거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2스트라이크가 풀 카운트로 바뀌었으니 나쁜 일은 아니다.

‘프랑켄슈타인’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는 가운데, 최태웅이 다리를 올렸다.

뻐억!

“스트라이크 아웃!”

“으아악! 이런 멍충아!”

“한가운데를 왜 그냥 보내?! 풀 카운트인데!”

어처구니없는 루킹 삼진에 선수들이 일제히 비명을 터뜨렸다.

연달아 볼 3개가 들어왔으니, 투수의 제구가 흔들린다 생각하고 기다려볼 수야 있다. 하지만 투수가 볼넷만은 안 주겠다며 몰린 공을 던질 것도 당연히 염두에 둬야 하는 게 아닌가.

“아, 씨발! 내가 진짜 미쳤나 봐. 계속 코너 워크만 해대길래 순간적으로 가운데는 생각을 못했어…….”

“…….”

강재황은 기가 막혔지만, 한편으로는 그러려니 했다.

프로 선수도 한눈팔다가 멀뚱히 선 채로 견제사당한다거나 하는 바보 같은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이쯤은 단순히 수 싸움 하다가 허를 찔린 정도에 불과했다.

까앙! 까앙! 까앙!

“아웃!” “세이프!” “세이프!” “스트라이크 아웃!”

경기는 묘하게도 투수전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날아오르라’ 팀의 상위 타선은 제법 견고했으나 숙련도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럭저럭 출루는 해냈지만, 결정타를 못 때리고 삐걱거렸다.

끝끝내 독특한 인상을 뿜어낸 것은 오히려 직구만 던지는 최태웅이었다.

까앙! 까앙! 까앙!

“세이프!” “아웃!” “아웃!”

0점대 투수라기에 내심 기대했는데, 타자 역량에 따라서 좌우를 바꿔 던지는 것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구질은 오로지 포심 패스트볼.

제구는 괜찮은 편이지만 단지 그뿐.

‘프랑켄슈타인’ 타선을 압도할 만한 요소는 안 보이는데도 어이없을 정도로 범타가 쏟아졌다.

“어떻게 맞추기만 하면 다 삑사리지?”

“아이 씨!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왜 또 그리로 굴러가냐!”

처음에는 다들 운이 나쁘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범타가 될 때마다 운 타령을 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이런 상황이 6회까지 반복되니까, 상대 투수에게서 으스스한 무언가마저 느껴졌다.

까아앙!

“놓쳤다! 뛰어, 뛰어! 계속 돌아!”

“세이프!”

어떻게든 후반까지 투수전 양상을 꾸려왔지만, ‘프랑켄슈타인’에게는 그만한 운이 따르지 않았다.

장타 한 방에 주자 둘이 홈 플레이트를 밟았고, 거기서 게임은 사실상 끝이 났다.

“게임 세트! 오늘 경기는 4대 0으로 ‘날아오르라’ 팀의 승리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패배에도 방식이라는 게 있다. 차라리 프로급 강속구에 압살당했다면 모콜까. 충분히 잘 때린 공이 계속해서 빗맞으니, 선수들은 그저 복장이 터졌다. 강재황으로서도 뭐라고 조언해줄 말이 없을 정도였다.

“요런 말 해봤자 복장만 뒤집어지겠지만……. 뭐 어쩌겄어. 운이 드럽게 안 따라준 것을……. 다음에 기회 되면 알아서 설욕들 혀. 그래도 뭐, 나쁘지 않게 치고받았잖여.”

“…….”

확실히 재미난 투수였지만, 강재황이 집에 돌아와서 누웠을 때쯤에는 그의 이름조차 까먹었다.

양손잡이라는 것도 알고 보니 우격다짐이었다. 인상적인 무기 하나도 못 가진 투수를, 프로 감독까지 해본 그가 오래도록 기억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뜻밖의 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이나 다음 주에 방문해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한가한 몸인지라, 강재황은 얼떨떨해하면서도 바로 수락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어따, 진효 니가 이 시간에 워쩐 일이여? 방출된 거는 아닌 텐디?”

“오늘 월요일이잖아요. 잠깐 짬 내서 감독님 뵈러 나온 거죠.”

“어따, 이 쉬키 요새 잘 나가는구먼? 막내가 쉬는 날이랍시고 싸돌아다니기도 하고?”

“아이고, 감독님. 제 나이가 몇 갠데 막내예요? 1군 데뷔가 늦어서 그렇지, 제 밑에 여럿 있어요.”

“좋겄다, 이놈아. 낫살 많이 처먹어서.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유분수지.”

강재황은 한때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직을 맡은 적도 있었다. 박진효가 그때의 학생이니, 사제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다.

굉장히 느닷없는 방문이었으나, 옛 제자가 찾아온 걸 기뻐하지 않을 스승은 없었다. 그 제자가 잘 나가는 올스타 후보이기까지 하니, 강재황의 얼굴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니는 와 빈손이냐? 나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어?”

“빈손이라뇨? 쥬스 사왔잖아요.”

“예끼 놈아. 부탁할 일 같은 거 있어서 왔을 게 뻔하구먼. 어디서 저딴 걸로 퉁치려고 개수작이여?”

“혈……. 아니, 감독님 백수시잖아요? 백수한테 무슨 힘이 있다고 제가 청탁을 하러 와요? 굳이 말하자면 선물이나 드리려고 온 건데?”

“선물?”

박진효가 히죽 웃으면서 가방에서 태블릿 PC 하나를 꺼냈다. 그가 동영상 플레이어를 실행시키는 모습에 강재황의 눈이 반짝 빛났다.

“뭐여? 야동이여?”

“……네. 야동이에요.”

영상이 시작되자, 화면에 크고 아름다운 몽둥이를 움켜쥔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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