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30화 (30/90)

< 괴물 배터리 -030- >

030.

야구는 실외 스포츠인지라 겨울에는 경기하기가 어려웠다. 손이 꽁꽁 얼어서 쥐었다 폈다도 안 되는 판국에 무슨 던지고 받고를 하겠나. 리그는 턱도 없고, 기껏해야 아는 팀끼리 친선경기를 하는 정도다.

기왕 그렇게 됐으니, 겨울 동안에는 이 악물고 훈련을 해보기로 했다.

왜 그 만화에 보면 독심술로 적의 공격을 미리 읽는데도 실력 차이가 워낙 커서 쥐어터지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그와 마찬가지로 ‘매의 눈’도 만능은 아니었다.

극단적인 예로 메이저리거랑 붙는다고 쳐보자. 스트라이크존 어디에 던져도 뻥뻥 쳐낼 테니, 약점 코스가 보인대봐야 무의미하다.

최소한 상대가 실수하지 않아도 가끔은 아웃 카운트를 잡아낼 만한 실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선수 출신한테서 포인트를 확실하게 긁어모을 수가 있다.

내 경우에는…… 일단 구속을 늘리는 거겠지.

“트라이 아웃 준비한다고? 진짜로?”

프로 지망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효 형은 그야말로 경악했다. 설마 내가 진학까지 보류하고 야구에 매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이제 와서 왜 이래? 아직 안 늦었다고, 야구 해보라고 볼 때마다 쫑알거린 게 누군데? ‘날아오르라’도 바람 넣으려고 소개해줬던 거 아니야?”

“그, 그렇긴 한데……. 일단 야구에 재미 붙이면 마음이 조금씩 움직일 거라고 생각한 거지……. 어차피 대학 갈 거라니까, 거기서 야구부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사실 뭐, 그게 상식적인 반응이지.

남들이 보기에 내 결정은 굉장히 극단적이다. 사회인 야구에서도 포인트가 얻어진다는 걸 알았더니 갑자기 해볼 마음이 생겼다는 말은 아무한테도 못 하니까.

이럴 때는 배 째라는 소리밖에 할 게 없다.

“그래서 무슨 문제 있어?”

“문제라기보다는……. 아니, 아니지. 큰맘 잘 먹었다. 잘 생각했어. 싸부라면 분명히 할 수 있어. 막말로 여기서 구속만 10km쯤 끌어 올려도 2군에서 통할걸?”

하지만 진효 형은 말 그대로 잠시 얼떨떨했을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금세 희색만면해서 날 응원했다.

“오른손 전향이라고 불안해하지 마. 가능성으로서는 오히려 무궁무진한 거야. 생각해봐! 운동도 안 한 놈이 반대쪽 손으로 이만큼 던지는데, 구속이랑 컨트롤 붙고서 변화구도 끼면 어떻겠어? 끝판대장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대마왕 강림이라니까!”

“…….”

저런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머쓱한 기분이 든다. 나야 초능력 믿고 까분다지만, 저 형은 뭘 믿고 저렇게 침 튀겨대는지 원. 무슨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나는 기술보다도 하체부터 단련하기로 했다.

선수 출신한테서 포인트를 따내려면, 당분간은 왼손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내 왼팔은 단련하는 것 자체가 혹사나 마찬가지였다.

하체 힘은 거의 모든 운동의 중심이다. 두고두고 체력과 이어질뿐더러, 좌투우투에 골고루 도움이 된다.

“진짜 안타깝다. 내가 투수였으면 이것저것 도움 줄 게 많을 텐데. 당장 변화구 하나만 장착해도…….”

“변화구는 당장은 안 배울 거야.”

“뭐? 아니 왜?”

“변화구는 손끝 감각이 많이 중요하잖아. 오른팔로 던지는 게 완전히 적응되면, 그때 가서 익히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아서.”

내가 제일 먼저 노리는 특성은 ‘양손잡이’였다. 이걸 얻으면 당장에 오른팔로 왼팔만큼 자유롭게 공을 던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른팔을 자유롭게 쓰는 게 전부라면 포인트를 소모하기 아까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양손잡이’의 효과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같은 손 타자에게는 피안타율이 특히 더 하락한다.

‘매의 눈’으로 약점 코스를 노리면서, ‘양손잡이’의 피안타율 하락까지 중복으로 적용된다면 어떨까? 우타자들에게 나는 분석불가의 천적이 되겠지.

무엇보다, 또다시 부담 없이 강속구를 던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신인왕 한재진 연봉 1억. 역대 4번째 2년 차 억대 연봉 달성. 신인왕 경합 상대였던 박진효를 1천만 원 차이로 제쳐…….」

틈틈이 내 연습에 참견하러 오던 진효 형이 오키나와로 스프링 캠프를 떠났다.

그럭저럭 혹한이 지나간 이 무렵부터 사회인 야구는 슬금슬금 시동이 걸렸다. 프로팀이 대부분 해외로 나간 탓에 야구장 섭외가 수월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야야, 지금 봤어?”

“최태웅이! 좋은 거 있으면 나눠 먹자! 혼자만 얼마나 몸보신 한 거야?”

오랜만에 뭉친 멤버들은 내 연습 투구를 보고서 입이 떡 벌어졌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구속이 쭉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말해보라면, 이 정도 구속은 원래부터 낼 수 있었다. ‘매의 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제구력이 더 중요한지라 구속을 한참 줄여서 던지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구속이 늘어난 게 아니라 제구가 잡힌 것이었다. 하체가 안정되면서 구속을 ‘덜 줄이고도’ 원하는 코스에 그럭저럭 꽂아 넣게 되었다는 말이다.

“오늘 경기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재밌게 해봐요.”

2월 리그가 시작하고, 우리가 처음 붙게 된 상대는 지난 시즌에 딱 중간 순위를 찍은 팀이었다.

강호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도 다 상대적인 거지. 처음으로 2부 리그에 들어온 우리 팀원들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까앙! 까앙! 까앙!

“세이프!”

“아웃!”

“아웃!”

상대 팀의 플레이는 확실히 안정된 편이었지만,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1회 초 공격을 무득점으로 물러났어도, 방망이에 맞아가는 걸 보면 그럭저럭 씹는 맛은 났다. 치기 쉬운 건 아니지만, 아다리가 맞으면 그럭저럭 대량득점도 꿈꿔볼 수는 있을 정도?

그럼 이 시점에서 승패는 결정된 셈이었다.

까앙! 까앙!

“아웃!”

“아웃!”

1번과 2번 타자를 잡아낸 나는 이전보다 피칭이 수월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2부 리그의 상위 타선인데도 3부 리그의 선수들보다 명백하게 약점이 뚜렷했다. 내 구속이 늘어나면서 생긴 부수적인 효과라고 봐야겠지.

“타임!”

3번 타자가 들어오기 직전, 나는 마운드에서 살짝 물러나면서 주심에게 말했다.

“심판 선생님! 저, 이번 타석은 왼손으로 던집니다.”

“……뭐라고요?”

“저 스위치 피처거든요. 이번에는 왼손 쓴다고요.”

“…….”

사람들의 얼떨떨한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글러브를 뒤집어 오른손에 끼웠다. 매번 바꾸러 가는 게 귀찮아서 특별 주문한 양손잡이용 글러브였다. 어우, 비싸더라.

갑자기 손을 바꾸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 팀은 3, 4, 5번이 선수 출신이라고 고지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왼팔로 던진 공이 더 빨랐으니까.

“이런 것도 돼? 투수가 중간에 손 바꾸기 있어?”

“어, 될 거야. 보는 건 처음인데, 들어본 적은 있어.”

“타자가 들어오기 전에만 어느 손으로 던질지 말해주면 괜찮을 걸?”

확실히 스위치 피칭이 드문 개념이기는 한지라 상대 팀 선수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얼떨떨해하는 이유는 스위치 피칭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좋은데……. 왜 굳이 우타자 상대로 왼손으로 바꿔 던져?”

“글쎄다…….”

좌투수에게는 우타자가 유리하고 우투수에게는 좌타자가 유리한 것이 상식. 유리한 손을 골라서 던질 수 있다는 것이 양손잡이의 최대 장점인데, 그걸 반대로 써먹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만도 했다.

굳이 나더러 한마디 해보라면…….

확실해? 좌투수 상대로 우타자가 유리한 거?

뻐억!

“스, 스트라이크 아웃!”

[일반 미션 ‘삼구 삼진’을 달성했습니다.]

[5포인트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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