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배터리 -029- >
029.
아버지는 “잠깐만. 잠깐만.” 하면서 이마를 짚었다.
충격을 받기에 앞서, 일단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접수가 안 돼서 그러는데……. 야구하겠다는 거하고 원서 안 내겠다는 게 어떻게 연결되는 거냐?”
“공부랑 병행할 만큼 한가한 마음으로 하려는 게 아니라는 거죠. 간판 따려고 학교까지 다니는 건 시간 낭비예요. 야구에만 올인하고 싶어요.”
“시간 낭비라니……. 프로 지망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야구를 얼마나 독하게 할 거라고 대학을 안 가?”
“프로 지망 아니라고 한 적 없는데요?”
“…….”
여기서 한 번, 아버지의 말문이 턱 막혔다.
사실, 평범한 집안이라면 이 부분에서 가장 큰 갈등이 빚어졌을 것이다.
화가라거나, 가수라거나, 운동선수라거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직업을 특수하다고 인식한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평범한 사람’의 진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놀라거나 낯설어서 불안해하는 정도라면 다행이지.
심한 경우에는 헛바람이 들었다며 이러한 진로 희망 자체를 탈선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일단 다행스러운 점이 하나 있었다.
‘태웅이는 야구를 해야 합니다.’
‘이대로만 큰다면, 태웅이는 프로에서도 최고를 노릴 자질이 있습니다.’
나나 부모님이나, 어릴 적에는 이런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실제로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러한 평가에 걸맞은 활약을 했다.
중간에 현실의 벽을 만나서 좌절하지 말았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그거야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모르는 거지. 두 분에게 있어서 나는 ‘부상만 아니면 지금쯤 프로의 꿈을 이루었을 가여운 아이’일 것이다.
“표정 보니까, 야구를 다시 한다는 것 자체는 결심을 내린 것 같은데……. 혹시 병원에는 갔다 와 봤냐? 지금 당장 통증이 없어도, 막상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오른팔로 전향할 생각이니까요.”
“오른팔? 우완투수를 하겠다고?”
“어이가 없으실 건 아는데, 망상 아니에요. 실제로 해보고, 될 만하다고 판단했어요. 샤크즈 박진효라고 아시죠? 현역 프로도 가능성 있다고 오히려 강권했고요.”
“…….”
프로 선수의 의견까지 끌어들였더니 아버지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역시 설득력이라는 건,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가 보다. 아주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진효 형이라면 충분히 말을 맞춰주겠지.
아버지가 다소 얼떨떨해하고 있다면, 어머니는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백이 1~2년쯤 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완 투수로의 전향이라니. 어떤 의미로는 완전히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도 허들이 높지 않은가.
“그래 뭐. 일단 네 뜻은 알겠다……. 솔직히 말해서 회의적이긴 한데……. 그만큼 각오하고서 결정한 일이라면 결사반대할 마음까지는 없어…….”
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건 이해가 안 가는구나. 야구는 대학에 가서도……. 아니, 프로 지망하려면 오히려 대학야구부에 더더욱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
“보통은 그렇겠죠. 그런데 저한테는 낭비예요.”
나는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대답했다.
“대학 야구에 이름을 올리면, 졸업한 뒤에나 신인드래프트 신청하게 돼요. 중간에 자퇴하면 1년 동안은 국내 구단이랑 계약 못 하고요.”
“그게 뭐가 어떻다고…….”
“너무 길잖아요. 저는 못해도 1년 이내로 입단테스트 봐서 프로 계약할 생각인데.”
“…….”
이번에는 말문이 막혔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아버지는 거의 경악해서 입을 떡 벌렸고, 어머니도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라는 얼굴로 눈만 끔뻑거렸다.
하기야. 내가 아버지였다면 육두문자를 먼저 쏟아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신동 소리를 들었다고 해도 그렇지. 초등 야구나 깔짝거리던 놈이 지금부터 1년 안에 프로가 되겠다고 선언한 셈이니까. 10년 가까운 공백이 있는데, 반대손으로 전향까지 해가면서.
“너 미쳤냐? 돌았냐? 정신 나갔냐?”
“……아버지. 그거 다 같은 뜻인데요.”
“야이 자식아! 어지간한 소리를 해야 이게 사람 말이구나 해주지! 도대체 이게……!”
“아버지. 한밤중이니까 볼륨 조금만 낮춰주세요. 민원 들어와요.”
“……!”
내가 오밤중에 이 얘기를 꺼낸 이유가 이거다.
어차피 샤우팅 한 번은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거든.
우리는 네 편이란다~ 네 꿈을 응원한단다~ 이런 것도 어지간한 얘기를 할 때나 통하는 거지.
“아버지가 왜 그러시는지 알아요. 그런데 이건 도저히 납득시켜 드릴 방법이 없어요. 결과로 보여 드리는 수밖에는요. 야구 자체는 반대 안 한다고 하셨죠? 그럼 지금 제 말이 허세인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없잖아요.”
“…….”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초능력을 밝힐 게 아니고서는 두 분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타고난 운동신경과 초능력만으로 야구를 했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훈련해서 스펙을 끌어올리면, 사회인 야구 수준에서는 독보적인 투수가 될 터였다.
그런 내가 1년 안에 새로운 ‘특성’을 오픈하면 입단 테스트 통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최저연봉은 당연하고, 계약금조차 필요 없다. 턱걸이로라도 프로에 입성만 하면 게임은 끝난다. 거기에서는 상대하는 선수 하나하나가 모두 경험치 몹이니까.
-언제 갑자기 야구하는 능력이 사라질지 모른다면 더더욱. 야구 할 능력이 있을 때 실컷 해둬야 하는 거 아냐?
수재 형님이 당연하다는 듯이 했던 그 말은 아직 신랄하게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언젠가 초능력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어중간해서는 안 되었다.
아예 인생에서 야구를 버릴 게 아니라면.
국물까지 우려먹을 작정으로, 꼼수든 뭐든 써서 한시라도 빨리 프로에 발을 디뎌야만 했던 것이다.
“혹시 당신 말이야…….”
심란한 표정으로 오랫동안 침묵하던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건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태웅이한테 무슨 얘기 한 거 있나?”
“내가 얘기는 무슨 얘기를 했다고…….”
어리둥절하게 대답하던 어머니가 흠칫하면서 입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가느다랗게 한탄했다.
응? 뭐지? 뭐야? 뭔데?
“너, 인마. 얼라가 되바라지게 집안 걱정하고 그러는 거 아니다.”
“얼라라뇨……. 나, 이래봬도 군필자인데…….”
“결혼 안 하고 취직 안 했으면 얼라지.”
태어나서 처음 듣는 분류법인뎁쇼.
뭐, 일단은 그렇다 치고. 집안 걱정은 또 무슨…….
“야구하겠다는 생각이 먼저인지 나중인지 모르겠는데. 집안 걱정한 거면 오버다. 니 애비, 아직 그 정도 능력은 있다”
“네? 아니, 무슨…….”
“야구하겠다면 안 말려. 1년 안에 못해도 상관없고, 응원도 해주마. 대신에 원서는 내라. 그게 조건이다.”
약간 멍해져 있는 나를, 아버지는 진지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너, 초등학교 때만 해도 그런 식으로 야구 접을 줄 누가 알았겠냐? 세상일은 모르는 거야. 나중에 마음이 바뀌거나 야구 못하게 되면, 그때 가서 수능공부 다시 하기라도 할 거냐? 합격한 다음에 바로 휴학해두면 언제든지 다시 복학할 수 있잖아. 여차하면 전액은 아니지만 환불도 될 거고.”
“아니, 그러면 등록금이 아깝…….”
“애비가 지금까지 널 굶겼냐, 혈벗겼냐? 그까짓 빚 좀 있다고 등록금 하나 못 해줄까 봐서 그래? 이건 너한테 선택권 없다. 거부하면 야구도 허락 못 해.”
맞다. 우리 집에 빚이 있었지. 체감할 일이 없어서 완전히 까먹……었을 리가 있나! 맞아. 그거 때문에 그런 거였지 내가!
세상에 성인될 때까지 키워줬으면 됐지, 어떻게 뻔뻔스럽게 보험 삼아서 원서만 넣은 학교 등록금까지 보태달라고 하나. 그래서 그런 거였는데, 아이고, 들켜버렸네.
뉘 집 자식인지 효자네. 효자야. 사람이 됐어. 가정교육을 잘 받은 게지.
“아버지. 그러면 야구는…….”
“그래. 기왕이면 신문 1면에 나올 만큼 해봐. 어디서 내 새끼라고 자랑 좀 해보게.”
화장실에서 중간에 끊고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버지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