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배터리-26화 (26/90)

< 괴물 배터리 -026- >

026.

‘십팔사사’의 멤버 중에 최태웅의 왼손 투구를 별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둘 정도밖에 없었다. 애당초 배팅볼을 어느 손으로 던졌는지 따위에 관심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아웃!”

그러나, 상위타선을 간단히 삼자범퇴로 돌려세운 강속구에는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 수준이 아닌데?”

“혹시 선수 출신인 거 아니에요?”

“선수 출신이라는 말 없었잖아?”

“경력 속이고 들어온 거 아니야?”

그들이 속한 리그에서는 선수 출신이 투수를 볼 수가 없었다. 투수는 게임에 대한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었다.

2부 리그로의 승격이 걸린 최종전. 경기 직전에 허겁지겁 등록이 완료된 선수. 급이 다른 강속구.

여러모로 부정을 의심할 만한 정황투성이다.

그러나 ‘십팔사사’ 멤버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따가 게임 끝나고 나서나 한 번 문의해 보죠.”

“어. 선출이고 나발이고, 우리도 점수 안 주면 되지.”

‘날아오르라’ 팀은 최태웅의 위력적인 1회 초 투구에 흥분해서 들썩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강대만 투수의 1회 말 초구를 보고는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조용해졌다.

뻐억!

“와……. 아까 연습할 때보다 더 빠르네.”

“씨발……. 저걸 어떻게 치라고…….”

강대만은 원래 프로 구단에서 연습생 생활까지 했던 사람이다. 나이가 마흔을 넘으면서 선수 출신으로 분류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

아니, 선수 시절에 투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평범한 ‘선수 출신’ 선수보다도 위험인물이었다.

그야말로 3부 리그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이…….

까아앙!

“……!”

“쳤어?!”

느긋하게 앉아서 구경하던 ‘십팔사사’ 선수 몇몇이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특히나 투수인 강대만은 총알처럼 뻗어나가는 타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울!”

힘차게 뻗어나가던 타구는 마지막에 휘어져 라인 바깥으로 떨어졌다. 강대만은 가승을 쓸어내리면서, 한편으로는 긴장의 끈을 조금 조였다.

‘괜찮아. 우연이야.’

상대도 일단 2부 리그 승격을 노리는 팀인데. 스치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역시 오만이었지.

하지만 그래도 실력 차이는 분명하다. 타구를 날린 본인부터가 얼떨떨해하고 있지 않나.

까앙! 까앙! 퍼억!

‘날아오르라’가 그랬던 것처럼 ‘십팔사사’도 닭모가지를 비트는 것처럼 간단히 1회 말을 제압했다.

하지만 단순하게 기뻐하는 야수들과 달리, 강대만은 뭔가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

표정이나 폼이나 스윙을 보면, 상대 타자들은 자신의 구속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헛스윙이 거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휘두른 방망이가 어쩌다가 공을 맞힐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게 10번 연속으로 반복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우리 공격이 문제인데……. 저거 때릴 수 있겠냐?”

“글쎄요? 집중하면 못 맞출 거야 없는데, 득점까지는 장담 못하겠네요. 우리만 때린다고 될 게 아니라서.”

“그래도 어떻게든 해봐. 너네 둘이 못 때리면 우리는 솔직히 좀 막막해.”

“해볼게요. 1~2점이야 나겠지 뭐.”

4번 타자인 이홍진은 방망이를 빙빙 돌리면서 타석에 섰다.

앞선 세 타자와 붙은 것만 봐서는 투수 실력이 어떤지 감이 안 왔다. 1~3번 타자와 저쪽 투수의 실력 차이가 너무 큰 탓이었다.

‘일단 두어 개는 지켜보고…….’

그렇게 방침을 세운 이홍진이 자세를 잡고 섰다.

마운드 위에서 최태웅이 천천히 와인드업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초구는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허술하기 짝이 없는 코스.

퍼억!

“스트라이크!”

2구도 마찬가지.

한복판에 꽂히는 포심 패스트볼.

“…….”

무심코 몸이 움직일 뻔한 것까지 억누르면서 지켜본 이홍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구가 안 되는 건가?’

그렇다면 어째 좀 아쉽다. 둘 다 절호의 찬스볼이었는데, 괜히 지켜본답시고 유리한 카운트만 만들어준 셈이 아닌가.

투 스트라이크인지라, 여기서 갑자기 처음 보는 변화구라도 꺼내 들면 솔직히 난감했다. 이래서 투수와 타자가 처음 붙으면 타자가 불리하다고 하는 거다.

‘제구가 나쁘다고 가정하고. 가운데로 물리는 공은 치고. 바깥쪽은 커트하고. 몸쪽 공은 버린다.’

스트라이크 하나 남은 상황에서 처음 상대하는 투수의 모든 공에 대응할 수는 없다. 헛물켜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노림수를 가져야 한다.

그립을 고쳐쥐고 서자, 최태웅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을 뿌렸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이홍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몸쪽 코스만 버렸는데, 어떻게 하필이면 지금 딱 그 코스만 골라서 들어온단 말인가.

“…….”

결과적으로 삼구 삼진을 먹은 꼴이라 자존심이 상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러려니 했다.

첫 대결에서 뭐 타자가 질 수도 있지.

대강 느낌을 알았으니, 다음 타석에서 때리면 된다.

“어땠어?”

“일단은 전부 직구. 제구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공 3개 중에서 2개가 한복판. 나머지 하나는 몸쪽 꽉 차게 들어왔고.”

“오케이. 그랬단 말이지?”

5번 타자인 박재형은 끄덕거리면서 타석에 섰다.

몸쪽 공을 결정구로 쓰는 투수는 보편적으로 제구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스트라이크존 한복판에 직구 2개를 던진 것은 의도적인 낚시일 수도 있었다.

짐작이 맞든 틀리든, 한가운데로 공이 온다 싶으면 그냥 때리면 된다는 말이었다.

“볼.”

“볼.”

“볼.”

하지만 기껏 벼른 게 무색하게도 볼만 연달아 3개가 들어왔다. 그것도 공 3개 정도나 크게 빠지는 코스였다.

‘낚시가 아니라, 그냥 제구가 나쁜 거였나 보네.’

대강 그런 결론이 나왔지만, 어차피 신경 쓰이는 건 처음부터 구속뿐이었다. 3볼이기도 하니까 공 하나쯤은 지켜볼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약 올리듯 한복판 공이 쑥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

박재형은 살짝 약이 올랐다.

3볼이니까 자신이 공 하나쯤 지켜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기다렸다는 듯이 이 타이밍에 한가운데 공을 줄 수가 있나.

‘이번에는 몰리면 친다.’

지금까지 한가운데 아니면 한참 빠진 공만 왔다.

그렇다면 아슬아슬한 코스는 버려도 될 터.

박재형은 스윙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자세에서 힘을 쫙 뺐다.

퍼억!

“……스트라이크!”

하지만 투수는 그런 자신의 노림수를 가볍게 비웃었다. 제구력이 나쁜 게 맞기는 한 건지, 이번에는 심판조차 갸웃거릴 만큼 미묘한 코스에 공을 꽂은 것이다.

‘제구하려고, 구속을 한참 늦췄어. 공이 느려서 변화구일 줄 알았는데…….’

3볼 상황에서 느닷없이 풀 카운트까지 몰렸더니 내심 짜증이 났다. 어떤 노림수를 가지면 좋을지, 좀처럼 머릿속이 정리되질 않았다.

부웅!

“크윽!”

갑자기 확 빨라진 높은 공에 당황해서, 기어이 방망이를 헛돌리고 말았다.

농락당한 듯한 기분에 박재형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잠깐 타임.”

“……?”

4번, 5번까지 연속 삼진을 먹은 것에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투수가 타임을 불렀다.

어리둥절한 사람들 시선을 무시한 재, 최태웅이 뚜벅뚜벅 벤치로 걸어갔다. 그가 다시 마운드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른손 글러브?”

“아니, 갑자기 왜……?”

***

최태웅은 마운드에 서서 ‘십팔사사’ 쪽 벤치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힐끗 훔쳐보면서 피식 웃었다.

‘선수 출신은 4번이랑 5번. 그리고 굳이 하나 더 끼자면 투수 아저씨.’

리그 규정에 따르면 선수 출신은 두 명까지만 들어올 수 있다. 즉, 4번과 5번을 제외한 나머지 타자는 모두 잔챙이라는 말이었다.

자신의 왼팔은 내구성이 약한 비장의 무기다. 포인트를 모아서 새로운 ‘특성’을 열 때까지는 최대한 아껴야 한다. 선수 출신 이외의 피라미한테는 쓸 필요가 없다.

“양손잡이?”

“별걸 다 하네.”

‘십팔사사’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얼굴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다였다.

투수가 손을 바꾸는 건 야구 규칙도 허용하는 일이다. 자기가 양손을 다 쓸 수 있어서 쓰겠다는데, 자기들이 뭔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그 느슨한 감정은 최태웅이 오른손으로 6번 타자에게 초구를 던지기 전까지였다.

까앙!

“ 파울!”

관심 속에 뿌려진 초구가 높이 솟구쳤다가 펜스 뒤로 사라졌다.

방망이를 휘두른 6번 타자는 물론이고, 벤치에서 지켜보던 선수들까지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저 새끼가…….”

“…….”

3부 리그의 수준으로 치면 나쁘지 않다. 그럭저럭 고전하고, 그럭저럭 때려가면서 흥미로운 승부를 연출할 만한, 딱 그런 공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써먹었던 왼손 투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요컨대, 저 투수는 양손잡이가 아니라 반대쪽 손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를 완전히 좆으로 보네?”

“존나 싸가지 없네. 와, 씨발.”

선수들이 무심코 거친 콧김을 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기로 예를 들자면, 접어달라는 부탁도 안 했는데 제멋대로 차랑 포를 떼어주는 격이다. 제까짓 게 뭐라고 자기들을 봐준다는 말인가?

까앙!

“파울!”

방망이를 쥔 6번 타자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최태웅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상대 팀 선수들의 그러한 적의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댁들은 통과점이고, 나는 왼팔을 아껴야겠는데.

아직 10포인트밖에 못 모았다.

갈 길이 멀다.

“꼬우면 왼팔 쓰게 만들어 보시던가.”

최태웅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투수판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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